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83)
783화 Trauma (2)
.전반 06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0 : 0 맨체스터 시티
맨유의 공격수 제시 린가드(Jesse Lingard)에게 있어, 2016/17 시즌은 잊고 싶은 시간이었다.
다소 아쉽기는 해도 그래도 나름 준수한 로테이션 자원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이던 선수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반드시 판매해야 할 선수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주제 무리뉴의 신뢰 속에 선발과 교체로 42경기에 출전했지만, 다섯 개의 골과 세 개의 도움에 그쳤다.
시즌 중반 계약을 갱신하며 10만 유로(약 1억 3,500만 원)의 금액을 보장받았었기에, 린가드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수 스스로 클럽에 대한 애정이 짙고 성장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기에, 맨유는 린가드에게 조금 더 기회를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맨유에서 윙으로 뛸 수 있는 선수가 단 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건,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스스로에 대한 자아가 강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향한 사랑은 더욱 거대했던 제시 린가드.
그런 그에게 김다온은 아직 PL에서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한 신입생에 불과했다.
설사 리오넬 메시가 PL에 온다고 해도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믿었던 린가드였기에, 김다온이 PL에서 반드시 성공할 거란 여론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생각을 지닌 린가드에게 있어 최고의 선수는 항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더블을 기록하며 전 세계 최고의 선수로 뛰어올랐고, 스페인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쓰며 발롱도르의 개수를 늘렸다.
지난 2016 발롱도르는 김다온이 가져가게 되었지만, 린가드는 그것이 늘 ‘동양인들의 집단적인 움직임’과 ‘FIFA 및 UEFA의 상업적 안배’가 겹쳐진 사기였다고 생각했다.
전반전 6분.
탐색전에 가까운 경기 내용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다온이 패스를 받아드는 것을 확인한 린가드가 재빨리 달려가 자신의 스터드를 상대의 발등으로 가져간다.
콱-!
“악!!”
고통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내지른 김다온이 곧바로 피치에 넘어지고, 그와 동시에 들려온 주심의 휘슬소리를 들은 린가드가 연기에 돌입한다.
양손을 입 앞으로 가져가며,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고의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주심은 그런 린가드를 믿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에게 다가가 다음엔 용서하지 않을 거라면서 주의를 시키는 데에 그쳤다.
이에, 제시 린가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어! 성공했어!’
린가드는 피치에 넘어진 김다온의 모습이 퍽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자마자 최고가 될 만큼 만만한 리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사실에, 작은 뿌듯함까지도 느낄 정도였다.
김다온이 경기 전 예측한 돌이 집어 던져진 순간이었고, 치켜 오르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린가드를 향해 근처에 있던 폴 포그바가 경고를 날린다.
“네가 괜찮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뭐?”
“벨트 단단히 매라고. 너는 지금 막 도전장을 던진 거야.”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이해하지 못하는 린가드에게 한마디를 더 보태는 것을 생각했던 포그바였지만, 곧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게 나을 거라 결론을 내리곤 입을 다물었다.
멀리에서 보기에도 제대로 발등이 밟힌 김다온은 현재, 맨시티의 팀 닥터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PL에 온 걸 환영해.’
경기 시작 후 10분도 채 되지 않았건만, 김다온의 유니폼은 PL의 거친 부분을 보여 주려는 몇몇 이들로 인해 벌써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
.전반 08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0 : 0 맨체스터 시티
“헤이!!”
“…….”
“다녀올게요.”
에두 마우리와 페데리코 제노베시에게 한마디를 남긴 후, 나는 얼른 뛰어 위치로 돌아갔다.
그러자 잠깐 아래로 내려와 있던 라힘 스털링이 다시 위로 올라섰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 상황을 살핀 나는 패스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후방에서 전달된 패스를 받아 고개를 전방으로 돌리자,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제시 린가드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잔뜩 자세를 낮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자신 있으면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멍청이.’
팡-
후방 빌드업의 중추인 야야 투레에게 패스를 전달하고 위쪽으로 올라서자, 자세는 높였지만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린가드가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소문으론 배짱이 두둑하다던데 아니었나 보네?”
“…….”
“아니면 독일이나 스페인 녀석들은 전부 불알 크기가 작은 것 아니야? 아니면 아예 없거나. 오, 이런. 내가 지금 너의 약점을 건드린 거야?”
제시 린가드의 시비를 듣고 있노라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아까 전 로멜루 루카쿠(Romelu Lukaku)도 그렇고, 안토니오 발렌시아도 고의로 나를 거칠게 대하고 있었다.
마치, 거한 환영식을 해 주겠다는 듯 말이다.
그런데 이를 겪고 있는 나의 관점에서 말을 좀 하자면, 위협이 되기는커녕 하나같이 남성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흑흑흑. 나 무서워.”
가까운 곳에서 들으라는 듯 우는 시늉을 하는 린가드를 보며, 난 가슴속으로 체크 표시 하나를 더했다.
조금 전 내 발을 고의로 밟은 것까지 더해, 이 녀석에게 갚아야 할 빚이 두 개 있는 셈이었다. 알다시피 나는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지금은 다른 게 급하다.
“Man On! Man On!!”
“?!”
‘이런!’
전반전 초반, 얼핏 팽팽한 흐름처럼 보이고는 있었지만 주도권을 잡은 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가장 큰 이유는 야야 투레가 생각만큼 폭넓게 움직여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 쓰리백의 특성상 중앙미드필드 하나의 기동력이 떨어지면 팀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사실 다비드 실바나 일카이 귄도안이 출전할 줄 알았는데, 펩의 선택은 의외로 야야 투레였다.
“온다-!! 빨리 복귀해!!”
멀리에서 들려오는 뱅상 콩파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난 폴 포그바가 뿌린 볼 줄기를 따라 얼른 측면 수비 지역으로 달려 나갔다.
앞쪽으로 굴러가는 축구공을 제시 린가드가 오른발로 잡아 두고, 나는 그가 다음 동작을 가져가기 전 태클을 가져가며 볼을 라인 밖으로 걷어 냈다.
태클한 이후에 본 린가드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그는 곧 내가 얼굴을 볼 수 없는 곳으로 움직였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거든.’
잽싸게 왼쪽 양말을 끌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후,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야야 투레에게 안데르 에레라(Ander Herrera)를 마크하라고 손짓했다.
결국 볼을 보낼 곳이 부족하게 되자, 결국 루카쿠까지 측면으로 나와 버렸다.
“밀어내-!!”
애초부터 스로인을 빼앗는 것이 아닌, 루카쿠를 측면으로 불러내는 것에 목적이 있던 수비였다.
최전방 공격수가 이렇게 나와 버리면, 측면에서 뭔가를 만들어도 중앙에서 침투할 선수가 사라진다.
페널티 박스 안쪽을 바라본 안데르 에레라도 중앙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그대로 몸을 돌려 최후방에 있는 수비수에게로 패스를 보내 버렸다.
그와 동시에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온 펩이 우리에게 전진하라고 소리쳤지만, 생각만큼 라인은 높아지지 않는다.
‘불안한 거야.’
실전으로 나서게 되자, 맨체스터 시티가 보유하고 있던 두려움이 나타났다.
지난 한 해 이곳은 사이드백이 내어 준 뒷공간 때문에 수없이 많은 실점을 했고, 그로 인해 센터백이 자주 측면으로 밀려 나오면서 중앙의 수비 역시 허술해졌다.
물론 현재는 나와 카일 워커가 있고 또 쓰리백을 세우고 있긴 하지만, 존 스톤스와 뱅상 콩파니 모두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
트라우마(Trauma).
어떻게 해야 동료이자 맨시티의 선수로서 이 클럽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을지를 줄곧 고민해 왔는데, 3주간 아무리 고민해도 나오지 않던 해답은 실전을 뛴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출되었다.
오늘을 포함한 이번 프리시즌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동료들의 두려움을 떨쳐 내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맺게 되자,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즌의 맨시티는 공격으로 나선 사이드백의 복귀가 매우 늦었는데, 의도적으로 공간을 비운 후 그것을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신뢰가 생길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상태론 답이 없다.
소극적으로 눌러앉은 세 명의 센터백과 활동력이 부족한 야야 투레 덕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앙미드필드들은 제집 드나들 듯 우리의 중원을 마음껏 헤집고 있다.
그것을 끝내려면, 중앙에 밀집된 맨유의 미드필드를 측면으로 끌어내야 한다.
“…….”
어느새 전반전 10분이 지나가고, 센터서클 근처에서 파울이 일어나며 경기가 잠깐 멈춘다.
뒤꿈치가 밟힌 쿤이 주심에게 어필하는 사이, 재빨리 달려 프리킥 지점으로 움직인 나는 모여 있는 동료들에게로 다가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볼을 오른쪽으로 몰아 줘.”
“뭐?”
“베르나르두가 지킬 거야. 그럼 카일에게 공간이 나겠지.”
“…….”
“길게 말할 시간은 없어. 그렇지만 나를 믿어. 우리가 훈련해 왔던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지금의 이 프리킥을 오른쪽으로 보내는 거야. 알겠지?”
어깨를 으쓱이는 케빈 더브라위너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으나, 워낙 고집이 세고 직설적인 녀석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겨 버렸다.
어차피 이 프리킥의 결정권은 야야 투레에게 있었고, 그가 내 의견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하! 마음대로 해.”
“소심하게 굴지 마, 케빈. 너도 딱히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잖아?”
고개와 손을 동시에 휘저은 케빈이 멀어지고, 난 야야와 눈을 맞춘 이후 다시 왼쪽 측면으로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쿤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엉덩이를 툭툭 턴 그가 살짝 절뚝이며 앞으로 걸어가는 순간 주심이 휘슬을 불어 경기를 재개시켰다.
삑-!
팡-
일단 센터백에게로 패스를 보낸 야야가 슬그머니 오른쪽 진영으로 이동하며 공격의 진로를 결정한다.
기동력을 포함한 신체적인 능력은 전성기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한때 전 세계 최고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기술은 여전히 날카로움을 빛내고 있다.
가볍게 원터치로 툭툭 패스를 몇 차례 보내자, 어느새 우리는 오른쪽 진영 높은 곳에 볼을 놓아두게 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에 자리 잡은 베르나르두에게 패스가 이어졌고, 녀석이 훌륭한 드리블로 맨유 선수들의 시선을 붙잡은 순간 카일 워커가 달릴 길이 열렸다.
대단히 공격적인 성향의 카일 워커는 베르나르두의 패스를 바로 크로스로 이어 가려고 했지만, 지금까지의 훈련이 그를 멈칫하게 한 것 같았다.
페널티 박스 안을 보았던 그가 몸의 긴장 상태를 풀며, 패스를 다시 뒤로 돌린 것이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뛸 때는 해리 케인(Harry Kane)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있었지만, 이곳 맨체스터 시티는 기본적으로 키가 큰 공격수가 없다.
쿤도 173cm의 포처(Poacher)였고, 벤치에 있는 가브리에우 제수스는 최전방에서도 뛸 수 있으나 기본적으론 측면에서 뛰는 윙어였다.
그래서 펩은 측면에서 띄워 올리는 크로스를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대신.
팡-!
‘그렇지. 그거야.’
‘비엘사시즘’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이라고 부를 수 있는 3+1전술을 발전시켜, 흔히 농구 전술로 알려진 아이솔레이션(Iso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진화시켰다.
펩은 좌우 측면 중 한쪽 공간에 다수의 선수를 밀어 넣어 의도적으로 피치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그에 맞춰 수비 숫자가 더해지면 바로 방향을 전환하는 패스를 보냈다.
하프 스페이스를 점유하고 그곳에서 반대 방향을 보도록 만들어 전환하는 것 자체는 뮌헨에서 하던 축구와 같지만, 만드는 과정은 한참 다르다.
기존의 전환 패스가 수비를 좌우로 흔들어 수비 사이의 균열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의 이 아이솔레이션은 철저히 특정 선수를 고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재미있는 건, 이 고립이 상대방이 아닌 아군에게 적용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탁-
빠르고 정확했던 베르나르두의 받아 든 순간, 내가 선 위치에서 맨유의 골대까지 향하는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차선이 곧 꽉 채워지며 병목현상이 일어날 예정이었기에, 달리는 것보다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축구공을 골대까지 보낼 필요가 있었다.
살짝 앞으로 받아 두었던 축구공의 곁에 왼발을 놓아둔 후, 난 그대로 오른쪽 발을 축구공에 가져다 댔다.
퍽-!!
골대의 빈 곳으로 쏘아져 나간 슈팅이 그대로 골라인을 넘어서는가 싶었지만, 다비드 데 헤아가 몸을 날리며 환상적인 세이브를 보여 준다.
마누엘 노이어와 더불어 월드클래스로 꼽히는 골키퍼다웠던 훌륭한 선방이었다.
‘지금은 골키퍼가 잘했어.’
골이 되지 않은 게 못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수긍이 될 만한 장면이었다. 슈팅은 강하고 빠르면서 또 정확했는데, 그걸 막은 데 헤아가 조금 더 잘했다.
금세 아쉬움을 털어 버린 나는 그대로 양손을 들어 올려 가슴팍의 앞쪽으로 가져갔다.
그러곤 손뼉을 두들기면서, 주변 동료들에게 더 자신 있게 뛰라고 소리쳤다.
“Come on-! 우린 더 잘 뛸 수 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재 이 팀에 가장 부족한 게 있다면 두려움을 떨쳐 버릴 용기와 자신감이었다.
“우린 좋은 팀이라고!! 빌어먹게 좋은 팀 말이야!!”
“…….”
제시 린가드가 던진 돌에 맞은 나는 이미 정신이 깨어났지만, 다른 동료들이 같은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코너킥을 차기 위해, 케빈이 한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
.전반 24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0 : 0 맨체스터 시티
팡-!!
{“우오오오-!!”}
라힘 스털링의 슈팅을 다비드 데 헤아가 또 한 번의 환상적인 선방으로 막아 내자, 맨유의 벤치에서 한 남자가 일어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주제 무리뉴는, 전반 10분 이후의 경기 내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점유율이 넘어갔고, 슈팅을 허용하는 간격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무리뉴는 지금, 너무 쉽게 측면으로 딸려 나간 수비진을 향해 분명한 불만을 표현했다.
“왜 그를 비워 둔 거야!!”
“…….”
“볼은 라힘이 들고 있었다고!! 라힘!!”
맨체스터 시티의 빌드업 과정, 오른쪽 측면을 떠나 중앙 지역으로 이동한 베르나르두 실바가 두 명의 중앙미드필드 위에서 움직이며 기회를 만들었다.
김다온에게서 짧은 패스를 전달받아 영리한 동작으로 몸을 돌린 베르나르두 실바는, 압박을 시도하던 안데르 에레라를 가볍게 벗겨 내며 위험 지역으로 들어섰다.
다시 패스가 라힘 스털링에게로 이어졌고, 그가 전진을 시작함과 동시에 김다온과 베르나르두 실바가 좌우 날개처럼 찢어져 달려갔다.
이에 당황했는지 맨유 수비수들은 라힘 스털링을 비워 두는 실수를 했고, 그렇게 라힘 스털링은 페널티 박스 바로 바깥에서 슈팅을 시도할 기회를 얻었다.
매번 훌륭한 돌파를 보여 주고도 마무리가 약했던 스털링이었지만, 이번 슈팅은 보기 드문 제대로 맞은 것이었다.
슈팅의 방향이 조금만 더 측면으로 향했더라면, 아무리 데 헤아라도 막는 것을 장담할 수 없었다.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어! 다들 너무 나약해!”
“템포를 늦춰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건 오히려 펩이 바라는 일일 거야.”
“…….”
“전반전 10분까지 딱 좋았어.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뭘 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쉽군.”
시우비누(Silvino) 코치에게 답한 무리뉴가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 다리를 꼬며 한 손을 코 아래로 가져갔다.
그렇게 비스듬한 자세가 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은 몇 년 전에 놓친 풀백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자네와 난 동류라고 생각했지.’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었던 김다온이 마음을 바꿔 바이에른 뮌헨으로 향했을 때, 주제 무리뉴가 느낀 좌절감은 이루 설명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김다온은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의 핵심이었고, 자신의 밑에서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를 놓친 것도 모자라, 하필이면 펩 과르디올라와 함께하게 되어 버렸다.
‘난 정말 그렇게 믿었어.’
어린 시절, 주제 무리뉴는 무척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세투발의 무역을 휘어잡았던 삼촌 덕분에 돈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무리뉴가 세 살이던 때, 축구 선수였던 무리뉴의 아버지는 아들 역시 축구 선수가 되길 원했고 그에게 축구공을 쥐여 주며 집 마당에서 뛰놀게 했다.
그런데 그 마당은 축구 잔디로 뒤덮여 있었고, 무리뉴의 곁엔 그와 함께 놀아 줄 여러 명의 하인 역시도 존재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삼촌의 죽음과 공산정권이었던 세투발이 삼촌의 사업을 국가 소유물로 수용하면서, 무리뉴의 삶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더 지나 공산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었을 땐, 공산정권을 지지했던 무리뉴의 가족은 빈민가의 허름한 집 한 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말았다.
부자에서 빈민으로.
순식간에 삶의 모든 게 바뀌어 버린 주제 무리뉴의 가슴속엔 뒤틀린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런 그에게 김다온은 어린 날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전해 주었다.
비록 김다온은 극적인 추락을 겪진 않았지만, 가난으로 축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던 모습은 무리뉴로 하여금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주제 무리뉴에게 있어 펩 과르디올라는 굉장히 복합적인 존재였다.
FC 바르셀로나에서 코치와 선수로 함께할 시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였지만, 감독과 감독으로 만난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어긋나기만 했다.
하지만, 무리뉴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몰락이 함께한 어린 시절이 만들어낸 뒤틀린 감정이 거대한 의심으로 자리를 잡은 채 성장해 버린 자신.
반면 펩 과르디올라는 처음부터 가난한 소년이었지만, 화목한 마을 분위기 속에서 예의 바른 청년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그 재능을 드러냈다.
포르투갈 국가대표까지 지낸 아버지가 있음에도 평범한 수준조차 되지 못했던 자신과는 달리, 과르디올라는 촌에 있었음에도 실력이 알려져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과르디올라는 곧 최고로 성장했고, 이내 FC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뛰며 스페인 국가대표 유니폼까지 입었다.
같은 클럽에서 같은 목표를 바라볼 땐 그저 대단하게만 보였던 것들이,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무리뉴의 열등감을 건드리는 원인이 되었다.
무리뉴는 어떻게든 과르디올라에게 승리를 거둬 자신이 뒤처지지 않음을 증명하길 원했고,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 시절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FC 바르셀로나를 괴롭혔다.
미디어를 향해 FC 바르셀로나가 심판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고, 삼류 가십 매거진이 다룰 법한 이야기들을 논하면서 끊임없이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 펩 과르디올라가 안식년을 가지고 자신 역시 첼시 FC로 오게 되면서, 둘은 그렇게 화해를 하는 듯했다.
한데.
{“워어-!”}
“…….”
한때 유럽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다온의 이적 사가(SAGA)가 자신과 과르디올라의 관계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좋았을 때의 원점이 아니라, ‘엘 클라시코’를 치르는 두 클럽의 감독으로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며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 냈을 때로 말이다.
김다온의 이적에 상처를 입은 무리뉴는 한동안 과르디올라의 연락을 거절했고, 작년 PL에서 함께하게 된 후에야 겨우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더는 과르디올라와의 관계를 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김다온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려 오는 주제 무리뉴다.
삐?익!!
조금 전 관중석이 들썩였던 건, 김다온이 절묘한 원터치 동작을 가져가 린가드의 가랑이 사이로 축구공을 굴려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휘슬은 거기에 분노한 린가드가 김다온의 발을 걸어 버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다시 한번 강력하게 주의를 시키는 주심을 보며, 무리뉴는 이 경기가 친선전이 아니었다면 린가드가 진즉에 옐로카드를 받았을 거라고 믿었다.
엉덩이를 대고 피치에 앉은 채 환히 미소를 짓는 김다온의 모습은, 4년 전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가난이 만들어 낸 오기와 의심이 그를 강하게 만들 거로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현재의 김다온을 만들어 낸 것은 과거의 펩 과르디올라와 같은 예의 바른 열정이었다.
단 한 순간도 자신과 똑같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리뉴는 허탈하면서도 유쾌한 기분이 느껴져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큭큭큭큭. 큭큭큭.”
“??”
이에 곁에 앉은 시우비누가 의아해하지만, 아무 말도 할 생각이 없던 무리뉴는 좀 더 경기를 지켜보기로 한다.
가뜩이나 뜨겁기로 소문난 맨체스터 더비.
지난 시즌에 이미 주제 무리뉴 VS 펩 과르디올라의 구도로 한층 더 복잡해진 줄거리가 이 유서 깊은 더비에 보태어진 상태다.
그런데 이제, 김다온이라는 새로운 요소 하나가 더비에 끼어들었다.
오직 무리뉴와 과르디올라만이 알고 있는 이스터에그와도 같은 것이지만, 그게 맨체스터 더비를 더욱 뜨겁게 달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즌이 기대되는군.’
맨체스터 더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에, 주제 무리뉴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심에 맞설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PL은 아직, 그 시작을 알리지도 않은 상태다.
.
.
.전반 종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0 : 0 맨체스터 시티
***
작가의 말 ? 에, 공지가 하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조사 참여가 생겼습니다.
지인 중 한 분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셔서, 21일 하루 타지방을 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편을 업로드했고, 수요일은 하루 쉬고 목요일에 다시 2편이 업로드됩니다.
이렇게 되면 월화수목 6편 연재로, 기존 2121과 분량 자체는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변동을 알리게 되어 사과를 올립니다.
코로나 조심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