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84)
784화 Trauma (3)
.하프 타임
@맨체스터 시티 드레싱 룸
선수들의 앞에 선 펩 과르디올라.
그는 전반전을 이렇게 평가했다.
“Awful(끔찍했다).”
맨체스터 시티는 전반, 볼 점유율/패스/슈팅/유효 슈팅 등과 같은 지표에서 단 하나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전술의 실패라고 평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르디올라는 다른 부분에서 원인을 찾았다.
“우린 패스를 하지 못했다. 다들 엉뚱한 곳만 찾았다고. 전반전 피치 위에는 최소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의지가 있었다. 그건 팀이 아니야! 오합지졸이지.”
“…….”
“어째서 패스를 해야 할까? 나는 이것을 작년 내내 너희들에게 설명해 왔다.”
자신의 축구를 티키타카(Tiki-Taka)로 설명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과르디올라지만, 자신의 철학이 많은 패스를 요구한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런 목적이 없는 패스를 싫어하는 것뿐이다.
또한, 단결이 안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패스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진하기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볼을 발밑에 놓아두지 않았을 때 더욱 빨리 달릴 수 있어!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 볼을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보내고, 그가 다시 네게 패스를 보낼 수 있도록 움직인다! 그게 전부야!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나?”
전반전의 맨체스터 시티는 너무나도 많은 템포를 보여 줬다. 기동력이 떨어진 야야 투레는 느린 전개를 원했고, 반면 케빈 더브라위너는 빠르고 직선적인 축구를 선호했다.
그래서 그로 인해, 단절이 생겨났다.
윙백과 공격진영을 연결해 주는 중앙 미드필드의 의견이 상충되면서, 본인과 가까운 쪽에 자리한 동료의 패턴에 맞춰 속도를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전략의 다양성은 축구 전술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템포만큼은 늘 같은 기조(基調)를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너무나도 성향이 다른 선수들.
지난 시즌의 실패도 이것 때문이었다.
“선수를 바꾼다.”
“…….”
“다비드. 그리고 포든. 베르나르두가 왼쪽으로 이동하고, 포든 네가 오른쪽에서 뛴다.”
야야 투레와 라힘 스털링을 교체하기로 한 펩 과르디올라가 두 명의 신구(新舊)자원을 투입하고, 이어서 그는 후반전 팀이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이런 펩 과르디올라의 시선은, 불만족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김다온에게로 향한다.
***
“케빈! 네가 좀 더 아래로 내려와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비드! 네가 높은 위치에서 공격을 전개해 줘야 해. 세르히오도 전반보다 더 낮게 내려오도록. 포켓과 좌우 하프스페이스. 여기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한다.”
전반전을 뛰고 난 뒤에 느낀 것이라면, 피치 위에 너무 많은 의견과 생각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복잡한 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 동료의 말을 경청할 생각도 없이 무작정 내가 옳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좋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맨시티 소속으로 지내오며 느낀 점이 있다면, 이곳의 남자들 대부분이 소통과 이견 조율에 서툴다는 것이었다.
아직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유달리 이곳에 모인 남자들의 고집이 센 것일 수도 있고, 잉글랜드 축구 문화의 일면이거나 혹은 펩이 너무 타협을 많이 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전부 다이겠지. 아마 그게 맞을 거야.’
인간은 특정한 현상의 원인을 단일한 이유에서 찾으려 하는 실수를 평생 저지르고 산다는 말을 떠올리며, 난 일단 복잡한 생각은 관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일단 펩이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개선의 측면에서는 효율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당장 뭔가를 바꾸기엔 가장 좋다.
“전반전은 우리가 뭘 추구하는지 전혀 보여 주지 못했어. 후반전엔 달라져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패스, 패스패스패스. 그것을 통해서 너희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 있다.”
팀의 전체적인 색과 가장 동떨어져 움직이던 야야 투레와 라힘 스털링을 빠졌다. 그리고 연계와 드리블을 통한 전진에 재주가 있는 다비드와 포든이 들어섰다.
그리고 피치에는 이미, 그것을 할 수 있는 베르나르두 실바가 전방에 존재한다.
전방 자원에게 볼이 투입되었을 때, 전반전보다 더 많은 짧은 패스와 오프-더-볼이 있을 것이라는 걸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는 이유였다.
또한, 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던 케빈을 박스-투-박스로 돌린 것 역시 절절한 판단이라고 본다.
케빈 더브라위너는 주변의 색이 어떠하건 자신의 방법으로만 축구를 가져가려는 남자라서, 이번 교체와는 상관없이 전반과 똑같이 뛰려고 할 것이다.
그건 일단 볼을 받아놓고 짧은 패스와 움직임을 통해 균열을 만들려는 베르나르두나 포든의 색과 맞지 않는다.
그럼 또다시 아게로는 헷갈릴 것이고, 어느 박자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다 보니 무작정 오프사이드 라인만 파괴하려는 단조로운 축구를 펼칠 거다.
한데 케빈 더브라위너에게 후방 빌드업을 맡기게 되면, 그의 전진성과 템포를 억누르는 게 가능했다.
다비드 실바는 다양한 축구를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론 베르나르두나 포든처럼 짧은 패스와 연계를 선호하고 볼 없는 상황에서 많이 뛰어 주는 선수와 뛸 때 더 빛이 난다.
“전반전은 우리가 너무 급했어.”
“…….”
펩의 팀 토크가 끝나고, 나는 물병을 쥔 손을 무릎 사이에다 놓아두고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쪽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기도 전에 거기로 볼이 갔어. 수비수가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을 봤는데도 말이야. 볼을 오래 소유하고 공격수가 충분히 주변을 살필 여유를 주면, 더 좋은 곳으로 패스를 보낼 수 있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베르나르두 역시 나와 같은 의견을 보태었고, 카일 워커는 전반전 자신이 꽤 좋은 위치로 오버랩을 갔음에도 패스가 이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전반전 우리의 가장 좋은 장면은 나와 스털링이 날린 두 개의 유효 슈팅이 전부다.
외의 모든 득점과 가까운 장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나왔고, 에데르송의 선방과 뱅상 콩파니의 훌륭한 태클이 아니었다면 실점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이후로도 몇 마디 더 이어진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후반전을 치를 준비를 마쳤다.
“준비는 됐어?”
“물론이야.”
“그래. 같이 왼쪽에서 뛰는 거야.”
“왼쪽은 처음이었던가?”
“그런가? 뮌헨에서 몇 번 있지 않았어?”
“기억 안 나. 잘 모르겠어.”
“나도.”
1년을 조금 넘겨 베르나르두와 같은 라인에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연습 때에도 늘 반대 방향에서 플레이했기에,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몹시 기대됐다.
서로 힘을 내자고 격려를 나누며 드레싱 룸을 나서자, 바로 앞에서 몸을 풀고 있던 포든이 보였다.
“먼저 가.”
“그래.”
내가 베르나르두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녀석이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남자라는 점 때문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저 친구는 한없이 진지해진다.
평소였다면 포든과 대화를 나누려는 것을 보고 장난을 쳤을 건데,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긴장돼?”
“하하. 잘 모르겠어요.”
“나쁘지 않네.”
“그래요?”
“응. 최소한 허풍은 떨고 있지 않잖아?”
“Nah- 전 그런 성격은 아니라서요.”
“나도 알아.”
필 포든은 무려 2000년생으로, 작년 12월 펩이 콜업하며 맨시티 역사상 세 번째로 어린 1군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올핸, 미국 투어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
“……네.”
“너는 이미 훌륭한 선수야.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만, 지금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어. 그러니 오늘은 네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를 보여 주자. 알겠지?”
고개를 끄덕인 포든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은 후, 적당히 몸을 풀고 나오라는 이야기를 남기곤 피치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통과하여 밝은 곳으로 빠져나오자, 주변에 자리 잡은 팬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왔다.
여기저기에서 내 이름이 외쳐졌고 또 한국어 역시 간헐적으로 섞여 있었지만, 전반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일단 그 모든 것을 무시해 버리기로 한 상태다.
서운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팬서비스는 경기가 끝난 뒤에 할 생각이었다.
‘우리는 더 잘 뛰어야 해. 그리고 나도.’
많은 부분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전반전을 만회하겠다고 결심한 나는 전반전의 정확히 반대되는 위치에 서서 후반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삐?익!!
.
.
.후반 04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0 : 0 맨체스터 시티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체감상 느껴지는 경기력은 전반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공격 전개 속도는 전반이 더 빨랐을 수도 있으나, 전진은 후반전이 훨씬 잘됐다.
베르나르두의 감각적인 원터치 패스가 사이드라인을 따라 오버랩하던 내게 전달되었고, 그것을 백숏으로 받아 방향을 틀자마자 제시 린가드가 나를 잡아챘다.
난 그대로 넘어졌고, 주심은 휘슬을 불어 좋은 지점에서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TWICE.”
무릎을 짚으며 일어선 내가 주심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든 이유는, 린가드가 나를 이런 식으로 잡아챈 게 두 번째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친선 경기라 경고나 퇴장이 조금 관대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완전히 몸을 일으킨 내가 허리를 굽혀 무릎에 묻은 잔디와 흙을 털어내자, 케빈과 다비드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 둘이 현재의 위치에서 킥을 처리할 것이다.
후방으로 적당히 물러선 내가 박스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볼을 처리할 준비를 마치고, 그러는 사이 케빈과 다비드 역시 은밀한 대화를 끝마쳤다.
위치상으로는 케빈의 오른발이 아닐까 했는데, 일단 손을 들어 올린 쪽은 다비드였다.
‘뭐, 저거야.’
얼마든지 속임수를 가져갈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난 볼이 놓인 지점이 시선을 고정한 후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어 멈춰져 있던 경기를 재개시키고, 다비드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움찔했지만 실제로 킥을 처리한 쪽은 예상대로 케빈이었다.
{“아아아…….”}
제법 날카롭게 박스 안으로 궤적을 그린 패스였지만, 다소 높았던 탓에 축구공은 그대로 골라인을 빠져가 버렸다.
아쉬워하는 탄식이 관중석에서 들려왔고, 케빈은 머쓱했던 것인지 괜히 애꿎은 잔디를 축구화의 앞쪽으로 두드리며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그렇게 나 역시 본래의 수비 위치로 움직이려고 했을 때, 오른쪽으로 이동한 마커스 래시퍼드(Marcus Rashford)가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전반전 카일 워커에 의해 꽁꽁 묶여 버린 래시퍼드는 피치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망쳐 온 거야?”
“…….”
“Good Talk.”
래시퍼드는 현명하게도, 나와의 신경전을 피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별로 대단치 않아.”
“뭐? 나 말이야?”
“내 생각에, 너는 과대포장됐어.”
“……뭐, 그럴 수도.”
“What?”
나름 걸어온 신경전을 내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바로 받아넘기자, 오히려 당황해 버린 래시퍼드가 참지 못하고 물음표가 달린 문장으로 질문을 던져 왔다.
신경전을 걸고 받는 상황이 역전되었단 뜻이었고, 난 바로 목소리를 이어 나갔다.
“가끔 사람들이 나를 왕이나 신이라고 부르더라고. 그런데 있잖아. 난 그 정도로 대단하진 않거든.”
“…….”
“그래도 너를 제압할 만큼은 될 거야.”
“하-! 한번 해 볼래?”
“그럴까?”
축구공이 움직이는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래시퍼드와 나는 2.5~3M 정도 되는 거리에서 신경전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때마침 맨유의 빌드업은 폴 포그바에게로 이어졌고, 부드럽게 몸을 돌린 그는 측면으로 넓게 벌려선 래시퍼드를 발견하곤 바로 전환 패스를 보내왔다.
재빨리 발을 움직인 나는 래시퍼드의 앞에 자리를 잡은 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가 내릴 선택을 기다렸다.
만약 여기에서 패스를 뒤로 보낸다면 난 래시퍼드의 배짱 없는 모습을 비웃을 것이고, 그 부분은 이 녀석 역시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
1997년생.
한 번의 공격 포제션(Possession)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나이다.
“Come On!!”
“!”
덤비라고 외친 내 목소리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인지, 오른쪽 팔을 살짝 들어 올린 래시퍼드가 드리블을 시작했다.
짧게 짧게 변화를 주기보다 길게 툭툭 치고 나가는 스타일의 래시퍼드인지라, 녀석은 내가 몸을 돌려 뛰게끔 만들기 위해 라인을 따라 축구공을 길게 밀어 넣었다.
제법 괜찮은 시도였고, 훌륭한 스피드를 갖춘 래시퍼드는 앞으로 차 놓은 볼에 나보다 먼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탁-
“!!”
기껏해야 밀리초(ms) 단위였다.
래시퍼드가 두 번째 드리블을 가져가려고 한 순간 축구공을 사이에 둔 녀석의 발 정확히 반대 방향에 내가 왼발을 가져다 댔다.
저항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믿었던 녀석은 갑작스러운 반작용을 얻게 되자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맨유의 벤치가 있는 곳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
빼앗아낸 축구공을 다비드 실바에게 연결하고 맨유의 벤치를 바라보자, 어느새 대기심에게로 다가간 주제 무리뉴가 어필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친선 경기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무리뉴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리뉴는 승리를 거둘 수만 있다면, 심판에게 압박을 주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 남자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 시절 땐, ‘엘 클라시코’를 앞두고 그날 휘슬을 잡을 주심을 거론하며 FC 바르셀로나에 유리한 판정이 내려질 거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승리를 향한 집착 부분에 점수를 매길 수도 있겠지만, 그게 너무 과하다 보니 싫어하는 사람이 좀 더 많은 편이었다.
후방에서 빌드업 된 볼이 앞으로 이어지고, 덩달아 라인을 높였던 나는 반대쪽에서 스로인이 되는 틈을 타 가까이에 있던 무리뉴를 돌아봤다.
어느새 진정된 그는 무심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했어요?”
“…….”
“Relax. 이건 친선 경기잖아요.”
“…….”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리뉴가 획 돌아서는 모습에서, 과거의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 첼시로의 이적을 철회했던 걸, 여전히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의 나는 일종의 가해자였던지라, 상처를 받은 무리뉴를 존중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직 그만이,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
반대편에서 스로인이 이뤄지고, 최후방으로 연결되었던 축구공은 케빈을 거쳐 반대 방향에 있는 내게로 이어졌다.
조금 전 볼을 빼앗기며 자존심이 상해 버린 래시퍼드가 강하게 압박을 가해 왔지만, 난 여유 있게 그를 상대하며 접근해 온 다비드 실바에게로 패스를 이었다.
“Man On!”
Man On이란 말은 상대 수비가 가까이 달라붙고 있다는 뜻이다.
다비드가 볼을 발아래에 컨트롤한 순간 안데르 에레라의 접근이 있었고, 이내 강하게 뒤엉킨 두 사람의 사이에서 치열한 볼 다툼 상황이 발생했다.
잠깐 접근하는 것을 고민했던 나였지만,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 상황을 확인하곤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잠시 뒤, 에레라의 수비로부터 볼을 지켜낸 다비드가 베르나르두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Amigo!!”
조금 전 나는 다비드 실바가 볼을 지켜낼 거라 믿고 사이드라인에 붙어 벌려 뛰어 주는 선택을 했다. 만약 볼이 앞으로 이어지면, 이게 더 좋은 기회를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다비드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강력한 압박을 뚫어 낸 다비드가 베르나르두에게 패스를 연결한 순간, 나는 이미 꽤 높은 위치에 있었고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이런 나를 경계해야만 했다.
그렇게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 상황에서 패스를 받아 든 베르나르두는 여유롭게 몸을 돌릴 수 있었다.
“ISOL!!”
“…….”
아마 베르나르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조금 전 녀석의 위치는 볼 다툼을 벌였던 다비드와 사이드로 벌려 움직이기 시작한 나를 한 번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내가 녀석을 불렀던 게, 안토니오 발렌시아를 끌어들인 걸 알리는 거라고도 말이다.
뒤이었던 마지막 외침 역시, 이번 시즌 펩이 맨시티에서 하고자 하는 축구의 가장 기초가 되는 아이솔레이션 플레이를 뜻하는 것이었다.
파앙-!
피치의 왼쪽 사이드에 쿤까지 끌어들이면서 네 명의 선수를 놓아두게 되자, 맨유의 수비는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쏠렸고 반대편에 많은 공간이 노출되었다.
현재 베르나르두의 패스가 향하는 곳엔 필 포든이 있었고, 그 앞을 막는 건 맨유의 왼쪽 수비수 딜레이 블린트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현재 두 사람이 서 있는 위치였다. 포든은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에서 패스를 받았는데, 그의 뒤부터 사이드라인 앞까지는 완전한 무주공산이다.
거기로 카일 워커가 뛰어들게 되자.
“여기 막아!!!”
필 포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딜레이 블린트는 다른 동료에게 자신의 위치를 맡기곤 카일 워커가 있는 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 스몰링이 재빨리 커버에 들어오지만, 압박을 전혀 받지 않은 포든은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대로 왼발을 슈팅을 날려도 좋고, 그게 아니라면 라인을 파괴하는 움직임을 가져가는 쿤과 그의 뒤쪽에서 함께 움직이는 베르나르두를 겨냥해도 좋았다.
공격과 수비가 함께 움직이는 상황인 만큼, 신장의 열세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라면.
“필!!!”
“…….”
팡-
쿤과 베르나르두가 맨유의 수비수를 몽땅 박스 안으로 끌고 들어간 틈을 타, 골 에어리어가 있는 곳으로 움직여 들어간 나를 바라볼 수도 있었다.
여기에서 놀라웠던 건, 슈팅하고픈 본능을 억누른 필 포든이 정확히 나를 발견했다는 점과 놀랍도록 침착한 모습으로 축구공을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데뷔 경기라면 얼마든지 욕심낼 법도 했는데, 포든은 마치 몇 년은 PL에서 뛰어온 선수처럼 선택했다.
‘이걸 망치면 좀 그렇겠지?’
클럽 내에서 가장 어린 선수가 이렇게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 줬으니만큼, 나 또한 그에 합당한 플레이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입을 꾹 다문 나는 다이렉트 슈팅을 가져가는 데 보다 공을 들였고, 마지막 임팩트가 느껴지는 순간까지 축구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퍽-
강하게 차는 것보다 정확한 임팩트에 더 초점을 맞춘 슈팅이었기에, 발이 맞닿으면서 나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멈춰져 있는 축구공을 걷어찬 것이 아니었기에, 강하게 찬 것만큼이나 충분한 속도를 확보하며 낮고 빠르게 날아 맨유의 골대 오른쪽 아래로 나아갔다.
내가 저곳을 목표지점으로 삼은 이유는, 현재 이 위치에서 저곳만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일 워커의 오버랩이 맨유의 수비를 한쪽으로 당기고, 쿤과 베르나르두가 그 반대 방향에서 나머지 수비를 박스 안으로 끌고 들어간 덕분에 슈팅할 길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피치 위를 스치듯 날아간 축구공은 잠시 뒤 길게 쭉 뻗은 다비드 데 헤아의 왼팔 뒤로 사라진다.
그 말은 곧, 데 헤아의 다이빙이 늦었다는 뜻이다.
촤르르륵-!
회전을 머금은 축구공이 그물과 마찰할 때 나는 특유의 소리가 짧게 들려오고, 그것을 뒤덮은 것은 이곳 NRG 스타디움에 자리 잡은 팬들이 내지르는 큰 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