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91)
791화 Trauma (10)
※ 2017/18 EPL Summary By Daily Mirror
-> EPL 관계자/선수 대상 조사
-> 2017.08.10. 발표
1. 어떠한 클럽이 2017/18 시즌 우승을 차지할까?
1위 – 맨체스터 시티 : 33%
2위 ? 첼시 : 24%
3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
4위 ? 리버풀 : 17%
기타 ? 아스널 : 4%, 外 : 3%
2. 누가 2017/18 시즌 득점왕이 될까?
1위 ? 해리 케인(토트넘) : 57%
2위 ? 로멜루 루카쿠(맨유) : 24%
3위 ? 제이미 바디(레스터) : 12%
기타 ? 라힘 스털링(맨시티), 에당 아자르(첼시), 사디오 마네(리버풀) : 각각 2%
3. 누가 2017/18 시즌 도움왕이 될까?
1위 ? 김다온(맨시티) : 50%
2위 ? 케빈 더브라위너(맨시티) : 27%
3위 ? 크리스티안 에릭센(토트넘) : 13%
기타 ? 세스크 파브레가스(첼시), 알렉시스 산체스(아스널), 메수트 외질(아스널), 베르나르두 실바(맨시티) : 각각 2%
4. 가장 성공적인 이적 시장을 보낸 클럽은?
1위 ? 맨체스터 시티 : 91%
2위 ? 토트넘 홋스퍼 : 4%
3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3%
기타 : 3%
5. 이적 선수 중 가장 기대되는 선수는?
1위 ? 김다온(맨시티) – 96%
기타 : 4%
6. 가장 충격적인 이적은?
1위 ? 로멜루 루카쿠(에버튼->맨유) : 43%
2위 ? 김다온(뮌헨->맨시티) : 38%
3위 ? 에므리크 라포르트(빌바오->맨시티) : 11%
기타 : 8%
7. PL에서 UCL 우승팀이 나올 것인가?
예 : 46%
아니오 : 54%
8. PL에서 UEL 우승팀이 나올 것인가?
예 : 30%
아니오 : 70%
9. PL이 현시점 세계 최고의 리그라 생각하나?
예 : 49%
아니오 : 51%
***
2017년 8월 11일. 랜싱 BN15 9FP, 잉글랜드. 60 매쉬 바안 레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엘리트 풋볼 퍼포먼스 센터(American Express Elite Football Performance Centre. 60 Mash Barn Ln. Lancing BN15 9FB, England).
1901년에 창단된 브라이튼 앤 호브 앨비언 풋볼 클럽은 영광과는 쭉 거리가 먼 클럽이었다.
창단 후 약 70여 년간 잉글랜드의 2부와 4부리그를 오갔고, 1980/81 시즌 마침내 잉글랜드 1부 리그 무대를 밟았으나 그마저도 네 번의 시즌이 전부였다.
심지어 1996/97 시즌이 끝난 뒤엔 클럽을 운영할 돈이 없어 홈 경기장을 판매해야 했고, 이후 두 시즌 동안 110KM 정도 떨어진 질링엄의 홈 경기장을 빌려 시합을 치렀다.
이렇듯 클럽 해체를 목전에 둘 정도로 경영에 악화 일로를 걷던 브라이튼을 구원한 건, 다름 아닌 스스로 돌고래 혹은 갈매기라 자처하던 클럽의 팬들이었다.
잉글랜드 남부 항구도시의 유일한 축구 클럽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던 이들은, 팀의 재건과 구장 신축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도시 밖 사람들의 조소와 비아냥 속에서도, 브라이튼의 팬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는데, 음원 수입을 클럽 재건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Tom Hark(We Want Falmer)!’라는 노래가 UK 차트 17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 일로 브라이튼 팬들의 활동은 BBC와 같은 공영 방송사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며 마침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었다.
팀의 재정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물론, 브라이튼에 있는 위드딘 스타디움(Withdean Stadium)을 장기 임대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위드딘 스타디움은 최대 1,350명만이 수용 가능한 조기축구회 수준의 경기장이었고, 무려 12년 동안 형편없는 시설에서 뛴 브라이튼은 3, 4부 리그를 맴돌아야 했다.
그러던 2009년, 월드 시리즈 포커 토너먼트 챔피언인 토니 블룸(Tony Bloom)이 브라이튼을 인수하면서 조금씩 클럽에 반등이 이뤄졌다.
훌륭한 포커 플레이어이자 동시에 탁월한 스포츠 도박사 겸 사업가이기도 했던 토니 블룸은, 성공적으로 투자자를 유치하여 현재의 홈경기장을 짓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도 블룸은 계속해서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쳤고, 결국 2016/17 시즌 꿈에 그리던 PL 승격을 일궈 냈다.
“좋아, 좋아!! 더 빠르게!!”
“패스! 패스!!”
“Nice One, Davy! Nice One!!”
돈이 없는 서러움과 수많은 굴곡을 겪은 브라이튼 앤 호브 앨비언 풋볼 클럽.
현재 이들은 영광만을 꿈꾸고 있다.
“훌륭한 분위기로군.”
“34년 만의 PL 경기니까요. 더구나 홈 개막전이 아닙니까? 티켓이 순식간에 동났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암표를 못 구해서 안달일 정도입니다.”
“팬들이 실망하면 안 될 텐데 말이야.”
“팀을 믿어야죠, 딕.”
재정난에 허덕이던 브라이튼이 해체를 고려하고 있을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잉글랜드 출신 사업가 딕 나이트(Dick Knight)가 클럽을 구원했다.
이 남자는 클럽이 가장 어려웠던 12년을 이끌었으며, 토니 블룸이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데 훌륭한 가교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이러한 딕 나이트의 공로를 인정한 토니 블룸은, 새롭게 지어진 경기장 내에 ‘Dick`s Bar’라는 펍을 만들기도 했다.
딕 나이트 또한, 꾸준히 브라이튼을 돕는 중이다.
“여긴 더 어려운 시간도 보냈던 곳입니다. 상대가 제아무리 맨체스터 시티라지만, 이곳 브라이튼에서 쉽게 얻어 갈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물론일세, 토니. 자네가 일궈 낸 클럽 아닌가.”
“하하. 모두가 한 일입니다. 우리 같은 작은 클럽은 빅 클럽의 생존 방식과는 전혀 다르니까요.”
PL 개막을 하루 앞두고 최종 훈련 중인 선수들을 보던 토니 블룸과 딕 나이트가 몸을 돌려 창가에서 물러난다.
두 사람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고, 그러는 사이에 연습 그라운드에서는 감독 크리스 휴튼(Chris Hughton)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명심해라!! 내일은 볼을 가진 시간이 많지 않을 거야!!”
“…….”
“하지만 몇 번이나 말한 것처럼! 축구는 볼을 점유하는 팀이 승리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골을 집어넣는 쪽이 결국 승리를 하는 거야!! 자, 다시 가자!!”
삐?익!
전(前) 아일랜드의 국가대표 풀백이었던 크리스 휴튼은 PL 내에서 상당히 명성이 높다.
토트넘 홋스퍼와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를 맡으며 코칭 경력을 쌓았고, 이후 뉴캐슬로 자리를 옮긴 뒤 앨런 시어러가 구단주와의 권력다툼 끝에 물러나자 감독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클럽을 매각하기 위해 공개적인 인터뷰를 펼쳤던 구단주로 인해 당시 뉴캐슬의 분위기는 엉망진창이었지만, 휴튼은 그런 팀을 하나로 만들어 2부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악동을 넘어서 악당 그 자체였던 조이 바튼(Joey Barton)을 갱생시킬 만큼의 훌륭한 리더십과 튼튼한 수비를 바탕으로 현대 축구 철학을 접목한 전술.
바로 이게, 크리스 휴튼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좋았어!! 바로 그거다, 솔리!! 하지만 다음엔 반대편의 동료를 봐 주도록 하자!!”
“헤이, 보스!! 이번엔 쟤가 잘못한 거잖아요!!”
“잘못이 아니다. 그저 즐거운 사고가 생긴 것뿐이야.”
“사고는 즐거운 게 아닌데요.”
“와하하하하.”
“하하. 네 말도 맞다. 좋아! 다시 처음부터! 매튜! 루이스에게 볼을 연결하는 것부터 해 보자! 다들 힘들겠지만, 이건 프리미어리그다! 더 완벽하게 해 보는 거야!”
삐?익!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브라이튼은 전혀 겁을 먹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승격 팀의 기적.
이는 이들이 바라고 있는 것이다.
***
【3시간 뒤】 맨체스터 M11 3FF,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포먼스 센터, 브리핑/영상 분석실.
2017/18 PL 시즌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우리의 첫 번째 상대는 승격 클럽인 브라이튼이었다.
개막전을 홈에서 치르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 상대가 승격 클럽이라는 점에서 균형이 잘 맞춰져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코칭스태프의 태도는 무척 진지했는데, 개막전 이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승격 팀이지만, 방심할 수준은 아니다.”
“…….”
“좋은 수비 조직력을 지녔어. 그리고 승격으로 인해 잔뜩 기세가 올라 있을 거다. 더구나 그들의 홈에서 치르는 경기야. 엄청난 환호성이 있겠지. 엄청난 야유도 말이다.”
딸깍-
잠깐 화면을 멈추며 설명을 보탰던 펩이 다시 영상을 재생시키고, 최근 브라이튼이 가진 친선 경기의 편집본이 눈앞을 스쳐 갔다.
현재까지 느낀 개인적인 감상을 말해 보자면, 전형적인 잉글랜드 방식의 선(先)수비 후(後)역습 축구였다.
스페인식 선수비 후역습 축구가 뛰어난 메디아푼타(Mediapunta)에게 볼을 연결하여 라인 전체가 올라갈 시간을 번다면, 잉글랜드식은 철저히 전방의 재능에 의존한다.
이를 위해 최전방에 다소 득점 능력은 떨어져도 피지컬이 좋은 선수를 배치하고, 측면에는 많이 뛰어 줄 수 있는 윙어를 투입하여 추가적인 공격 가담을 꾀했다.
외에도 전체적으로 피지컬이 좋은 선수를 선호하는데, 그래서 조금 투박하고 거친 축구를 펼친다.
딸깍-
“여기까지군. 우리가 지난 48시간 동안 훈련에 왔던 것처럼, 브라이튼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해야만 해. 저들은 힘으로 우리를 찍어 누르려고 할 거야. 너희를 화나게 해서 본래의 기량을 펼칠 수 없도록 만들겠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거기에 말려들 것 없다. 우리가 연습한 대로만 플레이하면, 내일 승리는 쉽게 따라올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바로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전력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선수단 전체의 몸값만 비교해 봐도, 우리가 브라이튼보다 약 10배 정도 앞서고 있다.
물론 몸값이 경기 결과를 말해 주진 않지만, 우리가 더 강한 팀이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전력 분석 시간이 끝난 뒤, 나는 퇴근하기 전 예정되어 있던 면담 시간을 가졌다.
“기분은 어떤가?”
“뭐, 비슷해요.”
“그래?”
“네. 베르나르두도 평소와 같고요. 평소처럼 멍청한 행동이나 바보 같은 농담을 하고 있죠. 하지만.”
“?”
“다른 사람들은 조금 달라요.”
“…….”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개인적인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면 펩은 항상 미리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워낙 신중한 사람이다 보니, 이러한 면담을 통해 본인의 생각이 옳았는지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펩은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일 거다.
“이 팀은 스스로 구속하고 있어요.”
“……더 말해 보게.”
“네. 텍사스에서 맨유와 경기를 치를 때부터 느꼈죠. 여긴 정말 좋은 팀이에요. 다들 능력을 갖췄고, 당신의 전술도 이제는 잘 이해하고 있다고요. 우린 해낼 수 있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전 그렇게 생각한다고요.”
예전에 덴마크에서 뛸 때, 모르텐 감독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일이 올바르게 풀려갈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망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어떠한 말을 하겠느냐고 말이다.
당시에 난 너무나도 어렸고, 모르텐 감독님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모르텐 감독님은 제가 이 말에 답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팀을 이끌 수 있다고 했죠. 물론 지금 당장 팀을 이끌겠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신입이고, 이젠 그걸 존중하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후후후.”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는 PL 우승은 물론이고 빅이어도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는 클럽이다.
내가 뛰던 당시의 바이에른 뮌헨만큼 강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확실히 대답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뮌헨이나 지난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보다는 전력이 더 좋다.
개인적인 느낌이라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난 이것을 말하는 것에 한점 망설임도 없다.
우린 진짜 좋은 팀이다.
“그런데 여기가 그래요. 충분히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음에도, 그걸 이루지 못한 경우를 두려워하죠. 마치 3:0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차라리 비기거나 패배하자고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멍청하고 바보 같죠.”
“동의하네.”
“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생각을 피치에 그대로 가져간다는 점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신을 떨쳐 버리지 못한 두려움.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결정적인 순간 주저앉기만 한 경험에서 오는 두려움 등등.
난 가끔 이곳에서, 클럽 전체에 자리 잡은 거대한 그림자를 마주하곤 했다.
“그건 자네가 승리자라서야.”
“그런가요?”
“그래. 나도 승리자에 가깝지.”
“너무 겸손한 표현인걸요, 펩. 당신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승리자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조용히 웃어 보이는 펩을 보며, 나는 일단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로 했다.
이런 내 태도를 알았는지, 잠깐 입을 다물었던 펩이 곧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축구 역사로 살펴볼 때, 맨체스터 시티는 승리자였던 적이 없었네. 단 한 번도. 짧게나마 뭔가를 해낸 적은 있었지만, 결국 이듬해 무너지고 말았어.”
FC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펩은 가장 먼저 클럽의 문화와 강령을 손보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곧 선수들의 태도를 만들고, 선수들의 태도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화를 만들어 낸 언더독들의 수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정신력은 때때로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여긴 그게 없다.
여긴 오직 실력뿐이다.
그거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아니, 절대.’
만약 실력이 전부였다면, 2015/16 시즌 빅이어는 나의 커리어에 없었을 것이다.
연장전에 접어든 순간 나의 다리는 이미 축구를 하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것은 우승을 향한 염원으로 가득했던 나의 정신력이었다.
득점이 이뤄지고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서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남은 동료들이 거의 뛰지 못하는 내 몫까지 대신해주면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 경기를 단지 실력이 전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의 수많은 기적도?
“우린 정말 훌륭한 프리시즌을 보냈지.”
“네. 모두가 그렇게 말해요.”
“그래. 자네는 무슨 느낌이지?”
“우리가 잘했구나. 우리가 좋은 팀이구나. 그러니까, 올 시즌 해 볼 수 있겠구나. 그게 다예요.”
“그래.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야.”
“부담을 느낄까요?”
“자네 생각은 어떤가?”
“괜한 질문이었네요. 네. 틀림없이 부담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9개월 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을 가정하면서, 차라리 처음부터 사람들의 희망을 꺾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죠. 재미있는 건, 정작 본인들도 이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모를 거라는 점이죠.”
“무의식의 영역이지.”
SL 벤피카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도전자였다.
벤피카는 리그 내에서는 우승 후보였지만, ‘구트만의 저주’라는 오랜 악령이 그들을 끊임없이 도전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아틀레티코 역시, 레알이란 거대한 그림자를 곁에다 뒀다.
하지만 내가 그걸 깨트렸다.
SL 벤피카에 51년 만의 유럽대항전 우승을 안겼고, 지난 시즌에는 트레블을 안겨다 주며 아틀레티코를 마드리드와 유럽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펩의 말처럼 나는 승리자였고, 그래서 조금 전에 말한 그런 터무니 없고 바보 같은 가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째서?
어째서 우리가 9개월 뒤의 일을 걱정해야 하나?
우리의 적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한다.
맞서 싸워야 할 것들 역시 내일이 아닌 오늘에 있고, 그것을 마주했을 때 최고의 컨디션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건 삶이 아닌 축구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가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지만, 축구는 일정이 미리 정해져 있고 누구를 만날지 역시 알려 준다.
미지의 상대가 아니기에, 우린 굳이 있지도 않은 적과 핸디캡을 만들어가며 스스로 구속할 이유가 없다.
“전 그게 진짜 싫어요, 펩.”
“…….”
“있죠. 저는 벌써 이곳에서의 삶이 마음에 들어요. 자네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긴 하지만, 외의 녀석들도 전부 좋은 사람들이라고요. 또 이 도시의 사람들도 저랑 아내를 많이 배려해 주고 있어요. 그래서 전 아예 반대라고요. 저는 패배가 두렵지 않아요. What the hell. 패배할 수도 있죠. 왜냐하면 여긴 모두가 모두에게 패배할 수 있는 리그니까요. 하지만 그걸 알잖아요! 네? 우리가 그걸 알고 있다고요!”
“그래. 자네 말이 옳아.”
어쩌다 나의 감정이 이렇게 격해진 걸까.
말을 하다 보니, 그간 쭉 참고 있었던 게 느껴졌다.
동료들의 두려움. 그러니까 그 트라우마들을 엿볼 때마다, 난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건 허상일 뿐이야.
정신 차려.
우린 현재를 살잖아.
잘난 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경기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몇 번이나 목젖까지 차오른 말들을 삼켜 가며, 미소와 농담으로 그것을 흘려보냈던 것 같다.
“저는 그러니까…….”
“……말해 보게.”
“제기랄.”
“…….”
어째서 펩이 오늘 면담을 이런 식으로 끌고 갔는지를 잘 알 것 같았다.
그는 알았던 거다.
“알고 계셨네요. 그렇죠?”
“…….”
“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내일 경기 전에, 그걸 떨치길 원하셨던 거예요. 와우. 도대체 어떻게 저를 그렇게 잘 알 수 있죠?”
“자네는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까. 축구선수로서는 물론이고, 한 남자로서도 말일세.”
“…….”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잠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펩은 그걸 기다려 줬고, 덕분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주 많이 정리됐기 때문이다.
“제가 두려운 건 단 하나예요, 펩.”
“지키지 못하는 것.”
“네. 예전의 무력했던 저로 돌아가는 거요.”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 승리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패배가 두렵지 않은 이유는 결국 그것을 가까이 두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두려움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나와 내 가족에게 잘해 준 맨체스터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올 시즌 꼭 승리를 거두고 싶었다. 그들이 웃으면, 나 역시 행복할 것이다.
그러니, 두려운 건 없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일을 하는 건데, 어째서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가?
“자넨 이미 훌륭한 어른일세.”
“그런가요?”
“물론. 지금 자네가 한 모든 말이 그걸 증명하고 있어.”
“저는 그저, 옳은 일을 하려는 거예요.”
“다행히 그게 올바른 방향이기도 하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건, 자네의 곁에는 늘 나 역시 함께일 거라는 거야. 아내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는 내게 해도 괜찮네. 그리고 저기에 저 친구도 자네의 곁에 있을 거라 말하는군.”
“응?”
미소와 함께 내 뒤를 가리키는 펩의 모습에 놀라 몸을 돌리자, 뒤쪽 소파에 앉아 있는 베르나르두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넌 언제 있었는데?”
“벤피카의 이야기를 할 때부터?”
“젠장. 귀신이라도 되는 거야? 발소리도 안 났잖아.”
“아니, 너무 심각하더라고. 그래서 조용히 들어왔지. 걱정 마. 오늘 네가 한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 거니까.”
윙크를 찡긋 보내오는 베르나르두를 보며, 난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귀고 말았다.
그러자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말했죠? 얘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니까요.”
“뭐? 진짜예요?”
“그래. 나도 느끼긴 했지만, 이 친구가 내 의심에 쐐기를 박아 주더군.”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는 늘 이렇게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그것이 한심하게 느껴지다가도, 이들에겐 그것 역시 보람일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 많은 걸 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물론 가장 큰 감정은 고마움이지만, 난 이런 경험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자, 가지. 다 함께 퇴근하자고.”
“응? 오늘은 야근 안 하고요?”
“이런! 내일은 개막전이야. 나도 최대한 온전한 정신으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하지 않겠나? 술에 취한 주정뱅이처럼 헛소리할 수는 없어.”
“큭큭. 그건 또 그러네요.”
미소를 지어 보인 펩이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기다렸던 우리는 다 함께 주차장으로 나서서 각자의 차량에 올라탔다.
빠?앙!
“?”
경적을 울린 베르나르두.
창문을 내린 녀석이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웠다.
“VAMOS! AMIGOS!! 내일은 승리할 거라고!!”
“……하하.”
우리는 내일 오전, 전용기를 이용해 브라이튼으로 향하게 된다. 본래는 오늘 기차로 움직여야 했지만, 펩이 클럽에 부탁해 하루 더 가족들의 곁에서 보낼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빠?앙!
“?”
베르나르두의 목소리를 들은 후, 핸들을 꺾어 녀석의 차량 앞에 잠시 멈춰선 나는 보조석의 창문을 내리며 녀석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에?이!!”
“잘 가 바보야! 내일 보자고!”
“넌 진짜 병신이야!! 알지?!”
“당연하지!! 너는 병신 No.2고. 안 그래?!”
“하핫-! 어서 가기나 해!!”
“크크큭. 내일 봐!!”
아직 하늘이 푸르른 오후 5시.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길에 접어든 나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은 채 집으로 향했다.
시즌은 때때로 힘들겠지만.
‘We`re Okay.’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