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96)
796화 Trauma (15)
2017년 8월 18일. 리버풀 L26 3UE, 잉글랜드. USM 핀치 팜, 핀치 레인, 헤일 우드. 핀치 팜 트레이닝 콤플렉스(Finch Farm Training Complex. USM Finch Farm, Finch Ln, Hale Wood. Liverpool L26 3UE, England).
축구의 역사 속에서, 극히 드물게 ‘돌연변이’로 불린 남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로날트 쿠만은 항상 가장 도드라지는 축구 선수로 평을 받아 왔다.
센터백 출신임에도 통산 253골을 기록하는가 하면, 유일한 수비수 출신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이라는 기록 역시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비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으며, 펩 과르디올라가 선수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FC 바르셀로나의 후방 빌드업을 홀로 책임지기도 했다.
쿠만은 과거, 가장 다재다능한 축구 선수였다.
그리고 현재, 감독으로서의 로날트 쿠만을 향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중이다.
혹자는 그를 명장으로 기억하지만.
혹자는 그를 최악이라고 말한다.
축구 감독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쿠만은 꽤 극단적인 축에 속했다.
“그만! 웨인! 네가 좀 더 돌아 줘야 해!”
“…”
“너희는 도미닉이 훌륭한 동료라는 것을 알아야 해! 그가 너희들을 위해 시간을 벌어 줄 거다!”
발렌시아 CF에서의 참담한 실패를 겪었을 때만 해도,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로날트 쿠만이 감독으로서는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뛰어난 선수는,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발렌시아 해임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간 쿠만은 추락해 버린 페예노르트를 이끌며 클럽을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급기야 네덜란드 대표팀의 차기 감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축구 협회 내의 파벌로 거스 히딩크가 감독이 되었고, 감독 대신 수석코치의 자리를 제안받은 쿠만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손을 내민 소튼의 손을 붙잡았다.
2014년 여름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를 포함한 수많은 핵심 자원을 유출했던 사우샘프턴은 위기를 맞이했었는데, 페예노르트의 재건을 성공한 쿠만에게 SOS를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PL 무대에 데뷔한 쿠만은 소튼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클럽 역사상 최다 승점과 리그 6위라는 기록을 안겨다 준 후 에버튼으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마찬가지로 에버튼은 위기를 맞이한 상태였고, 쿠만은 이번에도 힘든 상황을 극복하며 클럽을 유럽대항전 무대로 되돌려 놓는 데 성공했다.
이에 모두가 쿠만의 리더십과 역량을 칭송했고, 그가 PL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거라며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것들도 있었다.
“저, 로날트.”
“응?”
“애런이 입구에서 난동을…”
“… 자네가 좀 맡아 주게.”
“네.”
로날트 쿠만은 현역 시절부터 강직한 성격을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 감독의 지시가 옳지 못하다고 여긴다면, 선수단을 대표해 그걸 말할 수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감독이 된 뒤, 쿠만은 선수 시절의 그런 행동이 강직함이 아닌 완고함일 뿐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쿠만은 절대, 타협이란 것을 하지 않았다.
“애런!!”
“?”
에버튼 FC의 윙어 애런 레넌(Aaron Lennon)이 멀리에서 걸어오는 쿠만을 확인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2015/16 시즌 에버튼으로 임대되었다가 완전 영입까지 이뤄진 애런 레넌이었지만, 로날트 쿠만이 부임한 이후로는 완전히 전력 외 취급을 받았다.
물론 그 역시 과거 토트넘 시절의 폼을 되찾지 못하는 중이었고, 실전 경기에서 선보인 모습도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로테이션에서 밀려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번 여름 로날트 쿠만이 자신에게 한 대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프리시즌 첫 번째 날, 로날트 쿠만은 애런 레넌을 포함한 몇몇 선수들에게 등번호가 없다는 통보를 해 왔었다.
그뿐만 아니라, 등번호를 받지 못한 선수는 1군 선수들이 훈련하는 시간에 클럽하우스에 출입할 수 없다고도 이야기를 덧붙였다.
U-23세 팀인 리저브 팀과 일정을 함께해야 하며, 밥도 1군 팀 선수와는 함께 먹어서는 안 됐다.
같은 대접을 받은 케빈 미랄레스(Kevin Miralles)는 모욕감을 느끼며 바로 올림피아코스로 임대를 떠났고, 센터포워드인 오우마르 니아세(Oumar Niasse)의 경우 계약 조건을 들먹인 끝에 겨우 등번호를 받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클럽하우스 출입 금지와 식사 규정은 유효했는데, 이는 보편적인 축구 클럽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로날트 쿠만의 등장에 당황했던 애런 레넌이 용기를 내어 항의하기로 한 이유다.
“이게 대체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네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왜 있지?! 리저브팀의 출근 시간은 한 시간 뒤라고!!”
“저는 그냥 웨이트하려고 온 거라고요!”
“그럼 집 근처에 있는 곳을 가!!”
“저도 에버튼 FC의 선수거든요?! 여전히 이곳에서 제게 주급을 준다고요!! 그러니 전 이곳의 시설을 이용할 자격이 있어요!!”
“내 팀에서는 아니야! 당장 나가든가! 아니면 경비원들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여서 쫓겨나든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 출근 시간은 1시간 뒤다! 그러니 선택해! 지금 당장!”
“…”
감독이 된 뒤, 로날트 쿠만은 자신의 권위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는 강박에 빠졌다.
발렌시아 CF에서의 실패가 감독 커리어를 앗아 가려고 한 직후엔, 선수들이 자신을 존경하게 만드는 일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이런 그의 선택은 대부분 공포정치(恐怖政治)였다.
쿠만은 새롭게 부임한 클럽 내에서 ‘자신이 짓밟기 쉬운’ 대상을 사전에 물색했고, 목표가 정해지고 나면 상대의 인격과 평판을 망가뜨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지난 시즌 쿠만으로부터 [“너는 내 계획에 없으니, 앞으로 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오우마르 니아세는 식사 시간 중간 느닷없이 쫓겨나기도 했다.
애런 레넌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다뤄지는 중이었고, 결국 그는 큰 모욕감을 느끼며 도로 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FUCK YOU!! 나가 뒈져버려!!”
울분을 참지 못한 애런 레넌이 욕설을 내뱉었을 때도, 쿠만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 주는 기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잠시 뒤 평화가 찾아오고, 이 모든 장면의 곁에 있던 입구의 경비원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좀 심하지 않아?”
“그러게. 애런은 이 팀을 위해 열심히 뛴 선수야.”
“내 말이. 지금은 로날트가 너무 나갔어.”
“쉬잇. 듣겠어. 아직 근처에서 통화 중이야.”
“…”
지난 시즌의 작은 성공과 개막전에서의 승리가 이러한 것들을 덮어 주고 있는 요즘, 에버튼의 일부 사람들은 쿠만에게 돌아갈 업보를 걱정했다.
승리는 모든 것을 덮어 주지만, 그 말은 곧 승리하지 못하게 되면 수면 아래의 것들이 드러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 바로밖에 주차해 둔 채 운전석에 앉은 애런 레넌은 진한 회의감을 겪는 얼굴로 앉아 있다.
잠시 뒤.
빠—-앙!!
빵! 빵! 빵!!
빠—앙!!!
애런 레넌의 차량에서 울려 퍼지는 경적이 근처 이들의 마음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
2017년 8월 19일. 맨체스터 M11 3FF,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퍼스트 팀 피치.
에버튼 FC와의 경기를 준비하는 펩의 컨셉은 무척 일목요연(一目瞭然)했다.
바로, 측면.
펩은 모레 있을 PL 2라운드 경기에서, 우리가 더 자주 공을 측면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에버튼은 대단히 중앙 지향적이다.”]지난 시즌부터, 로날트 쿠만은 윙어의 비중을 줄이고 중앙에 더욱 많은 힘을 싣고자 노력을 해 왔다.
전임 감독이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에버튼에 심어 놓은 4-2-3-1을 폐기하고, 3-5-2를 기반으로 한 쓰리백 전술을 쓰기 시작한 게 대표적인 예였다.
이 과정에서 로스 바클리(Ross Barkley)와 제임스 맥카시(James McCarthy)가 클럽의 주축으로 성장했고, 반면 제라르 데울로페우(Gerard Deulofeu)와 같은 윙어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쿠만의 선택을 받은 야니크 볼라지(Yannick Bolasie)가 측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십자인대를 다치며 1년 결장이 확정된 지금은 더욱 중앙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주 개막전 때도 그와 같은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노련한 웨인 루니까지 클럽에 합류하며 중앙 자원의 뎊스가 크게 두터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측면은 조금 허술했는데, 펩은 이를 공략하고자 3-4-3을 선택했다.
“멈춰!”
“…”
오전 전력분석 후 오후에 이어진 공격 전술 훈련 자리에서, 볼을 멈추도록 지시한 펩이 몇몇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의 손짓과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땐 극소수를 제외한 모두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펩의 영어 구사 능력은 완벽한 수준이지만, 특유의 발음과 억양으로 인해 말이 빨라지면 알아듣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 펩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가 아닌 손에 조금 더 주목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의 목소리와 연결을 시켜,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를 유추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나와 같은 경우에는 3년, 베르나르두는 2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펩의 지시를 이해해 왔다.
독일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알기 쉬웠다.
“무슨 말이었어?”
“아, 그게.”
하루의 일정이 모두 종료되고, 개인 짐을 챙겨 센터로 들어서는 길에 제주스가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포든 역시 근처로 잽싸게 다가왔고, 스털링도 은근슬쩍 자리를 잡았다.
눈치 없는 자네가 장난을 걸어왔지만, 인상을 찌푸린 스털링이 지금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쯧.”
혀끝을 찬 자네가 성큼성큼 걸어 앞으로 향하고, 일부러 살짝 걸음의 속도를 늦춘 나는 두 차례나 있었던 ‘펩 모드’를 동료들의 앞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웨인 루니와 톰 데이비스를 한쪽으로 몰라고 했어. 그들을 끌어들이는 거지.”
“그런 뒤에는 전환?”
“그래도 되고.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는 없어. 에버튼의 측면 수비는 한 겹이고, 전환 없이도 그걸 벗겨내는 것은 별로 무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공략해야 할 장소는 델란테로야. 거기가 어딘지는 너희도 잘 알겠지?”
펩의 축구 철학은 티키타카(Tiki-Taka) 따위가 아니다. 그것으론, 그가 하고자 하는 축구의 반의반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아직 맨시티 선수들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두가 포지션 플레이의 용어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펩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기존 하프 스페이스와 분리되던 델란테로(Delantero) 위치를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시켰다.
즉, 수비 진영 페널티박스 앞부터 상대 골라인에 이르는 2번과 4번 세로줄 영역 전체를 ‘하프 스페이스’라 정의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과거 바이에른 뮌헨 시절 빌드업과 전환을 위해 하프 스페이스로 볼을 보내야 하는 것처럼, 지금은 득점을 만들기 위해 델란테로로 패스를 보내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델란테로 지점으로의 연결이 오랫동안 ‘비효율적’이라 여겨져 왔기 때문이었다.
펩 역시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기에, 몇 번 해당 지역을 강조하는 선에서 그치는 상황이다.
주의 집중력의 종류와 작동 방식과 직관적 결정 과정의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이상, 이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봐. 우리가 델란테로로 볼을 밀어 넣었을 때, 거기로 달려들 수 있는 수비수는 많아야 셋이야.”
“그래? 왜?”
“…”
왜라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져 오는 제주스를 보며, 난 이 팀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잠깐 계산해 보았다.
단순히 이번 시즌만을 생각한다면, 굳이 완벽해지지 않더라도 트레블에 도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맨유와 뮌헨을 뛰어넘으려면, 우린 반드시 더 나아져야 한다.
답답함에 나오려던 한숨을 도로 들이마시며, 나는 라커룸 바닥에 앉아 노트를 꺼내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야? 그 소문이 사실이었네?”
“응? 소문? 뭐가?”
“네가 며칠 전부터 전술 노트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말 말이야. 이런, 제기랄. 넌 대체 축구에 어느 정도까지 미친 건데? 물론 나도 진심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라고.”
“그거 자랑이다.”
“응?”
노트를 펼친 내 모습에 어이없어하던 쿤의 뒤에서 나타난 뱅상이 볼일 없으면 얼른 퇴근을 서두르라고 말하며 흥미롭다는 듯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들어도 되는 거지?”
“응? 아, 네. 물론이죠.”
뱅상에 이어 스톤스와 라포르테까지 가세를 하면서, 내 주변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그에 약간 부담을 느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관둘 수는 없어 제주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 나갔다.
“자, 봐.”
“…”
“…”
에버튼 FC는 기본적으로 3-5-2를 활용한다.
형태에 따라 3-4-1-2와 3-3-2-2를 오가지만, 어쨌든 그 기본적인 근간은 3-5-2에 있다.
그리고 이런 쓰리백 전술에서 델란테로가 효과적인 공략 지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해당 위치로 패스가 향했을 때 2초 이내에 접근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 때문이었다.
4-3-3이나 4-4-2 혹은 여기에서 파생된 4-2-3-1이나 4-1-4-1 등과 같은 전술의 경우, 최소 셋에서 많게는 넷까지 해당 위치로 보낼 수 있지만 3-5-2에서는 아니다.
볼이 머무는 방향의 센터백과 윙백이 2초 이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들이고, 4초 이상으로 늘려야 중앙 미드필드를 하나 더할 수 있다.
“이해했어? 네가 볼을 잡았을 때, 많아야 두 명의 수비수만 상대하면 된다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것은 무척 적은 숫자야. 그건 너도 동의하지?”
“물론이지.”
“바로 그거야. 하지만 이 지점이 꺼려지는 이유는 뭘까? 바로 슈팅을 가져가기에도 각도가 없고, 크로스를 올리자니 공격수와의 거리가 너무 좁다는 게 문제야.”
“오- 그러네?”
델란테로는 과거 세 명의 센터포워드를 두던 시절 때문에 만들어진 위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을 전략적으로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졌고, 지금은 그저 포지션축구의 원형으로 명맥만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펩은 델란테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는데, 컷백이란 공격 방법을 통해서였다.
“봐. 이 위치로 볼이 가면 수비수의 반응은 어떨까?”
“음, 일단 안쪽으로 모여들겠지. 골라인이나 사이드라인 밖으로 걷어내는 수비를 하려 들 거고, 일단 지연에 먼저 초점을 맞출 거야. 네 말대로 4초 뒤에 접근할 수 있는 중앙 미드필드가 올 시간을 벌겠지.”
“정답이야.”
“워- 제주스! 너 그렇게 똑똑한 녀석이었어?”
“내가 원래 이 정도거든.”
으쓱대는 제주스에게 집중하라며 손가락을 몇 번 튕겨 낸 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뭔데? 말해 봐. 뭐든 내가 다 대답할게.”
“용기는 좋네. 좋아. 질문할게. 압박을 당하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내일 너는 왼쪽에서 뛸 거니까, 내가 델란테로로 패스를 넣었고 네가 거기로 뛰어들어 볼을 잡았다고 해 보자. 그럼 너는 이제 알고 있을 거야. 수비수가 무얼 할지. 그리고 누구를 기다릴지. 그렇지?”
“맞아.”
“좋아. 그럼 넌 무슨 선택을 할래?”
“… I`m sorry, What??”
금방 나는 델란테로 위치에서 볼을 잡았을 때, 제주스가 내릴 판단을 물었다. 물론 중앙에 빈 선수가 있다면 거기로 패스를 보내고 혹은 직접 슈팅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보통 역습이나 에버튼의 수비가 무리하게 오프사이드라인을 올리려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이는 제주스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었고, 보통의 경우엔 예시를 든 상황에서 수비는 자리를 잡았을 확률이 높았다.
“으음- 드리블? 일단 1:1을 하는 거야. 수비수를 제치면 기회가 날 거고, 아니면 P.K를 얻을 수도 있겠지. 내 말 맞지? 지금 내가 정답을 말한 거잖아.”
“정답은 없어, 가비.”
“오-! 그럼?”
“네가 한 말도 옳아.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우린 펩의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그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야.”
“??”
델란테로로 패스가 이어져 윙어나 스트라이커가 볼을 받았을 때 펼쳐질 이후의 상황을, 펩은 피치에 있는 모든 선수가 머릿속에 넣고 있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이는 공식과도 같은 것이고, 지금은 그것을 외우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에버튼이 그럴 것처럼 대부분의 축구 감독들이 델란테로를 전술의 요충지로 여기지 않을 것이기에, 거기에 대한 대응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 거다.
그러니 보편적인 인식에 맞춰 움직일 것이고, 외운 공식대로 플레이 한다면 우린 이 위치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Here.”
툭.
“…”
말을 멈춘 나는 펜을 한 곳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바로 직사각형을 그렸다.
페널티 스팟을 중심으로 좌우 5M 정도 되는 곳까지 선이 그어졌고, 그것의 끝과 끝에서 다시 페널티 박스로 이어지는 선을 두 개 그었다.
그렇게 가로세로 10*5.5M인 사각형이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 위치가 컷백을 보내야 할 곳이었다.
“봐. 중앙 미드필드가 딸려 올 거잖아. 그 말은 곧 그가 있던 공간이 빈다는 뜻이 돼. 그럼 근처에 있던 선수는 침투의 기회를 얻겠지. 델란테로로 접어든 선수는 그걸 보는 거야. 컷백. 그리고 슛. 간단해.”
“…”
“…”
입을 꾹 다문 제주스가 벅벅거리며 머리를 긁기 시작하고, 이어지는 침묵이 어색했던 내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무렵 다른 곳에서 질문이 이어졌다.
센터백인 존 스톤스다.
“있잖아.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냐?”
“두 명뿐인 거?”
“응.”
“아니. 그렇지 않아.”
“아니라고?”
“그래.”
“어째서?”
“펩이 페르난지뉴에게 한 지시가 뭐였는지 기억해? 그리고 다비드나 케빈이 받은 지시도 말이야.”
“아…”
“그래. 바로 그거야, 존. 바로 그거라고.”
“…”
다시 침묵이 이어지고, 이후에도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는 동료들의 질문을 받게 되었다.
퇴근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
“뭐야? 무슨 일 있어?”
“쉬잇. 조용히 해.”
“응?”
화장실을 다녀온 로렌조 부에나벤투라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학구열에 불타는 라커룸을 바라보고 있는 맨시티의 코치들은 흐뭇한 미소를 보내오고 있었다.
선수들은 때때로 자신이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수치스럽게 여겨, 모르는 데도 알고 있는 척 연기를 한다.
그 기간이 길어지게 된 후에 코치들이 이를 깨닫게 되지만,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만 또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성과를 내야 하기에, 처음부터 그것을 수정해 나가는 대신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을 선택한다.
이는, 축구가 완벽하지 않은 이유였다.
인간이기에 선수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인간이기에 코치들은 선수들의 연기를 파악하지 못하며, 인간이기에 모두 다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만약 김다온처럼 중간에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선수들은 코치의 도움 없이 자신이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리더보다는 중재자.
맨시티는 그게 필요했다.
‘… 놀라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내용을 처음으로 목격한 미켈 아르테타. 그는 땅바닥에 앉아 노트를 펴고 토론의 장을 만들어 버린 김다온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응? 뭐지?”
“쉬잇. 펩. 당신도 조용히 해요.”
“…”
어느새 문 한쪽에 맨체스터 시티의 코칭스태프 전부가 모였고, 내부의 광경을 목격한 펩 과르디올라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며 황급히 그 주변을 벗어났다.
그리고 한참 멀어져서야, 과르디올라는 큭큭거리며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사람들은 저게 시즌 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과연 그럴까?’
사람들인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게 진실이었다.
본격적으로 몸을 부딪쳐 보기 전까진,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만큼 준비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것은 대부분이 착각이며, 실전에 뛰어든 순간부터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도전이 중요하지. 그리고.’
라커룸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펩 과르디올라.
그는 도전보다 중요한 단어들을 내뱉는다.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해.”
일정이 끝난 오후, 펩 과르디올라는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야근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퇴근을 결정한다.
오늘, 가족들에게 해 줄 말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클럽은 현재, 올바로 나아가고 있다.
***
작가의 말 ? 쿠만 관련 일화는 실제 인터뷰를 차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