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98)
798화 Trauma (17)
.전반 06분
맨체스터 시티 0 : 0 에버튼 FC
파앙-!!
{“우오오오-!!”}
“헤-이!! 대체 지금 그건 뭐였어?!?!”
에버튼 FC의 감독 로날트 쿠만이 너무 쉽게 중거리 슈팅을 허락한 팀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한 불만을 표현한 그는 선수들에게 더 집중할 것을 요구했고, 그런 뒤에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돌려세워 앞에 놓인 물병을 집어 들었다.
“…….”
허리를 굽혔다 편 쿠만의 눈에, 벤치에 앉아 도메네크 토렌트와 대화를 나누는 펩 과르디올라가 들어왔다.
[“로날드. 저 꼬마를 맡아 주게.”]1990년 여름, FC 바르셀로나의 4번(볼란치) 역할을 담당하던 로날트 쿠만은 부상 후 재활에 힘을 쏟던 중이었다.
스페인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4번 역할을 이행해 줄 선수를 잃은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은 좋지 못했고, 이에 요한 크라위프는 라 마시아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본래는 겨울 이적시장에 맞춰 세리에 A에서 선수를 공수하려고 했으나, 클럽 내의 다수가 추천했던 깡마른 미드필드를 일단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 11월, 요한 크라위프는 라 마시아를 통해 성장한 미드필드를 1군으로 불러 올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과르디’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청년의 이름은 주제프 과르디올라 이 살라였고, 크라위프는 쿠만에게 이 청년을 아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쿠만은 과르디올라를 챙겼다.
처음에 왼발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던 과르디올라가 볼을 잡을 때마다 [“왼발을 써.”]라 소리치는가 하면, 크라위프의 직설적인 표현에 기가 죽은 청년을 달랬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 때 쿠만은 과르디올라가 재능이 있음을 확신했고, 한 날 크라위프에게 다가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쟤가 있으면, 제가 더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어요.”]펩 과르디올라가 데뷔한 이듬해, 로날트 쿠만은 리그에서만 16골을 기록하며 FC 바르셀로나를 스페인 라 리가 2연패로 이끌었다.
그리고 UC 삼프도리아와의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축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골로 꼽히는 188km/h의 프리킥 득점을 만들어내며 클럽에 첫 빅이어를 안겼다.
또 2년 뒤엔, 챔피언스 리그에서 8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후방 빌드업을 펩 과르디올라라는 신성(新星)에게 맡길 수 있었던 쿠만은 오히려 커리어 막바지 가장 훌륭한 시간을 보냈고, 결국은 FC 바르셀로나의 전설이 되어 박수 속에서 은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네는 예전부터 그랬어.’
다시 피치로 시선을 옮긴 로날트 쿠만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팀을 바라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오늘, 에버튼은 전술적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완전히 압도된 상태였다.
레이턴 베인스(Leighton Baines)라는 유능하고 노련한 사이드백이 버티는 왼쪽 측면이 뻥뻥 뚫리고 있었고, 가까스로 볼을 빼앗아 뭔가를 할라치면 매번 비슷한 곳에서 가로막히기를 반복했다.
특히.
‘늘, 저 위치에서 뭔가를 만들었지.’
지금 쿠만의 시선이 닿는 곳에 선 남자는 에버튼의 공격 시도 중 8할 이상을 홀로 막아 내는 중이었다.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셈한 것이라 수치가 틀릴 수도 있겠으나 에버튼 FC의 감독은 8할보다 많으면 많았지, 그보다 낮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거칠게 그 사내를 밀쳐 넘어뜨린 웨인 루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쿠만의 심정을 담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FUCK!!”
반면, 넘어졌던 사내는 평온한 얼굴을 한 채 주심 바비 매들리(Bobby Madley)에게 가벼운 어필을 했다.
경고를 꺼내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2013/14 시즌부터 PL에 소속된 1985년생의 젊은 주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치에 앉아 있던 사내에게 얼른 일어나란 손짓을 보낼 뿐이었다.
‘변수를 둘 수 있어 다행인 건가?’
전반전 초반 경기의 흐름과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건, 과거 펩 과르디올라가 뛰었던 포지션과 같은 위치에 선 대한민국 출신의 수비수다.
***
(롭 호손) – Sky Sports 코멘테이터
“데이비스. 칼버트-르윈에게 패스합니다. 하지만 다시 또 빼앗깁니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같은 장면입니다. 오우! 깊숙한 태클입니다! 이번에는 경고 카드가 꺼내어지는군요. 바비 매들리 주심. 모르강 슈네데를랭의 태클이 거칠었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앨런 스미스) – Sky Sports 컬러-코멘테이터
“펩 과르디올라가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을 펼친 것을 보면, 앞서 세 차례 정도 카드 없이 넘어간 장면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롭 호손)
“첫 번째 라운드 3:0 승리에도 경기력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밝힌 펩 과르디올라입니다. 쉽지 않은 상대인 에버튼 FC를 홈그라운드로 불러들여 경기를 치르고 있습니다만, 아직 점수는 0:0입니다.”
.
.
.전반 37분
맨체스터 시티 0 : 0 에버튼
전반전 10분이 지나가면서, 주심이 흐름을 특정한 방식으로 정해 버렸다. 경고가 주어졌어야 했을 장면에서 카드를 아끼면서, 경기를 거칠게 끌고 나간 것이다.
한데 문제는 그 기준이 바뀌었다는 거다.
“아까 쟤는 훨씬 더 심한 파울을 했잖아요.”
“Nope. 그렇지 않아.”
“Come on, 바비. 일관성이 없어요.”
“닥치고, 자네의 일이나 해.”
“…….”
가벼운 항의를 이어간 칼버트-르윈을 물린 바비 매들리를 보며, 나는 그가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쩌다 가끔, 주심은 피치 위에서 생각을 잃는다.
본인이 무얼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거다.
실제로 전반전 25분을 기점으로, 양 팀 통틀어 총 세 장의 경고 카드가 나왔다.
레이튼 베인스의 돌파를 막아야 했던 카일 워커가 어깨 싸움을 했을 때, 바비 매들리는 팔을 휘둘러 위협을 가했다는 이유로 오늘 경기 첫 경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엔 에버튼의 톰 데이비스(Tom Davies)가 핸들링으로 인한 경고를 받았는데, 딱히 고의적이지도 않았고 위치도 하프라인 부근이었다.
지금도 슈네데를랭의 태클이 다소 깊긴 했지만, 엄밀히 볼을 먼저 건드린 상황이라 경고까지는 너무 갔단 느낌이 컸다.
‘이상해.’
여기저기에서 들어온 말처럼, PL의 심판들은 쇼맨십을 갖췄다. 경기를 조율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이런 현상은 좋은 게 아니다.
심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걸, 쇼맨십과 같은 단어들로 포장하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이봐, 카일!!”
“?”
“조심해!! 알겠지??”
하프라인 오른쪽에 선 카일 워커가 내 목소리를 듣곤 엄지를 치켜세워 온다.
이러한 흐름이라면 허무하게 퇴장이 나올 수도 있기에, 경고가 있는 카일 워커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저 남자는 꽤 즉흥적이라, 본인이 경고가 있는 걸 까먹을 거다.
전방 공격수들의 결정력 부족과 이렇다 할 기준점이 없는 주심이란 악재들 속에서도, 우리는 볼을 점유하며 계속해서 에버튼을 압박해 주고 있었다.
중앙에서 빌드업 기점으로 뛰고 있는 내게 축구공이 도착하고, 난 바로 축구공을 측면 길게 보낸 후 뒤에 있는 센터백들을 앞쪽으로 이끌었다.
약 2분 동안 이어졌던 에버턴의 공세는 조금 전 슈네데를랭에게 주어진 경고를 기점으로 끊긴 상태였다.
바비 매들리의 일관성 부족을 무작정 우리에게만 나쁜 것처럼 설명하긴 했지만, 에버튼 역시 그로 인해 분명한 손해를 보고 있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공평한 상황인 셈인데, 좀 더 냉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쪽이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난 기왕이면 그게 우리가 되길 원하고 있지만, 몇몇 주심에게 휘둘리고 있는 친구들은 걱정이 됐다.
‘다이브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마이클 킨(Michael Keane)을 앞에다가 둔 라힘 스털링이 1:1을 시도하고, 잠시 뒤 그의 몸이 살짝 떠오르더니 곧 피치로 떨어져 내렸다.
쿵-!
‘이런!’
라힘 스털링의 가장 큰 단점은 시야와 골 결정력이 부족하고, 또 너무 자신의 색이 분명하단 것이었다.
상대 팀과 주심의 성향에 맞춰 변주를 가져갈 때도 있어야 했건만, 스털링은 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좁은 공간에서의 드리블을 가져가다 그대로 다이빙을 해 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바비 매들리는 페널티 킥을 선언하지 않았고, 볼이 클리어되는 것을 본 마이클 킨이 스털링에게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뭔가 불만에 찬 목소리를 내뱉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사이드라인에서 스로인이 주어졌고, 머리를 쓸어넘긴 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주변과의 연계를 생각했다면, 우리가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강조한 델란테로로 패스를 보낼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거다.
심지어 스털링의 주변엔 동료들도 많았다.
“일어나!! 얼른!!”
펩 역시 스털링의 다이빙이 불만이었는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목소리를 높여 왔고, 스로인 된 볼이 최후방으로 도는 것을 본 나는 이번엔 측면으로 넓게 벌려서는 방법을 택했다.
다비드 실바가 아래로 내려와 주었기에, 이번 빌드업 상황에서는 굳이 중앙을 점유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낮은 위치에서부터 볼을 점유해나간 우리는 다시 한번 공격을 시도했는데, 이번엔 왼쪽 사이드라인 앞에 선 내게로 패스가 연결되어 왔다.
곧장 메이슨 홀게이트가 나를 가로막아 왔지만, 패스를 보내준 다비드 실바가 왼쪽 측면 앞쪽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며 더미(Dummy) 역할을 해 주었다.
그러자 메이슨 홀게이트와 함께 날 압박할 수 있던 이드리사 게예(Idrissa Gueye)가 떨어져 나가 버렸다.
1:1을 하라는 전술적 흐름.
난 자신이 있다.
툭-
던캐스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반즐리 FC 유스에서 보낸 메이슨 홀게이트는, 18살의 활약을 인정받으며 잉글랜드 올해의 영(Young)플레이어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유망한 수비수를 찾던 에버튼은 이런 홀게이트에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고,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전도유망해 보였던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홀게이트는 센터백과 오른쪽 풀백을 오가며 많은 출전 횟수를 확보하고 있다.
민재와 같은 96년생.
기회는 충분히 얻는 셈이다.
그러나.
툭-
“???”
내가 볼 때 메이슨 홀게이트는 현재 PL에서 뛰기 적합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센터백으로 뛰는 거라면 모를까, 풀백으로 뛰기에 이 남자는 너무나 단순한 플레이를 펼친다.
평균 이상의 피지컬과 기술을 지니고는 있지만, 피치 위에서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지금만 하더라도, 메이슨 홀게이트는 내가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쪽을 잠가야 했다. 몸의 위치를 조금 움직여, 오른쪽을 열어 두었어야 한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저곳으로 다비드 실바가 뛰어 들어가면서, 이드리사 게예도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긴 열어 둬도 별문제가 없다.
물론 골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부담이겠지만, 어차피 좁은 곳에 네 명의 선수가 밀집하게 되기에 공간의 활용이란 측면에선 몹시 비효율적이다.
설사 박스 안으로 공격수를 들여보낸다고 해도, 필 야기엘카(Phil Jagielka)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수비수라면 자신의 뒤로 침투를 허락했을 때, 어떠한 보험이 있는지 또 자신 역시 돌파를 허락한 후 계속해서 수비에 나설 것임을 늘 머릿속에 넣어 둬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되는 거야.’
메이슨 홀게이트의 가랑이 사이로 축구공이 통과되고, 화들짝 놀란 그가 몸을 돌려세우는 척하며 쇄골 높이로 손을 뻗어 나의 전진을 막아 섰다.
저항을 받은 나는 굳이 그걸 거스르려 하지 않았고, 내가 그대로 넘어지자 휘슬을 분 바비 매들리가 뛰어와 골대 방향으로 손을 뻗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고는 없었는데, 파울이 없었다면 슈팅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상황이라 약간 짜증이 났다.
마찬가지의 생각을 한 다비드 실바가 다가와 매들리에게 어필을 시작했고, 실망을 삼켜버린 나는 주심에게 항의하는 대신 근처에 있는 홀게이트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다행히 경고는 피했지만, 파울이 일어난 지점 자체가 위험 지역이라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이었다.
“헤이!”
“?”
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리는 홀게이트를 부르자, 눈을 살짝 크게 뜬 그가 나를 돌아봤다.
“진짜 거대한 구멍이었어.”
“…….”
“참을 수 없더라고. 뭔 말인지 알지?”
“…….”
고개를 가로저은 홀게이트가 돌아서는 것을 보며, 나는 경기 전에 받았던 시선을 갚아 주었음에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알아야 할 건, 앞으로 나를 만나는 동안 구멍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듣게 될 사실이라는 점이다.
홀(Hole).
그리고 게이트(Gate).
어찌 본다면 수비수로서 최악의 이름을 가진 메이슨 홀게이트. 저 녀석이 내게 가랑이 사이로 볼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는 건, 오늘이 결코 끝이 아닐 거다.
주변이 정돈된 이후 이어진 프리킥.
케빈이 높이 손을 들어 올린다.
삐?익!
전반전 40분이 다 되어 가는 현재, 케빈이 왼쪽 측면에서 띄워 올린 프리킥이 페널티 박스 안을 향해 날아들고 있다.
.
.
.전반 종료
맨체스터 시티 0 : 1 에버튼
***
【하프 타임】
@ 에티하드 스타디움 내부
“왜 매번 우리인데!!”
“…….”
“헤이!! 나와서 말 좀 해 봐!!”
분노한 펩의 목소리가 복도를 지나 드레싱 룸 안쪽까지 생생히 들려오고 있다.
우리 역시 분노한 것은 마찬가지였고, 마음 같아서는 그와 곁에 나란히 서서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바비 매들리를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전반전 44분.
바비 매들리는 도미닉 칼버트-르윈의 다이브를 카일 워커의 파울로 판단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일어난 파울이라 P.K가 주어진 것은 물론, 앞서 경고를 받았었던 카일 워커는 또 하나의 경고를 수집하며 퇴장을 당해 버리고 말았다.
직후 바비 매들리를 둘러싸고 동료들이 목소리를 높여 보았지만, 당연히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최악이야.”
“…….”
“도미닉은 발이 아니라 피치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다고. 움푹 파여 있었던 데 봤어? 자기가 달려가다 왼발로 피치를 찍고 넘어진 건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잔뜩 억울한 얼굴이 된 존 스톤스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사이, 복도가 다시 소란스럽게 변하더니 카일 워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녀석은 거친 단어들을 뒤섞으며 바비 매들리를 저주했고, 그를 진정시키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를 따랐다.
이렇게 되면 FA의 사람들이 나서, 카일 워커를 아예 경기장 밖으로 내쫓을 수도 있다.
“병신 같은!!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잠시 뒤, 여전히 울분을 떨쳐버리지 못한 펩이 욕설과 함께 드레싱 룸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전반전에 있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판정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열심히 손을 움직여 화이트보드 위의 마그네틱을 움직였다.
후반전, 우린 3-4-2로 뛸 것 같다.
“제주스가 빠진다! 대신 주앙이 들어설 거다! 주앙은 그대로 오른쪽에 선다! 그리고 잘 들어! 이제부터 우린, 최전방 공격수 없이 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여섯 명의 미드필드로 경기를 풀어 나간다는 거다!”
펩은 후반전 가장 앞쪽에 설 아궤로와 스털링의 위치를 포켓(Pocket)에 고정했다.
“에버튼은 가호를 받았다! 빌어먹도록 멍청한 바비 매들리의 가호 말이다! 그것에 용기를 얻은 저들이 후반전에는 공세를 취해 올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좋다! 수비에 서는 숫자가 더 적어질 테니까! 하지만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 수비에 부담이 주어지겠지! 하지만 난 믿는다! 우린 할 수 있어! 너희는 그럴 능력이 있다!”
주심의 말도 안 되는 판정이 흥분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속도로, 펩은 10명뿐인 우리의 전형과 역할을 빠르게 정돈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아가 에버튼이 공세를 취해 올지, 아니면 한 골을 지키는 방법을 택할지에 따른 대처법도 빠르게 설명했다.
단 한 번의 망설임이나 더듬거림도 없이,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 덕분에, 우리 역시 좌절과 짜증을 털어 버리고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됐다.
“후우-! 후우-!”
드레싱룸 한쪽에서 주앙이 빠르게 몸을 풀기 시작하고, 한쪽에서 등장한 카일 워커가 분이 여전히 덜 풀린 얼굴로 우리에게 사과를 보내어 왔다.
“미안해.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카일 워커에게 다가간 동료들이 그를 끌어안거나 위로했고, 나 역시 옷을 갈아입은 후에 다가가 가슴팍을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괜찮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병신 같은 새끼였어.”
“새끼들. 다이빙 한 도미닉이나 거기에 속아 넘어간 매들리 전부 병신이니까.”
“Damn. 내가 경기를 망쳤어.”
“그럴 수도. 하지만, 봐. 아직 45분이 남았어. 여긴 우리의 홈그라운드고, 난 절대 팬들이 실망하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잘 지켜보고 있어.”
“Please, Mate. 제발 그렇게 해 줘.”
“있다가 보자.”
워커의 가슴팍을 한 번 더 두들긴 후, 자리로 돌아온 나는 재빨리 루틴을 마무리하곤 드레싱 룸을 나섰다.
그리고 조금 걸어, 꺾어지는 복도 쪽에 있는 심판 그룹의 대기실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지금쯤 알았을 건데 말이다.
‘후우- 이제 겨우 두 경기인데 말이야.’
정확히는 한 경기하고도 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PL은 벌써 내게 많은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있었다.
그냥 빨리 보게 된 것일까.
아니면 계속 이러는 걸까.
무엇이 되었건, 분명한 사실은 PL이 여러 종류의 의미에서 스펙터클한 무대라는 점이었다.
0:1.
그리고 퇴장.
불리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전반전의 모든 것들을 털어 버리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결국 그게, 내가 쭉 해 왔던 일이니까.
“후우~”
맨체스터의 밤은 점점 더 깊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