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800)
800화 Trauma (19)
예전의 것.
혹은 수없이 반복되어 온 것.
인간이 무언가에 싫증을 느끼는 건, 그것이 더는 새롭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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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호손) – Sky Sports 코멘테이터
“This may be, The last 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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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를 마주할 때면, 인간은 더욱 극단적인 감정을 맛보게 된다. 낯섦에서 오는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서, 익숙함이 파도처럼 밀려들기 전의 기대를 온전하게 즐기는 것이다.
순수(純粹).
이를 마주하게 되면 인간은 감정이나 정서를 벗어던지고, 좀 더 원초적인 반응을 보여 주게 된다.
후반 48분.
프리킥을 준비하는 김다온을 바라보던 이들 대다수는,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모든 기적과 경이로운 장면들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같은 일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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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호손)
“……Here comes Da-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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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밋밋하게까지 느껴지는 사전 동작을 가져간 김다온의 오른발이 휘둘러졌을 때, 짧은 순간 에티하드 스타디움과 이 경기를 TV로 지켜보는 모든 곳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
{“–!!!!!”}
.
(롭 호손)
“OH-! MY WORD!! HISTORY!!”
.
김다온의 발을 떠난 축구공은 빠르게 떠오르다, 이내 정점에서 춤을 추며 좌우로 흔들거렸다. 그러다 마치 무언가가 아래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대로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분명 자신이 비워 둔 곳으로 축구공이 날아올 줄 알았던 조던 픽포드였지만, 슈팅의 속도와 궤적에 그의 다리는 지면에 달라붙어 버리고 말았다.
움찔했던 에버튼 FC의 골키퍼가 살짝 비틀거리다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얼굴을 가린 그는 환호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 불쾌한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귀가 먹어 버릴 것 같은 환호성 속에서, 숱한 선방을 보여 온 픽포드는 허탈함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젠장. 이건 사기야.’
제법 거리가 먼 위치였다.
물론 김다온이기에 그것을 처리할 능력을 갖췄지만, 저 정도의 거리에서 너클(Knuckle)로 득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수는 축구 역사를 통틀더라도 몇 되지 않았다.
오직 축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프리키커로 손꼽히는 주니뉴 페르남부카누(Juninho Pernambucano)와 젊은 시절의 호날두만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건, 이들 둘보다 김다온이 훨씬 더 다재다능하다는 점이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세운 조던 픽포드가 무릎에 팔을 걸친 채, 허망함이 짙게 배어든 표정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벤치가 있는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모여든 수많은 이들 사이로, 부둥켜안고 있는 김다온과 펩 과르디올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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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호손)
“THIS IS. ABSOLUTELY REMARKABLE GOAL!! 아마도 올해를 통틀어 지금까지 나온 최고의 프리킥 골일 겁니다!!”
(앨런 스미스)
“It`s Crazy. 그가 또 하나의 경이로운 순간을 만들어 내는군요. 그리고 동시에, 첫 번째 경기 이후 의심하던 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해 왔던 일이죠. 다온에게는 자신을 의심하던 이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건, 본인의 삶 그 자체일 겁니다.”
(롭 호손)
“펩 과르디올라가 두 주먹을 불끈 쥡니다. PL 진출 이후 그가 이토록 격정적인 감정을 보여 주는 건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네요. 2:1. 역전에 성공하는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이 두 골 모두, 다온의 발끝에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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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2017/18 EPL 2R)
맨체스터 시티 2 : 1 에버튼
[골] 라힘 스털링 : 후반 19분(김다온)김다온 : 후반 48분(F.K)
***
※ 경기 후 인터뷰
-> Sky Sports 인터뷰
1. 로날트 쿠만
On. 역전패
“일단은 이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PL VAR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체로 훌륭한 심판진을 보유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심판이 이런 멋진 경기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우린 무척 좌절했다.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슈네데를랭은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렇지만 아직 시즌 초반이고, 선수들은 모두 강인하다. 오늘의 패배를 교훈 삼아, 두 번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On. 김다온의 프리킥 득점
“그가 경기를 결정지었음을 인정한다. 프리킥 득점뿐만 아니라, 그는 경기 내내 우리의 골칫거리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다.”
2. 펩 과르디올라
On. 승리 소감
“쉽지 않은 경기였다. 그렇지만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 심판 판정에 관한 아쉬움이 크다. 몇몇 판정들은 끔찍했다. 그리고 그것이 경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팬들은 멋진 승리를 즐겼다.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결국 이게 축구다.”
On. 역전승의 원동력
“우선,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시즌, 우리는 때때로 너무 쉽게 포기했다. 그렇지만 축구는 90분과 추가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다온이 보여줬다.”
On. 김다온의 프리킥 득점
“만약 그 골이 올해 푸슈카시 후보에 들지 않는다면, 무척 화가 날 것 같다. (웃음)”
***
경기가 끝난 뒤, 나는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Sky Sports’가 진행하는 인터뷰 자리에 섰다.
다른 쪽에서는 로날트 쿠만과 펩이 인터뷰 중이었고, 나는 터치 라인 리포터인 앤디 버튼(Andy Burton)으로부터 승리 소감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먼저 인터뷰를 마친 펩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장난을 걸어왔다.
“Best Player.”
“하하하.”
“농담이 아닙니다. 이 친구가 세계 최고예요. 그리고 중요한 선수니까, 너무 괴롭히지는 말아 주시죠.”
“하하. 그거 참고하죠.”
“멋지군요. 정말 수고했네.”
마지막 순간 나를 포옹한 펩이 먼저 드레싱 룸으로 떠나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 나는 앤디 버튼을 바라봤다.
“아까 무슨 질문이셨죠? 깜빡해서.”
“승리한 소감은 어때요?”
“아, 맞다.”
승리한 소감이라.
무척 기뻤고, 조금 지쳤다.
“지쳤다는 게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싸웠다는 거니까요. PL은 무척 거칠고 정신없는 곳이에요. 특히나 오늘처럼 선수 외의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승리했다는 거고, 어려운 순간을 극복했다는 거니까요.”
그리고 이어진 다음 질문은 바로, 에디하드 스타디움에서 데뷔한 소감을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
【같은 시각】 맨체스터 M4 5EP, 잉글랜드. 23 블로썸 거리, 안코츠. 세컨드 시티.
바니 에겔튼이 세컨드 시티를 운영한 지도 어느덧 7년이 되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확장과 공사를 거쳤고, 최근엔 지역의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펍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만큼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일이 있었고, 단골이 되어 버린 무뢰한이나 괴짜들도 상당수 되었다.
하지만 지금, 바니 에겔튼은 펍을 운영한 이래로 처음 보는 풍경에 이채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멀리에 있는 펍의 문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한 손님 무리는 실내의 분위기에 당황하며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한 여성은 밖으로 나가, 가게의 간판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결국 그 무리는 펍을 나섰지만, 바니 에겔튼은 매출을 더 올리지 못한 것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도서관도 이것보다는 시끄럽겠어.’
현재 펍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은 전부, 김다온이 있는 TV 화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니 에겔튼 역시, 몸을 돌려 위쪽의 TV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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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온) – Man of the Match
“여긴 정말 멋진 곳입니다. 그러니까, 맨체스터 말이에요. 저와 아내는 이 도시를 좋아하고, 이곳 사람들을 위해 뛸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승리는 무척 기분이 좋네요. 팬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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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에 대한 애정을 밝혔을 때 잠깐 이어진 박수와 환호성은, 김다온이 다음 이야기를 이어 나가자마자 잦아졌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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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온) – Man of the Match
“하지만 안심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을 잘 넘겼으니까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경기에서 우린 분명 부족한 모습을 보였고, 더 나아져야 한다는 걸 나타냈습니다. 오늘의 승리는 기쁘겠지만, 결국 이 도시의 사람들이 바라는 건 더 큰 것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팬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건, 당장은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기다려 달라는 겁니다. 앞으로 우린 더 많은 승점을 담겠지만, 때로는 고꾸라지기도 할 겁니다. 그렇지만 장담하는데, 우린 싸울 겁니다. 팬들이 뿌듯해할 모습으로요. 그냥 이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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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맨체스터 시티 팬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아 온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프랭크 로버츠(Frank Roberts), 프랜시스 리(Francis Lee), 앨런 오크스(Alan Oaks), 숀 고터(Shaun Goater),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 토니 북(Tony Book), 숀 라이트-필립스(Shaun Wright-Phillips) 등등.
현재 맨체스터 시티에 속한 선수 중 몇몇도 언젠가 클럽의 레전드 반열에 포함될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승리가 아닌 싸움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감 부족으로 비칠 수도 있고, 팬들이 그걸 싫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다온은 조금 달랐다.
그는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했다.
리그 개막 이후 두 경기에서 나온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은 분명 최고와는 거리가 멀었고, 많은 부분에서 더 나아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건 보통 감독의 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자주 부족함을 무마하려는 핑계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데 지금, 세컨드 시티에 있는 ‘시티즌(Cityzen)’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기대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김다온이 선보인 솔직함에 정서가 동한 것으로도 설명 가능했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세컨드 시티의 내부는 이곳과는 무척 낯선 따뜻한 박수로 가득 차 버렸다.
“휘이- 이건 처음 보는 일인데요?”
“나도야.”
“진짜요?”
“그래. 생각해 봐. 과연 누가 여기에 있는 인간들을 침착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축구가 펼쳐지는 날 밤에 말이야.”
“……다온이 해냈네요.”
“그렇지. 이건 승리보다 더 대단한 일이야.”
“아까 그 프리킥보다도요?”
“물론이지.”
미소를 지어 보인 바니 에겔튼이 파인트 두 잔을 주문받고,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말한 조엘 바버가 조끼 가득 맥주를 따르기 시작한다.
인터뷰까지 끝나면서 많은 이들이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고, 바니 에겔튼 역시 리모컨을 들고 주변을 돌며 TV의 볼륨을 조절했다.
얼마의 더 시간이 지났을 땐, 내일 출근하지 않거나 여운을 더 즐기고픈 몇몇 이들만이 실내에 남았다.
“후우-! 정리 끝났어요. 한 잔 마시고 가도 되죠?”
“물론이지. 마음대로 먹어도 좋아.”
“이 맛에 당신을 돕는 거죠.”
“하하.”
아르바이트를 끝낸 조엘 바버가 IPA 두 잔을 따르고, 그중 한 잔을 웨이트리스인 멜로디 블레어에게 건넸다.
최근 각각 자신의 파트너와 이별한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해 조금씩 감정을 표현해 가는 중이었다. 누구보다 맨시티를 사랑하는 둘이기에, 무척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딸랑딸랑-
“응? 우리 마쳤…… 오, 이런. 아스트리드?”
“맥주 한 잔만 마시고 가도 돼요?”
“물론이죠! 들어와요!”
손님을 더 받지 않으려던 바니 에겔튼이었지만, 특별한 이의 등장에 바로 들어오란 손짓을 보냈다.
그는 직접 잔을 들어, 맥주 한 잔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건 네 거란다.”
“저도 맥주 주시면 안 돼요?”
“하하. 나보고 잡혀가라고? 성인이 되면 얼마든지 공짜 술을 준다고 약속하마.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치사해…….”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 바니 에겔튼이 눈에 띄는 유니폼을 손에 든 아스트리드를 보며 질문을 던진다.
“새로 산 겁니까?”
“아, 아니요. 이건…….”
“?”
“마일라가 받아 냈죠.”
“……받아 냈다면, 설마?”
“네. 바로 그 설마예요.”
아스트리드가 테이블 위에 올린 유니폼은, 오늘 경기를 치른 라힘 스털링의 것이었다.
“아이가 조르고 졸라서 겨우 티켓을 구매해서 갔는데, 그 보람이 있지 뭐예요. 근사한 승리도 보고, 이렇게 스털링의 유니폼까지 받게 됐네요.”
“나 그거 필요 없어요.”
“하하. 들으셨죠? 그래서 여기에 온 거예요. 마일라는 다온만 좋아하니까요. 이걸 여기에 두는 게 어떨까 해요.”
“이런, 세상에나. 우리야 환영이죠.”
현재 펍의 한쪽엔 라힘 스털링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지만, 단순히 매장에서 구매한 것과 경기 때 입었던 것은 값어치가 달랐다.
세컨드 시티로 오는 라힘 스털링의 팬들에게, 새롭게 해 줄 말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유니폼을 받아든 바니 에겔튼이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아스트리드는 그걸 한사코 거부했다.
“우리 사이에 뭘요.”
“이런!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뭘 먹고 가요. 제가 직접 요리를 해 드리죠.”
“우-! 그건 거절하기 힘든 말인데요?”
“하하. 맡겨 줘요. 너는 뭘 먹고 싶니?”
“Pig in Blanket. 먹어도 되죠, 엄마?”
“조금만.”
소시지를 베이컨에 감싼 요리를 부탁한 마일라가 환하게 고개를 끄덕거리자마자,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선 바니 에겔튼이 보기 드문 요리를 시작한다.
과거 에겔튼은 맨체스터에서 잘나가던 주방장이었지만, 어떠한 사고를 겪으며 요리사의 길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과거엔.
‘보게나, 제임스. 자네의 딸이 자네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시켰어. 음식 취향이 나쁜 것까지 쏙 빼닮았군, 그래.’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흐뭇한 눈으로 주방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던 바니 에겔튼은 이내 슬픈 표정이 되었고, 그것을 들키기 싫었던 그는 바로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가족에게,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김다온의 환상적인 버저비터(Buzzer Beater)로 맨체스터 시티가 승리한 오늘, 맨유가 있어 ‘First City’가 될 수 없었던 이곳 세컨드 시티에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
[환상적이었던 경기. 끔찍했던 심판. – BBC]? 바비 매들리 ? 평점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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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2일. 맨체스터 M11 3FF,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포먼스 센터, 선수 전용 식당/카페테리아.
힘겨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짜릿했던 승리가 있었던 어제, 인터뷰를 끝내고 드레싱 룸에 들어선 나를 향한 음료수 세례가 이어졌었다.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이런저런 음료들을 내 몸에 들이부었고, 그 뒤엔 연신 내 이름을 외쳤다.
“카메라는 괜찮아요?”
“하하. 망가졌지만 내용은 건졌죠.”
“제기랄. 여기에 비용을 청구하세요.”
“그래도 되나요?”
“저야 모르죠. 제가 이런 말을 한 것도 비밀이고 말이에요. 물론 카메라에 전부 담겼지만요.”
“큭큭큭큭.”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눈 건, ‘Amazon’의 카메라맨이다.
어제 모두가 음료수에 취해(?) 광란에 빠졌을 때,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입장해 있던 두 명의 카메라 중 한 대가 파손되는 일이 있었다.
깜짝 놀란 오타멘디가 급하게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카메라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무슨 이야기 했어?”
“뭐, 클럽에 비용을 청구하라고.”
“니코의 주급에서 깎을걸?”
“그러라지. 어차피 내 돈도 아니잖아?”
“큭큭. 그래- 그건 그렇다.”
“응.”
음식을 가지고 식탁에 앉아, 베르나르두와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눈다. 대부분은 어제 승리 이후에 나온 미디어와 팬들의 반응에 관한 것이다.
현재 미디어는 나를 칭찬하기 바쁘다.
‘whoscored.com’은 경기 후 내게 9.4점이란 높은 평점을 매겼고, ‘BBC’ 역시 9점과 함께 [‘맨시티의 선수 중 유일하게 흠결이 없었다.’]는 한 줄 평을 달았다.
외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고, 이틀 전까지 날 의심하던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쏙 들어가 버렸다.
“여긴 진짜 미친 동네 같아.”
“그러니까.”
“응. 하지만 그런 만큼 열광하는 것도 엄청나. 빅이어까지는 아니지만, 유로파 리그 컵은 들어 올린 분위기였어.”
“빨리 끓고, 빨리 식어.”
지금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어제의 승리에 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판정이 워낙 나빴던지라 경기력을 논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역전승에 기뻐하기엔 피치 위에서 보여 준 것이 충분하지 못했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들의 부진이 아쉽다.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나온 베르나르두의 득점을 제외하면, 공격수 쪽에서 제대로 만들어 골로 이어간 장면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궤로의 시즌 첫 득점도 내가 유도한 P.K였고, 어제 스털링의 득점도 보면 5살 아이라도 넣어야 하는 것이었다.
현재 공격수들은 계속해서 기회를 낭비 중이었고, 그래서 어떠한 이들은 남은 이적 시장 동안 우리가 공격수를 보강해야 한다며 말하고 있었다.
레비/그리즈만/음바페/수아레즈와 같은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영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더더욱, 쿤의 부진이 아쉽다.
“후우-”
식사를 끝내고 잠깐 주어진 휴식 시간.
나는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 쪽 선베드에 길게 드러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전히 팀의 경기력은 실망스럽지만, 다행인 점은 그래도 우리가 승점을 잘 챙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는 2승과 +4 득실로 리그 3위에 올라 있다.
1위는 두 경기에서 8득점 0실점의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겨우 두 경기야. 지지 않은 게 중요해.’
아직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올바르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음에 만족하기로 했다.
결국 승리가 모든 걸 해결해 줄 테니까.
지금 여긴, 성장통을 앓는 중이다.
***
작가의 말 ? 전화 제주스 관련 착오는 100% 제 과실입니다. 신년 때 너무 정신을 놓고 쉬었는지, 엄청난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 점 독자님들께 사과드리며, 연재주기변경은 성장통을 그리는 현재 에피소드가 끝난 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바꾸자면 그것도 그것대로 답답할 것 같아서요.
내일 뵙겠습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