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806)
806화 Unbeatable (2)
많은 이들이 계기(契機)에 대해서 말한다.
가장 쉽고 흔한 스스로에 필요한 계기를 비롯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바뀌기를 바라며 무언가 결정적인 일이 발생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느낀 것이 있다면, 계기란 찾아오는 것이 아닌 공기처럼 우리의 삶 주변에 늘 함께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만약 변화를 원한다면,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 하나다.
움켜쥐어라.
분명 세상의 모두는 정답을 알고 있고, 단지 귀찮음과 같은 이유 등으로 충분히 손에 쥘 수 있는 것마저도 누군가 대신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니 말이다.
변화를 바란다면, 변화하면 그만이다.
.
(앨런 패리) – Sky Sports 코멘테이터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
.
.전반 44분
맨체스터 시티 1 : 0 리버풀
경기가 멈춘 지도 벌써 7분이 넘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고통에 신음 중인 피 흘리는 동료의 곁에 서서, 모든 게 별일 없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제기랄. 피가 너무 많이 났어.”
“…….”
“미친. 이건 퇴장으로도 모자라.”
지금으로부터 7분 전, 리버풀의 역습 시도 중 수비 뒷공간으로 패스가 향했고 볼을 향해 마네와 에데르송이 함께 달려들었다.
에데르송은 그것을 헤더로 처리하려 했고, 반면 마네는 발을 높이 들어 올려 볼을 가져가려고 했다.
잠시 뒤 머리와 발이 공중에서 충돌했고, 그대로 쓰러진 에데르송의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오타멘디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을 정도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가 걱정될 만큼 흥건한 피였다.
황급히 안으로 들어선 에두 마우리가 의료함에서 응급 도구를 꺼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바로 에두 마우리와 에데르송을 둘러쌌고, 팬과 카메라가 그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막아 섰다.
“후우- 일단 급한 불은 껐어. 다들 고맙네.”
에두 마우리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바로 뒤로 돌아선 우리는 가슴 아픈 모습이 된 에데르송을 내려다봤다.
사디오 마네의 스터드에 맞은 에데르송의 얼굴 왼쪽은 피와 멍으로 물들어 있었고, 혹시나 모를 뇌진탕과 디스크를 대비해 목에 보호대도 채워져 있었다.
“이봐. 이건 진짜 조심해야 해. 알겠나?”
“…….”
“…….”
진행요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알린 에두 마우리가 세심하게 관찰을 이어 가는 사이, 앞으로 걸어 나온 대기심이 전반전의 추가 시간을 알려 왔다.
무려 8분의 추가 시간이 주어졌는데, 경기가 순수하게 멈춰선 시간만을 계산한 것 같았다.
“헤이, 다들.”
에데르송의 운반이 조심스럽게 이뤄지는 사이, 흩어지려던 우리를 불러 세운 다비드 실바가 비장한 얼굴로 전반전을 망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 중인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삐?익!!
오랜 시간 멈췄던 경기가 마침내 다시 시작되고, 잔뜩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교체로 투입된 클라우디오 브라보가 짧게 볼을 앞으로 보냈다.
{“…….”}
{“…….”}
조용해진 피치 위, 꼭 텅 빈 그라운드에 있는 것 같다.
동료가 크게 다쳐 피 흘리는 것을 본 우리도 충격을 받았지만, 팬들 역시 이런 장면을 보고 싶진 않았을 거다.
또 리버풀 선수들도 마찬가지.
상대도 덩달아 조금 처져 있다.
더구나 사디오 마네의 퇴장으로, 선수 한 명이 부족해져 있는 상황이다. 피르미누와 살라를 투톱으로 만들긴 했지만, 측면에서 뛰어 줄 선수가 부족하다.
“여기!!”
느슨해진 흐름 속에서 반대편의 카일 워커를 발견한 내가 길게 패스를 보낸다.
와중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카일 워커가 언더랩을 시도하고, 이를 막아 서려던 조르지노 베이날뒴이 어깨를 무리하게 집어넣어 파울을 범한다.
잔뜩 예민해져 있는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고, 프리킥을 차려고 볼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 케빈에게 나는 한 가지를 제안하기로 했다.
“거쳐 가자고?”
“응. 너도 오늘 리버풀의 반응을 봤잖아. 세트피스 상황을 잘 준비했다고.”
“…….”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PL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트피스를 갖춘 팀이 바로 우리다.
케빈/다비드/나.
베르나르두도 좋은 킥을 지녔다.
부상에서 거의 회복한 귄도안도 훌륭한 세트피스 키커이고, 오타멘디/스톤스/라포르트는 높이에서 우위를 점해 헤더를 따낼 수 있는 선수들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상대는 이를 대비한다.
현재 위치는 다이렉트로 슈팅을 가져가기엔 각도가 다소 부족한 곳이었고, 나는 바로 킥을 띄우는 것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 크로스를 띄우는 게 좋을 거로 판단했다.
훈련 때 비슷한 패턴을 연습한 적도 있기에, 이런 나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좋아. 그렇게 하자.”
“Good. 내가 보내 줄게.”
“그래.”
고개를 끄덕인 케빈이 오른쪽 측면으로 멀어지고, 리버풀의 선수들이 이를 의아하게 여기기 시작하려던 찰나 침을 피치에 뱉은 녀석이 연기를 시작했다.
허리춤에다 손을 올린 채 서서, 누가 봐도 키커를 빼앗긴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영리하네. 좋은 선택이야.”
“네. 그러게요.”
“나는 옆에 서 있을게.”
“네.”
팬들 사이에서는 근거 없는 루머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잉글랜드의 몇몇 타블로이드는 케빈과 나의 사이에서 빚어진 긴장감을 뉴스로 다뤘었다.
세트피스 상황의 모습을 사진으로 게재하며, 우리가 신경전을 펼친다고 말했던 것이다.
직후 케빈과 나는 그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지만, 당연하게도 근거 없는 말이라며 내용을 부정했다.
“후우-”
슈팅을 시도하려는 것처럼 볼의 위치를 정성을 기울여 잡아 둔 후, 상체를 일으킨 내가 숨을 내어 쉬며 골대가 있는 곳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조지! 조지!!”
베이날뒴을 잉글랜드 방식의 별명으로 부른 위르겐 클롭이, 그를 모하메드 살라와 알베르토 모레노(Alberto Moreno)가 벽을 세운 곳으로 보냈다.
일반적으로 이 각도에서 벽은 두 명이 서지만, 지금은 그게 셋으로 늘었다.
리버풀 FC 역시 나와 케빈 사이에서 벌어진 신경전에 관해 알고 있을 것이기에, 거기에서 승리를 거둔 내가 슈팅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분데스리가에서 도르트문트를 상대했을 때 이 각도에서 슈팅을 날린 적도 있어, 클롭이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겐 무척 좋은 변화다.
박스 안의 수비가 하나 줄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퇴장으로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박스 안의 숫자를 줄이는 건 위험을 더 감수하겠다는 의미였다.
삐?익!!
주심의 휘슬이 불리고, 다시 축구공을 고르는 척 앞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인 내가 바로 왼발을 휘둘러 케빈이 있는 곳으로 패스를 보내 버렸다.
슈팅을 가져가는 스텝이 아닌 일반적인 걸음이었기에, 앞에 세워진 벽의 반응 속도는 많이 느렸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살라가 케빈에게로 달려갔지만, 충분한 공간과 시야를 확보한 녀석은 너무나도 편안하게 크로스를 띄워 올렸다.
케빈의 발을 떠난 축구공이 멋진 궤적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고, 한눈에 보기에도 동수(同數)가 유지된 골 에어리어 내에서 몸을 띄워 올린 제수스가 머리를 가져다 댔다.
펀칭을 시도한 시몬 미뇰레의 팔에 부딪힌 제주스가 피치로 추락하지만, 축구공은 이미 골라인을 통과했고 넘어진 그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데르송의 부상으로 인한 근심 걱정을 앓던 팬들을 단숨에 열광하게 만든 득점.
팬들은 더욱 크게 환호했지만, 간단한 셀레브레이션을 끝낸 제주스는 머리와 얼굴에 차례대로 손을 가져가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이 친구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나 보다.
워낙 천성이 착해 더 그럴 수도 있다.
“잘했어, 가비. 정말 잘했어.”
“뚱보 녀석이…….”
“그는 괜찮을 거야. 에두가 봐주고 있으니까.”
“응.”
어린 시절 우량아였던 에데르송은 예전부터 뚱보(Chubby/Gordo)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며 새로운 별명을 갖길 원했지만, 같은 벤피카 출신인 나와 베르나르두가 있어 본인이 바라던 근사한 별명을 얻는 것에 실패했다.
온몸 가득 있는 타투와 상어를 연상케 하는 삐뚤빼뚤한 치열 덕분에 인상이 다소 사나워 보여도, 에데르송은 놀리면 놀리는 대로 쑤욱 들어가는 녀석이다.
‘바라던 결과는 아니야. 그렇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에데르송의 부상은, 우리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료들의 눈빛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
.하프 타임
맨체스터 시티 2 : 0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의 드레싱 룸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드레싱 룸에 들어선 직후, 바로 유니폼 상의를 벗은 내가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후반전을 에데르송에게 바치자고 했다.
그를 위해, 반드시 승리하자고도.
“바로 그거다!”
“?”
“…….”
한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고, 펩이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입을 다물며 자리로 돌아와 옆에 놓인 과일 주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바로 빨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쪼?옥.
“동료가 끔찍한 일을 겪었다! 그는 고통스러워했고! 지금도 우리의 바로 옆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다! 그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피치 위에서는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지만, 저건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에데르송은 경기장 내 따로 마련된 의료시설에서 정밀검사를 이어 가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볼파르트 클리닉과의 일로 홍역을 치른 펩은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길 원했고, 이에 응한 만수르가 아예 작은 병원을 차려 버렸다.
만약 오늘처럼 에티하드 스타디움 내에서 부상이 발생한다면, 굳이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에두 마우리는 실력 좋은 스포츠 닥터였고, 경기가 펼쳐지는 날이 되면 여섯 명의 의사/간호사도 이곳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출근했다.
장담하긴 힘들지만, 에데르송은 전 세계 최고의 대처와 치료를 받고 있을 것이다.
“난 오늘 너희가 강인하길 원한다!”
“…….”
“동료의 아픔을 위해! 그리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무엇보다 너희 자신을 위해 오늘 경기 끝까지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전반전에 너희들은 이미 잘해 주었다! 2:0! 스코어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리버풀은 여전히 강한 팀이다! For Ederson! For Friend! For Family! 무엇이 되었건 지금 저기에 있는 동료를 위해! 나는 너희가 경기 후 클린시트를 가져오길 바란다!”
언어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독일어로 된 펩의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영어로 된 펩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감정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에데르송을 친구 혹은 가족으로 묘사한 부분과 그를 위해 클린시트를 가져오자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골키퍼인 그에게 있어 클린시트는 무척 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승리 선물로 가져갈 수 있다면 부상당한 녀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녀석의 부상이 크지 않아 곧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거지만 말이다.
하프타임 팀 토크가 그렇게 끝이 나고, 베르나르두와 포옹을 하며 걱정과 슬픔을 달랜 나는 동료들과 같은 비장함을 가진 채로 드레싱 룸을 나섰다.
코치들이 몇몇 선수들에게 달라붙어 이야기를 나눴고, 난 입구 앞에서 기다리던 제주스를 만나 손을 마주 잡았다.
“들었지? 에데르송을 위해서야.”
“응. 걘 우리 친구니까.”
“바로 그거야, Amigo. 바로 그거라고.”
“그래.”
새로운 맨체스터 시티.
우리 선수들끼리 정한 새로운 규칙은 바로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프 타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따로 나서는 대신, 입구 앞에서 전부 모여 서로 파이팅을 다진 후 다 함께 피치로 나서자고 말이다.
뱅상이 이를 제안했을 때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봤는데, 난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의 뜻을 전했다.
하프 타임 때도 가장 마지막으로 드레싱 룸을 떠나던 루틴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응?”
“먼저 가.”
“하하. 진짜야?”
“난 심각하거든.”
“큭큭큭큭. 재미있는 녀석.”
웃음을 터뜨린 아궤로를 사이드라인 안으로 들여보낸 후,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피치를 밟았다.
그러곤 오른손을 입으로 가져간 후, 가볍게 입맞춤을 하여 손을 하늘 위로 올렸다.
‘다녀올게.’
팀을 위해 루틴을 포기하기로 했던 나였지만, 그래도 약간의 실속은 챙겨 가는 중이다. 또 이렇게 마지막으로 피치를 밟는 것 정도야,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좋아. 해 보자고.’
찰싹-
두 뺨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나는 후반전의 시작을 알릴 휘슬을 기다렸다.
***
“…….”
.
(앨런 패리)
“패스가 다시 통과합니다! 세르히오 아궤로! UNSELFISH! 제주스! 이건 정말로 딱 들어맞는 플레이입니다! 두 명의 선수가 보여 줄 수 있는 완벽한 합작품이네요! 만약 이를 부인하신다면, 저는 더 근사한 장면을 가져오라 말하고 싶습니다! 골키퍼와의 1:1 장면에서 곁의 동료에게 득점을 양보한 모습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
‘셋.’
리버풀 FC의 감독 위르겐 클롭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진다.
그리고 10분 후.
.
(앤디 힌치클리프) – Sky Sports 공동-코멘테이터
“Oh-! What a Pass!”
(앨런 패리)
“파고드는 카일 워커. 패스가 정확히 도달합니다. 컷백! 더브라위너!! Four Zero Manchester City!! 리버풀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
속으로 셈을 하던 위르겐 클롭의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난다.
‘넷.’
그리고 다시 10분이 지나고.
.
(앨런 패리)
“Here comes Da-On again. And Sane-!!”
.
‘이건 아니야.’
.
(앨런 패리)
“Lovely Combination! Five Null! 다온의 환상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하프라인 뒤쪽에서 볼을 끊어낸 후, 두 명의 동료를 거치는 완벽한 패스를 전달하여 마침내 팀의 다섯 번째 득점까지 이끌었습니다.”
(앤디 힌치클리프)
“오른쪽 공간에 너무나도 많은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마네의 퇴장 여부를 떠나, 오늘 리버풀의 수비는 취약점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축구는 때때로 실력과는 무관한 결과를 보여 주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전 독일과 브라질의 경기일 것이며, 오늘의 시합 역시도 그러한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었다.
전반 36분 만에 사디오 마네가 퇴장을 당하며 한 명이 부족해진 리버풀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런 결과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게 바로 축구지.’
위르겐 클롭은 축구가 이토록 잔인한 스포츠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삐?익!
‘응?’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선 독일 출신의 명장(名將)이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휘슬이 불리고 한 남자가 기립박수 속에서 피치를 떠나기 시작한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클롭의 시선은 관중의 기립박수에 화답하는 이에게로 옮겨진다.
.
(앨런 패리)
“다온이 교체되어 나오는군요. 주앙 칸셀루를 준비한 펩 과르디올랍니다.”
(앤디 힌치클리프)
“사흘 뒤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펼치는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중요한 선수의 체력을 보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
사디오 마네의 퇴장과는 별개로, 위르겐 클롭은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오늘 경기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하는 중이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참담한 점수는 나오지 않았겠지만, 선제 실점을 허락했을 때 사실상 경기는 끝난 것일 수도 있었다.
공격수들의 속도에 중점을 맞춘 다소 단조로운 패턴의 공격. 위르겐 클롭은 언제나처럼 라인을 높여올 맨체스터 시티를 공략할 방법으로 그것을 택했다.
대신 남은 8명의 선수를 공격진영 밖에서 활발히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맨체스터 시티의 실수를 유도하고 점유율이라는 것을 허상으로 만들고자 했다.
전진이 이뤄지지 않는 패스와 점유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펩 과르디올라가 그토록 혐오하는 자신의 축구를 티키타카(Tiki-Taka)로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리버풀은 이를 잘 수행했고, 경기 시작 후 10분이 지났을 때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네 개의 패스. 모든 게 우리를 상처입혔지.’
김다온이 페르난지뉴의 파트너로서 뛰기 시작한 순간부터, 위르겐 클롭이 만들어 둔 모든 대(對) 맨체스터 시티 전략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펩 과르디올라가 준비한 센터백과 미드필드의 수비 방식도 영향을 끼쳤다.
측면을 비워 두고도 측면이 약점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든 전술이 효율적으로 먹혀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리버풀이 공격 전개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의도적으로 볼을 오른쪽으로 공급해 왼쪽을 비워 둔 김다온이 기습적인 언더랩을 시도했다.
카일 워커가 있는 방향을 오랜 시간 상수(常數)로 만들어 둔 맨시티였기에, 왼쪽에서 변수(變數)를 만들기 시작한 김다온을 제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오늘 오른쪽 수비는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지만 여전히 성장이 필요한 18살의 어린 풀백이었다.
23살의 나이에 32살의 노련함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김다온은 젊은 알렉산더-아놀드의 실책을 놓치지 않았고, 가브리에우 제주스를 미끼로 쓰며 케빈 더브라위너에게 완벽한 패스를 찔러 보냈다.
화려함 따위는 전혀 없는 난도가 낮은 패스였지만, 그 장면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이드백은 현시점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시스트로 이어지는 키패스.
김다온은 스스로 어시스트를 올린 다섯 번째 득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이전 네 차례의 득점 과정에서 모두 어시스트로 이어지기 직전의 패스를 직접 공수했다.
단순히 의미 없는 패스가 우연히 어시스트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리버풀의 수비를 찢는 것이었다.
사실 세 번째 득점도 세르히오 아궤로의 양보가 아니었다면, 김다온의 어시스트로 기록될 수 있었다.
‘완벽한 조연이로군.’
만약 오늘 경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경기의 MoM은 케빈 더브라위너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많은 박스 주변 킥을 담당하고,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화려한 부분을 독점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리로이 자네의 득점을 도운 김다온이 어느 정도의 주목을 챙겨가긴 하겠지만, 많은 이들이 득점 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사람들의 뇌리엔, 득점과 관련된 장면들만이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린 오늘의 김다온과 같은 선수들을 ‘Unsung Hero’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하지만, 위르겐 클롭이 보는 김다온은 숨겨진 영웅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돋보이는 남자였다.
그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자신이 나설 차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정말 트라우마라도 생기겠어.’
참담한 기분을 느끼는 위르겐 클롭.
리버풀의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독일 출신의 감독은, 오늘의 대패보다 아직 클럽이 김다온의 활약을 끌어내지 못할 수준이라는 점에 가벼운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 또한, 그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말이다.
김다온이 피치를 떠나고 몇 분 뒤.
{“우오오오오-!!!”}
{“이야아아아-!!!”}
중거리에서 터진 리로이 자네의 추가 득점이, 리버풀 FC와 위르겐 클롭에게 잔인한 하루를 선물한다.
.
.
.경기 결과(2017/18 EPL 4R)
맨체스터 시티 6 : 0 리버풀
[골] 세르히오 아궤로 : 전반 26분(케빈 더브라위너)가브리에우 제주스 : 전반 48분(케빈 더브라위너), 후반 08분(세르히오 아궤로)
케빈 더브라위너 : 후반 17분(카일 워커)
리로이 자네 : 후반 28분(김다온), 후반 34분(카일 워커)
김다온 ? 78분(1어시스트/평점 8.2)
MoM ? 케빈 더브라위너(1골 2어시스트/평점 9.1)
***
작가의 말 ? 이번 리버풀 경기는 에데르송의 부상으로 유명한 경기였죠. 마네/살라/아놀드/로버트슨은 아직 정상궤도에 올라온 시기는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