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84)
83화
2012년 3월 6일. 1500-313 리스본, 포르투갈. 에우제비오 다 시우바 페헤이라 거리. 이스타디우 다 루스.
오늘은 팀에 무척이나 중요한 하루였고, 그래서 다들 피곤한 와중에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그 결과.
삑-!! 삐익-!! 삐이익-!!
“그렇지 바로 이거야!!!”
.
.
·경기종료
SL 벤피카 2 : 0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종합전적 4 : 3 SL 벤피카 승)
우린 챔피언스 리그 8강전으로 향하게 되었다.
전반 45분 막시가 멋진 언더랩을 선보이며 선제득점을 올렸고, 후반전 로스타임 교체로 투입된 넬송이 역습 상황에서 제니트의 전의를 꺾는 쐐기 득점을 기록했다.
다음 챔피언스 리그 8강 경기는 3주 뒤, 아직 어떤 팀과 경기를 치를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너 돈 벌었네? 득점 보너스가 있잖아. 그렇지?”
“응- 맞아.”
“야, 저기. 네 선물이 온다.”
“??”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었던 나는, 생에 첫 챔피언스 리그 득점에 성공한 넬송을 축하해주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저쪽에서 환한 표정의 루이장이 걸어왔는데, 그는 오늘 경기에 쓴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이런 경기에서 기념품 하나 가져가지 못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 안 그래?”
“오, 고마워요.”
“뭘, 이런 걸 가지고.”
넬송의 골을 축하한 루이장이 다시 멀어지고, 축구공을 잠깐 가져온 나는 챔피언스 리그 전용구를 유심히 관찰했다.
연습 때 많이 만져보기는 했지만.
‘내년에는 기필코.’
도로 축구공을 넬송에게 전해주며, 난 뒤돌아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좋은 승리다. 실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고, 다친 사람도 없었지. 오늘 경기를 통해서 깨달았겠지만, 이런 홈&어웨이에서는 골득실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경기 내용에 큰 만족감을 표한 감독님이 온화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미팅과 샤워까지 끝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베베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탁-!
“힘든 하루였지. 안 그래?”
“아뇨. 경기에 뛰지도 않았는걸요.”
“그렇군. 그럼, 갈까?”
“네.”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것에 기뻐하며, 난 집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을 바라봤다.
A36번 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A5번 도로로 갈아타 서쪽으로 향하는 이 길도 어느덧 완전히 익숙해졌다.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이제 우리의 다음 스케줄은 11일 FC 파수스 드 페레이라, 16일 SC 베리아-마르와 치르는 리그 22와 23라운드 경기다.
부르르르르-
FC 포르투전에 이어 이번 챔피언스 리그까지 주요선수 대부분이 90분 전체를 뛰었기 때문에, 이 두 경기에서는 충분한 로테이션을 줄 것이라 보고 있다.
SC 브라가와 리그 2위 싸움을 계속해서 해야 하지만, 두 팀 모두 하위권인 만큼 호흡조절에 들어가리라고 본다.
부르르르르-
“응? 이봐! 이거, 자네 전화 소리 아닌가?”
“네?”
부르르르르-
[어라?]정말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잠깐 딴생각을 하며 있었다가 보니,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얼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자, 화면에 전화를 건 상대방의 이름이 보였다.
바로, 요나스.
“Ola? 아, 아니지. Hej?”
순식간에 세 개의 언어를 말해버린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웃음을 참지 못한 요나스가 큭큭거린 뒤에 인사를 받아주었다.
“크크큭. Hej. 지금 통화돼?”
“네. 집에 가는 중이거든요.”
“그렇구나. 내일 아마도 선물이 갈 거야.”
“선물이요? 무슨?”
“보면 알아. 보나 마나 챔피언스 리그에 뛸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잔뜩 기가 죽어 있을 거잖아. 아니야?”
“비슷해요.”
“그럼 잘됐네.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통화하자. 알겠지?”
“네. 그럼 내일 통화해요.”
“그래. 그럼, 잘 자.”
딸깍-
흐음- 선물이라.
분명히 내 생일은 3개월 전이었는데 말이다.
일단, 요나스의 말처럼 오늘은 이만 쉴 생각이었다.
어차피,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말이다.
몸이 멀쩡한데도 경기에서 뛸 수 없다는 건, 지금의 내겐 무척이나 힘들고 또 슬픈 일이었다.
***
2005년. 세계 최고의 맥주 제조업체 중 하나인 ‘하이네켄(Heineken)’은 유럽 내의 광고비용을 60% 가까이 줄이는 대신, 그 비용을 고스란히 챔피언스 리그 후원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후 약 7년이 흐른 지금, 이것은 ‘하이네켄’ 역사상 최고의 판단 중 하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일례로 ‘하이네켄’의 고위 관계자는, 챔피언스 리그에 후원을 시작한 이후 맥주의 주 소비층인 18~23세의 제품 인지도가 네 배 이상 뛰어올랐다 말하기도 했다.
이는 하이네켄이 유럽 시장에 10년 동안 총 4,140만 달러를 투자하고서도 거두지 못했던 경이로운 성과였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기업이 스포츠 산업을 통해 커다란 상업적 이윤을 얻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특정한 종목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굳이 챔피언스 리그가 아니라도, 수많은 기업이 스포츠 산업을 고부가가치를 지닌 시장으로 바라본다는 건 더는 비밀도 아닌 일이다.
오랜 기간 기업들은 스포츠 산업에 스며드는 방법을 고심해왔고, 이제는 그 효율을 극대화하는 단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그들은 스포츠 시장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자신의 상품이 ‘조역’이 되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장에서 최고의 효율을 얻기 위해서는 선수가 가장 큰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같은 생각을 지닌 한 기업이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에 본사를 둔 특별한 기업.
바로, ‘아디다스(Adidas)’.
오늘 그 관계자 중 여럿이 포르투갈 리스본을 찾았다.
.
.
2012년 3월 7일. 세이샬, 포르투갈. 벤피카 캠퍼스 ? 스포르트 리스보아 벤피카 인턴십 및 교육센터. 제1 연습구장.
어제 요나스가 말한 선물이란 얀 아담센과 함께 온 다섯 명의 ‘아디다스’ 관계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일전에 당신이 프레데터를 부탁했다는 말을 들었죠.”
“······무슨 말이에요?”
“아, 그게.”
내 삶에 들어온 세 개의 언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찬데, 여기에 독일어까지 들으려니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까까진 덴마크어를 할 수 있는 분이 계셔서 의사소통이 참 편했는데, 그분이 사라진 뒤로는 다시 통역이 필요해졌다.
“네가 프레데터를 요청했다던데?”
“제가요?”
프레데터? 그게 뭐더라?
아-!
“······아. 오-! 크흠. 네. 그, 그렇죠.”
“Bitte?”
눈을 크게 뜨는 아디다스 관계자에게 아무것도 아니라 손사래를 치며, 난 이전에 칸셀루를 위해 ‘아디다스’의 프레데터를 팀에 부탁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마도 그 정보가 ‘아디다스’의 고위 관계자에게 들어간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의 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뭐야, 이거. 이게 그럼 전부 다 주앙 덕분?’
‘아디다스’의 관계자들이 방문한 것은 지난날, 칸셀루가 내게 자신이 쓸 프레데터를 부탁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떠나, 이 만남은 조금 놀랍다.
벤피카로 이적하기 전만 해도, 에이전시는 ‘나이키(Nike)’와 꽤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벤피카 이적이 결정되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흐지부지되고야 말았는데, 그건 이 리그와 우리 팀 모두 ‘아디다스’를 공식 후원사로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수 개개인이 신는 축구화에 대한 제약은 없지만, ‘나이키’는 계약을 맺기 곤란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진 따로 스폰서 없이 지내왔었는데, 아무래도 오늘부터 ‘아디다스’와 일을 하게 될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첫 만남이고 해서 선물을 좀 가져왔죠. 이건 계약조건과 상관없이 드리는 것이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딱-! 딱-!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사료 되는 남성이 손가락을 두 번 튕기자, 라커룸의 문이 열렸고 난 무언가에 홀린 듯 거기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라커에는 어느새.
[우-와!! 이게 다 뭐야?]‘아디다스’는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백 켤레의 축구화와 스무 벌의 운동복이 예쁘게 정리되어 놓여 있었다.
축구화는 칸셀루를 따라서 신기 시작한 프레데터고, 운동복은 네 가지 색상이 각각 다섯 벌 총 스무 벌이다.
당분간은 쇼핑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자택으로도 몇몇 상품들을 보내 놓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이런 대우들은 저희로서도 꽤 파격적인 편입니다. 물론 상품들을 어느 정도 선물해 드립니다만, 이런 양은 근래에 잘 없었던 일이죠.”
얀 아담센이 다시 통역을 해주었고, 난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것이냐고 질문을 하게 되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러자 독일에서 왔다는 볼프하르트 괴링(Wolfhart Goring) 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 셀레브레이션.”
“네?”
볼프하르트 씨는 내가 FC 포르투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셀레브레이션 장면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라고 했다.
그전까진 나와 스폰서십을 체결하자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의견이 반반 정도 되었다고 한다.
현재 ‘아디다스’가 가장 주목하는 아시아 축구선수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고 있는 카가와 신지(Kagawa Shinji)였고, 비슷한 기간에 한국과 일본 선수와 동시에 계약을 맺는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란다.
마케팅의 분야야 내가 알 수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FC 포르투전의 셀레브레이션 하나가 그렇게까지 큰 인상으로 다가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이곳 포르투갈의 사람들이야 그렇겠지만, ‘아디다스’가 그것 하나 때문에 생각을 바꾸었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볼프하르트 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며칠 전, ‘아디다스’ 본사의 사람들은 회의를 이어나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잠시 휴식 시간이 되었고, 회의실 안에서 편안한 자세로 커피와 음료를 즐기던 이들의 앞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오늘은 오지 못했는데, 그분은 FC 포르투의 열렬한 팬이었고, 하루 전에 있었던 축구경기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바로 이게 우리가 바라는 광고라며 소리를 내질렀단다.
“나중에 이야기를 자세히 하려고 했는데, 실은 오늘 광고에 관련된 부분까지 한꺼번에 진행하려고 합니다. 본래라면 아시아의 선수들은 처음에 모국에서 광고하는 게 원칙이지만, 말한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도 꽤 예외라서요.”
‘아디다스’는 포르투갈 내에서 방영될 광고내용을 그 날의 셀레브레이션 장면으로 대체하고 싶다며 말하고 있었다.
따로 촬영도 필요 없고, 그냥 계약만 하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꽤 훌륭한 조건일 겁니다. 우리는 그날 경기를 통해, 당신이 충분한 매력을 지녔다고 보았어요.”
곁에서 통역을 끝낸 아담센이 한 마디를 보태오길, FC 포르투의 스폰서가 바로 ‘나이키’란다.
“아······.”
이제야,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경쟁 관계야 굳이 두말하면 입 아픈 것인데, 그들은 내 셀레브레이션이 나이키를 멋지게 농락하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자, 그럼. 이제는 그만 계약과 관련된 이야기를 진행하죠.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으니까.”
“······네.”
이제 사람들을 따라, 난 클럽하우스 내 비어있는 회의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곤 이젠 제법 익숙해진, 계약서에 사인하는 시간이다.
펜을 열심히 굴리면서 난 생각한다.
과연 그 누가 알았을까?
솔직히 이걸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날의 그 일이 이렇게까지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내게 돈 보따리를 잔뜩 풀어놓고 있었다.
[휴우~ 끝났다.]“저기, 잠깐 여기를 좀 봐주실래요?”
찰칵-!
이런 일에, 사진이 빠질 수 없겠지.
오늘, 난 ‘아디다스’의 일원이 되었다.
***
2012년 3월 10일. 에스토릴, 포르투갈. 루아 잉그라테라 387.
지난 7일, 나는 ‘아디다스’와 향후 5년 동안, 매년 최대 20만 유로(약 2억 8천만 원)에 달하는 용품 지원과 연 220만 유로(약 31억 원)의 계약금을 받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공식적인 자리라든가 출퇴근 시에 무조건 ‘아디다스’ 제품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나, 매년 한국에서 ‘아디다스’가 개최하는 이벤트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등의 의무를 이행하게 되었다.
또 2년 뒤에는 계약금을 협상할 수 있는 자격이 양측에 생기는데, 그때 계약금이 오를 수도 또 낮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만약 그때 계약 연장을 바랄 경우, 양측의 동의하에 기존 계약합산 최대 5년까지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조항에도 사인했다.
얀은 내게, 이런 식으로 계약하는 방향이 안정성과 수익성 모든 부분을 챙길 수 있다며 조금 귀찮아도 이렇게 하자고 했다.
나야 뭐, 그를 믿고 따를 뿐이다.
일을 무척 잘해주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내 계약조건은 나이와 리그를 고려했을 때, 꽤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2005년 지성이 형이 ‘나이키’에 받았던 계약금이 9억 원 이었으니, 실제로도 물가 상승 등을 생각하면 꽤 후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각종 물품이라든가, 그들이 약속한 여름 휴가와 추후 한국으로 갈 때 비행기와 호텔비 지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디다스’와 계약을 체결하며 얻게 된 좋은 소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여보세요?”
-어, 그래. 다온아. 이야기 들었어.
“어, 안녕하세요.”
현재 독일 함부르크 SV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와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흥민이 형은 나보다 한 살이 많은데, 2008년부터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아왔다.
계약하는 일이 끝난 뒤, 볼프하르트 씨는 흥민이 형을 알고 있느냐며, 만약 원한다면 서로 연결을 시켜주겠다고 말을 했었다.
난 당연히 흔쾌히 좋다고 말했는데, 아까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볼프하르트 씨로부터 손흥민 선수의 연락처와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난 방에 돌아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거 영상 봤어. 너 완전 똥배짱이던데?
“아- 그것 때문에 리스본 시내에도 못 나가요.”
-야 나도 그렇게 하고는 싶은데, 요즘은 아예 뛰지를 못한다.
“어······.”
-괜찮아. 내가 못한 거니까.
“아니, 그 말 하려던 거 아닌데요?”
-뭐? 이, 씨.
확실히 나잇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이전에 다른 형들을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편안했다.
흥민이 형은 시즌 전 프리게임에서 엄청나게 골을 몰아쳐 큰 기대를 받았지만, 팀이 워낙에 약한 데다가 부상까지 겹치면서 정작 정규시즌에서는 큰 활약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아, 그리고 나도 들었어. 너 올림픽 나온다며?
“네. 형도 미리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던데요?”
-응. 아버지한테 강찬일 감독님이 직접 전화했다고 하더라. 아드님을 데려가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냐고. 다온아. 군대 면제받아야지?
“뭐, 안 되면 귀화하죠.”
-뭐?? 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지.
이후로도 우린 내내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등,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대화했다.
-이제 끊어야겠다. 내일 출전은 안 하지만, 그래도 컨디션은 제대로 관리해야지. 넌 시합 안 뛰어?
“모레, 선발 오른쪽 풀백이요.”
-하아, 좋겠다 넌. 난 언제 뛰냐?
“형 축구 잘하잖아요. 덴마크에 있을 때 형 데뷔골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하하. 그거 고맙네. 야, 다음엔 말 편하게 해. 형이라고만 부르고 존댓말은 쓰지 말고. 알겠지?
“네, 형.”
-그래, 그럼. 끊는다?
딸깍-
“으-아!”
털썩-!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워 난 생각한다.
그러니까, 요즘의 내 삶에 대해.
근래는 도통 이런 생각을 해본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내 삶은 현재 끊임없이 바뀌고 있고, 예전이라면 꿈꿔보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대화하고 또 눈으로만 쳐다보며 침만 흘렸을 물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변화하는 삶의 속도보다, 축구선수로서 나아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것 같다.
제수스 감독님은 그것이 무척이나 당연하다고 했는데, 포르투갈 이적 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축구선수로서는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알아보는 단계는 나중의 일이라고 하셨다.
‘그걸 알긴 알지만······.’
괜히 정체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만약 내가 축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시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역시도 해본다.
일전에 경훈이 형이 했었던 말이 떠오른다.
처음 이곳을 소개해 줄 때 했었던 말.
포르투갈 리그에 진출한 남미의 선수 중 대다수는, 가난한 과거의 삶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더 절박하고, 더 열심히 뛴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랬지.
‘이미 많이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몸을 뒤척이며 자세를 바꿔, 난 벽을 바라보았다.
뭔가, 축구선수로서 성장했단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있으면 어쩐지.
조금 더.
‘잘할 것도 같은데 말이야······ 아, 졸려.’
잠이 엄청나게 밀려와, 생각을 더 길게 이어나갈 수 없다.
오늘은 이만, 나도 잠들어야지.
지금까지 수고한 나 자신에게, 참 잘했다고 말해주고픈 밤이었다.
***
작가의 말 – ‘나이키’, ‘아디다스’가 2012년에 계약한 축구선수들의 새로운 스폰서계약 중, 다온이가 받은 수준은 중상위권 정도 되는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