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
9화
2개월 새 참 많이도 컸더군.
-모르텐 비그호스트 Via 김다온의 2년차 시즌 첫 만남을 회상하며.
시즌 첫 번째 날, 유소년 그룹으로 묶인 나는 우선 신체 측정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삑-!
“175.9cm!”
“뭐어-?! 진짜?!”
“······왜? 문제 있니?”
“오-! 아니요! 크흠. 고맙습니다.”
“······?”
우와-!
10센티나 컸어!!
처음 덴마크로 와서는 매일같이 키를 쟀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떡대들밖에 없었던지라, 키가 작다는 것이 무척 신경 쓰였었다.
하지만 시즌이 지나면서는 그러지 않았다.
키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은 아니고,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힘들었었던 탓이다.
훈련이 끝나고 나면, 나는 늘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난 덴마크에서 축구를 비롯하여 두 종류의 언어와 덴마크 교육의 기본과정을 공부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워왔다.
두 분의 가정교사가 함께했고, 제철이 형까지 포함하게 되면 사실상 세 사람이 날 도와준 셈이었다.
아, 맞다.
“야!”
“이크!”
뒤늦게 날 발견한 제철이 형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분명 아침에 날 데리러 왔을 건대, 미리 전화라도 해둘걸.
이게 전부 다 그 빌어먹을 핼리 녀석 때문이다.
“뭐-? 핼리? 걔가 또 왜?”
“아니, 걔가 제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해서······.”
“진짜? 아놔- 이 새끼를 진짜······.”
제철이 형이 순순히 내 말을 믿었던 이유는, 이전에도 핼리와 그 무리들이 내 휴대폰을 훔쳐갔었던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녀석들은 인근 호숫가에 내 휴대폰을 집어던지는 영상을 찍어, 자기들끼리 낄낄거렸었다.
하지만 제철이 형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구단은 핼리와 그 무리들에게 2주간의 급료삭감과 모든 종류의 경기에서 2주간을 뛸 수 없는 중징계를 내렸다.
물론 훈련의 참여도 불가였었다.
지금도 당장 구단에 말하겠다는 제철이 형을 뜯어말리면서, 난 최대한 아양을 떨었다.
잘못한 건 나이니, 사과해야 하는 것도 나다.
또, 진짜로 구단에 말하기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누나는 잘 데려다줬어요?”
“응? 뭐, 그냥 그렇지.”
여전히 제철이 형의 짝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요망한 것 같으니라고.
이건 물론 우리 누나에게 하는 말이다.
“아, 맞다! 형! 나 176이래요!”
“뭐? 진짜? 하긴, 많이 크긴 했어.”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날 난쟁이라 부르진 못할 것이다.
최근까지도 내 키와 체격은 놀림거리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었고, 연습 때에도 의도적인 거친 행동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렇지만 이젠 얼추 평균치에 근접하게 되었으니, 아무도 날 난쟁이라 부르지는 못할 거다.
단 한 명.
“여어- 난쟁이!”
“하아- 잊고 있었네.”
저기에서 걸어오는 라우리츠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라우리츠 뱅(Lauritz Bang)은 노르셸란 U-19 팀의 중앙센터백이다.
키는 무려 194cm였고, 어깨도 딱 벌어져 있어 신장에서 오는 위압감이 유독 유별나다.
작년 연습 때였던가?
7 : 7 미니게임에서 아주 혼쭐이 났었던 적이 있다.
해 보자 싶어 전력으로 몸을 부딪쳤는데, 무슨 벽에다 태클을 한 기분이었다.
볼품없이 나동그라지는 나를 보며, 뱅은 새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날 난쟁이라고 불렀다.
[dværg.(난쟁이)]하지만 라우리츠는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녀석은 올루프와 함께, 날 항상 지켜주려고 했다.
보기와는 달리, 착한 녀석이란 거다.
“뭐야? 키가 컸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여전히 작네?”
“아 좀 닥쳐줄래? 난 어디에서 곰이 걸어오는 줄 알았네.”
“히이- 비시즌 동안 운동을 좀 빡세게 했지. 그러는 넌? 여전히 종잇장 같은 몸인데?”
“······.”
뒤에서 손을 겨드랑이로 밀어 넣은 라우리츠가 날 좌우로 흔들어댄다.
그러면 난 어김없이 종이인형처럼 움직이곤 했는데, 이게 참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여기에서 기분 나쁜 티를 내봤자, 라우리츠만 더 즐거워 할 게 뻔하다.
얜 그런 녀석이니까.
“에이- 재미없어.”
봤지?
라우리츠는 반응이 없으면 장난을 더 하지 않는다.
변태 새끼. 즐기는 게 분명해.
“그러면 이제 뭐 하러 가는 거야?”
“뭐야? 너 일정표 안 봤어?”
“별로. 나 그런 거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어딘데?”
덩치가 크면 멍청하단 말은 선입견이라고만 여겨왔건만, 라우리츠를 보며 그 선입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라우리츠는 오직 자신의 육체와 축구에만 관심이 있는 녀석이라서, 외의 것들은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사실 이놈이 나랑 친구를 하게 된 것도, 곁에 두면 꽤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힘쓰는 애 옆에 범생이 같다고나 할까?
나도 딱히 머리가 좋진 않다만, 뭐.
얘보다 못할까.
다음 일정이 기다리는 곳으로, 라우리츠와 함께 발걸음을 옮긴다.
***
2010년 7월 1일.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라이트 투 드림 파크.
#오전 10 : 06
프리시즌 훈련 두 번째 날.
난 U-19에서 B팀의 그룹 군으로 합류했다.
“달려-! Go, Go, Go, Go, Go, Go!”
사실 지난 시즌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어떠한 날은 A팀. 어떠한 날은 B팀. 그리고 어떠한 날은 U-19로 이동해 경기를 준비했었다.
F.C 노르셸란은 새로운 구단주 그룹과 함께 체계를 새로이 정비하는 중이었고, 작년은 그 과정이어서 선수단의 운영에 대한 기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팀은 좀 더 팀의 구조를 세분화했고, 난 일단 B팀 소속으로서 시즌을 준비하게 되었다.
“좀 더 빨리! 서로 부딪치지 않게!”
그리고 덩달아 팀의 코치진도 대폭 보강이 됐다.
A팀은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작년 각각 4명에 불과했던 B팀과 U-19 팀의 코치진이 9명까지 충원된 것이다.
자연히 개개인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난 따로 부름을 받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분도 새롭게 합류한 코치이다.
이름은 조금 긴 다비드 곤잘레스 플라타(David Gonzalez Plata). 스페인 출신으로, 별명은 노노(Nono)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국적을 지닌 에스쿠데로 코치님의 말에 따르면, 노노는 스페인 어로 괴짜(Nerd)란 의미랬다.
그 말대로, 노노는 조금 이상했다.
눈빛이나 행동이 어딘가 좀······.
‘대체 지금 어디를 보고 계시는 거야?’
노노는 말을 할 때 사람을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그 시선은 내 좌우에 있는 빈 공간이나, 아니면 저 앞에 놓인 축구공으로 향했다.
다만 그 말투에서는 행동과는 다른 자신감이 느껴졌다.
일종의 고집이라고나 할까?
마치 모르텐을 보는 느낌이다.
[Bueno? 미묘한 차이야. 그렇지만 넌 좀 더 공을 앞으로 밀어줄 필요가 있어.]영어와 덴마크어에 이어, 제철이 형은 스페인어까지도 능숙하게 통역해 주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은근 착한 구석도 있고.
누나는 왜 그러는 거야?
아, 이게 아니지 참.
“어디 한번 해보라고 하네.”
“그러죠, 뭐. 까짓 것.”
어제 앵커 벤첸(Anker Bentzen)을 만나, 매일 노노와 따로 30분의 훈련을 하게 될 거란 말을 들었다.
벤첸은 B팀의 매니저로, 상냥하고 꼼꼼한 분이었다.
축구공의 옆에 서서 디딤발의 위치를 한 번 가늠하곤, 평소와 같은 루틴을 가져갔다.
거리는 페널티에어리어 바로 바깥이었는데, 딱히 장애물은 없어 강하게만 차면 될 것 같았다.
노노는 금방 내게, 디딤발의 각도와 공을 밀어내는 동작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작은 신장 때문에 디딤발의 각도가 남들보다 조금 작았다며, 거기에 신경을 쓰라고 했다.
안 그래도 요즘, 강하게 찰 때마다 축구공이 좀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게 늘 고민이었는데, 노노의 레슨이 효과가 있길 바란다.
“후우-”
디딤발의 각도는 최소 45도.
임팩트 순간 아주 살짝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발등을 가져가랬다.
좋아, 어디 그럼.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준비 동작 뒤에, 나는 곧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45도와 밀어낸다는 말을 되뇌었다.
이내 디딤발이 딛어지고.
오른발이 뒤따른다.
퍼엉-!
태?앵-!
“오-! 아깝다!”
“······.”
아니야. 이게 아니다.
내가 줄곧 머릿속으로 그렸던 슈팅은 이게 아니었다.
지금은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그러면 슈팅의 강도를 떠나, 골대 안으로는 반드시 들어갔어야만 한다.
제철이 형은 감탄하고 있었지만, 이건 고작 20점짜리 슈팅이다.
“어?”
[이리로 와!]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손짓으로 이리로 오란 말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이름을 한 번에 불렀다.
‘거의 처음이야······.’
이름이 제대로 불린 것에 대한 감탄도 잠시, 노노는 다시 또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번엔 제철이 형도 버거웠는지, 몇 번이나 멈춘 뒤에 다시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난 이야기 전체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슈팅의 기초가 거의 없대. 타고난 재능만으로 슈팅하는 것 같다는데? 그래서 오늘부터는 다시 기초부터 한다고 생각하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뜯어고칠 테니까, 각오도 단단히 하라고 말하더라.”
“······처음부터요?”
“응. 처음부터.”
아- 기초훈련이라.
그거 진짜 재미없고 지루한데.
그렇지만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노노의 지시를 따라야겠지.
그래도 뭐 다음 훈련들은.
“에······ 수비전술의 기초란······.”
“라인을 조절할 때 말이야······.”
“드리블. 패스. 네 포지션에서는 항상······.”
“기초가 항상 중요해. 너도 알지?”
“기초. 기초. 기초에 근거한 기초.”
“기본기. 기본기. 또 기본기. 그리고 기본기. 언제까지고 기본기. 영원히 기본기.”
“기.본. 기.초.”
······.
프리시즌 훈련 두 번째 날.
난 B팀에서 기초훈련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큭큭큭큭. 지진아.”
나를 비웃으며 지나가는 핼리 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힘껏 치켜세워 줬다.
그러자 욱한 녀석이 내게 뭐라 하려다, 그만 발을 헛디뎌 앞으로 고꾸라졌다.
저 볼품없는 꼬락서니라니.
아, 이제야 속이 좀 풀리네.
***
2010년 7월 4일.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라이트 투 드림 파크.
# 오전 08 : 23
감독실.
짧았던 적응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F.C 노르셸란의 2010/11 시즌.
모든 것은 순조로웠고, 선수단의 의욕 역시도 훌륭했다.
“그래서? 꼬마는 잘 하고 있나?”
“답답해서 죽으려고 하죠, 뭐.”
“유일하게 팀 훈련에 합류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음- 힘든 시기겠지. 하지만 필요한 일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코칭스태프들을 바라보며, 모르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회의가 시작되려면 7분이 남았고, 사람들이 전부 모이지도 않았다.
포트에 우린 커피를 잔에 따라내면서, 모르텐은 김다온의 얼굴을 떠올렸다.
본인은 전혀 모르겠지만, 사실 비시즌 동안 가장 많은 공을 들인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김다온을 성장시키는 일이었다.
작년 한 해, 모르텐과 팀이 지켜봐 온 김다온의 플레이는 원석(原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주력과 슈팅이라는 분명한 장점이 있었지만, 반대로 축구에 대한 이해도와 기본기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래서 경기력의 기복이 컸고, 성장세 역시도 정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다온은 F.C 노르셸란의 어린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진짜’ 원석이라 부를만한 재능이었다.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아니면 아무 값어치도 없는 돌덩어리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지금의 과정이 중요했다.
비록 당사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호로로록-.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정신을 일깨우고 있는 모르텐의 머릿속엔 지금, 김다온의 이름이 있는 미래의 F.C 노르셸란 베스트 11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