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04)
869화 Farewell (16)
2018년 6월 10일. 5082 그뢰디히, 오스트리아. 프뢰취호프 거리 26. 다스 골드버그 슈타디온(Das Goldberg Stadion. Protschgofstraße 26. 5082 Grodig, Austria).
.경기 시작 05분 전
대한민국 0 : 0 세네갈
&Match-Up`s Best Eleven(한국/상대팀)
&Tactics(한국/상대팀) : 4-1-4-1/4-4-2(D6)
GK ? 조현우 / GK ? 카딤 은디아예
RB ? 김다온 / RB ? 무사 와귀에
CB ? 김민재 / CB ? 살리프 사네
CB ? 김영권 / CB ? 칼리두 쿨리발리
LB ? 정운 / LB ? 유수프 사발리
DM ? 기성용 / RDM ? 체이쿠 쿠야테
RAM ? 이재성 / LDM ? 알프레드 은디아예
RCM ? 구자철 / RAM ? 이스마일라 사르
LCM ? 권창훈 / LAM ? 사디오 마네
LAM ? 손흥민 / ST ? 음바예 니앙
ST ? 황의조 / ST ? 디아프라 사코
.
.
비공개로 치러지는 오늘 경기를 앞두고, 몇몇 축구 협회의 은밀한 거래 요청이 있었다.
우리의 전력 분석이 필요했던 모로코 축구 협회가 세네갈에 경기 녹화 영상을 요청하는가 하면, 세네갈과 상대하게 될 호주 역시 한국 협회에 전화를 걸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그에 협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모른다.
전력이 누출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아주 작은 뭔가라도 발견하고 싶은 게 월드컵을 앞둔 팀의 당연한 마음이겠지만, 사실 나는 이쯤 되면 그것으로 딱히 더 나아지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든 건, 피치 위에서 결정될 뿐이다.
“헤이.”
“헤이.”
비록 비공개로 치러지는 경기였지만, 모든 과정은 정식 시합과 똑같다.
양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나서기 위해 복도에 진입했고, 나는 그곳에서 안면이 있는 반가운 얼굴들과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쿠야테와 쿨리발리는 각각 PL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적으로 만난 적이 있고, 사디오 마네와는 좀 더 인연이 깊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본격적인 막이 오르기 전, 당시에도 우리는 세네갈과 평가전을 치렀다.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충격을 줬다니까.] [하하. 그게 벌써 6년 전이야.] [내 말이.]당시의 내게 있어 사디오 마네는 본인의 스피드에 제법 자신감을 가진 평범한 윙어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땐, 지금처럼 대단한 선수가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래- 그땐 그냥 무작정 들이박기 바빴어.] [너나 나나 어렸으니까.] [비니나 밀너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없어할 거라는 거 알지? 비니는 날 가끔 꼬맹이 취급한다고.] [하-! 제임스는 어떤지 알아?]잠시 뒤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지금 마네와 나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즌 중일 때는 서로 적(敵)이 되지만, 비(非)시즌인 지금은 함께 월드컵에서 힘을 내야 하는 같은 직업과 애환을 가진 한 명의 사내일 뿐이다.
마네와 한 번 더 포옹을 나누고 나니, 앞쪽에서 입장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스 골드버그 슈타디온으로 알려진 슈포르탄라게 그뢰디히는 총 좌석 수가 4,128석밖에 되지 않는 작은 축구 경기장이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 입장한 관객은 한 명도 없다.
양 국가의 전력분석원들이 그라운드 전체를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전부다.
‘와- 여기 진짜 끝내주네.’
고도(高度)랄 것이 전혀 없는 이곳 잘츠부르크 외곽의 경기장에선,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가 또렷하게 보인다.
나의 생업(生業)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저런 대자연의 앞에 선다는 건, 절로 겸손한 마음이 들게 되는 일이다.
‘그래도 역시, 팬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대자연보다 사람이 꽉 들어찬 관중석이 내게는 더 멋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심의 휘슬이 울리며 비공개로 치러지는 세네갈과의 평가전이 시작됐다.
이젠 잡다한 것들에 팔린 정신을 축구 경기로 가져올 때다. 텅 빈 경기장이다 보니, 주변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
“라인을 유지해!!”
“뒤에 있어!!”
월드컵 직전 최종 모의고사.
난 조금 진심으로 해 볼 생각이다.
***
.전반 21분
대한민국 0 : 0 세네갈
FIFA 랭킹 33위의 세네갈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앞두고 있다. 호주와 만났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남은 두 국가의 전력이 너무나도 막강했기 때문이다.
벨기에와 잉글랜드를 상대로 경기를 치러야 했는데, 통계분석사이트인 ‘538’는 세네갈의 16강 진출 확률을 단 29.6%로 보았다.
하지만 축구에 절대란 없는 법이었고, 세네갈의 감독 알리우 시세(Aliou Cisse) 역시 이를 굳게 믿었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국가의 감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알리우 시세는, 아프리카지역 예선을 무패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역시 강하군. 좋은 상대야.’
세네갈의 언론은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을 호주를 대비한 것쯤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알리우 시세는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호르헤 삼파올리와 함께하며 ‘비엘시즘’을 꾸준히 접목한 대한민국은 오히려 유럽의 몇몇 팀과 흡사했다.
4-1-4-1을 택한 오늘도, 왼쪽 풀백을 센터백화(化)하는 변형 쓰리백 전술과 오른쪽 윙어에게 프리롤을 주고 오른쪽 풀백에게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전술을 짰다.
강한 측면을 바탕으로, 활동폭이 넓은 중앙 공격수가 공간을 만들고 미드필드가 거기로 뛰어들게 만드는 방식 역시 세네갈에 상대하게 될 본선의 두 유럽 국가와 흡사했다.
로멜루 루카쿠와 해리 케인이라는 세계 최고의 중앙 공격수를 가진 벨기에와 잉글랜드 역시, 오늘 대한민국이 펼치는 축구와 비슷한 방식을 가져갈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저것이 현대 축구의 대세이자, 펩 과르디올라가 유행시킨 메커니즘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원톱은 잠갔어. 하지만 측면이 문제로군.’
되도록 승리한다는 생각을 가지곤 있었지만, 알리우 시세 역시 승패보다는 본선 대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지역 예선 무패를 이끌었던 4-2-3-1과 4-3-3을 버리고, 남몰래 더블 볼란치를 내세운 4-4-2를 준비해 온 것도 벨기에와 잉글랜드를 겨냥한 전술이었다.
피지컬과 활동력이 남다른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드를 센터백 앞에다 두게 되면, 루카쿠와 케인이 날뛰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오늘도, 세네갈의 두 볼란치(Volante)는 황의조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중앙을 잠그는 것과는 별개로, 점유율을 가져오는 부분에는 애를 먹는 중이다. 체감상으론 6:4 정도로 세네갈이 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애초에 생각한 것보다 최전방 공격수들의 라인이 낮다는 것도 신경 쓰이는 점이다.
기껏 볼을 빼앗아 앞으로 패스를 보내려고 해도, 최전방 공격수들의 라인이 낮다 보니 전진을 함에 있어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물론 여기엔, 벨기에나 잉글랜드를 상대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요소 하나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긴 했다.
세네갈이 자랑하는 그들의 왼쪽 공격이 대한민국의 오른쪽 수비에 막혀 전혀 힘을 쓰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역시, 크랙인가?’
사디오 마네의 존재감이 흐릿해져 있다.
만약 평가전이 아니었다면, 알리우 시세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을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오늘 경기가 비공개로 치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네는 이 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야.’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나, 세네갈 대표팀 중 절대 과반수가 프랑스 리그 앙의 중위권 클럽 등지에 소속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프리카지역 예선에서야 그렇다 해도, 월드컵과 같은 무대에서는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이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한데, 그런 세네갈의 에이스가 대한민국 에이스에게 눌려 거의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했다.
팀 내의 절대적인 선수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는 경우가 흔히 그렇듯, 세네갈 역시 사디오 마네의 부진이 팀 전체의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김다온 외에도 두세 명의 선수가 팀의 중심을 잡아 나가고 있다. 김다온이 마네를 억제하기 위해 수비에 힘쓰는 와중에도 공격은 공격대로 날카로웠다.
특히, 김다온의 반대편에 선 손흥민의 존재감은 세네갈이 마네에게 기대했던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FC 바르셀로나의 유망주인 무사 와귀에(Moussa Wague)가 어떻게든 수비를 해내려고 노력했지만, 토트넘의 공격수는 여유 있게 상대를 제압한다.
손흥민과 같은 왼쪽 라인에 선 권창훈과 정운 역시, 유럽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다.
“여기!”
팡-
“!!”
[막아-!!]높은 위치로 전진한 정운의 패스가 권창훈에게 전달되는 순간, 손흥민이 횡(橫)으로 움직여 수비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변칙적인 오프-더-볼을 보여 준다.
이를 놓치지 않은 권창훈이 침착하게 볼을 손흥민이 뛰어드는 공간으로 밀어 넣었고, 순식간에 무너진 세네갈의 수비가 슈팅 기회를 내어준다.
더구나 현재 손흥민이 선 위치는, 그가 커리어 내내 가장 선호해 왔던 곳이다.
전 세계의 공격수 중 최상위권의 슈팅 실력을 갖춘 손흥민에게, 저런 공간을 허락한다는 것 자체가 수비에 실패했다는 의미였다.
“…….”
퍽-
골대를 슬쩍 쳐다본 손흥민이 골대 반대편 상단을 겨냥한 슈팅을 쏘아 보낸다.
멋진 궤적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가는 슈팅은 아주 조금 방향이 안쪽으로 쏠렸고, 이는 세네갈의 골키퍼 카딤 은디아예(Kadim N`diaye)가 간신히 선방을 보인 이유가 됐다.
팡-!!
그대로 골이 되는 줄로만 알았던 손흥민이 아쉬워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곧이어 양 팀 벤치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엇갈리며 튀어나왔다.
비록 득점이 되진 않았어도 좋은 연계를 선보인 대한민국은 선수들을 독려했고, 세네갈 역시 선수들을 격려하는 한편 너무 쉽게 공간을 허락한 부분을 지적하는 시간을 가졌다.
훨씬 더 쉬운 경기를 예상했던 세네갈의 선수들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감독 알리우 시세는 감정적인 면에 취약한 이들을 끊임없이 관리해 나간다.
“이봐-! 다들 진정해!!”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다는 아프리카 팀의 특성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그들을 웃게 했다 울게 만들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어떨 때는 세계 최고의 축구팀처럼 보이지만, 오늘과 같은 순간은 변방(邊方)의 평범한 팀보다도 형편없는 조직력과 경기력을 보여 준다.
물론 전반전 그러다가도 후반전에 180도 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했기에, 알리우 시세는 전반전을 0:0으로 마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무척 좋은 팀이야.’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성공과 김다온의 존재에도 여전히 과소평가 받는 대한민국.
하지만 중간 세대들이 주축이 된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들은 다시 한번 높은 위치를 꿈꾸며 본인들의 조국(祖國)을 축구계의 중심에 놓아두려 하고 있다.
월드컵 개막까지 단 사흘.
남아프리카와 브라질에 이어, 러시아에서도 조별 예선 통과를 1차 목표로 한 대한민국의 진짜 모습은 아직 발휘되고 있지 않았다.
투웅-!
“아…….”
황의조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두드리자, 대한민국 벤치에서는 다시 한번 진한 아쉬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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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결과(평가전)
대한민국 0 : 0 세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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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전지훈련을 마치고 격전지로 떠나는 대한민국 대표팀 ? OSEM(한국)/20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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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최우선 목표는 조별 예선 통과다. 일단 먼저 16강에 오른 뒤에 차츰 하나씩 생각해 보겠다.” – 스포츠뉴스24(한국)/20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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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도착한 호르헤 삼파올리, “대한민국은 지난 8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 왔다. 8년 전과 현재 선수들이 뛰는 무대를 보라. 우린 분명 월드컵에서 강팀이고, 절반 이상의 팀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그러니 걱정은 덜고, 기대를 가져 달라. 그리고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 폿불베스트일레븐(한국)/2018.06.13.]***
2018년 6월 14일. 칼라닌그라드 오블라스트, 러시아 236006. 10월의 거리, 6a, 칼리닌그라드. 카이저호프(Kaiserhof. Ulitsa Oktyabr’skaya, 6а, Kaliningrad. Kaliningrad oblast, Russia 236006).
지금으로부터 약 30분 전, 4년 동안 기다려온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우리는 몇몇 이들의 방에 삼삼오오 모여, 눈과 귀가 즐거운 화려한 공연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러시아어로 된 방송이라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언제 축구에서 언어가 중요했던가?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야, 내기할까?”
“?”
“개막식이랑 개막전. 뭐가 더 재미있을까?”
“하하. 장난해? 그야…….”
“그야?”
“……당연히 개막식이지.”
“큭큭큭.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에이씨. 그래도 파나마는 아니지.”
작년 12월 본선 조 추첨식이 끝난 후, 평소에도 음모론을 들고나오던 3류 가십 매거진들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 예선 추첨은 조작되었다!’]는 뉴스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러시아가 이집트와 파나마라는 비교적(?) 손쉬운 상대와 대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고, 당연히 누구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러시아와 파나마의 개막전이 역대 월드컵을 통틀어 가장 흥미가 떨어지고 지루한 시합이 될 거라는 건 분명했다.
두 나라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과연 누가 이 두 팀의 경기에 관심을 가질까 싶을 정도다. 그리고 실제 경기 자체도 일방적인 러시아의 압승이 예상된다.
개최국 자격으로 조별 예선을 치르지 않아 FIFA 랭킹 자체는 65위에 그치고 있지만,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은 러시아의 전력은 월드컵 10위권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페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건 쉽지 않겠지만, 어차피 마지막 경기라 그 전에 16강을 확정 지을 수도 있다고 본다.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TV 화면이 광고로 넘어가자마자,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있던 성용이 형이 나를 불렀다.
지금까지 나는 성용이 형의 방에서 자철이 형과 함께 개막식을 시청하던 중이었다.
“다온아.”
“?”
“…….”
“아, 왜? 불러 놓고 말이 없어, 불안하게.”
딸깍-
“엥?”
딸각대는 소리가 들려 입구 쪽을 돌아보니, 어느새 일어선 자철이 형이 문을 잠그고 있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오늘 하루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냉장고의 문을 연 자철이 형이 물병 하나를 집어 들어 자리로 돌아오고, 진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성용이 형이 등을 떼고 자세를 고쳐잡은 후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다온아.”
“……네, 형.”
“이 새끼 봐. 갑자기 존댓말 하네.”
“아, 불안하게 하니까 그러지.”
“야. 나한테는 왜 반말이냐?”
“아, 구자봉은 빠져.”
“어쭈. 얘 봐라.”
“왜요, 형. 불렀으면 말을 해요.”
“…….”
성용이 형은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했다. 몇 번이나 입을 떼려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이야기를 도로 삼키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월드컵을 잘 부탁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지금은 다른 뭔가가 있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온아.”
“네.”
나는 조금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우린 이번 월드컵 끝나고 대표팀 은퇴한다.”
“?!”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야.”
“…….”
지난 6월 1일 보스니아와의 평가전으로, 성용이 형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14번째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2006년 18살의 나이로 U-20팀에 선발되어 FIFA가 주최한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이후, 성용이 형은 벌써 12년째 대한민국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자철이 형 역시, 2007년 AFC U-19 대회를 시작으로, 꾸준히 대한민국 연령별/성인팀에 발탁되어 오며 11년 동안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 바로 내 앞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은퇴를 꺼내들고 있다.
“어째서?”
“응?”
“왜요? 형들 아직 젊잖아.”
“하하. 젊기는 인마.”
“그래. 우리도 늙었지.”
1989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대표팀에 당연히 선발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2022년 월드컵까지도 뛸 수 있다.
하지만 성용이 형은 단호해 보였다.
“앞으론 A매치 주간에 가족들한테 시간을 쓰려고.”
“형.”
“자철이도 공부를 할 거야.”
“공부?”
“야. 나는 언젠가 협회장이 될 거야.”
“형이? 구자봉이가?”
“말도 안 되는 것 같지? 그치? 그런데 있잖아. 독일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걸 봤거든. 너도 알잖아. 걔네가 어떻게 유망주를 육성하는지. 나는 그걸 한국에도 심고 싶어. 물론 네가 지금 아카데미에서 힘을 써 주곤 있지만, 나는 그런 걸 전국적으로 여러 개 만들고 싶다?”
“…….”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자철이 형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난 장난하듯 이야기할 수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 성용이 형을 바라봤을 때, 아마도 내 표정이 많이 슬퍼 보였나 보다.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인 성용이 형이 손을 뻗어 어깨를 두드려 왔다.
“그러니까 앞으론 네가 대표팀을 이끌어.”
“내가 어떻게…….”
“야. 너 혼자 몸값이 남은 대표팀 다 합친 것보다 많아. 흥민이가 넷 있어야 너랑 비빌까 말까야. 알지?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앞으로 다음 세대를 이끌어 줘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너야. 그리고 자철이나 나나. 오늘 그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
솔직히 나는 이 두 사람이 없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신입생들을 자연스럽게 팀에 융화시키는 자철이 형과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아 기댈 수 있는 성용이 형은 내가 기꺼이 대표팀에 합류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앞으로 이 두 사람이 없을 거로 생각하니, 과연 내가 형들의 역할을 잘 이어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뭐, 너 혼자만 하겠냐?”
“그래. 일단 흥민이도 있고. 의조나 재성이 또 창훈이. 전부 너랑 친하잖아. 우리도 지금이야 그렇지, 처음엔 다 도움을 받았었어.”
“형들…….”
“일단은 그렇게 알아. 남은 이야기는 월드컵이 끝나고 하든가, 아니면 중간중간 하든가 하자. 알겠지? 대표팀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고.”
“…….”
두 사람이 나만 따로 불러낼 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디로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자, 이 모든 게 제법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최소 몇 달은 된 것 같다.
딸깍-
잠겨있던 문이 다시 열리고 복도의 소리가 객실 안으로 들어오자, 마치 다른 세상에 있다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정신이 번쩍 트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걸까?
꼭 꿈을 꿨던 것만 같다.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두 사람.
나는 그들을 원망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걸 실감하며 멍한 눈으로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래도 이번 월드컵은.
“후우-”
많은 작별(Farewell)이 함께하게 될 대회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