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05)
870화 Farewell (17)
※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진행상황
.2018.06.14. 경기 결과
Group A. 러시아 5 : 0 파나마
.
.
.2018.06.15. 경기 결과
Group A. 스페인 3 : 0 이집트
Group B. 독일 6 : 0 나이지리아
Group B. 우루과이 3 : 1 아이슬란드
***
(이수용) – KBS Sports 뉴스 아나운서
“드디어 내일 새벽, 대한민국의 러시아 월드컵 첫 번째 경기가 펼쳐집니다. 많은 국민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것 같습니다…….”
***
2018년 6월 16일. 칼리닌그라드 오블라스트, 러시아 236004. 칼리닌그라드. 칼리닌그라드 스타디온(Kaliningrad Stadion. Kaliningrad. Kaliningrad Oblast, Russia 236004).
.경기 시작 3시간 전
대한민국 0 : 0 페루
월드컵 3일 차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칼리닌그라드 스타디온의 불빛이 들어왔다.
둥-
둥- 둥-
“어때? 조금 땄어?”
“아니. 빌어먹을. 콜롬비아가 그따위일 줄 누가 알았겠어?”
“큭큭큭. 화가 많이 났군, 그래.”
“멍청한 새끼들. 다 나가 죽으라지.”
이렇다 할 이변 없이 흘러가고 있던 월드컵은 콜롬비아가 코스타리카에 0:1로 패배하면서 요동쳤다.
점유율 76:24.
슈팅 숫자 28:4.
숫자로만 놓고 본다면 콜롬비아가 코스타리카에 압승을 거둬야 했으나, 지독한 결정력 부족과 세 차례나 골대를 맞추는 불운 속에 이변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허망하게 피치에 앉아 있던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넋 나간 모습은, 월드컵의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 줬다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경기는 어떤데?”
“뭔 상관이야. 이미 끝났는데.”
“큭큭큭. 그러지 말고. 그냥 재미라도 얻자는 거야.”
“……후우.”
한숨을 내쉰 경기장 경비원 중 하나가, 오전에 구매한 스포츠 베팅 용지를 동료에게 보여 준다.
“무승부라고?”
“그래. 나는 역시 못 믿겠어.”
“허어-”
대한민국의 무승부를 예상한 이가 도로 용지를 가져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갈색 머리카락의 남성이 이번에는 자신이 베팅한 용지를 꺼내 들었다.
확률 높은 배당만을 택한 터라 당첨금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베팅만 맞으면 원금의 다섯 배 이상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한국은 강한 팀이라고, 고르킨.”
“이제 알 게 뭐야. 퉤.”
FIFA와 UEFA는 경기 관계자들의 스포츠 베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부분을 단속한다는 것은 무리였고, 직업 윤리의식이 투철하지 못한 이들은 상부의 눈을 피해 직접적인 베팅에 참여하곤 했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어.”
“그래- 한국인들이 참 많더군.”
“이쁜 아가씨들도 말이야. 쿡쿡쿡.”
“마누라한테 쥐어 잡힌 주제에 눈은 또 잘 돌아가는군.”
“당연하지! 미인은 남자의 활력소야.”
“그야, 뭐.”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월경지(越境地)로, 본토가 아닌 발트해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동북으로는 리투아니아. 남으로는 폴란드 국경과 마주하고 있고, 서쪽으로 펼쳐진 발트해를 넘어가게 되면 스웨덴/덴마크를 만나게 된다.
“아-!”
“응? 왜?”
“그걸 생각 못 했어! 여기가 거의 한국의 홈처럼 바뀔 거라는 것 말이야. 자네도 요 며칠 시가지의 분위기를 봤잖아!”
“그래- 그래서 내가 한국을 찍었잖아.”
“젠장!”
“그런데 뭐 어차피 콜롬비아에서 끝난 거 아니야?”
“아-”
“큭큭큭큭.”
잡담을 나누는 와중에도 담당 구역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점검한 두 남자가 무전으로 이상이 없음을 알리며, 휴게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의 말대로, 지난 며칠 칼리닌그라드는 한국을 응원하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뿐만 아니라, 칼리닌그라드 주변국에서 온 이들 역시 한국의 승리를 바라며 KOREA를 외치고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다.
페루에겐 사실상 원정지나 다름없다.
“내일은 언제 만날까?”
“10시. 그때가 제일 한가하잖아.”
“뭐, 정보라도 있어?”
“아니. 몇 번이나 말했잖아. 위험부담은 피하고. 욕심은 버리고. 잃는 것보다는 따는 게 낫다.”
“젠장. 그럼 왜 베팅을 하는 거야.”
“뭐, 그냥 재미라는 거지.”
“재미없게 말이야…….”
“얼른 가자고. 이제 베팅 이야기는 그만하는 거야.”
“그래.”
철컹!
출입이 제한된 통로의 철문을 걸어 잠근 두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지고 있다.
***
.경기 시작 2시간 전
대한민국 0 : 0 페루
&Match-Up`s Best Eleven(한국/상대팀)
&Tactics(한국/상대팀) : 4-3-3/4-2-3-1
GK ? 조현우 / GK ? 페드로 가예세
RB ? 김다온 / RB ? 루이스 아드빈쿨라
CB ? 김민재 / CB ? 알베르토 로드리게스
CB ? 김영권 / CB ? 크리스티안 라모스
LB ? 정운 / LB ? 미겔 트라우코
DM ? 기성용 / RCM ? 요시마르 요툰
CM ? 구자철 / LCM ? 레나토 타피아
CM ? 권창훈 / RAM ? 안드레 카리요
RW ? 이재성 / CAM ? 크리스티안 쿠에바
LW ? 손흥민 / LAM ? 에디손 플로레스
ST ? 황의조 / ST ? 헤페르손 파르판
.
.
별다른 일없이, 지난 48시간이 지나갔다.
우린 훈련장과 호텔을 오가며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일에 집중했고, 쉬는 시간이 되면 호텔 주변을 산책하거나 호텔 내부 시설을 이용하며 여가를 즐겼다.
다른 형들이나 나처럼 가족들이 러시아를 찾은 경우엔, 팀에 허락을 얻고 밖에서 만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두 기둥의 은퇴 선언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었지만, 아영이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지금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한국의 위대한 두 미드필드의 마지막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고 말이다.
그 다짐은 내게 많은 동기부여를 가져다주었고, 어제와 오늘 이렇게 파이팅이 넘치는 이유가 됐다.
“목소리 크게 해, 인마. 알았지?”
“아, 알았다니까~!”
“어쭈? 이게 대들어?”
“아! 아!! 아파, 아프다니까!”
“형이 말하면, 네라고 대답하는 거 몰라?”
“갑자기 왜 이렇게 꼰대가 됐어?”
“시꺼 인마. 그런 게 있어.”
“??”
희찬이에게 걸었던 헤드락을 풀며, 나는 다시 한번 라커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얘 왜 이래요?”
“하하. 몰라.”
영문을 모르는 의조 형이 성용이 형에게 질문을 던져 보지만,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현재까지 두 형의 대표팀 은퇴는 가족들과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쪽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진 성용이 형이 준비를 시작하고, 나도 웜업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후는 대충 평범했다.
트레이너 그룹을 찾는 이들과 복도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이들로 무리가 나뉘고, 긴장을 풀기 위한 대화가 라커룸과 주변 곳곳에서 이뤄졌다.
월드컵이 처음인 이들은 입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는데, 이럴 때를 위해 경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거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나도, 대표팀 내 가장 어린 민재에게 다가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을 했다.
“알지? 네가 제일 잘해.”
“후우~”
“형이 뒤를 봐줄게. 하고 싶은 대로 뛰어. 알겠지?”
“네.”
“그래. 넌 잘할 거야.”
민재는 FIFA가 선정한 ‘월드컵에서 주목해야 할 Young Player 10인’에 올랐다.
전북에서 뛰며 자신이 탈(脫) AFC 수준이라는 것을 이미 증명했고, 소튼으로 임대된 이후에도 실력을 확실히 보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 잠깐 모이자!!”
“네에-!!”
성용이 형의 외침에 크게 대답한 내가 얼른 앞쪽으로 튀어 나가자, 맞은편에 있던 형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도대체 쟤 왜 저러나 라는 표정이었는데, 의조 형이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검지를 뻗어 머리 옆으로 가져가 빙글빙글 돌려대기 시작했다.
“전부 집중!”
짝-!
성용이 형이 손뼉을 쳐 우리를 집중하도록 만든다.
“다들 알지? 이번 대회가 감독님하고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대회잖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고, 팀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서도 집중하자. 몸 풀 때부터 확실하게.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네-”
“그래. 이런 대회는 몸 풀 때부터 바로 기 싸움이야. 눈빛에서 지지 말고. 한 번 파이팅하고 가자. 손 여기로 모으고. 좋아, 가자~ 한국!!”
“어이!!”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난 오늘,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
.경기 시작 40분 전
대한민국 0 : 0 페루
@기자석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대한민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모든 국가가 ‘같은 조에 걸리길 원하는’ 국가였다.
[“3포트에 속한 국가 중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아르헨티나/보스니아 등과 함께 F조에 속했다. 심지어 4포트인 나이지리아 역시, [“천국과도 같은 조에 속했다.”]고 기뻐했었다.하지만 오늘날, D조에 속한 국가들은 자신들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앞뒀음을 알고 있다.
페루와 모로코는 결선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고, 포르투갈도 대한민국과의 승부를 껄끄럽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전력에서 분명 앞서는 것은 맞지만, 같은 생각으로 임한 2002 FIFA 한일 월드컵에서도 일격을 허용하며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받아들어야만 했다.
탁.
“…….”
움직이던 손을 잠깐 멈춘 ‘맨체스터 이브닝’의 기자 레녹스 베이커. 취재를 위해 칼리닌그라드를 찾은 그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오고 있다.
현대 축구계의 아이콘(Ikon).
그 주인공이 사이드백을 향한 인식과 축구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대한민국의 24살 수비수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엔 어디까지 갈까?’
2018/19 유럽 리그가 아직 개막하지도 않았지만, 이번에도 이변이 없는 한 발롱도르의 주인은 김다온이 될 전망이었다.
그리고 월드컵은 트로피에 이름을 새기는 결정타가 되어 줄 게 틀림없다.
‘그것 역시 최초이겠지.’
제법 오래전부터, 김다온이 걷는 모든 길은 ‘최초’이자 ‘역사’로서 기록에 남고 있다. 3주 전에 끝난 2017/18 시즌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기자이기 전에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레녹스 베이커는 이를 무척 흥미롭게 지켜봤었다.
“후후후.”
기분이 좋아진 레녹스 베이커가 다시 키보드를 바삐 두드리기 시작하는 사이, 칼리닌그라드 스타디온 한쪽에서 김다온을 주목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성의 이름은 메레디스 리드로, 그녀 역시 김다온을 보기 위해 칼리닌그라드를 찾았다.
‘뭔가 아쉬워.’
여전히, 그녀는 약간의 미련을 가진 듯하다.
‘처음부터 시티가 아닌 저 남자였어야 했어.’
본래 ‘Amazon’은 [All or Nothing]이 아닌 [Wonder : The First]라는 제목으로, 김다온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선수 측에서 이를 거부했고, 결국 ‘Amazon’의 수뇌부는 기존 미식 축구팀을 주제로 한 [All or Nothing]을 유럽 축구계로 확장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그 대상은 당연히 김다온이 속한 맨체스터 시티였고, 클럽의 명성을 높이는 데 목말랐던 CFG(City Football Group)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었다.
그로부터 약 16개월이 흐른 현재, 몰라보도록 바뀐 메레디스 리드는 최초의 제안이 거절된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 에피소드를 더 만들어 볼까?’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월드컵을 주제로 특별 에피소드를 제작해도 흥미로울 것이라 여기며, 메레디스 리드가 미련을 갖게 만든 남자를 계속해서 눈으로 좇는다.
클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표팀에서도 김다온을 중심으로 에너지가 번져 가고 있는 게 보였다.
‘마누엘에게 말해 봐야겠어.’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고민했던 것을 실천으로 옮기겠다고 결심한 메레디스 리드의 손이, 마누엘 후에르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완성하고자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
.경기 시작 20분 전
대한민국 0 : 0 페루
@대한민국의 드레싱 룸
축구는 무척 긴 여행이다.
이는 펩이 입버릇처럼 우리에게 말해 온 문장이었고, 오늘 삼파올리 감독님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제 해야 할까를 참 많이 고민했다. 한국에서? 아니면 오스트리아에서? 그것도 아니라면 월드컵이 끝난 다음이 맞나? 이 고민은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더군. 도대체 내가 무슨 고민을 하는 거지? 지금 중요한 건 월드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님과의 첫 만남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감독님은 나를 보는 게 완전히 처음은 아니었다.
당시 삼파올리 감독님은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목표로, 대표팀에서 실험할 선수들을 찾고 계셨었다.
그래서 내가 뛰는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직접 포르투갈까지 찾아오셨고, 단 15분 만에 결정을 내렸다고 말씀했었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꿈을 대신하고 있다. 모두가 월드컵에서 뛰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중 소수의 인원만이 무대에 오를 자격을 얻는다.”
“…….”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뛴다는 건, 너희들의 삶 중 가장 멋진 부분이다. 그러니, 좀 더 즐겨라. 그리고 만약 너희가 누군가의 꿈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해도 좋다. 이 대회를 너희들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라. 너희는 그럴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췄다.”
삼파올리 감독님의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나는 대화의 주제가 이별로 향해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월드컵이라는 지상 최고의 축제.
그 멋진 시간을 나는.
아니, 우리는.
‘무려 두 번이나.’
잠깐 이야기를 멈춘 삼파올리 감독님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프로답지 못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늘 감정에 솔직한 삼파올리 감독님을 믿고 의지했다.
다시 삼파올리 감독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목소리는 처음보다 조금 젖어 있었다.
“나는 이 멋진 시간을 자네들과 함께해서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말이다.”
“…….”
“다행히도, 우리가 함께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그것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손에 달렸다. 나도 아니고. 그렇다고 키나 다온의 손에 달려 있지도 않다. 우리.”
이번 대표팀의 캐치프레이즈는 [Together]다. 좀 더 길게 풀어서 설명하면, [나는 우리일 때 더 강하다]였다.
언제나 그랬다.
축구에서 나는 약하다.
하지만 팀으로서 존재할 수 있기에, 나는 강해질 수 있다.
“우린 우리의 손에 달린 문제를 당당히 마주할 것이다. 그래서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릴 것이며, 패배의 슬픔도 함께 위로할 것이다. 너희는 멋진 팀이다. 그리고 강하다. 그러니, 저 바깥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 줘라. 우리가 어떠한 축구를 하고, 너희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플레이로 말해라. Together. 오늘, 우린 함께일 때 강하다는 게 무엇인지를 증명할 거다.”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어느 때보다 격정적인 감정이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축구는 이번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겠지만, 누군가와의 동행은 여기에서 끝나게 되고 또 다른 누군가와의 동행은 영원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처음부터 축구는 늘 이래 왔던 것 같다.
새로운 만남과 이별.
그건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자, 다온이가 한마디 하자.”
“…….”
삼파올리 감독님의 팀 토크가 끝난 후, 둥글게 스크럼을 짠 자리에서 성용이 형이 내게 발언권을 넘겼다.
그리고 나는 이 의미를 알고 있다.
며칠 전, 형은 대표팀을 부탁한다고 했다.
“좋아요. 다들!”
“?”
“이번 대회는 성용이 형하고 자철이 형의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입니다. 농담 아니에요.”
“?!?!”
“!!!!”
폭탄과도 같았던 나의 고백에, 드레싱 룸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철이 형은 지금 그런 말을 하면 어쩌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난 그를 가뿐히 무시했다. 그러곤 묘한 표정을 한 성용이 형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내 방법대로 할 거야. 알지?’
성용이 형과 나는 서로가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총각이 유부남이 되고, 미숙했던 남자가 책임감에 눈뜨는 과정을 함께했다.
최근 우리가 나눈 진지한 대화의 내용만 보더라도,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것들이 변해도, 끝까지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존재한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
모든 인간은 어제보다 더 나은 스스로가 될 수 있지만, 나를 포기하면서까지 노력해야 할 이유와 가치는 세상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나다운 방식으로 대표팀을 이끌어 나갈 생각이다.
“…….”
“…….”
괜히 미소가 지어져 환하게 웃자, 성용이 형 역시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술렁임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드레싱 룸은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
“여기 노땅들이 우리 같은 젊은이들 발목 붙잡는 게 미안해서 떠나겠다는데, 그걸 굳이 붙잡아야겠습니까? 안 그래요?”
“야, 김다온.”
“거, 은퇴하는 양반은 조용히 합시다.”
“야.”
“다시 말합니다-! 형님들 가시는 길, 편히 보내드립시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우리가 죽기라도 하냐?”
“아~ 구자봉은 좀 빠지라고.”
“하-!”
앞으로, 우리는 성용이 형과 자철이 형의 존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든든한 리더이자 누구보다 푸근하고 친근한 친형과도 같은 남자들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 빈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우린 괜찮을 거다.
비록 지금과 같은 모습은 없겠지만, 그래도 다음을 이끌어 나갈 이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대표팀의 모습을 만들어 나갈 테니 말이다.
“후우~~”
“…….”
숨을 길게 한 번 내뱉은 후, 나는 대표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모두 준비된 모습이었다.
압박감 따윈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진짜 잘합시다. 우리. 꼭 이기고 또 이겨서, 감독님이랑 형님들한테 좋은 선물 해 줍시다. 자, 이제 그만할게요. 크게 외치겠습니다. 갑시다아-! 한국!!!”
“어-이!!”
“목소리가 작다!! 다시!! 한국!!!”
“어-이!!!!”
이별 여행.
축구는 오늘도 내게,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가능성을 내게 보여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