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06)
871화 One Team
지난 반년 내내,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게 된 국가를 향한 분석과 의견이 쏟아졌다.
특정한 국가를 향한 다양한 시각 역시 존재했고, 어떠한 국가를 말할 때는 입을 모아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엔 당연히, 우리 대한민국을 향한 이야기도 존재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의견은 [‘김다온의 팀’]이었지만, 내게 자부심을 안겨다 주었던 건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팀 중 두 번째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팀.’]이라는 것이었다.
2006년부터 요하임 뢰프의 지도를 받아 온 독일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국가도 우리보다 오래 함께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삼파올리 감독님의 철학과 추구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서로 눈빛만 보더라도 어떠한 플레이를 원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저기.’
팡-!
“!!”
오른쪽 발등에 얹혀 떠오르기 시작한 패스가 페루의 수비 진영 뒷공간으로 향하고, 볼이 떨어지는 곳으로 달려 나가는 흥민이 형을 페루의 17번이 붙들었다.
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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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 MBC 해설위원
“아, 지금은 경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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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07분
대한민국 0 : 0 페루
세상의 어떠한 수비수도, 흥민이 형의 퍼스트 스텝을 맞추지 못하면 속도에서 이겨 낼 수 없다. 그건 나나 판데이크라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약 반 박자 정도 반응 속도가 늦었던 루이스 아드빈쿨라(Luis Advincula)가 흥민이 형의 유니폼을 붙잡았고, 휘슬을 불며 달려 나간 주심이 노란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반 초반, 페루 수비에 부담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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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욱) – MBC 해설위원
“역시 김다온과 손흥민입니다. 빌드업이 전개되던 상황에서 오른쪽의 김다온에게 패스가 전달됐고, 바로 페루 수비 뒷공간으로 패스가 보내졌습니다.”
(김형근) – MBC 캐스터
“페루의 반칙. 아드빈쿨라에게 경고가 주어집니다.”
(안정환)
“지금 프리킥이 만들어진 위치도 굉장히 좋습니다. 한국은 세트피스를 처리할 수 있는 선수가 많거든요. 저 위치라면 기성용이나 김다온이 처리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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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페루는 수비를 단단히 하며 내려앉았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드를 포백에 가담시켜 6명의 선수를 페널티 박스 주변에 배치했다.
그러곤 발재간과 주력이 좋은 네 명의 공격수를 한꺼번에 전진시키는 식의 역습을 노렸다.
지금도 성용이 형의 프리킥을 박스 안에서 클리어해 낸 페루가 앞쪽에 길게 축구공을 떨어트리며 두 명의 공격수를 빠르게 볼에 접근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남미보다, 북중미에 가깝다.
멕시코, 코스타리카, 파나마 등.
전통적으로 북중미의 국가들이 전력의 열세에 놓인 경기에서 오늘 페루가 택한 방식의 전술을 가져간다. 점유율을 높이긴 어렵지만, 수비 실책이 나올 경우 결정적 기회를 잡게 된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나와 정운 형이 최후방에 자리를 잡았다.
“마이, 마이.”
“…….”
먼저 콜(Call)을 외친 정운 형이 골키퍼에게 헤더로 볼을 전달하고, 현우 형이 안정적으로 축구공을 품에 안으면서 페루의 역습 시도는 손쉽게 가로막힌다.
전반전 9분이 넘어가는 현재, 경기의 주도권은 우리 대한민국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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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 KBS 해설위원
“전반 초반의 흐름만을 놓고 보면, 한국 대표팀이 굉장히 준비를 잘해 온 것 같습니다. 상대가 어떠한 식으로 공격하고, 어디가 약점인지를 알고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이용광) – KBS 캐스터
“조현우의 스로인. 김다온에게 다시 패스가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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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욱)
“본래 아시아 지역 예선까지는 김승규 골키퍼가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었습니다만, 최종 준비 과정에서 조현우가 선발을 꿰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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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점은 페루가 기본적으로 수비에 장점이 있는 팀이라는 거다.
페루의 감독 리카르도 가레카는 ‘빌라르도주의’에 전술적 근간을 두고 있다.
반면에 삼파올리 감독님은 언제나 공격 축구를 선호해 왔고, ‘메노티주의’에서 출발한 ‘비엘시즘’을 변형시킨 축구를 대한민국의 색(色)으로 만들었다.
과거부터 ‘메노티주의’는 ‘빌라르도주의’와 비교했을 때 대회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아르헨티나에 초점을 맞췄을 때의 이야기다.
아르헨티나를 넘어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로 대립 구도를 확대했을 때, 현재 대세는 점유율과 패스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의조! 내려와!”
“…….”
재성이 형의 콜을 받은 의조 형이 아래로 내려와 포스트(Post)플레이를 펼치고, 오른쪽 측면에서 만들어지는 Off Ball&Go에 의해 공간이 발생한다.
이는 우리가 가장 많이 연습해온 패턴 중 하나인데, 재성이 형이 붙박이 오른쪽 윙인 것도 이러한 것 때문이었다.
재성이 형이 포스트 플레이어를 두고 짧은 패스로 연계를 시작하면, 나는 주로 거기로 빠르게 접근해 삼각형을 만든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철이 형까지 합류해 삼각형이 완성되었다면, ‘비엘시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1이 되어 상대 수비의 사각(死角)을 찾아 달려 나가면 됐다.
높은 축구 이해도를 바탕으로 볼 키핑을 해 주는 파트너와 함께 뛸 때마다, 나는 플레이가 더 쉬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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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아, 이재성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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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더-볼과 연계라는 독특한 조합을 장점으로 지닌 재성이 형은, 2017/18 시즌 분데스리가 세컨드 팀에 선정될 정도로 최근 폼이 좋다.
삼파올리 감독님은 나의 공격력을 대표팀 내에서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원했고, 그 대답으로 재성이 형을 나의 측면 파트너로 정했다.
개인적으론 베르나르두와 같은 라인에 설 때와 느낌이 비슷했는데, 그래서 더 편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두 명의 동료 사이에서 세 차례나 볼 터치를 하는 동안, 재성이 형은 볼을 빼앗기지 않았다.
위험지역에서 자꾸 패스를 허락하게 되자, 페루의 수비는 자연스레 재성이 형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공간이 만들어지고.
“형! 여기!”
“…….”
팡-
난 거기로 뛰어들었다.
“?!”
“¡¡Detener!! ¡¡Defender!!”
페루의 왼쪽 수비가 허물어진다.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이미 패스를 받았다.
하지만 나로서도 패스를 받은 이후 빠른 볼처리를 하긴 어려웠는데, 의조 형은 페널티 박스 바깥에 있고 반대편의 흥민이 형도 두 명의 수비 사이에 둘러싸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페루의 대처다.
“No te dejes arrastrar!! Mantenga su asiento!”
(끌려가지 마!! 자리를 잡아!!)
리카르도 가레카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수비가 내게 딸려 왔을 때, 더 많은 공간이 발생하고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페루의 선수들 역시, 당황함을 빠르게 수습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한다.
‘쯧.’
치열한 남미 지역 예선을 뚫고 본선까지 올라온 팀답게, 페루도 확실히 저력을 갖췄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곤, 무리하게 측면으로 벌려서는 대신 진영을 유지하며 그대로 후퇴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러한 대처 하나로, 의조/흥민 공격수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대번에 줄여 버렸다.
물론 나는 저곳으로 패스를 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도달하여 득점까지 만들어질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좀 더 많은 공간과 좀 더 많은 변수가 필요해진 순간이다.
‘그럼, 가지 뭐.’
상대를 얕잡아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페루의 선수들에게서 별다른 위협까지는 느끼고 있지 못했다.
매 순간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변함없지만, 기량에서 우위가 있다는 것을 느끼며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이는 선택이 훨씬 쉬워진다는 의미였고, 좀 더 볼을 길게 끄는 것을 택한 나는 페널티 박스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 정도 달렸을 때.
“뒤에 간다!!!”
“…….”
재성이 형이 내게 수비가 접근하고 있다는 콜을 보내왔다. 조금 전 눈에 담았던 페루의 진형을 생각해 보면, 달려오고 있는 건 미겔 트라우코(Miguel Trauco)일 것이다.
같은 라인에서 맞부딪힐 선수라 개인적으로도 꼼꼼히 분석했는데, 정교한 킥력과 작지만 탄탄한 체격조건을 지녔다.
다만 풀백으로서의 스피드는 평균 조금 아래였고,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어 수비적으로 빠르게 스프린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판단력이 떨어졌다.
인간이란 약점이 노출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무너져 허술함을 드러낸다.
‘이용할 수 있겠어.’
미겔 트라우코가 가져갈 수 있는 수비 방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속도를 늦췄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시선을 멀리에 두는 건 물론이다.
반대 방향으로 보내는 패스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비친다면, 트라우코는 킥이 만들어지는 지점 앞으로 발을 뻗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크라위프 턴을 가져가며, 볼을 왼발 앞쪽으로 접어 두면 된다.
하지만 더 많은 페루의 선수들을 속이고자 한다면, 기꺼이 미끼(Dummy)가 되어 줄 이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 역할엔, 의조 형보다 흥민이 형이 더 적합하다. 선 위치도 반대이고, 기본적으로 왼쪽에서 가장 페루를 신경 쓰이게 만들고 있다.
고맙게도, 흥민이 형은 내 의도를 이해한다.
“다온아!!”
순식간에 속도를 붙인 흥민이 형이 손을 앞으로 뻗으며 침투를 시도하고, 그곳으로 페루의 수비수 세 명이 몰리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오른발을 휘두르려는 동작을 취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이건 속임수다.
탁-
“?!?!”
‘고마워라.’
오른발을 휘두르는 대신 가볍게 볼 옆으로 가져가며 안쪽으로 축구공을 반대편으로 밀어 둔 순간, 스쳐 지나는 트라우코의 뒤로 덜컹이며 멈추는 페루의 선수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 눈에, 흥민이 형이 안쪽으로 파고들며 생겨난 공간이 들어왔다.
현재 거기로 움직이는 건.
“형!!”
중앙에서 메짤라(Mezz`ala)의 역할을 부여받은 창훈이였다.
“…….”
팡-!
***
(배정세) – SBS 캐스터
“고오오오오오오올-!! 권창훈!! 권창훈입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의 첫 번째 득점!! 그 주인공은 볼프스부르크 소속의 미드필드 권창훈입니다!!”
.
.
.전반 11분
대한민국 1 : 0 페루
이른 시점, 김다온의 패스를 연결받은 권창훈의 득점이 만들어졌다. 페널티 박스 안에 사람이 많았지만, 절묘한 위치로 볼을 밀어 넣은 정확도가 빛난 순간이다.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 권창훈이 환하게 웃으며 셀레브레이션을 위해 달려 나간다.
본래 경기 전 특별한 셀레브레이션을 준비한 그였지만, 막상 득점이 만들어지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보며, 긴장하는 이들이 있다.
“…….”
“…….”
바로 대한민국과 상대해야 할 모로코 대표팀의 전력 분석팀이다. 앞서 치러진 경기에서 포르투갈에 1:0로 패배한 모로코는 현재 조 최하위로 처져 있다.
‘전반 11분이라니…….’
하마드 엘 우아차니(Hamad El Ouazzani)는 내심 두 팀이 무승부를 거두기를 바랐다. 아직 80분 이상 경기가 남은 만큼, 실제로 무승부가 나올 가능성은 남았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보았을 때, 페루가 대한민국의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페루는 무기력했고, 그리고 그 이상으로 대한민국의 전력은 강해 보였다.
조금 전 득점이 만들어지는 과정만 보더라도, 한국의 강함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한 전술적 의도를 가지고 배치된 오른쪽 윙어가 복합적인 재능으로 페루 진영에 균열을 냈고, 거기로 파고든 김다온이 허점을 노출하도록 만들었다.
마지막 마무리도 좋았다.
“저들은 분명 더 많은 카드가 있을 거야.”
“그래. 8년이나 손발을 맞춘 팀이니까.”
“르나르의 말대로야. 젊지만, 동시에 노련해.”
선제 득점을 만들어 낸 이후에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능숙하게 페루의 반격에 대처하는 중이다.
안드레 카리요와 헤페르손 파르판(Jefferson Farfan)을 중심으로 반격에 나서는 페루지만, 수비 진영 한복판에서 에너지를 뿜으며 날뛰는 센터백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다.
전반전 20분이 지났을 땐, 모로코의 전력분석관뿐만이 아니라 경기장에 입장한 중립팬들의 궁금증마저 자아냈다.
“도대체 저 4번은 누구야?”
대한민국의 4번 김민재가 중앙 수비지역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면서부터, 페루의 공격 시도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국 다시 볼을 점유한 것은 한국이었고, 노련한 기성용의 경기 조율이 보태어지면서 페루의 인내심은 조금씩 갉아먹히기 시작했다.
선(先)수비 후(後)역습을 택한 팀이 선제득점을 허락했을 때, 경기가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다.
라인과 라인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게 되고, 각 포지션에 높은 전술 이해도를 지닌 선수를 배치한 대한민국은 이런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기는 점점 더 일방적으로 바뀌어 간다. 페루는 필사적으로 버티지만, 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팡-!!
{“우오-!!”}
빠르고 정확한 전개의 끝에 손흥민의 슈팅이 만들어지고, 이를 페루의 골키퍼 페드로 가예세(Pedro Gallese)가 멋진 선방으로 막아 내나 표정은 무척 어둡기만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관중석 한쪽에 자리 잡은 모로코의 전력분석 팀 역시 얼굴이 어두워진다.
‘젠장.’
어쩌면 단 두 경기 만에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끝나 버릴 수 있다.
조 편성이 완료되었을 때부터 가시밭길을 예상했던 하마드와 그의 파트너였지만, 그래도 모로코가 기적을 만들어 내는 팀이 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한데 월드컵 개막 후 단 사흘 만에, 그들이 품었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뀔 가능성을 앞에다 두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4년이나 걸렸다고.’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
그 이면에는 늘 잔인함이 존재한다.
***
.전반 36분
대한민국 1 : 0 페루
불안한 리드를 벗어나려는 우리와 어떻게든 전반전을 이대로 끝내려는 페루의 의도가 피치 위에서 치열히 부딪힌다.
이전 한두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게 못내 아쉽다.
‘없어.’
팡-
볼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내가 민재에게 패스를 보낸 후, 손을 움직여 방향 전환을 지시한다. 지금은 파이널 써드를 노리는 것보다, 상대를 끌어내는 게 옳아 보인다.
패스가 왼쪽으로 향하고, 자연스럽게 수비 진영으로 조금 내려선 나는 시야를 넓게 가져가며 피치 전체를 살폈다.
현재 우리의 공격이 정체되는 이유는 페루가 적절히 리듬을 끊어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우리의 공격수들이 엇박자를 내도록 만들어, 마치 고립이 된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특정 선수 개인의 힘이 아닌, 팀의 힘이 돋보인다.
페루 역시, 잘 조직된 팀이다.
‘이대로 전반을 끝내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상대가 걸어 잠근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것은 언제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아 있는 경기 시간까지 고려해 보면, 보는 이들은 조금 지루하더라도 전략적으로 템포를 늦추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형!”
“?”
“늦추자.”
“…….”
과거에도 또 지금도, 대표팀의 조타수(操舵手)는 성용이 형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OK 사인을 만들어 보낸 대표팀의 주장이 백패스의 빈도를 높이게 되자, 자연스럽게 경기는 마치 탐색전을 펼치는 것 같은 구도가 되었다.
이에 불만을 느낀 몇몇 팬들로부터 볼멘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두 걸음 전진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날 줄도 아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전반전 막바지, 우리가 걸어 잠그는 플레이를 가져가자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페루였다.
그것을 보며, 나는 상대의 의도를 추리했다.
가설(假說)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페루가 전반전을 0:1로 끝내려는 가장 큰 이유는 후반전에 동점 혹은 역전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두 골보다는 한 골 차가 더 쉽다.
당연한 거다.
하지만 이런 7살 아이라도 가능한 가설 말고, 좀 더 그럴듯한 내용이 필요했다.
‘상대의 장점은 뭘까?’
기본적으로 페루는 북중미 방식의 역습 스타일에 아시아 혹은 동유럽권과 같은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압박 수비를 선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앙에 요시마르 요툰(Yoshimar Yotun)과 레나토 타피아(Renato Tapia)라는 범용성과 수비능력을 동시에 갖춘 미드필드를 배치했다.
요툰과 타피아가 센터백과 미드필드 지역을 오가며 앞뒤로 부지런히 움직여 주면, 크리스티안 쿠에바(Cristian Cueva)와 에디손 플로레스가 메디아푼타(Mediapunta/AM)로 움직여 공격으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럼 남은 두 명의 공격수인 안드레 카리요와 헤페르손 파르판이 자유롭게 뛰며 공간을 찾아 침투한다.
“…….”
빙고.
생각의 끝에서, 나는 페루의 후반전을 확신한다.
현재 이들이 우리가 템포를 늦추는 것에 당황한 이유는, 후방에서 볼을 돌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전방에서 압박해 줘야 할 이들의 활동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후반전 페루의 공격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래서 지금 당황하고 있다.
전방 압박을 아예 포기하지나 점유율 전체를 우리에게 내어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후반전을 위해 전반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기세와 사기는 지켜 나가야 했다.
아마도, 가레카의 의도는 이럴 거다.
[“전반전은 지켜. 대신 상대가 더 많이 뛰도록 만들어. 그리고 그들의 공격 시도를 계속해서 막아 내. 만약 너희가 그것을 해낸다면, 상대의 사기가 꺾이겠지. 그리고 후반전이 되면, 상대는 2:0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공격을 시도할 거야. 그럼 우린 그 빈틈을 노리면 돼. 전반전에 아낀 공격수들의 체력을 이용해서 말이야.”]아무런 의미 없는 패스와 공수전환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기장 안팎에서, 참다 못한 관중들의 야유 소리가 조금씩 높아져 가고 있다.
그건 피치에서 뛰는 우리를 괴롭혔지만, 그래도 잘 참아 내며 전반전을 이대로 마무리했다.
삑-! 삐?익!!
1:0.
전반 초반에 득점이 만들어진 것 치고 이후의 전개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페루의 PLAN A는 분명히 망가졌고 PLAN B에 대한 대처도 밑준비를 끝내 놓았다.
페루는 우리가 공격적으로 나설 것을 알고 활동량을 앞세운 압박으로 역습을 노리겠지만, 전반 마지막 10분을 통해 보여 준 힌트가 동료에게 전달되었을 거로 생각한다.
당연히 삼파올리 감독님도 이를 알고 계실 거다.
[후반, 우린 상대를 끌어낸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남은 45분 동안에도, 우리 대한민국은 페루가 가져갈 모든 방법에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작가의 말 : 한동안 연재 주기가 변경됩니다.
금일부터 3주가량 1일 2연재가 진행됩니다. 해당 기간 동안엔 ‘점심 12시’와 ‘저녁 6시’에 각 1편씩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