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07)
872화 One Team (2)
모스크바, 러시아 125057. 차파예프스키 레인, 3. 트라이엄프 팰리스(Triumph Palace. Chapayevskiy Pereulok, 3, Moscow, Russia 125057).
한국과 페루 경기의 하프타임.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5성급 호텔, 트라이엄프 팰리스에는 포르투갈 국가 대표팀이 머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7시간 전 모로코와 경기를 치른 포르투갈 대표팀은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포르투갈 대표팀의 감독 페르난두 산투스 역시, 코치들과 함께 TV로 전반전 경기를 지켜봤다.
“좋은 팀이네요.”
“…….”
조 추첨이 완료되었을 때, 포르투갈 언론이 보인 가장 첫 번째 반응은 [‘괜찮은 조에 편성되었다.’]는 것이었다.
페루는 가진 전력보다 FIFA 랭킹(10위)이 뻥튀기된 전형적인 팀으로 평가받았고, 모로코는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 이후 본선 참가 경험이 없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시, [‘김다온이 있지만, 능히 제압할 수 있는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페르난두 산투스는 포르투갈이 이변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만 했다.
페루의 FIFA 랭킹이 다소 과대 포장된 것은 맞지만, 전력을 분석할수록 수비 조직력이 강한 팀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로코 역시 저력을 갖췄다.
실제로 오늘, 포르투갈은 전반 4분에 터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결승골로 간신히 1:0 신승을 거둘 수 있었다.
포르투갈 쪽으로 기울어진 주심의 판정과 절망적이었던 모로코의 골 결정력이 아니었다면, 승점을 따낼 수 없었을 것이다.
겨우 첫 번째 경기이고 승점 3점을 획득한 것이 중요하긴 했지만, 2016 EURO 우승 국가인 포르투갈의 코칭스태프는 팀 전력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과도기(過渡期).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기량이 정점에서 내려오는 시점과 맞물리며, 팀 전체의 전력 역시 많이 떨어졌다.
물론 베르나르두 실바/브루누 페르난지스/후벵 디아스와 같은 재능을 갖춘 젊은 선수들이 생겨나곤 있었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약점을 모두 감추기는 어려웠다.
객실 밖을 내려다보기 시작한 페르난두 산투스의 머릿속에, 과거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당시 무난한 조별 예선 통과가 예상되었던 포르투갈은, 미국과 한국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얻어맞으면서 1승 2패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루이스 피구는 대회 내내 몸놀림이 무거웠고, 훌륭한 명성을 갖춘 다른 선수들도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며 팀을 구해 내지 못했다.
“후우~~”
입으로 길게 숨을 내뱉는 페르난두 산투스의 시선에, 창문에 비친 TV 화면이 들어온다.
삐?익!!
후반전의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불리고, 몸을 돌린 산투스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긍정적이었던 객실 내의 공기가 어느새 무거워진 것을 확인한다.
입을 굳게 다문 산투스가 자리로 돌아오고, 그러는 사이 화면 속 기성용이 페루의 압박을 여유 있게 벗겨 냈다.
“노련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고 있어.”
“4번도 문제야. 크고 또 빨라. 발밑도 훌륭하고.”
“다온과 쏜의 팀인 줄 알았는데…….”
가장 경계했던 두 사람 외의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의견을 주고받는 포르투갈 코치들의 입에서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후반 07분
대한민국 1 : 0 페루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페루의 감독 리카르도 가레카가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10번(AM) 역할을 맡았던 크리스티안 쿠에바를 빼고, 최전방 공격수인 파올로 게레로(Paolo Guerrero)를 투입한 것이다. 그러면서 전형을 4-4-2로 바꿨다.
“콜 확실하게!!”
페루 진영에서 길게 쏘아진 패스가 게레로의 머리로 향하고, 세컨볼을 위해 주변으로 움직인 나는 민재에게 서로 겹치는 일이 없도록 확실히 할 것을 주문했다.
파올로 게레로가 의도적으로 영권이 형 주변으로 움직여 자리를 잡다 보니, 민재가 전진하는 과정에서 센터백 사이에 혼선이 빚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지만, 한 번의 실수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리카르도 가레카도 그것을 노리고, Big&Small 조합을 구성해 90년대 잉글랜드식(式) 축구를 택한 거다.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고 후방에서 단숨에 패스를 보냄으로써 중원에서의 힘 싸움을 피할 수 있고, 활동력을 갖춘 미드필드의 장점도 더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민재가 제공권의 우위를 점했고, 볼이 영권이 형에게 향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움직여 페루 선수들이 없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파르판의 압박을 피한 패스가 내게 도달한다.
.
(서현욱) – MBC 해설위원
“페루가 지금 게레로의 머리를 노린 패스를 자주 시도하는데, 한국이 그것을 잘 막아 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김민재 선수가 높이에서 우위를 점했거든요? 이어지는 페루의 2차적인 압박도 잘 벗겨 내고 있습니다.”
(김형근) – MBC 캐스터
“김다온. 앞쪽의 기성용에게 패스를 전달합니다. 반대편으로 향하는 볼. 논스톱으로 잘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
페루의 후반전 전략은 이렇다.
후방에서 롱패스가 전달되는 동안, 헤페르손 파르판이 먼저 세컨볼에 뛰어들고 양쪽 측면의 윙어들도 상황이 허락하면 마찬가지로 세컨볼 다툼에 참여했다.
설령 세컨볼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해도, 네 명의 공격수와 패스가 진행되는 사이 전진한 두 명의 미드필드가 상당히 높은 위치에서 강한 압박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성용이 형이 몸으로 압박을 잘 버텨 내며 비어 있는 공간으로 속속 패스를 전달하게 되자, 이러한 전술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두드러지고 있었다.
미드필드의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가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던 거다.
다만 우리도 그로 인해 생겨난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진 못했는데, 페루의 압박이 워낙에 거세어 자철이 형과 창훈이의 위치가 강제되었기 때문이다.
삑!
후반전 10분, 휘슬을 분 주심이 넘어져 있는 안드레 카리요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인다.
“의조!!!”
“?”
경기가 잠깐 멈춰 있는 동안, 양 팀 테크니컬 에어리어가 분주히 움직인다. 의조 형을 부른 감독님이 아래로 내려서란 손짓을 보냈고, 뒤이어 가까운 쪽 흥민이 형을 불러들였다.
멀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나는, 앞으로 팀이 변화할 상황을 예측해 보았다.
삼파올리 감독님은 분명, 페루 중원의 전진으로 생긴 공간으로 의조 형이 내려서고 흥민이 형이 그 뒤쪽 공간으로 침투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플레이로, 아래로 내려선 해리 케인이 수비를 끌어들여 공간을 만들고 양쪽 윙어가 거기로 뛰어드는 공격 방식이다.
다만 의조 형은 해리 케인만큼 볼을 잘 관리하지도, 전방으로 날카롭게 패스를 보낼 수도 없다.
실력의 부족이라기보다 플레이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인데, 주변의 다른 이들이 형을 도와 감독님이 의도한 전략을 완성시켜야 한다.
“……재성이 형!”
“?”
“밖으로 붙어 줘!”
“오케이!”
지금 내가 재성이 형을 측면으로 붙여 버린 이유는 오른쪽 하프스페이스에서 조금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야, 패스길을 만들기 쉽다.
짝짝짝짝짝-
페어플레이를 위해 볼을 밖으로 걷어 냈던 우리에게 페루가 볼을 보내어 오고, 관중석에서 박수가 울려 퍼지는 동안 양 팀의 포지셔닝이 이뤄졌다.
‘또 바뀌었잖아.’
직전과는 달리, 페루의 전방 압박은 강한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롱볼 상황에서 좀 더 강한 수준의 압박을 가하고자, 일반적인 빌드업 상황에서의 수비 강도를 낮춰 버린 것 같다. 전략이 통한다고 여기자, 빠르게 올인해 버린 거다.
무작정 PLAN A를 고집하는 경직된 감독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술적 유연함도 갖추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 맞춰 뛰는 선수들도 대단했다.
‘생각보다 꽤 하는데?’
0:1로 뒤진 상황에서 오는 초조함을 이겨 내며, 빌드업하고 있는 상대를 지켜보고 자신의 위치를 고수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골 차 이상으로 패배하지 않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최소 무승부를 거둬야 하는 상황에서 대단한 인내심을 보여 주는 페루 대표팀이다.
하지만, 과연 그 인내심은 몇 분짜리일까?
난 그걸 실험해 보려고 한다.
“여기!”
탁.
“…….”
팡-
의도적으로 현우 형에게 백패스를 보내 버린 나는, 살짝 일그러지는 몇몇 페루 선수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짜로 만들어 낸 여유로, 우리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여겼다면 큰 오산이라 말해 주고 싶은 순간이다.
‘어디 한번 계속해 봐.’
경기의 템포는 여전히 느리고 전개는 약간 지루했지만, 나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서로를 끌어내기 위한 양 팀의 몸부림.
우리는 그중 승자가 되길 원하고 있다.
팡-
다시 한번 백패스가 나오자, 관중석에서는 뭔가를 해 보라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체 뭘 하는 거야?!”}
{“공격해! 그건 축구가 아니라고!”}
***
.후반 25분
대한민국 1 : 0 페루
어느덧 경기도 20여 분밖에 남지 않았고, 그에 따라 리카르도 가레카가 전광판을 올려다보는 빈도도 늘어났다.
허를 찌르는 전략을 구상하고 후반전에 나선 그였지만, 상대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능숙하게 받아 내며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다시 한번 습관적으로 전광판의 시계를 쳐다본 가레카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진다.
“…….”
대한민국이 공격 성향을 억누르고 진득한 모습을 보여 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한 골 차의 리드를 안고는 있지만, 좀 더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추가 득점을 노릴 줄 알았다.
그래서 가레카는 파올로 게레로를 제외한 9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하프라인 아래에 놓아두고, 대한민국이 라인을 끌어올려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최종 수비라인은 일정한 위치 이상으론 올라서고 있지 않았다.
공격을 진행하는 속도 역시 평범한 수준이었고, 몇 차례 기회를 붙잡기도 했으나 이는 페루가 얻어 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정도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간이 흘렀고, 결국 페루가 먼저 가면을 벗을 때가 되어 버렸다.
이대로라면, 승점을 얻을 수 없었다.
“팀을 더 공격적으로 만들어 줘야 해.”
“네.”
“위에 게레로와 파르판이 설 거야. 타피아와 함께 중원에 서도록. 다시 말하지만, 팀을 공격적으로 움직이게끔 할 필요가 있어. 남은 시간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거야.”
리카르도 가레카는 두 번째 교체 카드로 페루의 7번인 파올로 허타도(Paolo Hurtado)를 투입하기로 한다.
허타도는 잉글랜드 레딩과 포르투갈의 비토르 기마량이스에서 뛴 미드필드로, 중원과 오른쪽 측면을 오가며 득점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부지런한 살림꾼인 요시마르 요툰을 빼고 파올로 허타도를 투입한다는 건, 페루가 PLAN A에 이어 PLAN B마저 버리고 세 번째 계획을 가져간다는 뜻이었다.
의도된 것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까웠지만, 가레카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어 교체를 알리고, 피치 위에서 움직임이 일어나는 동안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선 가레카가 스페인어로 열심히 지시를 내렸다.
“4-1-4-1이다!!”
페루는 이제부터, 레나토 타피아를 원 볼란치로 둔 4-1-4-1 전술을 가져갈 예정이다.
금방 투입된 허타도와 왼쪽 윙어로 뛰었던 에디손 플로레스를 메디아푼타에 놓아두고, Big&Small의 작은 쪽이었던 헤페르손 파르판을 왼쪽 측면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첫 번째 교체 카드를 꺼내 든다.
전술적으로 많은 활동량을 보여 주었던 구자철이 제외되고, 노련한 미드필드인 이청용이 투입됐다.
잠시 뒤 이러한 변화를 확인한 리카르도 가레카는, 지금의 교체를 단순한 체력적인 이유 그 이상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다른 전술적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청용은 이재성과 비슷한 유형의 중앙 미드필드였고, 짧은 패스를 통한 연계와 약간의 발재주를 지녔다.
그런 미드필드의 투입으로 대한민국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오늘 내내 재미를 본 황의조의 포스트(Post)플레이를 통한 연계에 힘을 싣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전형은 4-1-4-1이었고, 후방빌드업에 힘을 실으며 점유율을 높여 가려는 것 역시 같았다.
오히려, 수비적으로 더 투지(鬪志) 있는 움직임을 보여 줄 수 있는 구자철이 빠지며 약간의 숨통이 트인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2분 뒤, 다시 대한민국이 두 번째 교체를 실행하면서 리카르도 가레카는 고민을 시작했다.
오른쪽 윙어로 뛰며 전반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던 이재성이 빠지고 투입된 선수가, 다름 아닌 중앙수비수 오반석이었다.
‘뭐라고? 이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5-4-1로 바뀌기 시작하는 대한민국의 진영.
얼핏 그것은 3-3-3-1처럼도 보인다.
“…….”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한 리카르도 가레카.
그는 잠깐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
축구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그 답을 구하는 중이다.
하지만 오늘의 경우, 나는 축구를 바둑이나 장기 혹은 체스로 설명하고 싶었다.
대국(大局)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手)가 한쪽에서 이뤄지면, 다른 한쪽이 거기에 대응하거나 받아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소규모의 전투는 계속해서 이뤄졌다.
다소 지루한 전투의 반복이기는 했지만, 막상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한 다툼 속에서, 명암(明暗)은 분명하게 갈렸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러한 차이를 만든 결정적 요인은, 다름 아닌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월드컵과 올림픽 또 UCL과 UEL 등.
다양한 대회를 통해 국제무대 경험을 쌓은 우리가 페루보다 상대적으로 더 노련한 팀이었다.
그런 만큼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또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인내해야 하는 순간과 강인함을 가지며 몰아붙여야 하는 타이밍 역시 알았다.
전반전 초반 우리가 페루를 강하게 몰아붙여 선데 득점을 만들어 낸 것도, 경험의 차이에서 온 장면이었다.
페루의 선수들은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대회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감격에, 감정이 격해져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린 그러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이후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팀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수비와 조직력에 장점을 갖춘 팀에게 선제 실점이 불러온 여파는 그들의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고 본다.
공격수들의 역량과 결정력 부족이라는 단점이 피치 위에서 드러났고, 그를 만회하기 위해 스코어에서 뒤지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점유율을 포기하고 마치 수세(守勢)에 몰린 것처럼 착각을 느끼게끔 하려 했으나, 노련한 우리는 그에 말려들기는커녕 역으로 페루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만들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거다.
.
(안정환, 서현욱)
“손흥민!!!”
.
.
.후반 43분
대한민국 3 : 0 페루
마지막 두 개의 득점은 모두 같은 패턴으로 만들어졌다. 원톱이 아래로 내려와 수비진을 끌어냈고, 뒷공간을 파고든 흥민이 형이 결정타를 날렸다.
후반전 25분까지는 잘 인내하던 페루는 4-1-4-1 전환과 함께 공격적으로 나섰고, 우린 그 변화를 영리하게 잘 이용했다.
코너플랫으로 움직여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는 흥민이 형에게 뛰어든 나는, 점프를 해 어깨를 짚고 서서 관중석을 향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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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세) – SBS 캐스터
“사실상 승부를 결정짓는 손흥민의 득점! 대한민국이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첫 번째 승리를 눈앞에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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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윌슨) – BBC 코멘테이터
“Three Nil! 아시아의 강호가 페루를 상대로 한 수 보여 줍니다! 이 팀은 강하군요. 거의 완벽한 경기력입니다.”
(마크 로렌슨) – BBC 공동-코멘테이터
“마치 페루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페루가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한국은 거기에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삼파올리 감독님이 포백에서 쓰리백을 변화를 준 것도, 미리 준비되어 있던 부분이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평가전을 통해, 쓰리백이라든가 반석이 형을 왼쪽 풀백 포지션에 놓아두는 변칙적인 수비 전술 등을 실험해 왔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면, 우린 언제든 이런 방식의 변화를 줄 수 있는 팀이 됐다.
“마지막 5분! 집중해!!”
3:0 상황에서 킥오프가 다시 이뤄지기 전, 목소리를 높인 나는 손뼉을 두드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이어 나가도록 요구했다.
세 골이든 두 골이든 승리를 거두면 승점 3점을 확보하는 건 변함없으나, 월드컵에서 골득실은 언제나 중요한 법이다.
삐?익!!
경기가 재개되고 패스를 뒤로 돌린 페루가 전방으로 볼을 길게 차 넣어 공격을 시도하지만, 레나토 타피아의 패스는 허무하게 사이드라인 밖을 벗어난다.
거기에 좌절한 안드레 카리요는 타피아를 향해 불만을 토해 냈다.
[VAMOS!! 제대로 좀 해!!]월드컵은 참으로 신기한 대회다.
여기의 1승은 의미가 남다르다.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보다도, 심지어 결승전보다도 더 간절한 승리가 눈앞에 있다.
4년 동안의 기다림 때문일까?
아니면 그 과정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자체로?
이번이 나의 두 번째 월드컵이었지만, 여전히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대회가 진행되면 알 수 있을까 싶다가도, 막연한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삑-! 삐?익!! 삐—익!!
“에에에에-!!!”
“그러체에-!!!”
주어졌던 추가시간까지 전부 끝나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우리와 무릎 꿇고 좌절하는 페루 선수들의 표정이 엇갈린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포효했던 내게로 달려온 민재가 뛰어오르려고 하지만, 재빨리 옆으로 비껴 선 나는 덩치 큰 이 녀석에게 깔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옆으로 피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민재는 마냥 기뻐하며 나를 얼싸안는다.
“형, 이겼어! 우리가 이겼어!!”
“알아, 인마.”
“이겼어, 형! 이겼어!”
“……그래. 이겼다. 이겼어.”
너무 듬직해서 애어른 같았던 민재마저 이렇게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월드컵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독일과 스페인을 거쳐 잉글랜드까지 이어 온 지난 4년 동안의 축구 여정. 나는 어쩌면 그것을 이곳 러시아에서 검증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애국심이 많이 개입되는 대회를 통해 말이다.
‘좋네.’
저 멀리에 있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나는 푸근한 미소와 함께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늘 힘겨운 첫 경기.
우린 그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
.
.경기 결과(World Cup Group D)
대한민국 3 : 0 페루
[골] 권창훈 : 전반 11분(김다온)손흥민 : 후반 37분(기성용), 후반 43분(김다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