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1)
90화
【한국 시각】 2012년 4월 10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더 타워 팰리스.
먼동이 터 오르기 시작한 시간, 잠에서 깬 강찬일이 조심스럽게 침실에서 나와 거실로 향한다.
지난달을 끝으로 2012 런던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을 마친 그는, 2주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딸깍-.
잘 떠지지 않는 눈에 억지로 힘을 주며, 강찬일은 테이블에 발을 얹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흐아?품! 죽겠군.”
절로 나온 하품을 길게 한 뒤, 문득 강찬일은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그러곤 볼륨을 적당한 수준까지 높였다.
.
(배정세)
“이른 새벽 TV 앞에 앉아계신 축구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SL 벤피카와 스포르팅 CP. 스포르팅 CP와 SL 벤피카의 포르투갈 리가 존 사그레스 26라운드 경기를 생방송으로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제 곁에는, 박성문 해설위원이 함께합니다.”
(박성문)
“이야~ 요즘 한국의 축구팬들이 참 흐뭇해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외에서 뛰고 있는 젊은 선수들이 정말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배정세)
“바로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다온의 활약은 실로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양 팀의 주전 멤버를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현재 강찬일의 자택 소파 테이블 위에는,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명단이 놓여 있다.
대략적인 구상은 전부 그려두었고, 남은 것은 와일드카드의 소집이지만 그것도 대충은 생각을 해두었다.
지역 예선 내내 문제가 된 골키퍼와 수비에 와일드카드를 몽땅 다 사용하기로 한 것인데, 중요한 것은 차출의 가능 여부다.
올림픽 같은 경우 23세 이하는 FIFA의 규정상 의무적으로 뛰어야 하지만, 24세 이상에겐 그런 의무가 없다.
그래서 강찬일은 PLAN B와 그 이상까지도 꼼꼼히 준비했고, 해외리그의 시즌이 끝나고 나면 협회를 통해 각 구단에 공문을 돌릴 준비 역시도 끝마쳤다.
사람들은 너무 긴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2012 런던 올림픽은 강찬일이라는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는 무대였다.
하지만 그것보단, 이번 런던 올림픽을 통해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는 선수들의 미래가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이번에 소집될 해외파들은 향후 대표팀에 무척이나 중요한 이들이 많았고, 그중 또 몇몇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주어야 하는 인재 중의 인재였다.
현재 강찬일이 새벽 시간에 굳이 일어나 TV 앞에 앉은 이유도, 그중 한 사람인 김다온의 모습을 살피기 위함이다.
금방까지 그가 바라본 대표팀의 명단 곁엔, 전날 KFA로부터 받은 유럽행 비행기 티켓이 놓여 있다.
조만간, 강찬일은 유럽으로 향한다.
.
(배정세)
“전반전 선축은 스포르팅 CP가 가져갑니다. SL 벤피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격을······.”
.
그리고 그 기간, 강찬일은 한 가지 확신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중이었다.
***
2012년 4월 9일. 1501-806 리스본, 포르투갈. 루아 프로페소아 페르난도 다 폰세카. 이스타디우 조제 알발라드.
·전반 4분
스포르팅 CP 0 : 0 SL 벤피카
&Match-Up`s Best Eleven(벤피카/상대팀)
&Match-Up`s Tactics(벤피카/상대팀) : 4-4-2(D)/4-2-3-1
GK ? 아르투르 모라에스 / GK ? 후이 파트리시우
RB ? 막시 페헤이라 / RB ? 주앙 페레이라
CB ? 루이장 / CB – 잔당
CB ? 에제키엘 가라이 / CB ? 포우가
LB ? 김다온 / LB ? 에밀리아노 인수아
DM ? 하비 가르시아 / DM ? 스테인 스하르스
CM ? 브루노 세자르 / DM – 엘리아스
CM ? 니코 가이탄 / RW ? 마라트 이즈마일로프
AM ? 악셀 비첼 / AM ? 마티아스 페르난데스
ST ? 호드리구 / LW ? 디에구 카펠
ST- 오스카 카르도소 / ST ? 리키 판 볼프스빈켈
.
.
아직 축구선수로서 어린 나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딱히, 좋은 방향은 아니지만.
{“킴-! 킴-! 킴-! 덴마크에서는 그가 그레이트데인이래! 하지만 우린 그가 개를 잡아먹는다는 것을 알지! 그는 미개해! 미개한 나라에서 왔지!! 그가 리스본의 왕이라면, 우린 개를 먹는 개를 섬기는 셈일 거야!”}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곳 조제 알발라드에는 계속해서 같은 노래가 도돌이표 되고 있다.
그 내용은 뭐, 듣다시피다.
스포르팅 CP와는 FC 노르셸란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지만, 그땐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리고 문제는 관중들뿐만이 아니다.
“헤이! 이봐!! 볼 달라고!!”
{“하하-!!! 저것 좀 봐!! 개새끼가 어떻게 사람 말을 하겠어!! 사람은 개새끼 말을 몰라!! 이거나 처먹어, 이 새끼야!!!”}
오늘 조제 알발라드의 볼 보이들은 의도적으로 축구공을 전달해줄 때 미적미적하게 굴었다.
일부러 엉뚱한 곳으로 집어 던지기도 했고, 아니면 내가 한참을 걷게 만드는 위치에다 볼을 내려놓았다.
더 짜증 나는 건, 내가 아닌 다른 동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포르팅 CP의 울트라즈(Ultras)는 어김없이 날 조롱하고 또 바나나라든가 자그마한 개 인형 같은 것들을 그라운드에 던져댔다.
지금도 경기를 진행하기 조금 어려울 정도였는데, 아까부터 잔뜩 화가 난 감독님과 루이장이 각각 대기심과 주심에게 다가가 대신 어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잠깐 시합이 멈춘 동안에도, 울트라즈의 야유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어찌나 그 목소리가 큰지, 자제해 달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다.
좋게 생각하면 그 유명한 ‘리스본 더비(Derbi de Lisboa)’의 참모습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내가 없었더라도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니 금세 답이 나왔다.
스포르팅 CP의 울트라스는 의도적으로 날 비하했고, 또 어째서인지 볼보이들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이런 행동들은 올바르지 못한 것이며 또 축구장에서 퇴출당하여야 할 모습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삐익-!!
언제까지 경기를 멈춰 둘 수는 없었던지라, 대충 진정시키는 시늉을 한 뒤에 주심이 다시 휘슬을 불었다.
나는 일단, 뒤쪽으로 드로인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모라에스에게 패스를 보낸 루이장은, 다시 관중석을 바라보며 분노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내 기분 역시 마찬가지다.
고맙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루이! 전 괜찮아요!”
“하아- 빌어먹을.”
금방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와 스포르팅 CP의 경기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치열한 ‘리스본 더비’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우리 경기장인 다 루스와 이곳 조제 알발라드까지의 거리는 불과 2km밖에 되지 않았고, 그래서 항상 더비가 펼쳐지는 날이면 경기장을 잇는 거리마다 경찰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고, 오늘도 원정 응원석에 앉은 한 사람은 울트라스에게 구타라도 당했는지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기도 했다.
“헤이!!”
그리고 잠시 뒤에 빌드업 상황에서 내가 볼을 연결받게 되자.
{“우끼끼끼끼끼-!!!”}
{“우끼끼끼!!!”}
어김없이 울트라스는 원숭이 소리를 내었다.
‘후우- 침착. 침착하자.’
처음엔 별생각이 없고 무시하면 된다고 믿었지만, 나도 사람이다 보니 자꾸 저런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한다면 더 큰 조롱이 뒤따를 것이기에, 이를 악물고 집중하는 중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워낙 정신이 없었던 관계로, 시합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난 그저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기로 했고 또 그렇게 뛰고 있었지만, 전반 18분에 팀은 스포르팅 CP에게 P.K를 허용하고야 말았다.
초반부터 잔뜩 흥분해 있었던 루이장이, 그답지 않게 섣불리 발을 내밀어 파울을 범한 것이다.
괜히,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벌써 18분이나 되었다니.
[아, 개새끼들.]지금 이 순간, 나는 FC 포르투만큼이나 스포르팅 CP라는 클럽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
리스본의 한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브루노 카르발류는, 많은 포르투갈의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 자연스레 집과 가까운 축구 클럽을 응원하게 되었다.
이후 스포르팅 CP의 구단주 겸 최종 결정권자로 성장한 그는, 평소 이 두 가지 문장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바로 ‘클럽보다 위대한 선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와 ‘나는 스포르팅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깔린다.
그건 ‘클럽=자신’이라는 것.
11살의 나이로 스포르팅 CP의 가장 극렬한 성향을 지닌 울트라스에 가입했던 그는, 지금도 이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삐이이익-!!
선제골이 들어간 순간, 브루노 카르발류는 주위에 크게 외쳤다.
“그렇지이-!! 바로 이거야!! 뭐하나?! 더 크게 노래를 부르라고 해!!”
.
.
·전반 19분
스포르팅 CP 1 : 0 SL 벤피카
지금으로부터 약 2주 전, 브루노 카르발류는 자신의 사무실로 울트라스의 핵심 인사들을 초대해 티-타임을 가졌다.
구단주가 서포터들과 시즌 중간에 만난다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스포르팅 CP에서 만큼은 아니다.
브루노 카르발류는 정기적으로 울트라스와의 만남을 주최해왔고, 그때마다 그리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는 했다.
2주 전의 만남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리키 반 볼프스빈켈(Ricky Van Wolfswinkel)의 P.K 득점이 있고 난 뒤, 조제 알발라드에는 매우 특이한 종류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SL 벤피카!! 그들은 리스본의 수치!! SL 벤피카!! 그들은 포르투갈의 수치!! 노란색 원숭이를 왕으로 섬기는 멍청한 집단!! 혹시 또 모르는 일이야!! 그들도 이제 개를 잡아먹을지!!”}
스포르팅 CP에게 있어 지난해는 잊고 싶은 시간이었다.
두 시즌 연속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라운드에서 FC 노르셸란을 만났지만, 굴욕적인 패배 끝에 탈락을 경험했다.
당시 화가 난 스포르팅 CP의 평범한 팬들은 브루노 카르발류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옹호에 나선 울트라스 그룹과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비난이 울트라스에게 쏠리면서 사퇴 시위가 조금 잠잠해지기는 했으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브루노 카르발류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스포르팅 CP의 스카우트 그룹이 김다온을 영입해야 한다며 제안을 해오자, 카르발류는 스카우트 그룹 전체를 해고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표면적으로는 유럽 대항전 탈락의 원인을 물은 것이지만, 애초부터 스카우트 그룹이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 그런 상처가 조금 옅어져 갈 무렵, 갑자기 SL 벤피카에서 김다온을 영입했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려던 브루노 카르발류였지만, 그 유명한 ‘독수리 사건’에 이어 김다온이 연일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좁디좁은 소갈머리가 다시 고개를 쳐 밀었다.
[“그 꼬마의 멘탈을 아주 가루가 되도록 만드는 거야.”]2주 전 모임 때 울트라스에게 이런 생각을 밝힌 브루노 카르발류는, 좋지 못한 말들이 잔뜩 섞인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김다온의 부모님과 봄학기를 끝마친 그의 누나가 더비 경기를 지켜보러 경기장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다시 한번 울트라스를 불러 손수 가사를 만들기까지 했다.
음이야 기존의 응원가를 그대로 쓰면 되었기에, 가사만 붙이면 금세 노래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크게 만족한 브루노 카르발류가 껄껄 웃으면서 리듬에 맞춰 박수를 보낸다.
이것은 마치, 행진가를 듣는 독재자의 모습 같았다.
***
·전반 종료
스포르팅 CP 1 : 0 SL 벤피카
[씨-팔!!!]쾅-!!!
난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편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서는 길에, 나는 걱정 돼서 달려온 누나와 그 뒤에서 눈물짓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거기까지야 그렇다고 치겠는데.
[개씨팔 X같은 새끼들!!]쾅-!!!!
“······.”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난 울트라스 두 명이 우리 가족을 향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시작했다.
곧바로 눈이 뒤집힌 내가 위로 뛰쳐 올라가려고 했지만, 하비와 루이장이 그런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러는 사이 감독님이 주위에 거친 항의를 이어나갔고, 오랜 시간 끝에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던 가족들은 경호원들의 보호 아래 경기장을 떠나게 되었다.
그라운드의 사정상, 이곳을 떠나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개쓰레기 새끼들!! 씨팔새끼들!!]쾅-!!! 쾅-!!!
분을 이길 수가 없었던 나는, 연신 라커룸을 걷어차다 마침내 구멍을 뚫어버리고야 말았다.
주급에서 까이겠지만, 그러라지.
[하아- 씨팔.]어떻게 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주위를 살피다 뚜벅뚜벅 걸어 감독님의 앞으로 걸어갔다.
감독님은, 날 몹시도 걱정하는 표정이다.
[감도······ 아니, Jorge.]“왜 그러나?”
“절대로 절 빼지 마세요.”
“······.”
솔직히 이제 내 머릿속엔, 전반전의 경기내용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후반전 필드로 나가, 복수하고픈 마음뿐이다.
그렇지만 감독님은 나를 교체하길 원하셨다.
이대론, 뛸 수 없다고 말하셨다.
“그냥 오늘은 가족의 곁으로 가는 게 어떤가? 오늘의 일은 구단에서 제대로 처리할 걸세. 협회에 항의문을 올리고, UEFA와 FIFA에도 오늘의 일을 전부 다 보고 할 거야.”
슬픈 말이지만, 축구계에서 인종차별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형들한테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고, 나 역시 이런 일들을 한 번도 안 겪어 봤다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일 거다.
그럴 때마다 동료들과 구단은 나를 위해 화를 내주었고 곳곳으로 공문도 보내었지만, 이곳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보기에, 동양인은 약간 떨어지는 존재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덴마크와 포르투갈에서 생활하며 그것이 유럽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편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저열하기 짝이 없지는 않았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 괴롭힘에 더 가깝다.
아니, 괴롭힘이 맞다.
교체를 원하는 감독님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도 이대로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다.
개새끼들.
누굴 호구로 알고.
“만약 저를 교체한다면, 전 감독님을 원망할 거예요. 그래도 뺀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만약 제가 후반전을 망친다면, 몽땅 책임을 받아들일게요.”
지금도 겁에 질렸던 엄마와 누나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그들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한참 동안 날 바라보던 감독님은 잠시 기다리라며 코치들과 몇몇 선수들을 불렀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던 나는 벽에 걸린 스포르팅 CP의 심벌이 보기 싫어 곧장 축구화를 집어 던졌다.
쨍그랑-!!!
액자가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아래로 떨어졌고, 잠시 뒤에는 액자 자체가 떨어지면서 아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한쪽에서 조용히 나타난 미겔 콰레스마 코치님이, 직접 빗자루를 들고 와 유리 조각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근처에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다.
다시 자리로 와 축구화를 새로이 준비하는 동안, 이야기를 끝마쳤는지 감독님이 내게 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아. 널 그대로 두지. 단, 여기엔 조건이 있어.”
조건 하나.
경고를 받으면 곧장 교체할 것.
조건 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여도 교체할 것.
조건 셋.
“날 후회하게 만들지 말게.”
“······.”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었던 난, 굳은 결심을 하며 축구화의 끈을 동여매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 ? 스포르팅 CP의 회장 브루노 카르발류는 실제 울트라스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그룹 출신으로, 재임 기간 수많은 괴담을 만들어낸 것뿐만이 아니라 불명예스럽게 퇴임하는 과정에서도 이야깃거리를 남겼습니다.
2018년 5월 15일, 스포르팅 CP의 선수단은 컵대회 결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전날, 마리티무에게 패배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좌절된 상황이라 분위기는 별로 좋지 못했죠.
그런데 그때 갑자기 복면과 쇠파이프를 든 울트라스 50명이 훈련장에 침입해, 사람들을 폭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구타당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직장을 옮겨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있던 조르제 제수스였죠.
이는 제수스가 포르투갈 리그에 매너리즘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그는 계약 기간 후 브라질로 건너갑니다. 또 이때 구타당한 선수들은 팀을 떠나고자 FIFA에 제소했죠.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사태 다음 날, 선수단은 한목소리로 배후에 카르발류 회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6개나 되는 훈련장 중에서 울트라스가 당일 스포르팅이 훈련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내부에 정보를 준 사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특히나 직전에 팀의 경기력을 두고, ‘내가 울트라스에게 부탁하면 정신을 차릴 빌어먹을 놈들.’ 이라는 식으로 SNS에 적었던 카르발류 회장이기에, 이런 의심은 더욱 그럴듯했죠.
이후 카르발류는 여론에 못 이겨 대표직을 내려놓았지만, 2018년 이전에도 SNS를 통해 인종차별과 비하를 일삼았던 그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언급한 것처럼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먹고사는 데 급급하고 또 축구 산업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라, 나라와 협회가 작심하고 이런 일들을 대충대충 넘겨버리곤 합니다.
포르투갈의 축구 문화와 인프라는 분명 존경받을 만한 것이지만, 어디에나 그렇듯이 어두운 면은 존재하죠.
김다온을 두고 벌어진 일은 당연히 픽션입니다만, 본문의 전개는 충분한 사전조사와 근거가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