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12)
877화 One Team (7)
(개리 리네커) – BBC 스튜디오 프레젠터
“그럼, 이제 마지막 경기로군요. 한국과 모로코의 시합입니다. 먼저, 하이라이트를 보고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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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리네커)
“보신 것처럼, 한국은 오늘 모로코를 1:0으로 눌렀습니다. 2승으로 가장 먼저 D조에서 본선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월드컵 전에도 포르투갈과 함께 16강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긴 합니다만, 예상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프랭크?”
(프랭크 람파드) – BBC 스튜디오 펀디츠
“제 생각에는 한국이 D조에서 가장 강한 팀이라고 봅니다. 포르투갈이 FIFA 랭킹은 훨씬 높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들은 각 포지션에 경험이 매우 풍부한 선수들을 보유 중입니다. 다온, 쏘니, 키. 외에도 모든 선수가 유럽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습니다. 골키퍼가 조금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딱히 확인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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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리네커)
“한국은 이제 포르투갈과 상대합니다. 이 경기의 승자가 D조 1위가 될 겁니다. 무승부를 거둔다면 한국이 그대로 1위가 됩니다. 그리고 다른 경기 결과에 따라, 포르투갈이 탈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 전력을 다할 겁니다. 어쩌면 그날, 한국의 수비가 제대로 된 실험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앨런 시어러)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한국이 포르투갈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저는 포르투갈이 앞선 두 경기에서 베르나르두 실바를 선발로 기용하지 않은 결정에 줄곧 의문을 표해 왔습니다. 콰레스마도 한때는 좋은 선수였지만, 지금은 베르나르두 실바가 더 뛰어난 선수입니다. 포르투갈은 제대로 준비해야 할 겁니다. 아니면, 그들도 이변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
2018년 6월 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190000. 보즈네센스키 거리, 1. 포시즌스 호텔 라이온 팰리스 상트페테르부르크(Four Seasons Hotel Lion Palace St.Petersburg. Voznesensky Ave, 1. St.Petersburg, Russia 190000).
삐빅-
“······.”
자정을 알리는 손목시계의 알람이 들려오고, 소파에 앉아 와인을 기울이던 페르난두 산투스가 피곤한 듯 눈을 껌뻑이며 양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본래라면 여긴, 축제의 장이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어긋나 버렸군.’
포르투갈 축구 협회가 호화로운 포시즌스 호텔을 조별 예선 마지막 숙박지로 선택했던 건, 16강 진출을 확정한 대표팀이 최상의 관리 속에서 본선을 준비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EURO 2016에서의 우승으로, 포르투갈 협회와 사람들은 잔뜩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16강 탈락을 우려해야 할 처지가 되어 버렸고, 포르투갈 내 주요 미디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참사의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며 걱정하는 기사들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건, 포르투갈 팀 내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의 짜증을 불러왔다.
[“개소리!”]조별 예선 탈락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는 것에 인내심이 다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취재진의 앞에서 역정을 내며 돌아서 버린 것이다.
다른 대회도 아닌 무려 월드컵에서 이러한 행동을 취하자, 당연하게도 전 세계의 비난이 이어졌다.
심지어 미국의 ‘CBS Sports’는 [김다온은 커리어 중 단 한 번도 미디어의 앞에서 역정을 내지 않았다]는 말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역린을 건드리기까지 했다.
자신이 늘 세계 최고라 믿고 또 그렇게 주장해 온 호날두이기에, 지난 3년 동안 김다온의 팀에 패해 무관(無冠)에 그친 사실은 그의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다.
2017/18 시즌은 맨체스터 시티와 직접적으로 대결하진 않았지만,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결승전에 오른 바이에른 뮌헨을 맨체스터 시티가 잡았다.
월드컵이라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면, 다시 한번 호날두를 향하는 의문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선수 개인으로서는 분명 대단하지만, 과연 그가 팀을 승리로 이끄는 선수냐는 의문 말이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어제저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홀로 객실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객실 문은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당연히 팀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었지만, 포르투갈 대표팀 내에서 호날두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
시간이 흐를수록, 페루전 1:1 무승부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과정이 나쁘더라도 결과를 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전히 포르투갈이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은 남아 있고 또 페루보다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만약 포르투갈이 한국에 패하고 페루가 두 골 이상으로 승리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더욱 걱정인 건, 현재까지의 전개가 2002 한일 월드컵과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당시에도 D조에 속한 포르투갈은 대한민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고, 미국이라는 복병에 일격을 허락함으로써 찝찝한 상태로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본선 토너먼트 진출이 달린 중요한 시합에서, 퇴장이라는 변수가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결국 고배를 들었다.
또한 이 시합 이후, 포르투갈은 네 번의 월드컵(2002/2006/2010/2014) 조별 예선에서 모두 퇴장자가 나오는 진기록을 이어 나가고 있다.
다만 이번 대회에는 아직 퇴장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불안했다.
“후우~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게 되는군.”
애써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페르난두 산투스지만, 그는 이미 불안이라는 덫에 걸려든 것처럼 보인다.
***
.2018.06.23. 경기 결과
Group F. 아르헨티나 2 : 1 이란
Group F. 스웨덴 2 : 2 크로아티아
Group G. 폴란드 2 : 0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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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 팀
-> 2018.06.24.(오전) 기준
러시아, 스페인(이상 2승/Group A) 우루과이(2승/Group B), 프랑스(2승/Group C), 대한민국(2승/Group D), 벨기에(2승/Group E), 폴란드(2승/Group F).
***
2018년 6월 24일. 볼고그라드 오블라스트, 러시아 400036. 비행사 고속도로, 161, 볼고그라드. 볼고그라드 국제 공항(Volgograd International Air-Port. Shosse Aviatorov, 161, Volgograd. Volgograd Oblast, Russia 400036).
칼리닌그라드에 이어 좋은 추억을 남긴 볼고그라드를 떠나기에 앞서, 팬을 자처한 공항 직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경호 팀이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제지하려 했지만, 난 괜찮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전세기 앞쪽으로 불러들였다. 찾아온 이들은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었다.
아쉬움이 가득했던 표정이 환하게 변했고, 사인과 사진을 받은 이후엔 어설픈 한국어로 감사하다는 말까지 해왔다.
“보셨죠? 괜찮다니까요.”
“······.”
“그래도 죄송합니다-”
경호원분들이 제지를 한 건, 내가 팬 서비스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것뿐이고, 내 고집이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 축구 선수고, 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나를 보고자 하는 팬이 있다면, 여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그들을 만나야 한다.
“여~ 인기인.”
“질투해?”
“질투는 무슨 내가.”
“에이- 질투하는 것 같은데, 뭐.”
“야, 너는 어떻게 된 게 귀여운 구석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냐. 어떻게 한마디도 안 져.”
“어우~ 꼰대. 냄새나. 비켜, 앉게.”
“냄새나는데 앉기는 왜 앉냐?”
“삐지셨고만?”
“아니거든?”
대표팀 내에서는 일상인 모습이다 보니, 누구도 나와 자철이 형을 신경 쓰지 않는다.
“형.”
“왜?”
“형은 왜 벌써 은퇴를 생각한 거예요?”
“아, 그거?”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기간 동안, 나는 같은 한국 선수들의 평판(評判)을 꾸준히 들어왔다. 당시 함께 독일에서 뛰던 형들은 자철이 형을 포함, 정호 형, 동원이 형 등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 평판을 이야기하던 대부분이, 자철이 형을 두고 [“최고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을 했다.
뮌헨의 단장이었던 마티아스 잠머마저, [“너희 나라의 쿠(Koo)는 되게 흥미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뭐, 나는 재능이 없으니까.”
“형이요?”
“야, 나는 죽자 살자 해서 마인츠야. 그런데 넌?”
“······맨체스터 시티?”
“그거 하나만이냐? 뮌헨, 아틀레티코, 시티. 솔직히 너는 원하는 곳을 골라서 갈 수 있잖아?”
자철이 형의 커리어는 대한민국 선수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상위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살의 나이로 K리그에 데뷔했고, 2010 아시안 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볼프스부르크 진출에 성공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말해서 이 정도지, 실제로 2010년 당시 자철이 형에 대한 유럽 클럽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PL의 블랙번 로버스와 볼턴 원더러스가 자철이 형의 영입에 관심을 표현했고, 스위스의 영 보이스는 아예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의 볼프스부르크와 슈투트가르트 역시 자철이 형을 향한 관심을 표현했는데, 과정에서 명성을 고려해 볼프스를 택했지만 실제론 좋지 않은 선택이 됐다.
당시 자철이 형의 에이전시는 유럽 무대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었고, 단순한 클럽의 명성에만 의존해 이적을 추진했다.
“나처럼 평범한 애들은 어디에서 크느냐가 중요해.”
“······.”
“유럽에서 뛰어 보니 더 잘 알겠더라. 그렇다고 내가 다른 곳에서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그나마 독일에서 오래 뛰었잖아?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아우크스부르크가 코스를 같이 밟아 줬잖아.”
“행정가 과정이죠?”
“응. 그래서 아우크스를 간 것도 있고.”
자철이 형은 내게, 독일에서 뛰며 보고 배운 것들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최대한 오래 현역을 이어 가며, 양국의 가교(架橋)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어쨌든 독일이 세계 최고잖아.”
“그거는 맞죠.”
“그치? 너처럼 아는 애들이랑은 말이 통한다니까.”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독일 국가대표팀의 감독 요하임 뢰프는 [“이번 우승은 독일의 10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란 인터뷰를 진행했다.
‘Jungendleistungszentrrumi’로 알려진 독일 특유의 유소년 아카데미 문화는, 훈련장(최소 3면 이상)/연령별 선수 구분과 일정 이상의 스쿼드 보유/코칭스태프의 UEFA 자격 의무화/의료 및 재활 프로그램의 기준 통과/기숙사 및 청소년 의무교육 과정 교육 시스템/심리 상담과 같은 9개 영역의 까다로운 심사를 정해 두고 있다.
이는 2001년부터 본격화된 문화로,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이 ‘Jungendleistungszentrrumi’ 문화를 통해 성장한 세대였다.
나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며 그러한 문화를 직접 경험했고, 시티로 온 뒤에도 같은 정책을 지켜봤다.
“하긴, 펩도 시티를 그렇게 바꾸고 있어요.”
“그래? 어떤데?”
지난 시즌, 나는 여유가 주어지는 대로 시티의 아카데미 디렉터인 제임스 윌콕스를 찾아 스케줄이 비는 유소년팀과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윌콕스는 그것이 제대로 된 훈련이라 말했지만, 나는 늘 펩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펩은 일단 애들을 학교로 보냈어요.”
“시티는 그렇게 안 해?”
“아뇨. 제휴된 학교가 있죠. 하지만 클럽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친구라면, 얼마든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요.”
“그건 참 별론데.”
“뭐, 저도 그래서 할 말은 없지만요.”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엄밀히 말해 나의 학력은 중졸에서 끝이 났다.
나의 고등부 교육은 FC 노르셸란에서 이행한 것들이 전부였고, 한국에서 성장한 친구들이 배운 교과서의 내용은 하나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이런 나이기에, 축구와 학업을 분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만약 내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실수를 좀 더 줄일 수 있었을 거다.
“축구가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네.”
학창 시절 운동부에 들어 축구를 할 수는 있겠지만, 꼭 축구가 그 개인의 재능을 말해 주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축구가 아닌 다른 부분에 더 재능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은 과학자/기업인/정치인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Jungendleistungszentrrumi’는 하나의 소년/소녀를 축구 선수가 아닌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청년으로서 받아들이고 응당한 환경을 제공했다.
세상엔 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은 만큼, 어린 나이대의 소년/소녀가 올바로 된 교육을 받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Jungendleistungszentrrumi’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미래를 생각하도록 가르쳤는데, 프로의 나이가 되었을 때의 삶과 그로 인한 행복을 스스로 깨닫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감독이 바로, TSG 1899 호펜하임의 율리안 나겔스만(Julian Nagelsmann)이다.
나겔스만은 자신의 행복이 일류 축구 선수가 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걸 20살의 나이에 깨달았고, 짧은 도전 이후 바로 은퇴를 택하여 지도자의 길을 밟았다.
“역시 너는 뭘 좀 아는구나?”
“뭐, 많이 보아 왔으니까요.”
“아냐~ 내가 볼 때 넌, 지도자가 딱이야. 장담하는데,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건, 지금도 네가 제일 잘할걸?”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아니, 진짜. 넌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알아.”
“······.”
쉽게 설명하는 방법이 나와서 말인데, 독일 축구 협회 소속의 한지 플리크(Hansi Flick)도 ‘천재’라는 느낌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2006년부터 요하임 뢰프와 함께하며 독일 국가대표팀과 함께해 온 프리크는,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다.
현역 시절은 6년간 바이에른 뮌헨의 소속으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4년 전부터 현대 축구의 흐름을 읽어 냈던 남자였다.
“그래? 그럼, 되게 좋은 사람이네?”
“네.”
“근데 있잖아.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왜 과르디올라의 뒤를 이어서 뮌헨의 감독이 되지 않은 거야?”
외부로는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펩이 시티와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진 후 뮌헨 보드진 내부에서는 한지 플리크를 감독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하지만 당시 발언권을 쥐고 있던 울리 회네스와 프란츠 베켄바워는. [“한지 플리크는 게겐 프레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임명을 거부했다.
굳이 도르트문트의 DNA인 게겐프레싱을 뮌헨이 가져와야 한다면, 플리크가 아닌 원조(元祖)라 부를 수 있는 위르겐 클롭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당시에도 또 지금도 한지 플리크가 이뤄 낸 업적이 부족한 만큼, 아예 이해하지 못할 부분도 아니었다.
“역시, 철학이 중요한 거야.”
“그렇죠.”
“있잖아. 나는 이렇게 생각해. 2009년부터 시작해서, 2012년에 기초가 잡힌 대한민국 축구가 이번 2018년을 끝으로 끝난다고 말이야. 한 세대가 끝나는 거지.”
“그거야 형 때문이죠.”
“야. 탁 터놓고 말해서, 내가 그렇게 중요해? 봐. 솔직히 재성이나 창민이가 내 자리에서 뛰어도 될걸? 그리고 그 누구냐. 이번에 인범이?”
“네, 황인범.”
“그래. 걔도 재능이 있잖아. 이번에 성용이랑 내가 은퇴하기로 한 건, 2022년 월드컵을 위해서는 아예 새로운 애들이랑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낫다고 봐서야. 어차피 감독님도 관두고. 그 너 옛 스승은 어때?”
“안 오실 거예요.”
“그래? 그거 아쉽다.”
조르제 제수스 감독님은 한 해 더 스포르팅 CP의 감독직을 수행키로 결정을 내리셨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본인의 나이가 너무 많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현재, 차기(次期) 대표팀 감독직은 비어 있는 상태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저는 모로코 감독도 괜찮다고 봐요.”
“아- 확실히 좋았지. 팀을 잘 만들었더라.”
“그러니까요.”
이후로도 나와 자철이 형의 대표팀 관련 이야기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당장 월드컵 이후의 일을 시작으로 내가 설립한 아카데미와 한국 전반의 유소년 문화에 이르기까지, 마음먹으면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는 대화가 이어진 거다.
그 끝에서 나는 자철이 형에게 아카데미 참여를 권유했고, 형은 시간이 되면 기꺼이 함께할 거라 약속을 해 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
“저나 형은 둘 다 한국인이네요. 한국인이 한국을 까는 건 문제없지만, 다른 나라가 우리를 까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사람처럼 보여요.”
“뭐, 그야 당연한 거 아냐?”
“하하. 네. 정말 그렇죠.”
축구는 끊임없이 젊고 탱탱한 생기(生氣)를 요구하고, 오직 잘난 팀만이 거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최고가 될 수도 혹은 잠시나마 한 시대를 풍미한 복병(伏兵)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우린 아직 후자에 불과한 수준이다.
“······.”
어느새 고요해진 전세기 안에서, 나는 자철이 형과 주고받은 대화를 곱씹으며 창밖을 내려다봤다.
이곳이 어디인지.
또 어디쯤인지.
조금도 감이 오지를 않는다.
‘축구랑 같아.’
축구를 하다 보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답을 추구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무의미한 짓이지만, 우린 그걸 멈출 수 없다.
그걸 멈추는 순간, 꿈이 끝나는 걸 알아서다.
‘나는······.’
나는 다음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계속 이 팀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틀림없이, 내 커리어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질 거다.
하지만 지금, 난 그게 결코 수고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또 우리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길.
본선 토너먼트 무대의 앞에서, 나는 제아무리 친우(親友)라 하여도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이게 바로 A대표팀이자.
그리고.
‘월드컵인 거야.’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최대의 축구 대회에 참가하는 일원으로서, 그에 걸맞은 모습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어느새, 비행은 1/3쯤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