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23)
888화 One Team (18)
(배정세) – SBS 캐스터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러시아의 서쪽 도시 니즈니 노브고로드입니다. 대한민국과 세르비아. 세르비아와 대한민국의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경기가 이제부터 이곳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잠시 후부터 펼쳐지겠습니다. 사상 최초, 세 개 대회 연속 본선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대표팀. 마찬가지 사상 최초로, 두 개 대회 연속 월드컵 8강 진출에 도전합니다.”
(박성문) – SBS 해설위원
“그렇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적인 강호로 도약한 대한민국 대표팀입니다. 하지만 세르비아 역시 방심할 수 없는 팀이고, 또 정운과 이재성이 경고 누적으로 16강전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변수도 있습니다.”
(배정세)
“두 선수의 공백에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은 오반석과 황희찬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변형 쓰리백과 좌우에 빠른 공격수를 배치한 대한민국이 세르비아를 상대로 어떤 경기를 선보일지, 잠시 뒤부터 지켜보시겠습니다. 애국가 제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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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00분
대한민국 0 : 0 세르비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다아앓도로옥-”
“하-!느님이.”
“보우우하아사아-”
“우~리나라 마안세에~”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토너먼트 경기가 시작되려고 한다. 16강전을 준비하며 감독님이 가장 주의를 요구한 부분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술적으로도 신중하게 나가기로 했다. 사람들의 말처럼 우리가 더 강한 팀이라면, 초반에 승부수를 던져야 할 팀은 세르비아였기 때문이다.
전반 초반, 우리는 우선 수비를 단단히 하며 세르비아가 가져온 계획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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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모브레이) – BBC 코멘테이터
“경기가 시작됩니다! Round of 16, Game 4. 한국과 세르비아가 승리를 두고 격돌합니다.”
(마크 로렌슨) – BBC 공동-코멘테이터
“양 팀 모두 전력의 손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타격은 세르비아가 좀 더 큰 게 사실입니다. 각 감독이 어떠한 해답을 내어놓았을지가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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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선발 명단에 비추었을 때, 전형 자체는 4-2-3-1이나 4-4-1-1일 확률이 높다.
둘 다 조별 예선에서 사용했던 전술로, 전반적인 느낌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10번(AM)에 서는 선수의 활용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4-2-3-1에서의 10번이 전형적인 메디아푼타(Mediapunta) 느낌이라면, 4-4-1-1에서의 10번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빌드업 상황에서 낮은 위치까지 내려온다거나, 측면으로 넓게 벌려 움직이는 식의 모습을 보여 줬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르비아는 코스타리카에 2:0 승리를 거뒀고, 오늘 다시 같은 전략을 가져왔다.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와 마티치의 결장으로 인해 택한 어쩔 수 없는 변화라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르비아의 4-4-1-1은 분명 준비된 전술이다.
“뒤!!”
“?!”
“아잇…”
지금도 보면,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Sergej Millinkovic-Savic)가 센터백의 바로 앞쪽까지 내려와 의조 형으로부터 볼을 빼앗았다.
선축에서부터 시작해 빌드업을 이어 갔지만, 조금 허무하게 세르비아에 볼을 넘겨줬다.
좋은 수비 가담을 선보인 사비치가 골키퍼에게 패스를 전달하고, 공은 바로 오른쪽으로 연결이 됐다.
빅리그에서의 커리어를 마치고 카자흐스탄 리그의 FC 아스타나로 이적한 안토니오 루카비나(Antonio Rukavina)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FK 파르티잔을 거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의 진출에 성공했지만, 적응에 실패하며 파트리크 오보모옐라(Patrick Owomoyela)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하지만 이후 TSV 1860 뮌헨으로 임대돼 반전을 일궈 냈고, 2009/10 시즌을 앞두고 완전 이적해 3년간 활약한 후, 스페인 라 리가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러다 2014년에는 레알 바야돌리드 CF를 떠나 비야레알 CF에 입단했는데, 이때가 루카비나의 최전성기였다.
이 말은 곧.
‘지금은 아니란 거거든.’
팡-!!
조별 예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요한 공격 루트는 상대 수비를 끌어내어 만들어진 공간에 흥민이 형을 뛰어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년 1월 35살이 되는 루카비나는 과거보다 매우 느려졌고, 그래서 라 리가를 떠나 카자흐스탄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프라인 아래에서 민재가 쏘아 보낸 패스가 루카비나와 니콜라 밀렌코비치(Nikola Millenkovic)의 뒷공간을 파고들자, 세르비아의 수비가 잠깐 요동쳤었다.
비록 패스는 골라인을 그대로 벗어났지만, 경기 초반에 날린 잽 펀치로는 나쁘지 않았다.
수비위치를 찾아가기 위해 몸을 돌려세운 뒤, 좋은 시도를 선보인 민재에게 박수와 엄지척을 보내 본다.
“민재!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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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욱) – MBC 해설위원
“조별 예선전부터 많이 선보인 공격 패턴입니다. 손흥민 선수의 스피드를 활용해 후방에서 바로 긴 패스를 찔러 넣어 주는 것인데요. 과거와는 달리 수비진영에서 바로 정확한 패스를 보낼 수 있는 선수들이 있다는 게 이러한 전술의 주요 원인입니다.”
(안정환) – MBC 해설위원
“김민재 선수도 뭐, 아주 엄청난 선수입니다. 22살밖에 안 됐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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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렌슨)
“아주 좋은 패스 실력을 갖춘 센터백입니다. 아직은 좋은 파트너가 필요합니다만, 조금만 더 경험이 쌓인다면 약점을 찾기 힘든 수비수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가이 모브레이)
“몇몇 언론에서는 이 친구를 조별 예선 최고의 센터백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세르비아의 골킥. 짧게 볼을 앞으로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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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치의 결장으로 대신 중앙 미드필드 자리에 들어선 건 리버풀의 마르코 그루이치다. 좋은 신장과 체격 조건을 지닌 전형적인 동유럽권의 미드필드다.
볼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데 특출난 재주가 있고, 큰 키를 앞세워 세트피스에서도 능력을 선보인다.
그래서 안식년 동안 유럽 각지를 떠돌며 축구 경기를 관전하던 위르겐 클롭에게 발탁, 리버풀 부임 후 첫 번째 영입생이 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다만 PL 이적 후에는 부족한 활동량이 약점으로 평가받으며, 기대했던 것만큼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너무 붙지는 마!”
“넓게-! 넓게 조여!!”
벤치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지시를 들으며, 나는 세르비아가 움직이는 방식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오늘 그루이치가 마티치의 대안을 낙점을 받은 건, 밀린코비치-사비치와의 역할 바꾸기를 통해 우리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서로 판단된다.
세르비아 중원에서 온갖 일을 도맡던 마티치의 역할 중, 공격 부분을 아예 따로 분배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밀린코비치-사비치를 중앙에 두고 그루이치를 10번으로 올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했듯 그루이치는 활동량이 부족하다.
만약 그루이치가 10번에 서게 되면, 세르비아의 공격은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즉 세컨톱이 측면으로 빠져 준다거나 연계와 압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빈도가 줄어들 거라는 의미고, 미트로비치가 빠진 상황에서 이러한 고착화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어차피 루카 요비치(Luka Jovic)도 전형적인 9번(ST)이라기 보다 9.5번에 더 가까운 선수다.
그렇기에 더욱, 중앙에서 좌우로 패스를 보내 벌려 주며 수비에 혼선을 주는 과정이 중요하다.
포켓(Pocket)과 그 주변에 있는 공격수들이 페널티박스 안으로 뛰어들 시간을 벌어 주려면, 측면으로 패스를 보내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왼쪽 수비를 담당하는 건, 정통 사이드백이 아닌 변형 센터백 자원인 반석이 형이다.
‘대충 알겠어.’
팡-
아래로 내려선 루카 요비치가 포켓에 머물며, 팀의 중원 다툼에 숫자를 보탠다. 그리고 그에 딸려 라인이 높아지자, 밀린코비치-사비치가 오른쪽 측면으로 패스를 보냈다.
그곳에 있는 두샨 타디치는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왼발잡이 윙어다.
소튼에서도 인버티드(Inverted) 윙어로서 다년간 좋은 모습을 보였고, 지금도 반석이 형을 앞에다 두고 여유 있게 거리를 벌리더니 크로스를 바로 띄워 올렸다.
하지만 민재가 요비치의 경로를 잘 막아 내면서, 크로스는 곧장 골라인 밖으로 벗어났다.
“성용이 형!”
“?”
“쟤네 중앙으로 모으고, 그다음에 측면으로 벌릴 거야! 바로 보내지는 않을 거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내 이야기를 들은 성용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바로 주변에 피드백을 보냈다.
축구 전술에서 측면으로 볼을 보내는 방법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성용이 형은 나의 말에서 세르비아가 하려는 축구를 대강 유추해 낼 수 있었을 거다.
‘그러고도 남을 만한 사람이니까.’
전반 3분, 다행히 빠르게 세르비아가 가져온 굵직한 플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왼발잡이 윙어인 필리프 코스티치(Filip Kostic)가 아닌 아뎀 랴이치(Adem Ljajic)라는 또 다른 중앙 미드필드를 왼쪽 측면에 배치한 것도, 아예 오른쪽을 주요 루트로 삼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다.
오른쪽을 공격 루트로 잡을 땐 최소한의 인력을 투입하고, 반대로 왼쪽이 공격 진행 방향이 되었을 땐 볼을 지켜낼 수 있는 선수를 통해 숫자 싸움을 해볼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뛰어야 할까?
다행히도, 팀은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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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광) – KBS 캐스터
“다시 세르비아의 공격. 전반 초반은 세르비아가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한희준) – KBS 해설위원
“지금은 대한민국이 무리하게 점유율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게 눈에 띕니다. 상당히 신중한 접근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수비 상황에서 오반석 선수를 센터백 자리로 보내고, 구자철 선수를 왼쪽 윙백처럼 뛰게 만든 것도 눈이 갑니다.”
(이영표) – KBS 해설위원
“역시 세르비아도 대한민국의 왼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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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경기에서, 삼파올리 감독님이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성용이 형의 파트너로 누구를 둘 것이냐는 거였다. 수비력이 뛰어나고, 부지런히 뛰어 줄 선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표팀 스쿼드상, 이는 절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왼쪽 중앙 미드필드 자리에서 뛰어 줄 선수가 수비 시에는 왼쪽 윙백으로도 뛸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요건만을 놓고 본다면 세종이 형을 가장 먼저 들 수 있겠지만, 16강 경기에서 선발로 기용할 만큼의 실력이냐는 의문을 쉽게 벗어던질 수 없었다.
조별 예선에서 맹활약한 창훈이는 가벼운 몸살 증세로 컨디션이 썩 좋지 못했다.
청용이 형은 왼쪽에서는 거의 뛰어 본 경험이 없었고, 우영이 형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성용이 형의 백업 역할을 해 줘야 했다.
결국 유일하게 남게 된 건 한 사람뿐이었는데, 감독님은 자철이 형을 따로 불러 면담을 진행했었다.
[“야, 나 오늘 완전 불태운다.”] [“오늘 뛰고 산화하게?”] [“산화하더라도. 다음 경기에서는 창훈이도 돌아오고, 또 지금은 팀이 필요할 때니까 내가 해 줘야지.”]지난 48시간 동안 이뤄진 연습 내내, 자철이 형은 강한 의욕으로 불타올랐다.
세르비아가 오른쪽을 중심으로 공격을 진행할 것이 예상되었던 만큼, 90분 내내 중원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며 많은 활동량을 보여 줘야만 했다.
투지 외에는 딱히 수비에서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없는 자철이 형이지만, 지금은 제대로 집중해 내며 타디치의 드리블을 커트해 내고 있었다.
‘오-!’
다소 얻어걸렸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수비는 성공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1:1 대결 승리는, 생각보다 더 의미가 컸다.
우리의 변형 쓰리백을 공략하고자 들고나온 전술을 자철이 형의 왼쪽 측면 배치라는 대처로 받아치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의 윙백이라면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을, 자철이 형은 지니고 있다.
삑-!
보통의 수비수라면 곧바로 이뤄지는 세르비아의 재압박에 당황했겠지만, 탈(脫)압박과 좋은 슈팅 능력을 인정받아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논산 출신 미드필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능숙하게 타디치와 그루이치의 압박을 받아넘기며, 파울을 유도해 내는 모습을 선보였다.
나아가 주심에게 옐로카드를 꺼냈어야 했다는 제스처까지 취했는데, 주심에게 카드를 아꼈다는 인식을 심는다는 심리적 효과도 줄 수 있었다.
‘열~~ 구자봉. 쫌 하는데?’
만약 주심이 쉽게 죄책감을 느끼고 어떠한 일을 잘 잊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지금 자철이 형의 항의는 추후 어떠한 식으로든 보상을 받을 게 틀림없다.
옐로카드를 줄 상황이 아닌데 경고가 나올 수 있고, 반대로 우리가 경고 한 장을 덜 먹을 수도 있다.
벤치의 삼파올리 감독님과 다른 코치님들이 저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지금 자철이 형의 플레이 하나에서 큰 자신감을 얻어 갈 수 있었기 때문일 거다.
피치에서 뛰는 우리도 마찬가지.
자철이 형에게 믿고 왼쪽 수비를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흥민이 형의 위치가 좀 더 높게 올라갔다.
이번 월드컵에서만 벌써 세 골을 집어넣은 흥민이 형의 저런 위치 선정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공격 무기처럼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다.
과거 브라질에서 가졌던 두 차례의 큰 국제 대회(월드컵/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라고나 할까?
이상하게 대표팀에만 오면 클럽보다 저조한 활약을 펼치곤 했던 흥민이 형이었는데, 러시아에서는 예전의 아쉬웠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천천히 해!”
다시 한번 자철이 형이 얻어 낸 프리킥이 뒤로 보내어지고, 현우 형을 거친 패스가 내게 도착했을 때 난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세르비아는 전술에서 변수를 두었지만, 경기 초반 승부수를 던지기보다는 90분을 길게 바라보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금까지 파악한 전술 외에는 특별히 더 신선한 부분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나가 볼까?’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서도 괜찮다.
전반 6분, 결론이 내려졌다.
본격적으로 경기에 녹아들기로 하며, 난 적극적으로 전진해 미드필드에 힘을 보탰다.
그러자 팀은 ‘비엘사시즘’ 추구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볼을 점유하며 공격으로 나설 때 팀의 전형은 3-3-3-1이었고, 성용이 형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나와 자철이 형이 좀 더 올라서게 되면 전형은 다시 3-1-3-3으로 바뀌었다.
뭐, 사실 대회 내내 그랬다.
다년간 대표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 오는 동안, 우린 대표팀의 색(色)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게 됐다.
형들의 말을 들어 보면 클럽에서 뛰다 대표팀에 왔을 때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점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린 클럽에서의 습관을 잠깐 뒤에 놓아두고 대표팀의 습관을 장착한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이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팀 중에서 우리보다 더 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팀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린 좋은 팀이야.’
탐색전을 마치고,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피치 위에서 발휘되기 시작하자 어느새 경기는 우리가 의도하는 방식대로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흥민이 형과 희찬이의 속도를 의식한 세르비아는 수비 라인을 함부로 높이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벌어진 3선과의 간격을 채우고자 미드필드 라인은 눌러앉았다.
그럼 우린 무리하게 공격하는 대신, 오히려 한발 뒤로 물러나 미드필드가 내려앉으면서 생긴 공간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세르비아의 미드필드가 라인을 높여 전방 압박을 해 올 때면, 다시 상대가 흥민이 형과 희찬이의 속도를 의식하도록 만들어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했다.
가끔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의조 형이 센터 라인 부근까지 내려왔다.
이런 계산에 없던 스트라이커의 등장은 세르비아 진영의 혼선을 일으켰는데, 금방 밀린코비치-사비치와 아뎀 랴이치가 동시에 달라붙은 틈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의조-!”
팡-
밀린코비치-사비치의 태클을 몸으로 잘 버텨 낸 의조 형이 방향을 꺾은 패스를 정확히 보내온다.
빠르게 떠올랐던 축구공이 완만하게 내려앉으며 발등에 얹히고, 내가 반대 방향을 바라보자마자 세르비아의 수비는 흥민이 형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저기로 볼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월드클래스 수준의 공격수를 미끼(Dummy)로 쓰는 사치를 듬뿍 누리며,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친한 형/동생이 된 희찬이를 겨냥한 패스를 보냈다.
앞서 잠깐 시선이 마주쳤던 희찬이는 내가 본인에게 패스를 보낼 것을 알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고.’
알렉산다르 콜라로프의 시야 밖으로 벗어나며 달려 나가기 시작한 희찬이가 세르비아의 최종 라인을 무너뜨리며 골라인 깊숙이 침투한다.
‘그대로 가!’
유로파리그 SS 8강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황소를 연상케 하는 저돌적인 플레이로 극찬을 이끌어 내며, 희찬이는 RB 잘츠부르크를 준결승으로 이끌었다.
확실히 한 단계 올라선 시즌이었고, 지금은 몇몇 빅리그 클럽의 구애를 받고 있다.
비록 대표팀에서는 전술적인 부분 때문에 재성이 형에게 주전을 양보했지만, 희찬이는 결코 땜빵으로 나설 만한 수준의 선수가 아니다.
빠르게 페널티박스 안으로 뛰어든 희찬이가 골대를 바라보며, 다소 과감한 위치에서 슈팅을 가져간다.
흥민이 형은 오프사이드라인을 피해 가야 했고 또 의조 형은 아래로 내려와 있어 공격 숫자가 부족했던 만큼,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선택이었다.
희찬이의 발등에 얹어진 슈팅은 반대편 골대 모서리를 겨냥한다.
그리고.
“!!”
살짝.
정말 아주 살짝, 골대를 벗어나 버렸다.
{“우오오오-!”}
{“아아아…….”}
‘아- 아까워라.’
경기장을 들썩이게 만든 슈팅에 아쉬워하는 희찬이가 머리를 감싸 쥐고, 가슴이 철렁했던 세르비아의 골키퍼 블라디미르 스토이코비치(Vladimir Stojkovic)가 수비수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너무 쉽게 공간을 허락한 것에 대한 불만을 토해 낸다.
득점이 되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과정 자체는 훌륭했다.
“희찬아! 굿! 진짜 굿이야!”
오늘 두 번째로 나오는 엄지척.
그것을 받은 희찬이가 아쉬움을 털어 버리는 미소를 내게 보여 주고 있었다.
전반전 08분.
흐름은 우리에게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