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26)
891화 One Team (21)
2002 FIFA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은 4강에 올랐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제대로 된 성과로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현대사에 기록될 만큼 한국엔 커다란 사건이었지만, 외부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했다.
특히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던 이탈리아와 스페인 언론은 편파 판정으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며, 대한민국이 홈 개최국으로서 압력을 가했다는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시의 대한민국은 오심으로 인한 수혜를 입었을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축구니까.’
여느 일간지와는 다른 양질의 기사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풋볼베스트일레븐’의 허성균은, 오심도 경기 일부라는 격언이 축구와 가장 잘 어울린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오심은 스포츠 경기 내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기계가 스포츠 경기를 소화하는 것이 아닌 이상 실수는 늘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애초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실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심판의 실수 또한 경기의 요소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 16강과 8강에서 불거져 나온 오심 논란은 지독한 ‘유럽 지상주의’와 한국 특유의 ‘사대주의’ 문화가 얽히면서 확대된 케이스였다.
당시 한국 언론은 스스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경기의 승리를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심을 이야기하는 유럽 미디어에게, [오심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우리 또한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이 그렇게 강한 팀이라면 오심을 떠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리를 거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하지 못했던 거다.
오히려, 당시 한국 언론은 숨기기에 급급했다.
이를 두고 영국 ‘탤레그라프’는 [남한 언론의 오심 감추기는 북한의 그것을 보는 듯하다]는 촌평을 내놓았고, 프랑스의 ‘레키프’ 역시 [비겁하다]며 당당하지 못한 태도를 꼬집었다.
오히려 외국인이었던 거스 히딩크가 [“심판 판정은 우리도 할 말이 많다. 이탈리아의 비에리는 김태영의 코뼈를 부러뜨렸고, 스페인은 김남일의 발목을 쓰지 못하도록 걷어찼다. 하지만 그들은 퇴장당하지 않았다. 그들이 정말 세계적인 스타이고 팀이라면, 심판 판정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왜 패배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변호해야 했다.
수많은 영역에서 한국인은 스스로가 가졌거나 성취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데, 그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우가 2002 FIFA 한일 월드컵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현재,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우린…….’
이러한 질문에,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허성균은 마음껏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지금 막, 16강 경기가 끝났다.
삑-! 삐?익! 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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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세) – SBS 캐스터
“대한민국이! 세르비아를 누르고, 사상 최초!! FIFA 월드컵 두 개 대회 연속 8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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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대한민국 2 : 0 세르비아
[골] 김다온 : 전반 34분(황희찬)구자철 : 후반 29분(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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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2002 FIFA 한일 월드컵이 끝난 후 대한민국 축구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월드컵이 끝난 후,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선수가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을 떨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2002년의 성과를 어떻게든 독식하려는 이들의 그릇 다툼이 거스 히딩크와의 이별을 낳았고, 비난을 받기 싫었던 그들은 언론을 이용해 교묘히 거짓 뉴스들을 흘려보냈다.
월드컵을 개최하며 만들어진 인프라를 활용. 4강 진출을 업적이 아닌 주춧돌로 삼아야 했으나, 이권을 두고 다투느라 황금과도 같은 기회를 흘려보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 한국인은 무능한 지도자들 아래에서도 그 역량을 발휘해 왔다.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16강 진출이 그 좋은 예시다. 8년간 이어진 협회의 연이은 헛발질에도 불구, 어쩌면 황금세대였을 수도 있던 이들이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당시 월드컵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조금만 더 지원이 뒷받침되었다면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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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세)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과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이곳 러시아에서 세 개 대회 연속 16강 진출을 이뤄낸 대한민국 대표팀! 그리고 오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로 두 개 대회 연속 8강에 진출하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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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유럽까지 갈 것도 없이 가까운 일본/중국하고만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인들이 축구라는 종목에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축구 환경에서, 차범근/박지성/손흥민/김다온과 같은 선수가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래서 과거 야인(野人)으로 불리며 축구계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이들은, 조금만 협회가 뒷받침되어 준다면 엄청난 성과를 거둘 거라 말해 온 것이다.
그런데 장철주가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야인들이 그토록 꿈꿔 왔던 인프라의 개선과 협회의 뒷받침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학원 스포츠의 틀을 벗어던지고자 독일 방식의 육성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했고, 축구 아카데미 설립에 특별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이번 대한민국 대표팀이 러시아에서 받는 지원의 규모도, 과거에는 없었던 상당한 수준이었다.
[축하합니다.]“응? 아- 감사합니다.”
[하하.]개운치만은 않은 미소를 남기고 일어서는 일본의 취재 기자를 보며, 허성균은 이제 한국인으로서 한국 축구에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생각한다.
또 하나의 기적 정도로만 여겨진 4년 전 월드컵에서의 8강 진출이, 오늘의 결과로 우연이 아님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조별 예선 포함 전승.
8득점 0실점.
현재 월드컵에 남은 생존팀 중, 전승과 무실점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는 팀은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세르비아의 거센 반격에 아찔한 실점 위기도 있었고 또 골대가 도와주기도 했던 후반전이었으나, 결국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법이었다.
오히려 후반 20분이 지나면서는 다시 주도권을 쥐며 세르비아를 몰아붙였고, 손흥민의 멋진 힐패스를 넘겨받은 구자철이 원더골을 집어넣었다.
만약 손흥민이 P.K를 실수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또 한 번 3:0의 승리를 거뒀을 수도 있다.
“Mr. Heo.”
“?”
“Congratulation. Very good team.”
“Ah, Thank you.”
아시아권에서 나름 명성을 얻고 있는 허성균을 향한 아시아 쪽 기자의 축하 세례가 이어지는 사이, 아래쪽에 있던 유럽의 언론들은 상황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힘과 높이를 앞세운 세르비아가 잠깐 점유율을 지배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한국은 결국 그것을 버텨 냈고 두 명의 월드클래스를 통해 득점을 만들어 냈다.
오늘, 피치 위에서 더 강했고 승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었던 쪽은 대한민국이었다.
약간 상기된 얼굴의 그들은, 오늘 자신들이 본 것을 그대로 랩톱 화면에 옮겨 담는 중이다.
타닥.
타다다닥.
타닥.
월드컵 결선 토너먼트 셋째 날.
8강에 오른 여섯 번째 팀이 정해졌다.
***
[아시아의 호랑이가 8강 진출에 성공하다 ? 투토스포르트(이탈리아)]? 한국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정을 치른다는 시각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들이 본선 무대에서 보여 주는 경기력은 인상적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김다온과 프리미어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손꼽히는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중인 것처럼 보인다.
(중략)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아직 실점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비다. 조별 예선을 포함 골대가 세 번이나 한국을 실점 위기에서 구해 냈지만, 이는 다른 많은 팀도 그렇다.
포백과 쓰리백을 유기적으로 오가는 한국의 수비진은 뚫을 수 없는 통곡의 벽처럼 느껴지고, 특히 왼쪽(한국에겐 오른쪽)을 공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수비가 건재한 이상, 이들의 전진은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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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온의 선제골이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끌다 ? 마르카(스페인)]? (중략) 전형적인 김다온의 경기였다. 그는 아뎀 랴이치와 마르코 그루이치라는 두 명의 세르비아 미드필드를 꽁꽁 묶었고, 때때로 공격에 올라 치명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우리가 작년 스페인 라 리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대로였으며, 그가 전반 34분에 만들어 낸 선제 득점 장면은 가장 압권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네마냐 마티치와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가 없는 세르비아는 한국을 거의 위협하지 못했다.
(중략) 8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은 우루과이와 상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8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당한 패배의 복수를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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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시어러가 쏟아낸 독설, “만약 한국이 없었다면, 이번 월드컵은 EURO와 코파 아메리카의 짬뽕이나 마찬가지였을 거다. 이번 대회 내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팀들은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한국을 보며 배워야 한다.” – Sky Sport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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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과는 독일을 부끄럽게 만든다 ? 빌트]? 독일과 한국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두 나라는 차붐과 다온 함께 품어본 유이한 나라들이며, 한 시대를 이끌었던 황금세대가 그들의 황혼기에서 러시아 월드컵에 참여했다.
하지만 독일은 러시아에서 악몽만을 꾸다 집으로 돌아온 반면, 한국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꿈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정치에 개입하고 리더십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독일의 베테랑과는 달리, 한국의 성숙한 어른들은 책임감을 느끼면서 대회에 임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자철은 오늘 그에게 생소한 왼쪽 윙백을 소화하며, 한국 선수 중 두 번째로 많은 12.4km를 뛰었다.
또한 스완지 시티의 기성용은 무려 13번의 파울을 당했고, 후반 14분에는 두샨 타디치의 과격한 행동에 눈 부위를 얻어맞아 시퍼렇게 멍이 들고도 90분을 전부 소화했다.
2:0으로 앞서는 상황에서 코너킥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다 다리에 경련이 온 김영권의 모습도, 이번 월드컵 독일 대표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처음 우리는 한국을 김다온의 팀으로 여겼지만, 정작 현재까지 이 팀을 단단하게 이끄는 건 (아마도) 이번 월드컵이 끝일 베테랑들이다.
희생과 이타심이 축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궁금하다면, 다음 대한민국의 경기를 지켜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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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체격을 앞세운 세르비아의 공격은 단조로웠고, 한국의 수비는 거기에 무너지지 않았다. – 아사히 신문(일본)]? 한국은 덴마크와 스위스의 힘에 압도당한 일본과는 달랐다. 전반과 후반 한때 거구의 세르비아 선수들이 득점을 집어넣기 위해 분전했지만, 한국 선수들 역시 거대했다.
(중략) 분하지만, 현재 대한민국과 일본 축구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하는 것 같다. 이에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정신 차려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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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베테랑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이다. 그들은 완벽한 조연이 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늘 그들은 피치 위에서 뒹굴고, 또 희생한다.
스완지 시티의 미드필드 기성용 등과 함께, 한국은 최근 8년 동안 전에 없었던 성과를 거둬왔다.
팀 내 최연소 선수로서 아무것도 모르고 21살의 나이에 참가한 남아공 월드컵을 시작으로, 기성용은 한국이 가져간 영광의 순간과 함께하며 두 개의 올림픽 메달과 세 차례의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 진출이란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의 가장 든든한 대표팀 파트너 구자철 역시, 기성용과 비슷한 대표팀 커리어를 밟아 왔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도 서른을 눈앞에 뒀다.
장담할 수는 없어도, 월드컵 참가는 두 사람에게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다음 월드컵에서도 여전히 두 사람은 33살이지만, 최고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긴 힘든 나이다.
한국의 황금기를 이끈 두 명의 훌륭한 미드필드.
그들의 마지막 전성기 시점에서 치러지고 있는 이번 월드컵은 한국 황금세대(Korea Golden Generation)의 끝을 알리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한국은 바로 또 다른 황금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두 개의 올림픽 메달과 두 차례의 월드컵 8강 진출이란 커리어를 가진 김다온은 이제 겨우 24살이고, 같은 이력서를 가진 손흥민도 1992년생이다.
또 이번 대회를 통해 스타가 된 김민재는 기성용이 첫 월드컵에 참여했을 때와 같은 나이다.
김다온, 손흥민, 김민재.
그리고 이들과 함께할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 선수들은 한 시대의 끝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 어두운 터널에 들어갈 필요 없이 계속 강인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중이다.
***
@경기 후, 대한민국의 드레싱 룸
8강 진출의 환희가 지나간 자리.
거기엔, 부상병들이 남아 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월드컵 본선 경기의 치열함과 그것이 안겨다 주는 피로는 일반적인 평가전의 열 배쯤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만큼 더 힘들고 아프다.
특히나 오늘처럼 힘을 앞세운 동유럽권의 팀과 경기를 치르고 나면, 몸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아이~ 씨.”
“많이 아파?”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아우- 짜증 나네, 진짜.”
“좀 보자.”
사실 오늘 주심의 판정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반전 옐로카드를 아끼는 모습에 마음의 빚을 지워 두기까지 했지만,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카드를 아꼈다.
덕분에, 세르비아가 더 날뛰었다.
“야, 만지지는 마.”
“에이~ 안 만지지.”
“……아!! 야!!!”
“킥킥킥킥. 아파?”
“아니, 씨! 내가 아프다고 했잖아! 아우~ 하여튼 넌 진짜!!”
두샨 타디치가 팔을 휘둘러 성용이 형을 가격했을 때, 나는 당연히 퇴장이 나올 줄 알았다.
181cm의 타디치가 190cm인 성용이 형의 눈가를 팔꿈치 바로 아랫부분으로 가격하려면, 손을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주심은 레드카드는커녕 옐로카드도 꺼내 들지 않았고, VAR을 요청하는 우리의 목소리도 외면했다.
삼파올리 감독님이 모자와 재킷을 벗어 던져 가며 화를 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약간 재미있었지만, 훨씬 쉽게 풀려 갔어야 할 경기가 마지막까지 치열했던 것은 아쉬웠다.
만족스러운 결과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될 수 있으면 힘을 아끼고 싶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 죽겠다. 넌 안 피곤하냐?”
“에이~ 피곤하지. 나도 사람인데.”
“그래? 짐승 아니었어?”
“큭큭큭. 내가 밤에 침대에서는…….”
“아- 야, 야, 야. 됐어. 옛날에는 씨, 어린 맛이라도 있어서 놀려 먹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제는 뭐?”
“아, 몰라. 인마.”
“큭큭큭큭.”
왼쪽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부어오른 성용이 형이 혀를 차며 다시 거울을 집어 들었다. 생각해보면 저 형은 런던 올림픽 때부터 참 거울을 많이 봤다.
나도 어렸을 때 곱상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긴 했지만, 저렇게 거울과 친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현재 성용이 형과 나는 빠른 회복을 위해 마사지를 받는 중이었다. 마일리지가 쌓여 무릎이 좋지 못한 형의 경우엔, 무릎에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었다.
“무릎은 좀 어때?”
“어떻긴, 인마. 똑같지.”
“X나 아퍼?”
“응. X나게 아퍼.”
“…….”
우루과이도 우리와 마찬가지일 거로 생각하지만, 이쯤 되면 몸을 지탱해 주는 것은 정신력이다.
경기 전부터 몸살감기 증세를 보였던 창훈이만 해도, 경기를 끝마치고 드레싱 룸에 오자마자 반쯤 실신하다시피 쓰러져 바로 호텔로 이동했다.
영권이 형도 말은 안 하지만 발목과 골반이 좋지 못했고, 오늘 세르비아의 거구들을 온몸으로 틀어막은 반석이 형은 놀랍게도 어깨 인대가 나갔다.
그나마 건강해 보이는 게 희찬이와 민재인데, 나이가 깡패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아- 나도 몇 년 전까진 저랬는데.”
“어쭈? 형 앞에서 나이 얘기냐?”
“아니, 진짜라니까.”
사실은 나도 왼쪽 무릎이 살짝 좋지 않았다.
아까 후반 30분쯤이었나? 교체로 투입된 필립 코스티치의 거친 플레이에 무릎이 살짝 돌아가며 통증이 생겼다. 인대 쪽에 문제가 아닌가 했는데, 일단 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도 애들이 너는 잘 따른다.”
“만만해서 그래, 형.”
“그것 자체가 잘하고 있는 거야.”
“……뭐, 다 형한테 배웠지.”
“……그렇게 말해 주면 고맙고.”
“응.”
“…….”
8강 진출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만신창이기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감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말을 선뜻 꺼내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그때.
“다온아.”
“응?”
“4강 가자. 가 보고 싶어.”
“……응. 그래야지.”
나도 그렇지만, 성용이 형도 2002 월드컵 세대다.
당시 9살이었던 나보다, 13살이었던 형이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난 말이야.”
“응.”
“월드컵 4강이 우승이나 마찬가지야. 왜냐하면 2002년에 본 것들이 가슴속에 남아 있으니까. 솔직히 평생 꿈으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4년 전에 너랑 월드컵을 함께하면서 어쩌면 할 수 있겠다 싶더라.”
“…….”
몰랐던 사실인데, 성용이 형이 스완지 시티를 떠날 기회를 포기한 건 단순히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형은 자신이 더 큰 팀으로 이적했을 때 뛸 수 없는 상황을 걱정했고, 경기력이 떨어지는 게 대표팀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출전이 보장된 스완지에 남았던 거다.
갑자기 개리 몽크가 떠나고 프란체스코 귀돌린이 부임하며 동기부여에 문제를 겪기도 했지만, 2017/18 시즌은 다시 중심을 잡고 스완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비록 팀은 강등되었지만, 잉글랜드 미디어로부터 가장 과소평가 된 선수 중 하나란 평을 들었다.
“진짜 필사적으로 버텼던 것 같아.”
“…….”
더욱 많은 돈.
더 좋은 조건.
2015년을 시작으로 매년 여름이 되면, 명성 높은 클럽이 성용이 형을 영입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어김없이 들려왔다.
실제로 아스널과 유벤투스는 진지하게 영입을 고려하고 에이전트에 이적 의사를 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건 조건은, 스완지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러니까 이젠, 내 욕심대로 좀 살아 보게.”
“형은 그래도 돼요.”
“하하. 갑자기 존댓말 하기냐?”
“아니, 분위기가 조금 그러니까.”
“있잖아.”
“?”
“나 뉴캐슬로 간다.”
“어?! 진짜??”
“응. 조건도 좋아. 라파가 직접 전화도 걸었어. 같이 시즌을 함께해 보자는데,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더라고, 이젠 대표팀도 은퇴니까. 마음껏 부딪혀 보게.”
가족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이적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앞선 나는 진심으로 형의 이적을 축하했다.
자유계약 신분이 된 만큼 어떠한 팀이고 형을 원할 거로 생각했는데, 뉴캐슬이 행선지가 되었다.
“입단 축하 선물이 필요하겠네, 형.”
“그래서 4강 가 줄 거냐?”
“그야, 뭐.”
“…….”
말로 직접 꺼내지는 않았지만, 형은 내 눈빛에서 답을 구할 수 있었을 거다.
“형.”
“응?”
“멍드니까 더 미남이다.”
“죽을래?”
“큭큭큭.”
지금 내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동료들을 위해 앞으로 몇 경기는 더 최고의 컨디션으로 뛸 수 있을 것 같다.
자정을 향해 가는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밤.
오늘 우린, 월드컵 8강 진출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