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30)
895화 One Team (25)
2018년 7월 7일. 사마라 지역, 러시아 443072. 민주주의 거리, 57, 사마라. 사마라 아레나.
.경기 시작 2시간 전
우루과이 0 : 0 대한민국
&Match-Up`s Best Eleven(한국/상대팀)
&Tactics(한국/상대팀) : 4-2-3-1/4-4-2
GK ? 조현우 / GK ? 페르난도 무슬레라
RB ? 김다온 / RB ? 마르틴 카세레스
CB ? 김민재 / CB ? 호세 히메네스
CB ? 김영권 / CB ? 디에고 고딘
LB ? 정운 / LB ? 디에고 락살트
RCM ? 정우영 / RM ? 나이탄 난데스
LCM ? 기성용 / RCM ? 루카스 토레이라
RAM ? 이재성 / LCM ? 마티아스 베시노
CAM ? 이청용 / LM ? 로드리고 벤탄쿠르
LAM ? 손흥민 / RF ? 루이스 수아레즈
ST ? 황의조 / LF ? 크리스티안 스투아니
.
.
1961년 4월 12일.
세계 최초의 유인(有人)우주선 계획이었던 보스토크(Vostok) 계획에 뽑힌 구(舊)소련의 군인이었던 유리 가가린(Юрий Гагарин)이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비록 냉전 시대에서 미국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시도된 대단히 정치적인 프로젝트였으나, 정치와는 거리가 먼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에겐 신비로운 낭만의 일로 여겨졌다.
그리고 현재, 볼가강 유역에 자리한 사마라는 러시아의 항공과 우주산업의 최첨단을 달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는 요새로서 군사적인 요충지 정도로 여겨지던 곳이었지만, 1780년 요새 주변에 긴 제방이 쌓아지기 시작하면서 항구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 이곳에서 오늘, 월드컵 8강전 경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카테고리 2! 카테고리 2~!!”
“No.1 실탄이 단돈 600유로!!”
우루과이와 대한민국의 8강전 경기가 펼쳐질 시간이 다가오면서, 경기장 주변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입한 표를 판매하려는 암표상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과거부터 FIFA와 UEFA는 암표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을 해 왔으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테고리 4는 없습니까?”
“그건 6000 루블입니다.”
“6000 루블? 그건 너무 비싼데…….”
“그럼 딴 데서 알아보고 오시던지요. 지금 카테고리 4도 없어서 못 판다는 것 모릅니까?”
“이런.”
주머니 사정이 궁했던 러시아의 남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바지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하게 접어 두었던 지폐를 꺼내 든다.
이를 본 암표상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가방에서 카테고리 4의 티켓 한 장을 찾아 표를 구매한 남성에게 넘겼다.
“싸게 잘 산 겁니다.”
“그건 두고 봐야죠. 만약 당신보다 더 싸게 티켓을 파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안 둘 테니 그리 아쇼.”
“얼마든지. 자~ 카테고리 2!! 카테고리 2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월드컵 좌석은 카테고리(Category) 1에서 4까지로 구분된다. 숫자가 적을수록 더 좋은 좌석이며, 이번 월드컵 8강전 카테고리 1의 가격은 미화로 365달러였다.
하지만 현재, 우루과이와 대한민국전의 카테고리 1 암표 가격은 600달러를 호가한다.
대회 내내 그랬지만, 김다온을 보기 위한 축구 팬의 바람이 암표상들의 배를 불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곳곳에서 노골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사이, 경기장 뒤쪽으로 양 팀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다. 일반인들에겐 열려 있지 않은 이 공간은 오직, 관계자만이 접근할 수 있다.
삐이-
버스의 문이 열리고, 하나씩 내려서는 우루과이의 선수들을 지켜보던 경호원 중 하나가 묘한 광경을 지켜본다.
우루과이의 핵심 공격수 중 하나인 에딘손 카바니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인 거다. 경호원은 카바니가 16강 경기에서 후반 25분 교체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친 건가?’
자신이 우루과이의 승리에 베팅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경호원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는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한민국의 선수들 역시 버스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그곳에도 역시, 걸음이 불편한 남자가 있다.
16강전 승리의 ‘Unsung Hero’였던 구자철이 목발을 짚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가 다쳤다는 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양 팀 선수단에서 부상이 의심되거나 확신되는 이가 하나씩 보이는 현재, 사마라 아레나의 문이 열리고 티켓을 지닌 관중들의 입장이 시작된다.
“질서를 지켜 주세요!!!”
“티켓을 미리 꺼내 놓으세요!!!”
“밀지 마세요!! 시간은 충분합니다!!”
“한 분씩!! 한 분씩 부탁합니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마지막 준결승 진출 팀을 가르는 경기이자, 최대 41,9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마라 아레나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
우주선에서 모티브를 얻어 건설된 사마라 스타디움의 온도가 조금씩 높아져 간다.
***
【하루 전】
(게리 리네커) – BBC 스튜디오 프레젠터
“다시 특별 스튜디오입니다. 이제부터 우루과이와 한국의 경기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솔직히, 약간 의외의 결과입니다. 저는 양 팀이 팽팽하다 내다봤거든요.”
(프랭크 램파드) – BBC 월드컵 특별 펀디츠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은 분명 좋은 팀입니다. 다온, 쏘니. 어떠한 팀에서라도 주전으로 뛸 만한 선수들을 지녔으니까요. 다온은 분명한 세계 최고고, 이번 월드컵에서 쏘니보다 나은 공격수를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우려하는 건, 그들이 지금까지 너무 잘나갔다는 거예요.”
(게리 리네커)
“확실히, 한국은 여전히 이번 월드컵 유일한 무실점과 전승을 동시에 이뤄 낸 팀입니다. 그게 문제가 될 거란 뜻인가요?”
(프랭크 램파드)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월드컵과 같은 대회라면, 조별 예선에서 한두 차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전력을 떠나, 이런 거대한 국가대항전의 특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들이 지금까지 만난 상대의 전력에도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페루, 모로코, 세르비아. 루이스 수아레즈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디디에 드로그바) – BBC 월드컵 특별 펀디츠
“프랭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게리 리네커)
“당신도 우루과이의 손을 들어 줬죠.”
(디디에 드로그바)
“우루과이는 지금까지 한국이 만난 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수아레즈와 카바니는 이번 대회 최고의 공격진입니다. 그리고 우루과이의 수비는 이전 한국이 상대한 팀처럼 무모하게 라인을 끌어 올리지도 않습니다. 쏘니가 훌륭한 공격수이긴 합니다만, 공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 그는 종종 사라지곤 합니다.”
(리오 퍼디난드) – BBC 월드컵 펀디츠
“…….”
(게리 리네커)
“리오. 할 말이 좀 많아 보이네요.”
(리오 퍼디난드)
“음…… 한국. 저는 한국이 승리할 거라고 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덴마크를 지목했을 때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저는 몇 가지의 이유에서 한국의 승리를 예상합니다. 하나, 그들의 수비는 진짜예요. 저는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수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온은 모든 경기에서 상대의 왼쪽 라인을 지워 버리고 있죠. 거기에서 발생한 영향력이, 경기장 전체로 번져 나갑니다. 그리고 우루과이는 전체적으로 수비적인 팀입니다. 수아레즈와 카바니에게 공격 상당 부분을 의존 중인데, 카바니의 컨디션도 의문이 듭니다. 그가 훈련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이 크게 유리하다 보고 있습니다.”
***
.경기 시작 1시간 전
@피치 위
8강전을 준비하는 동안, 대다수의 미디어가 우루과이의 승리를 예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하나같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우루과이가 조별 예선에서 독일을 꺾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느니, 개최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빼어난 경기력을 보였다며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전술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끼워 맞추기와 말도 안 되는 추측이 전부였다.
그리고 난 그 이면에서, 우리가 세계 축구의 중심에 끼어들려 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전형적이면서도 편향된 유럽인들의 시각을 읽을 수 있었다.
흑인의 인권은 중요하지만 동양인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고, 흑인을 Black이나 Nigro라 부르면 안 되면서 칭키 아이를 유쾌한 문화로 부르고 칭챙총에 웃는 모습을 보았던 거다.
“…….”
준비를 끝마치고, 드레싱 룸을 나선다.
얼마를 걷자, 곧바로 통로가 보였다.
그리고 난 거기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 두 남자를 보았다.
아마도 기다리는 원인은 나일 것이다.
[Ay, Amigo.] [Hola. 오랜만이네.] [진짜야. 벌서 1년이 훌쩍 지났다고.] [시간은 참 빨라.] [언제나 그렇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주전 센터백 자리를 꿰찬 디에고 고딘과 호세 히메네스가, 반갑게 악수를 청해 오며 말을 걸어왔다.
평범한 안부 인사가 끝나고 나는 곧장 움직이려고 했으나, 고딘이 이런 나를 한 번 붙잡는다.
[있잖아.] [……나도 알아.] [응?]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안다고. 마르카에 말했잖아. 난 화 안 났어.] […….] [그럼, 이따가 봐. 몸 풀다 다치지 말고.] [어, 어? 그, 그래.]침묵하는 고딘과 어설프게 대답하는 히메네스를 남겨 두고, 통로를 빠져나간 내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선다.
앞쪽, 한 팬이 유니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다온!! 사인해 줘요!!] [펜 있어요?!] [오, 이런 세상에. 네! 물론이죠!!]입을 틀어막으며 감격하던 이에게서 무심히 펜을 건네받아, 대한민국 대표팀 유니폼 뒷면에다 사인을 적는다.
이번 월드컵 기간, 주최국인 러시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팔린 유니폼이 우리 대한민국의 것이다. FIFA가 공식으로 인정한 사이트에서 판매된 것만 집계했고, 외에는 더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유니폼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전범기가 적힌 유니폼과 티셔츠를 판매하려 했던 일본의 제안을 FIFA가 바로 거절해 버린 것이다.
과거였다면 일단 상품이 올라오고, 우리가 항의하면 여러 절차를 거쳐 겨우 내리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팀의 위상이, 높아진 걸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다.
“왔냐.”
“어. 쟤들 카바니 없어. 별거 아냐.”
“그래도 수아레즈가 있잖아.”
“걔는 우리가 담가야지.”
“하긴.”
경기 하루 전인 어제, 우리는 선수끼리 따로 미팅을 진행하며 전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루이스 수아레즈만큼은 확실히 잡자며 의견을 모았다. 대진 상대와 편파 판정 운운했던 입을 다물게 하자고 했다.
삼파올리 감독님 역시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를 치르게 해 주자며 힘을 보태셨고, 두리 형님은 한참 전부터 전투태세였다.
“…….”
웜업 도중, 난 하프라인 너머를 쳐다봤다.
팔을 빙빙 돌리던 루이스 수아레즈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0.1초 만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양팔을 빙빙 젓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그와 내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고 보는 게 옳다.
나는 수아레즈의 별명이 된 ‘El Pistolero’ 셀레브레이션을 좋아했고, 그 역시 내가 무릎을 꿇고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는 모습을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기도 했다.
우린 특별히 서로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질문을 받을 때가 되면 늘 좋은 이야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된 건, 수아레즈가 나의 조국을 모욕했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지금은 월드컵.
가장 애국심 짙은 스포츠 대회다.
수아레즈의 인터뷰와 미디어의 예측이 커다란 동기부여로 느껴지고 있는 지금, 나는 굳이 감정적인 모습으로 경기에 나서려 하고 있다.
물론, 내 머리는 얼음보다 더 차가운 상태다.
‘감정은 경기가 끝난 뒤에 털겠어.’
90분 동안 이어질 축구가 끝난 뒤, 난 수아레즈에게 유감이었다고 말할 순간을 고대하는 중이다.
***
.경기 시작 20분 전
@대한민국의 드레싱 룸
4년 전, 프랑스를 제압했던 대한민국의 도전은 월드컵 8강에서 끝이 났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8팀 중 하나가 되었지만, 호르헤 삼파올리는 늘 그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만약 8강 상대가 독일이 아니었다면, 더 높은 곳에 올라설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부터, 호르헤 삼파올리는 4년 뒤에 있을 러시아 월드컵을 바라봤었다.
실험과 시도가 아닌 검증에 집착했고, 자신의 철학을 이해시키는 대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스쿼드를 꾸리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분야는 달리기와 수비였고, 그것을 만족하지 못한 재능 중 대표적인 선수인 이승우의 월드컵 명단 탈락은 삼파올리의 축구를 단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었다.
축구 감독이 된 이후, 삼파올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충실한 4년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우리의 도전은, 4년 전엔 여기까지였다.]“…….”
[물론 이 정도도 대단한 성과다. 4년 전에도 또 지금도, 우린 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8개의 팀 중 하나가 되었다. 대진운? 그건 멍청한 소리다.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너희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선수들의 앞에서, 삼파올리가 이번 대회 중 가장 열정적인 팀 토크를 내뱉는다.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 부임 이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칠레 면적의 1/7.6밖에 되지 않는 땅덩어리에서, 수많은 좋은 선수가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건, 지도자의 수준이 낮다는 점이었다.
세상의 어떠한 분야도, 올바로 된 선생님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
○○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불린 이들은 해당 분야의 선구자이자, 동시에 좋은 선생님이기도 했다.
한데 한국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교육 환경 속에서도, 계속해서 빅리그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들을 배출했다.
호르헤 삼파올리는 그것을 한때 이해해 보고자 했지만, 오래전 그것을 포기하고 지금은 이런 문장으로 한국의 특수한 축구 환경을 설명하고 있었다.
바로.
[너희는 재능이 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녀석들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한 명의 축구 선수를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지.]상식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삼파올리는 대한민국이 축구에 재능을 지닌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
수많은 자본과 그것을 이용해 전 세계의 명장들을 섭외코도, 중국은 아시아 지역 예선조차 통과하기 버거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역시, 과거 한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프라와 투자를 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너희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자신감이다. 물론, 다온. 너는 해당하지 않는다.]“쿡쿡쿡쿡.”
“??”
삼파올리의 이야기에 바로 반응하는 김다온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대한민국의 선수들이었지만, 이내 통역의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호르헤 삼파올리는 잠깐 멈췄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너흰 스스로를 구속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낮췄지. 그건 겸손과는 달랐다. 더구나 축구 선수라면, 피치 위에서는 겸손할 이유가 없다.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 피치를 나섰을 때, 너희는 전 세계의 어떠한 팀이라도 박살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바로 지금 너희의 모습처럼 말이다.]유럽 징크스.
남미 징크스.
아프리카 징크스.
사실상 같은 아시아권 외의 팀에 약했던 것들을 징크스라는 한 단어로 규정해 온 대한민국 대표팀이었지만, 지난 8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대한민국은 유럽(포르투갈/세르비아), 남미(페루), 아프리카(모로코)의 팀을 차례대로 박살 냈다.
특정한 스타일을 지닌 팀에 약하다거나 하는 말 따위는 이제는 한국과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4년 전 멈춰 섰던 곳과 같은 단계에서, 호르헤 삼파올리는 자신이 대한민국의 선수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를 꼭 말해 주고 싶었다.
[너희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녀석들 중에서 최고다. 그리고 이 팀 역시, 내가 지금까지 지도한 팀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 비록 난 너희를 만나기 이전 변방의 지도자였지만, 너희 덕분에 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고마움을 평생 동안 간직할 생각이다. 너희는 언제든 내게 전화를 걸어도 되는 사람들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도 언제든 편하게 걸어와도 된다. 우린 감독과 선수지만 동시에 친구이기도 하며, 그리고 전장에서 피를 나눈 전우다!]“…….”
[우리는 4년 전 정확히 이 자리에서 패했다!! 당시 상처받은 너희를 만나기 위해 오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해 왔고, 드디어 이곳에 섰다!! 4년 전 너희의 기억에 손을 뻗어라!! 그리고 그들을 일으켜!! 오늘 우린 이곳에서!! 월드컵 4강이란 역사를 쟁취한다!! 날 자랑스럽게 해라!! 나 역시 너희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VAMOS!! 우린 ONE TEAM이다!!]근육질의 팔을 휘두르며 포효하는 호르헤 삼파올리의 모습에, 대한민국의 선수들은 쌓인 피로를 잊고 함께 격렬한 반응을 보여 줬다.
그런 이들의 얼굴엔, 월드컵 8강전에 임하는 긴장감은 찾아보려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ONE TEAM.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대한민국 대표팀은, 그들보다 더 오랫동안 같은 감독 아래에서 축구를 해 온 우루과이를 상대로 진정한 ONE TEAM이 누구인지 가리려 하고 있다.
“파이티잉-!!!”
“자, 이기자!!!”
“박살 내 버려!!”
16년 전의 기적을 재현하려는 대한민국.
이제 그들이 드레싱 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