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42)
907화 One Team (37)
리오넬 메시의 최고 시즌을 두고, 세간(世間)의 의견은 크게 두 개로 나뉘고 있다.
역대 최다 득점(73골)과 최다 공격포인트(102개)란 위업을 달성한 2011/12 시즌과 개인 기록은 조금 떨어지나 트레블을 달성하며 완숙한 기량을 선보인 2014/15 시즌이 바로 그것이다.
“…….”
.
.
.전반 07분
잉글랜드 0 : 0 대한민국
단단해 보였던 잉글랜드의 수비를 김다온이 와해(瓦解)해 버렸다.
널찍하게 열린 공간에서 패스를 받아 든 권창훈이 좋은 퍼스트터치를 가져가며, 몸통을 골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소리쳤다.
“HEY–!!!”
2011/12 시즌의 리오넬 메시는 말 그대로 파괴적이었다. 가장 완벽한 득점원으로서, 모든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했다.
수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만큼, 그저 손을 모아 기도하며 컨디션이 나쁘길 바라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의 사퇴 이후, FC 바르셀로나의 전술 시스템은 분명히 흔들렸다. 미디어에 의해, ‘티키타카’로 표현되던 방식의 축구도 해부되었다.
펩 과르디올라가 떠나고 3년 동안 빅이어를 차지한 것은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이었고, 2011/12 시즌을 기억하는 팬들은 메시도 결국은 사람이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3연패가 예상되던 2014/15시즌, 리오넬 메시는 스스로 전술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것에 대한 비중을 조금 줄이는 대신, 아래로 내려와 빌드업에 가담하거나 때로는 직접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MSN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것에 힘을 보탰다.
오른쪽에 수비수를 모아 두고 반대편에서 오버랩을 시도하는 조르디 알바에게 보태 주는 전환 패스는, 이해 리오넬 메시의 새로운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했다.
실수를 거의 범하지 않으며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볼을 빼앗기지 않았던 이때의 메시는 마치, ‘축구의 신’ 혹은 ‘축구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의 김다온이 바로 그렇다.
“!!”
{“우-!!”}
.
(가이 모브레이) – BBC 코멘테이터
“먼 거리에서 걷어찬 퀀의 날카로운 슈팅이었습니다! 잉글랜드에 운이 따릅니다.”
.
과감했던 권창훈의 슈팅이 크로스바 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고, 안도하는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린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손을 휘저으며 선수들의 포지션을 조정한다.
3-5-2를 사용한 잉글랜드에 있어, 조금 전 권창훈이 가져간 공간은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아니, 김다온이 스스로의 힘으로 허용해서는 안 될 공간을 잉글랜드가 허락하도록 만들었다.
입술을 깨문 사우스게이트는 머리를 긁적이고 목을 긁는 등. 고심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줬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로군.’
최고 수준의 선수가 있는 팀을 상대할 때면 늘 그랬지만, 상수(常數)를 둬야 한다는 것 자체가 감독에게는 무척 껄끄러운 일이었다.
특히 자신이 가진 상수의 값보다 상대가 지닌 값이 더 크다면, 전술적인 폭이 크게 제한된다.
게다가 축구에선 상수가 곧 변수(變數)가 되기도 했기에, 그러한 부분까지 고려하면 팀의 운용법 자체가 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된다는 건, 상대가 먼저 수를 둔 뒤에야 반응한다는 뜻이었다.
자연히 주도권은 넘어가고.
“델리!! 뛰라고!!!”
“…….”
이리저리 휘둘릴 가능성은 커진다.
“What the…….”
수비를 소홀히 한 델리 알리로 인해, 잉글랜드의 오른쪽 수비에 다시 문제가 생긴다.
이러다 할 압박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기성용이 활발히 움직이며 빌드업을 쌓아 나갔고, 얼마 안 되어 손흥민이 왼쪽 깊숙한 공간에서 패스를 받아 들었다.
앞을 가로막은 카일 워커가 자세를 잔뜩 낮추며 손흥민과의 1:1을 준비한다.
그러다 곧 정운의 오버랩을 따라 움직였고, 대신 손흥민을 키런 트리피어에게 맡겼다.
자연스러운 스위치가 이뤄지는 찰나, 오른발을 살짝 들고 타이밍을 재던 손흥민이 바깥 방향으로 볼을 차 놓았다. 그러곤 바로 다리를 휘둘러 반대편으로 볼을 보냈다.
빠르고 날카롭게 휘어진 축구공이 잉글랜드의 페널티 박스 안으로 향하고, 볼을 먼저 따내려는 황의조와 존 스톤스의 경합이 이뤄진다.
그리고 그 앞쪽에서, 조던 픽포드가 뛰어나왔다.
퉁-!
주먹 쥔 양손을 쭉 뻗은 픽포드가 펀칭으로 손흥민의 크로스를 바깥으로 쳐 내고, 높이 떠오른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서 정우영과 조던 헨더슨이 다툼을 시작한다.
다시 볼을 페널티 박스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정우영과 최대한 골대 멀리 걷어 내고자 하는 조던 헨더슨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진 못한다.
툭-
“?”
“?”
머리가 아닌 어깨를 맞은 공은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볼이 굴러가는 위치를 찾는 정우영과 헨더슨이 착지 후 재빨리 고개를 움직이는 사이, 황의조와 함께 다시 밖으로 빠져나오던 존 스톤스가 황급히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친다.
“THERE!!!!”
“?!”
축구공이 향하는 곳.
본래 저곳은 아무도 없거나 가까운 누군가가 커버하러 움직일 법한 위치였지만, 모습을 나타낸 이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다온이었다.
퍽-!!!!
관중들의 열기로 시끄러운 경기장. 더구나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벤치였건만, 사우스게이트는 선명한 소리를 들었다.
그에, 절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Oh, No.”
김다온의 오른발에 맞은 축구공은 섬광(Flash)처럼 뻗어 잉글랜드의 골대로 향했다.
그 경로에 서 있던 해리 매과이어. 그는 순간 밀려오는 두려움을 이겨 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여 얼굴이 있는 곳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잠시 뒤.
퍽-!!
“윽!”
축구공이 발등에 맞았을 때와는 다른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전에는 겪어 보지 못했던 종류의 고통이 손목을 타고 짜릿하게 번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매과이어가 피치에 쓰러졌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헤~~~~이!!!”
“페널티!!!”
그건 페널티 킥을 주장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주심을 향한 커다란 외침이었다.
***
(파비오 카레사) – 이탈리 Mediaset 코멘테이터
“옳지 못한 판정입니다. 이건 페널티가 맞습니다. VAR이 있는데, 그것을 돌려 보지도 않는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다시 한번 느린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분명히 해리 매과이어가 손으로 이를 막았습니다.”
.
.
(올리버 칸) – ZDF 월드컵 특별 해설위원
“이럴 거면 왜 VAR을 두었는지 의문입니다. 월드컵 내내 그랬습니다. 부당한 판정들이 내려지고 있고, 수혜를 입는 쪽은 주로 강한 팀입니다.”
.
.
(안정환) – MBC 해설위원
“이건 아니죠! 주심이 보지 못한 것도 문제인데, VAR은 뒀다 도대체 어디에 쓴답니까? 다른 경기도 아닌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이런 판정은 정말 아닙니다.”
.
.
.전반 12분
잉글랜드 0 : 0 대한민국
이번 경기의 휘슬은 터키의 쥐네이트 차크르가 잡았다.
본래 유럽 팀의 경기에 유럽 출신의 심판을 배정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터키는 정치/문화적으로 중립에 더 가까워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았다.
실제로, 쥐네이트 차크르는 조금 전 김다온의 슈팅에 해리 매과이어가 맞는 장면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했다.
타이밍 좋게도 불쑥 나타난 해리 케인이 시야를 절묘하게 가려 버렸기 때문이다. 반대 사이드에 있던 부심 역시 마찬가지였고, 지금 그 이야기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익-
– 내 각도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
“전혀?”
– 그래. 너무 많은 사람이 앞에 있었거든.
“젠장.”
– VAR 쪽은?
“반응이 없어.”
– 그럼 원칙을 따라야지.
“…….”
같은 터키 출신인 타릭 옹군(Tarık Ongun)은 차크르에게 원칙을 따르라고 이야기했다.
주심의 기본적인 원칙.
본 대로 판정할 것.
만약 보지 못했다면, 실수는 나중에 받아들이고 우선 경기를 진행할 것.
쥐네이트 차크르는 자신에게 항의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모습과 종합적인 분위기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판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차크르는 다시 한번 교신을 시도한다.
“Wait a second.”
손바닥을 보이며 먼저 양해를 구한 뒤, 귀에 손을 가져간 차크르가 VAR 쪽에 질문을 던진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치익-
– 뭐, 아무 일도…….
“진짭니까?”
치익-
“…….”
쥐네이트 차크르는 이미 조별 예선에서 VAR로 인한 판정 시비가 있었던 경기를 맡았었다.
크로아티아가 이란에 2:0 승리를 거둔 시합이었는데, 경기가 끝난 후 차크르는 VAR 그룹이 자신에게 잘못된 판정을 내리도록 이야기를 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란의 수비수가 파울을 범하기 전 먼저 크로아티아의 공격수가 유니폼을 잡아챘는데, 그걸 쏙 빼 버리고 뒤의 상황만을 전달했던 것이다.
결국, 모든 비난은 차크르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치익-
– 다시 한번 봤는데, 문제없습니다.
“선수가 지금 손을 치료받고 있는데 말이오?”
– 넘어지면서 잘못 짚었는가 보지.
“추측입니까? 본 걸 말하는 겁니까?”
– ……본 걸 말하는 겁니다.
“확실히 말이오? 제가 직접 보게 해 주시죠.”
– 아니. 그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 시행된 VAR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주심이 영상을 보기 위해서는 VAR 쪽이 허락을 해 줘야만 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주심은 어떤 경우에도 직접 화면을 확인할 수 없다.
VAR에 배정된 13명의 심판 중 무려 9명이 유럽인이라는 점 역시도 주요 비난의 대상이었다. 남미가 셋 그리고 아시아가 하나고, 북미와 아프리카는 아예 제외됐다.
– 얼른 진행하시죠.
치익-
딸깍-
“…….”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차크르로서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손을 휘저으며, P.K가 아님을 명확히 했다.
.
(이영표) – KBS 해설위원
“단순히 오심이라고만 말하기엔, 이번 대회에서 VAR로 피해를 본 쪽은 늘 비(非)유럽 팀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 페널티를 주어야 하는 게 맞고, 해리 매과이어에게도 경고를 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용광) – KBS 캐스터
“아…… 한국으로서는 뼈아픈 오심입니다.”
.
여전히 누워 있는 해리 매과이어에게 다가간 쥐네이트 차크르가 잉글랜드 스태프에게 일단 선수를 먼저 밖으로 옮겨 줄 것을 지시했다.
현재 경기는 잠깐 중단된 상황인데, 매과이어의 손에 맞고 흐른 볼을 잉글랜드가 걷어 내 한국의 스로인이 되었다.
고개를 끄덕인 잉글랜드의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매과이어를 일으켜 세웠고, 그때 차크르의 곁으로 다가선 김다온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P.K를 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안하네. 시야가 가려 볼 수 없었어.”
“네. 그러실 분이 아닌 걸 잘 알아요.”
“VAR 쪽에서도 아니라고 하니, 어쩔 수가 없네.”
“그럼 받아들여야죠. 오심도 경기의 한 부분이니까요. 그렇죠?”
“…….”
쥐네이트 차크르와 김다온은 챔피언스 리그를 계기로 인연을 쌓아 왔다.
심판으로서 차크르는 김다온의 수비 솜씨와 인성을 높이 샀고, 김다온 역시 2001년 수페르리가에서 처음으로 심판을 맡은 차크르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정황상 명백해 보이긴 하는군.”
“하하. 네. 명백하죠.”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 중인 해리 매과이어는 응급처치로 손에 붕대를 감았다. 인대에 손상이 왔을 수도 있고, 어쩌면 뼈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여느 때라면 바로 교체가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무대가 무대이니만큼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뛰게 하려는 것 같았다.
‘후우~ 또 욕을 먹겠군.’
삑-!
자신의 고달픈 미래를 예견한 차크르가 휘슬을 부는 걸 시작으로, 한동안 멈췄던 경기는 한국의 스로인으로 재개된다.
피치 위 감정은 조금 격양된 상태다.
***
.전반 17분
잉글랜드 0 : 0 대한민국
준결승 이전까지 우린, 심판 판정으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쉬웠던 판정이야 있었지만, 결국 그게 승패와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해리 매과이어의 명백한 핸들링이 아무 일 없이 두루뭉술 넘어갔을 때, 나는 그걸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결과가 바뀌지도 않을뿐더러, 나쁜 감정을 품어 봤자 단점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더.
“민재!”
“…….”
쿨(Cool)함의 끝을 보여 주자고 생각했다.
현재 내 머리는 놀랍도록 차갑다.
잔뜩 열이 난 민재와 다른 동료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민재!! 김민재!!”
불필요한 동작을 가져가며 좋지 않은 매너를 선보인 민재에게 걸어가, 녀석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그러곤 똑바로 눈을 마주 보며, 진정하라고 말했다.
사실 직전 상황은 차크르가 옐로카드를 줘도 할 말이 없었는데, 아까와 상황 때문에 보상 판정을 한 것 같다.
“진정해. 화는 경기 끝내고 내도 돼.”
“…….”
“말려들지 마. 뻔히 다 알고 있잖아. 왜 그래? 괜찮아. 진짜 괜찮으니까. 다시 집중해서 하자. 알겠지?”
“……네.”
“그래, 인마.”
툭툭-
고개를 끄덕이는 민재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들긴 후, 난 강하게 손뼉을 두들기며 팀 전체에 목소리를 높였다.
“뭐 해, 진짜!!! 결승 안 갈 거야?!?!”
P.K가 선언되지 않은 이후, 우리는 피치 위에서 조급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득점 하나를 도둑맞은 기분이라 그렇겠지만, 중요한 건, P.K가 골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거다.
픽포드가 그걸 막아 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오심이 승패를 결정지었다고 말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일단 눈앞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뒤에 감정을 털어 내는 게 옳다.
만약 화를 내서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모르지만, 말했듯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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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 SBS 해설위원
“김다온의 파이팅이 참 좋네요. 역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지금 더 중요한 게 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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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역시 김다온 선수가 팀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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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그렇죠. 리더는 이럴 때 해 줘야죠. 주장은 기성용 선수가 맡고 있습니다만, 사실상 리더는 김다온 선수거든요? 지금처럼 열받아 있을 때, 리더가 그걸 진정시켜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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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이 나오기 전까지, 경기의 주도권은 우리가 꽉 쥐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패스와 판단의 실수가 잦아지면서 잉글랜드가 어느 정도 기세를 가져갔다.
델리 알리나 제시 린가드 같은 기분파가 꽤 포진해 있는 만큼, 잉글랜드가 계속 기세를 끌어 올리도록 두는 건 옳지 않다.
‘한 번 꺾어 줘야겠어.’
이러한 상황이라면, 굳이 잉글랜드 팀 전체를 생각해서 플레이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팀으로서 상대를 봐야 하지만, 현재 내 목적은 ‘기세를 꺾는 것’이다.
한두 명을 삐걱거리게 만드는 것만으로, 목표(Goal)를 향해 나아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너야, 델리.’
지난 몇 분, 기분이 좋아진 델리 알리는 우리의 앞에서 특유의 개인 기량을 보여 주고 있었다.
타고난 운동능력에 바탕을 둔 개인 기술을 이용. 간결하면서도 기발한 동작을 가져가며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압박을 벗겨 냈다.
그리고 그렇게 델리 엘리의 기술이 통할 때마다, 잉글랜드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좀 거슬려서 말이지.’
축구에서 11명의 팀을 구성할 때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부분은 ‘선수가 경쟁하기 충분한 기량을 갖추었는가’와 ‘부지런함과 감독의 지시를 따르는 성향을 지녔는지’의 여부였다.
그것을 기반으로 명단이 만들어지고, 만약 실력이 비슷하다면 감독이 원하는 방향성에 맞춰 빈자리가 채워진다.
현재 델리 알리는 잉글랜드에 있어 부족한 창의력과 오프 더 볼을 채워 주는 역할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팀의 분위기를 끌어 올려 흥을 돋우는 것이었다.
일종의 개성으로 봐야 할 건데, 델리 알리의 플레이가 풀리기 시작하면 그 팀은 전체적인 레벨이 높아진다.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서, 나는 잉글랜드 선수들 역시 흥을 느끼며 레벨을 높여 가는 중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파악-!
“악-!!”
삐-이!!
나는 한 번 더, 쥐네이트 차크르가 가지고 있을 마음의 짐을 쓰기로 했다.
잉글랜드의 빌드업이 하프라인 앞쪽 델리 알리에게 이어진 순간, 재빠르게 접근한 뒤 최대한 실수처럼 보이게끔 노력하며 알리의 발등을 밟았다.
당연히 파울이 불렸고, 알리는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져 발을 부여잡고 뒹굴었다.
아플 것은 알고는 있지만, 솔직히 저 정도로 해야 할 만큼 강하게 스터드로 찍었냐면 그건 아니다.
‘조금 미안하기는 해.’
늘 그렇지만, 의도적인 파울은 양심에 찔린다.
그러나 이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알리를 짜증 나게 만들어, 녀석이 다시 경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거칠게 어필하는 잉글랜드의 선수들을 뿌리치며, 내게로 온 쥐네이트 차크르가 단호히 손을 가로저으며 말한다.
“That`s it! That`s Enough!!”
“…….”
이제, 아까의 오심은 완전히 없는 일이 됐다.
“한 번만 더 이러한 짓을 하면, 그땐 용서하지 않겠네! 무슨 뜻인지 알겠나?!”
“Yes, Sir. 제 실수였어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쥐네이트 차크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젓자, 이게 끝이라는 것에 당황한 잉글랜드 선수들이 달려들어 다시 어필을 시작한다.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왜 경고를 안 주는 건데??”
“완전한 고의였다고!!”
흥분하는 조던 헨더슨과 제시 린가드 등을 보며, 뒤로 물러서던 내가 입으로 휘파람 소리를 크게 냈다.
휘익!!!
“?”
“이제 비긴 거야!! 무슨 뜻인지 알잖아??”
“What the…….”
미간을 팍 찌푸린 제시 린가드가 내게 달려들려던 순간, 해리 케인이 그것을 저지했다. 저 남자는 내가 일부러 알리의 발등을 밟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유 역시 말이다.
흥민이 형의 말대로, 케인은 그런 남자다.
하지만 현재 내가 주목하고 있는 건, 그런 케인의 충고를 들은 델리 알리의 반응이다.
‘……나이-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케인이 뭔가 알리에게 이야기하자 알리는 인상을 찌푸린 채 올려다보며 억울하다는 듯 뭔가를 말했다.
저런 상태라면, 냉정함을 갖긴 어려울 거다.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조금 더 해 볼까나.’
조직력을 강조하는 팀일수록, 하나의 연결고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전술적으로 중요한 일이 된다. 공격수라면 그냥 그것을 박살 내 버리겠지만, 수비수인 나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작은 부분을 건드려 커다란 균열을 일으키는 것.
그건 어쩌면 수비수로서 하나의 팀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난 이미.
‘재미있겠어.’
충분히 중독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