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47)
912화 One Team (42)
2008/0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스널 FC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경기에서 기록한 득점 장면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 됐다.
당시 수세에 몰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호날두의 힐패스로부터 시작해, 박지성의 돌파와 훌륭했던 패스. 그리고 웨인 루니의 어시스트에 이은 호날두의 득점으로 불과 10초 남짓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득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4/05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이번에는 AC 밀란이 안드레아 피를로-카카-에르난 크레스포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역습을 완성했다.
외에도 수많은 클럽 혹은 국가가 몇 개의 시즌에 걸쳐,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힐 장면들을 연출해 왔다.
역습(逆襲).
영어권에서 카운터(Counter)로 불리는 이것은 축구에서 득점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 줬다.
.
(JP 델라카메라) – U.S Fox Sports 캐스터
“헨더슨. 바로 볼을 전방 깊숙하게 찔러 넣습니다. 하지만 킴(민재)이 헤더로 먼저 걷어 냅니다. 떨어지는 볼은 다온에게. 알 리가 달라붙지만, 간단하게 그를 제압해 버립니다.”
.
.
(쟝 위브-베헝) – 프랑스 BeiN Sport 코네테이터
“오-! 두 차례의 수준 높은 기술입니다. 린가드에 이어 알리마저 다온이 옆으로 떨어트려 놓습니다.”
.
.
(가이 모브레이) – BBC 코멘테이터
“다온이 빠져나갑니다. 좋지 않습니다.”
.
준결승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장 취재에 나설 수 있었던 레녹스 베이커가 자신도 모르게 취재석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운다.
뒤쪽에 있던 ‘텔레그래프’와 ‘가디언’의 기자가 짜증을 냈지만, 이번 월드컵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은 ‘맨체스터 이브닝’의 수석기자는 그러한 목소리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는 그저,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Go!’
.
(정지현) – SBS 해설위원
“네- 좋습니다!”
.
제시 린가드와 델리 알리를 따돌린 김다온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당장에야 조던 헨더슨이 전부였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리버풀 FC의 미드필드가 파울로 끊을 생각으로 김다온에게 접근하지만, 그가 뭔가를 해 보기도 전 축구공이 먼 곳으로 나아갔다.
그곳엔 잉글랜드가 가장 경계하던 공격수인 손흥민이 있었고, 조던 헨더슨은 순간 자신을 신경 쓰게 했던 선수를 바라보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헨더슨이 몸을 돌린 사이, 왼쪽 열린 공간으로 패스를 보낸 김다온이 계속 스프린트를 이어 나간다.
‘응? 이런!’
자신이 발을 멈춰선 안 되었음을 뒤늦게 생각한 헨더슨이 다시 발을 움직여 보지만, 40m도 전부터 스프린트를 시작했던 김다온의 속도를 따라붙기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헨더슨은 일단 수비 진영으로 열심히 달려드는 것을 택했고, 느닷없이 시작된 한국의 역습에 긴장하며 볼이 머무는 곳을 주시했다.
현재 손흥민의 앞은, 전(前) 토트넘 홋스퍼의 수비수인 카일 워커가 막아서고 있다.
.
(가이 모브레이)
“쏜이 달려 나가고 워커가 그 앞을 가로막습니다.”
.
카일 워커는 이번 월드컵 준결승을 준비하며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를 보여 줬던 남자다.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선수 중 두 사람과 같은 팀에서 뛰어 본 만큼, 그들의 실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일 워커가 아는 손흥민은 양쪽 발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며, 이를 심리적 무기로 사용할 만큼의 역량을 갖춘 영리한 선수라는 것이었다.
지연에 초점을 두고 중심을 뒤쪽으로 뺀 카일 워커가 몸을 살짝 숙이자, 습관적인 것에 가까운 크로스오버(Cross Over)를 시도한 손흥민이 왼발 앞쪽으로 축구공을 길게 차 놓는다.
‘역시.’
예상의 범주 내에 있던 손흥민의 동작에, 약간의 안도를 한 카일 워커가 수비 동작에 들어간다. 그는 어렵지 않게 몸을 돌려세우며, 속도 경쟁을 시작했다.
비록 상대가 PL. 나아가 세계를 통틀더라도 가장 빠른 공격수 중에 하나라곤 하지만, 카일 워커 역시 속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식의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다.
“?!”
“…….”
클럽에 이어 대표팀에서도 적으로 만나는 예전 동료와의 1:1 대결을 시작하며, 능숙하게 다음 동작을 가져간 카일 워커가 어깨를 가져가는 것에 성공한다.
자신의 경험대로라면, 지금과 같은 동작에 상대의 속도가 빠르기 죽었어야 한다.
한데 의외로, 손흥민은 단단하게 버텨 낸다.
‘뭐?’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카일 워커가 됐다.
어깨를 먼저 집어넣은 후 상대를 밀어낸다 여겼지만, 생각보다 더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자 달려 나가던 추진력과 충돌을 일으키며 발이 엉키고 말았다.
“!!”
쿵-!
손흥민을 저지해 줬어야 할 워커가 피치 위에 고꾸라지고, 이를 목격한 잉글랜드의 벤치는 설마 하던 일이 펼쳐지려고 한다는 생각에 저마다 손을 뻗으면서 목청을 높였다.
“헤—이!!!!”
“누가 좀 막아!!!”
“파울이야!!”
각자의 시각을 담은 목소리가 그라운드 위에 울려 퍼지는 사이, 카일 워커를 제압하는 것에 성공한 손흥민이 속도를 더욱 붙여 나간다.
현재, 그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잉글랜드 팬들의 입은 다물어지고, 침묵하던 한국 팬들의 목소리가 다시 그라운드에 쏟아져 내렸다.
{“-!!!”}
{“-!!”}
최선을 다해 골대로 달려드는 것 말고는 다른 수비를 하기 어려운 잉글랜드 대표팀.
런던 토박이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레녹스 베이커는 이 같은 장면을 보며 위기를 느껴야 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정신은 폭발적인 속도로 뛰고 있는 한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측면이 뚫리면서 손흥민을 막아야 했던 존 스톤스가 커버에 들어간 사이. 본래 그가 있던 위치로 뛰어드는 김다온이 레녹스 베이커의 시선을 붙들고 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김다온이 포켓(Pocket) 한복판에 접어든다. 그리고 안쪽을 흘끔 바라본 손흥민은 왼발을 이용, 축구공을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굴려 보낸다.
팡-
존 스톤스가 크로스를 저지코자 왼발을 쭉 뻗어 보지만, 다급했던 탓인지 거리재기에 실패한다.
“!!”
그의 가랑이 사이로 축구공이 통과되고, 레녹스 베이커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다.
모든 장면.
모든 소리.
심지어 누군가의 것인지도 모르는 싸구려 향수가 코를 찔러 오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감각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을 세포 하나하나에 깊숙이 새기고 있다.
그리고 잠시 뒤, 레녹스 베이커의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들이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
레녹스 베이커는 축구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역습 장면들을 알고 있다. 다른 위대한 득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 역시 인터넷상에 존재한다.
축구와 처음 사랑에 빠진 후부터, 그는 조금이라도 유명한 모든 장면을 영상을 통해 섭렵해 왔다.
그리고 취재와 기사를 쓰는 일이 생업(生業)이 된 후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영상이 아닌 현장에서 생생히 지켜볼 수 있는 행운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레녹스 베이커는 한 소년과 만났고, 런던과 잉글랜드에 국한되었던 그의 삶은 독일, 브라질, 스페인 등지로 뻗어 나가게 되었다.
어느덧 7년.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흐른 현재, 레녹스 베이커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독신주의자를 자처하던 자신의 곁에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들이 생겨났고, 10대 시절부터 품고 있던 런던 제일주의는 이미 오래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언제나 식당과 마트가 가까운 아파트를 선호해 왔지만, 지금 그의 집은 마트까지 차를 타고 15분을 가야 하는 맨체스터 시내 외곽에 자리를 잡고 있다.
7년은, 한 남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어떠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태양과 달이 하늘에 번갈아 떠오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삶의 어떠한 것들은 늘 같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꿔 놓는 시간이라는 존재조차, 그것들을 다르게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또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니. ‘아직은’ 변하지 않았다.
.
(배정세) – SBS 캐스터
“손흥민! 손흥민!!”
(정지현)
“이여어어어어어-!”
.
손흥민의 땅볼 크로스가 향하는 곳으로, 현재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뛰어들고 있었다.
한국의 페널티에어리어 바로 앞에서부터 스프린트를 시작해 잉글랜드의 페널티스폿까지 달려온 김다온과 잉글랜드의 수비수 해리 매과이어, 골키퍼 조던 픽포드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먼저 접근을 포기한 쪽은 조던 픽포드였다.
‘늦었어.’
앞으로 더 나아가는 일이 좋지 않은 판단이라고 생각한 픽포드가 발을 멈춰 세우고, 살짝 뒤로 물러서며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고자 자세를 낮췄다.
볼의 흐름과 거리로만 보았을 땐 해리 매과이어가 좀 더 유리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야 했다.
.
(안정환) – MBC 해설위원
“줘야죠! 안에 김다온이 있어요!!”
.
하프 타임 때 맞은 진통제로 감각이 무디어진 팔을 휘두르며, 해리 매과이어가 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오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잉글랜드 수비수의 머릿속은 지금, 상대보다 먼저 볼에 도달해 밖으로 멀리 걷어 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팍, 팍, 팍, 팍.
“…….”
경기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해리 매과이어는 월드컵 준결승 무대에 섰다는 생각에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축구 선수가 꿈꾸는 월드컵 결승까지 단 한 걸음만이 남은 데다가, 28년 만에 조국 잉글랜드를 준결승으로 이끌면서 미디어로부터 온갖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게다가 준결승의 상대는 한국.
너끈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아무리 지난 8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 줬다고는 하나, 해리 매과이어의 생각에 한국은 여전히 아시아에 위치한 변방의 팀 이미지에 가까웠다.
PL에서 뛰고 있는 김다온과 손흥민만 잘 막아 낸다면, 힘으로 한국을 찍어 누를 수 있다고 믿었다.
전형적인 잉글랜드 중심의 사고.
축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셰필드(Sheffield)에서 태어난 해리 매과이어는 언제나, 축구 종주국에 속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남자였다.
그랬던 그였기에, 전반전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팔의 바깥쪽을 이루는 자뼈에 실금이 갔고, 슈팅을 정면으로 막아 낸 오른손 손바닥의 근육과 오른쪽 손목 인대 역시 망가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또 당할까 봐.’
잉글랜드의 헤드 팀 닥터로부터 최소 3주의 재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직후, 해리 매과이어는 눈물을 삼키며 팀에 자신의 교체를 요구했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후반전을 소화하다, 결국 팀의 발목을 붙잡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 사정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스태프에 설득된 해리 매과이어는 진통제를 주사한 뒤에 후반전을 뛰기로 결정을 내렸다.
분전(奮戰).
그리고 투혼(鬪魂).
이 두 가지 단어가 딱 어울리는 모습의 해리 매과이어가, 두려움 없이 볼을 향해 몸을 집어 던진다.
“흡-!”
촤아아악-!
축구공을 향해 몸을 날리며 다리를 뻗을 때만 해도, 매과이어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흰색과 검은색의 축구화가 나타나더니, 공을 본래 있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가져가 버렸다. 심지어 그 축구화는 화려한 춤까지 췄다.
“??”
{“우오오오-!!!!”}
빨간색 양말이 해리 매과이어의 눈앞에서 빙그르르 돌아가고, 그대로 지나치게 되어버린 잉글랜드 수비수는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워졌다고 믿었던 축구공과의 거리는, 육중한 그의 몸이 만들어 낸 가속으로 인해 다시 멀어져 가고 있다.
‘이건 또 대체 무슨…….’
당황하며 슬라이딩을 푼 해리 매과이어가 잔디 위에 미끄러지고, 다시 일어서고자 몸을 뒤튼 그가 고개를 볼이 있다고 믿는 곳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거기엔, 볼을 발아래에 둔 김다온이 있었다.
그 앞을 가로막는 조던 픽포드.
모두가 침묵하고 멈춰선 이 순간, 오직 대한민국의 풀백과 잉글랜드의 골키퍼만이 수억 명이 지켜보는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
아마도 전에 몇 번 이 말을 했을 것이다.
축구란, 참으로 기묘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그저 내가 조금 짓궂은 게 아닐까라고.
흥민이 형의 크로스가 이쪽으로 향해 오고 해리 매과이어가 저 옆에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나의 머릿속은 이전 위기 상황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었다.
케인과 래쉬포드에게 공간을 허락하고, 빈 곳으로 뛰어드는 바디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그때를 말이다.
당시 바디는 다이렉트로 슈팅을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내 태클에 막힐 조금의 가능성조차 피하고자 볼을 한 번 접어 두는 선택을 가져갔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청용이 형의 수비 가담으로 잘못된 판단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그 변수가 아니었다면 제이미 바디가 오늘 경기의 영웅이 되었을 거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와중에도, 바디와 똑같은 선택을 해 잉글랜드를 무너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가이 모브레이)
“쏜. 워커를 뚫어 내고, 볼을 안쪽으로 보냅니다.”
(마크 로렌슨) – BBC 공동-코멘테이터
“그가 와요.”
.
하지만 이내, 볼을 접는 동작을 가져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바디의 기회 때는 내가 뒤쪽에서 접근했던 거지만, 지금 매과이어는 열린 공간에서 축구공을 똑바로 쳐다보며 스프린트를 해 오는 중이었다.
몸통을 날리건 아니면 태클을 하건, 어떠한 식으로든 저 위치에서 뛰어들게 되면 접어 두는 동작은 자연스럽게 차단되어 버리고 만다.
수비수의 관점으로 보면, 본인의 노력 없이도 공격수의 선택지 하나를 제외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흔치 않게 주어지는 행운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취한다는 건 어지간한 배짱과 용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열에 아홉.
아니.
백에 구십구가 그 행운을 취할 것이다.
그러니.
탁-
“??”
해리 매과이어의 다리가 축구공에 닿기 직전, 먼저 볼에 발을 가져갈 수 있었던 내가 공의 윗부분에 오른발바닥을 가져가며 그대로 몸을 왼쪽으로 회전시켰다.
스프린트 해 오던 속도가 있어 무릎과 허벅지가 비명을 질렀지만, 나의 육체는 그것을 견뎌 낼 만큼 튼튼했다.
‘조금만 견뎌 줘.’
발바닥으로 긁어낸 축구공을 다시 왼발 안쪽으로 가져가 회전의 흐름에 맞춰 밀어 두었고, 한 바퀴 도는 것을 멈췄을 땐 오른발 아래에 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우오오오-!!!!”}
관객석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현재 내 앞을 픽포드가 가로막고 있다.
“…….”
.
(정지현)
“이야아아아-!! 김다온! 김다온!!!”
.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알몸으로 전차를 상대하는 기분일 것이다.
내가 전차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상황이 픽포드가 그렇게 생각하게끔 하였을 거라는 의미다.
월드컵 준결승.
1:1 동점.
그리고 시간은.
‘……모르겠어.’
대강 후반전 40분쯤일 것이다.
그러니 픽포드의 시선 속 나는 월드컵 탈락이란 비보를 전할 달갑지 않은 우체부이자, 잉글랜드를 침몰시킬 악당 중의 악당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그가 알까?
비장한 표정과는 달리.
‘너무 많이 비었어.’
툭-
볼을 완전히 제어한 이후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 정면을 바라봤던 나는, 마치 연습 때 동료에게 패스하는 것처럼 가볍게 축구공을 굴려 놓았다.
강한 한 방을 예상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평범한 속도로 굴러가는 축구공에 픽포드의 몸은 얼어붙는다.
찰나의 순간, 완벽한 침묵이 느껴진다.
“…….”
“…….”
{“…….”}
나는 알고 있다.
이 침묵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오직 피치 위에서만 경험해 본 이 침묵은 기대하던 혹은 부정하고픈 결과를 확인하려는 인간의 호기심이 만들어 낸 잠깐의 평화일 뿐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난, 먼저 몸을 돌려세우면서 곧 있으면 커다란 소리를 내지르게 될 이들에게로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
{“——–!!!!”}
피치는 곧 커다란 환희(歡喜)로 차올랐다.
.
(배정세)
“슈우우우우웃-!!! ……고오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 골이에요!!! 김다오오오오온-!!!!!”
.
.
(안정환)
“으아~~!!! 우와~~!!! 으아아아아아아-!!!!”
.
.
(가이 모브레이)
“이건 재앙입니다! 다온이 한국을 잉글랜드를 무너뜨리는 위치로 데려다 놓습니다! What a Strike! 제이미 바디는 놓쳤지만, 다온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
.
(로베르 피레스) – 프랑스 BeIN Sports 해설위원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저는 그냥 믿지 않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것이 수비수가 가져갈 수 있는 동작이란 말입니까? 저건 베르캄프나 지주 같은 선수들이나 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명백하게도. 이번 득점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
.
(올리버 칸) – 독일 ZDF 월드컵 해설위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 저런 상황에서 바로 볼을 걷어차지 않고, 마르세유 턴을 가져간다고요? 심지어 그 속도를 죽이면서? 이건 비현실적입니다. 완전히 비현실적이에요.”
.
.
(JP 델라카메라) – 미국 Fox Sports 캐스터
“WHAT A SPEED! WHAT A MOVE! WHAT A FINISH!! 이건 명백히! 한국이 이 남자에게 기대했을 모습입니다!!”
(토니 멜로아) – 미국 Fox Sports 해설위원
“……이제 우린, 이번 월드컵이 끝난 후 이 남자의 위치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펠레, 마라도나, 메시, 베켄바워. 이들의 사이에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따져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놀랍군요. 전 이제 완전히 할 말을 잃었습니다.”
.
.
(배정세)
“대한민국이!!! 월드컵 준결승에서 잉글랜드에 2:1로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득점은!! 대한민국의 풀백!! 김다온이 전부 만들어 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