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48)
913화 One Team (43)
【같은 시각】 맨체스터 M3 7NH, 잉글랜드. 16 채플 스트리트. 시티 스위트 아파트호텔.
내내 화기애애했던 식탁에 침묵이 내려앉은 것은, 김다온의 마르세유 턴이 나온 직후부터였다.
“…….”
“…….”
펩 과르디올라가 시티의 코치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로 한 건, 오랜 기간 함께해 온 도메네크 토렌트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클럽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토렌트는 OGC 니스로 떠난 파트리크 비에이라의 후임으로 뉴욕 시티의 지휘봉을 잡았다.
본래 뉴욕 시티는 다른 감독을 후보에 올려 두고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 새로운 도전을 원했던 토렌트를 과르디올라가 직접 보드진에 추천했다.
그렇게 갑자기 뉴욕으로 떠나게 된 토렌트는 브레이크(Break) 이후인 6월 24일부터 지휘봉을 잡았고, 이후 팀을 3승 1패로 이끌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다만 일정이 너무 급했던 관계로 시티의 코치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는데, 오늘 시간이 비게 되어 뉴욕에서 맨체스터로 날아왔다.
“놀랍군.”
침묵을 깬 도메네크 토렌트의 짧은 단어 하나가 계기가 되어, 다시 많은 문장이 식탁 위를 오간다.
“완벽한 역습이었어.”
“그보다 마무리가 더 완벽했지.”
“저기에서 턴이라고? 케인도 저건 못 해.”
“메시라면 어떨까?”
“……아니, 메시도 저건 안 될 거야.”
“정말 한국이 올라가는 건가?”
한국의 결승전 진출을 점치는 목소리가 차비에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부 고개를 돌려 펩 과르디올라를 쳐다봤다.
“뭐, 이제 와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하하.”
“큭큭큭큭.”
현재 맨체스터 시티는 팀 내 주요 선수 상당수를 러시아에 남겨두고 있다.
클럽 내 유일한 아시아 선수인 김다온을 시작으로, 카일 워커/존 스톤스/라힘 스털링/페이비언 델프/케빈 더브라위너가 월드컵 Final 4에 속한 국가에서 뛰는 중이다.
그래서 과르디올라는 이들을 ‘사실상 프리시즌을 소화한 선수’로 따로 분류해, 별도의 관리를 맡기기로 했다.
이 여섯 명의 선수들은 월드컵 종료 시점부터 약 2주 동안 휴가를 얻게 될 예정이며, 모든 프리시즌 경기에 불참한다.
또 상황에 따라서는 8월 5일에 있을 첼시 FC와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도 빠질 수 있다.
“이쯤이면, 어떤가?”
“응?”
“누가 자네가 겪은 최고의 선수지? 다온? 메시?”
“오~ 그거 흥미로운 주제로군.”
“…….”
잠깐 과르디올라가 TV로 고개를 돌리고, 시티의 스태프들 역시 한국이 2:1로 리드한 상황에서 재개된 경기에 집중한다.
추가 시간까지 생각해 본다면 잉글랜드에는 대략 7~8분 정도가 남아 있다. 결승 진출이 좌절되기 직전에 몰린 삼사자(The Three Lions) 군단은 총공세를 선택했다.
그러자 호르헤 삼파올리 역시, 이재성을 빼고 오반석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김다온과 정운을 윙백으로 돌려 5-3-2 형태로 전환을 했는데, 황의조가 아닌 손흥민을 최전방에 뒀다. 이러한 배치에, 잉글랜드의 최종 수비 라인은 전진이 부담스러워진다.
‘전에도 느꼈지만, 판단이 좋아.’
대한민국에서의 커다란 성공으로, 호르헤 삼파올리를 노리는 유럽 클럽의 관심이 상당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반년 정도는 쉬고 싶다는 본인의 의사로 이번 여름은 조용하게 지나갔지만, 언제든 유명 클럽의 감독이 경질되었을 때 그를 대신할 첫 번째 후보로 꼽힐 게 분명하다.
다만 과르디올라는 호르헤 삼파올리의 축구가 4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소집과 훈련이 제한된 대표팀의 특성과 김다온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변화를 어렵게 했을 수 있기야 하지만, 현재의 축구가 삼파올리의 한계라면 클럽에서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펩 과르디올라의 눈엔, 삼파올리의 성과 중 상당수가 김다온 덕분인 것처럼 보이고 있다.
‘결국, 자신을 뛰어넘었군.’
중요한 경기를 앞둘 때면, 김다온은 항상 자기 자신을 뛰어넘겠다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과르디올라는 그것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과르디올라는 늘 김다온의 혼잣말이, 그의 성격과 향상심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정상적인 훈련과 적당한 경기를 소화했다는 전제하에, 축구 선수로서의 성장은 23살이면 얼추 끝이 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장이란, 개인 기술이라든가 신체적인 조건 등을 말하는 거다. 킥을 더 정교하게 연마하고 근육을 붙일 순 있겠지만, 23살 이후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그런 예시도 많이 존재했다.
전체적인 역량이 애매하다고 평가받는 선수 중 일부는, 가장 손쉽게 발전시킬 수 있는 킥에 몰두한다. 그중 소수가 성과를 보지만, 결국 선수로서는 퇴보하는 게 보통이다.
킥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부분을 소홀하게 여기고 마는 것이다.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왼발잡이 키커로 꼽힌 나카무라 슌스케(Nakamura Shunsuke)의 경우, 본인의 왼발에 너무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단점을 단 한 번도 보완하려 들지 않았다.
일본 J-리그의 요코하마 F.마리노스를 거쳐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레지나 1914로 진출한 이후, 유럽에 머문 8년 동안 힘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유럽 진출 이후 나카무라 슌스케는 아시아와는 차원이 다른 육탄 공세에 고전했고, 유럽 커리어 내내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반대로 어떤 선수들은 자신의 왜소한 육체가 축구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을 해, 피치보다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에서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곤 한다.
하지만, 축구 선수로서의 신체와 보디빌더로서의 신체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180cm의 키가 수비수로서는 부족하다고 여긴 마이카 리차즈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엄청난 힘을 지닌 육체를 얻게 되었으나, 정작 누구보다 많은 결장을 했다.
근육량이 너무 많다 보니, 10km 전후를 전력 질주로 뛰어야 하는 상황을 인대나 뼈가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또 바이에른 뮌헨에서 함께했던 제르단 샤키리의 경우엔, 인대와 뼈는 근육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했으나 항상 오버 트레이닝 된 육체는 손쉽게 망가졌다.
그래서 과르디올라는 샤키리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자제할 걸 요구했지만, 선수가 그것을 듣지 않았다.
피치 위에서의 탐욕과 함께, 이는 제르단 샤키리가 과르디올라로부터 중용받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됐다.
이적한 인테르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본 이후에야 펩에게 따로 사과하며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는데, 근육량을 조절하고 나서야 PL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놀랍게도, 자넨 더 좋은 선수가 된 것처럼 느껴져.’
펩 과르디올라는 김다온의 기술이나 육체가 4년 전과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더 위로 올라섰다.
높은 수준에서 끊임없이 경쟁해 온 결과, 축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생겨난 것이다. 처음부터 남다른 Football IQ를 지닌 김다온이긴 했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홀로 생각하고, 홀로 결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대단한 건, 그 생각에서 나온 판단이 95% 이상은 옳다는 것이다.
감독의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김다온은 자유자재로 축구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때론, 감독에게 그 선을 뛰어넘도록 요구한다.
올바로 된 감독이라면, 선수가 플레이로서 잘못된 부분을 말해 주었을 때 곧장 반응을 보인다.
이는 지난 수년 동안, 과르디올라가 김다온과 삼파올리 사이에서 보아 왔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축구 자체의 성장은 없었다는 건,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거기까지라는 것을 보여 준다.
결국 돌고 돌아, 펩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카를레스 플랜차르트의 질문에 답할 때라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아직인가?’
이전처럼 월드컵 경기에 완전히 몰입한 스태프들을 보며, 차갑게 식어 버린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입으로 가져간 과르디올라가 TV의 왼쪽 구석을 쳐다본다.
후반 49분.
삑-! 삐?익! 삐—익!!!
“오-!”
“Oh, Bugger.”
모국의 탈락에 탄식하는 브라이언 키드의 목소리와 함께, 두 번째 월드컵 준결승전이 끝을 맺는다.
그리고.
“다온.”
“?!”
“??”
“!!”
펩 과르디올라는 조용히, 이제 더는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는 질문에 응답한다.
“내게는, 다온이 메시보다 더 최고일세.”
4년 전 리오넬 메시가 올랐던 단계와 같은 곳까지 올라선 김다온. 그는 자신의 스승에게, 오랜 기간 우상으로 여겨 온 이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현재 TV 속엔, 환희로 가득 차 소리를 지르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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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결과(World Cup Semi Final)
잉글랜드 1 : 2 대한민국
[골] 김다온 : 전반 43분(황의조), 후반 40분(손흥민)***
우리는 오늘, 위대했던 2002년을 뛰어넘었다.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쥐네이트 차크르의 휘슬이 울려 퍼진 순간, 코너 플랫 한쪽에서 초조해하던 동료들과 벤치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피치로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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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세) – SBS 캐스터
“대한민국이!! 사상 첫 월드컵 결승전 진출을 이뤄 냅니다!! 국민 여러분!! 얼마든지 세계에 외치셔도 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축구 강국!!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 되었습니다!!!”
(박지성) – SBS 해설위원
“너무 감격스럽네요. 잉글랜드가 동점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흐름이 넘어가는가 했는데, 그걸 버티고 결국 역전까지 만든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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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 KBS 해설위원
“지금 눈물이 날 것만 같거든요? 저는 내심 이번 세대가 2002년을 뛰어넘어 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일 월드컵이긴 합니다만, 어떻게 보면 너무 거기에 메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었는데…… 훌쩍. 크흠.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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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 MBC 해설위원
“아~~ 진짜. 너무 대단하고 또 고맙네요, 진짜.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우연이 아니거든요? 16년 만의 준결승 진출. 오늘 상대한 잉글랜드는 무려 28년 만에 4강에 진출한 것 아닙니까. 그에 비하면 한국은 16년 동안 두 번이나 준결승 이상에 성공한 겁니다. 한국은 이제 강팀이에요! 그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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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모브레이) – BBC 코멘테이터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전 진출에 성공합니다! 잉글랜드도 잘 싸웠습니다만, 다온을 도저히 막아 낼 수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잉글랜드의 다음 싸움은 우승이 아닌 3위를 두고 펼치는 경쟁이 됩니다.”
(마크 로렌슨) – BBC 공동-코멘테이터
“전체적으로 한국이 더 잘했습니다. 잉글랜드가 경기를 지배했던 순간은 제이미 바디의 득점이 나오고 몇 분 동안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경기력으로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죠. 특히나 한국과 같은 팀을 상대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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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칸) – 독일 ZDF 월드컵 해설위원
“경기장에 차붐이 와 있는 걸로 압니다. 아마 그가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겁니다. 정말이지, 부럽기 짝이 없네요. 독일이 지금 한국의 자리에 있거나, 아니면 프랑스의 자리에 있었어야 합니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독일의 스쿼드를 좀 보세요. 그들이 한국이나 프랑스보다 뒤떨어집니까? 천만에요.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월드컵은 항상 실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대회였습니다. 독일은 이번엔 그것을 가지지 못했고, 한국과 프랑스는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4년 뒤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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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 위브-베헝) – 프랑스 BeIN Sports 코멘테이터
“이로써, 복수전이 성사되었습니다. 무려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무대에서 말입니다.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만약 프랑스가 한국을 꺾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면, 이번 대회는 프랑스 역대 최고의 대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로베르 피레스) – 프랑스 BeIN Sports 해설위원
“저도 공감합니다. 다만, 오늘 잉글랜드전에서 본 것처럼 한국이 대단한 팀임을 알아야 할 겁니다. 방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다온과 쏜은 어떠한 레벨의 팀을 상대로도 치명상을 입힐 남자들입니다. 또 결승전에는 오늘 뛰지 못했던 선수들도 돌아옵니다. 하루 더 쉬었다는 점까지 이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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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델라카메라) – U.S Fox Sports 캐스터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결승전에 발자취를 새기게 된 한국입니다. 시청자분들은 지금 소리가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이곳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온통 한국인들의 목소리뿐입니다. 재~항~잉국! 글쎄요. 제대로 따라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이 남자를 비추는군요. 준결승전에서만 무려 두 골을 집어넣었습니다.”
(토니 멜로아) – U.S Fox Sports 해설위원
“개인적으로, 다온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특히 두 번째 득점 장면은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그는 이 영광을 누릴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리고 잘하면, 월드컵 트로피도 들어 올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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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마구마구 밀려 들어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가도 웃음이 나오고, 또 그러다가도 다시 울컥하는 뭔가가 느껴졌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될 만큼, 기분은 좀처럼 진정되려고 하지 않았다.
“다온아!!!”
“? 형!!”
누가 곁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관계로, 조금 지나서야 성용이 형과 포옹을 나눌 수 있었다.
“야, 진짜 고맙다. 진짜, 진짜 고맙다.”
“응. 그래도 다 같이 한 거야.”
“진짜 고마워, 진짜. 다온아. 진짜야.”
“.……”
고맙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는 성용이 형의 등을 두드려 주며, 나는 저 앞에서 오고 있는 창훈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 이후부터 컨디션이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 충분히 제 몫을 다해 줬다. 아니, 이곳에 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린,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했다.
“다온!”
“?”
잠시 뒤 다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엔 삼파올리 감독님이 계셨다.
[이 대단한 녀석 같으니라고!] [하하. 제가 오늘 좀 잘하긴 했죠.] [조금이라고? 아니, 최고였어!]삼파올리 감독님과 포옹을 나누고 나니, 비로소 라인 저 너머에 있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치에 납작 엎드린 린가드를 잉글랜드의 스태프가 위로하는 듯했고, 엉덩이를 땅에 대고 주저앉은 워커와 스톤스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보다 우리에게 위협적이었던 해리 케인 역시, 유니폼 상의를 끌어 올려 얼굴을 감추고 있다.
‘우리가 될 수도 있었어.’
잉글랜드가 거세게 몰아붙였던 5분은 정말이지 버티는 것조차 힘겨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추가 실점을 더 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청용이 형의 커버는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했다. 평소에도 부지런히 뛰어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거기에서 등장할 줄은 몰랐다.
‘아, 청용이 형.’
오늘은 상대를 위로하는 일이 오히려 상처가 될 것을 잘 알았기에, 난 시티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만을 간직한 채로 청용이 형을 찾아서 움직였다.
성용이 형이나 자철이 형의 결심에 밀려 조금 늦긴 했지만, 청용이 형도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대표팀일 거다.
밥을 먹을 때라든가 휴식을 취할 때면,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전환점을 맞이하려는 생각을 내비쳤다.
유럽 커리어의 시작이었던 볼턴 원더러스로 돌아가 2년 정도를 더 뛴 이후에, K-리그로 복귀하여 은퇴 시점까지 뛰는 게 계획이라고 말을 했다.
SL 벤피카의 영입생이나 젊은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상태다 보니, 더 많은 경기에 뛰기 위해서 내린 결정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청용이 형!!”
내게는 청용이 형이 오늘 경기의 진정한 Man of the Match였다.
“형, 아까는 진짜.”
“아까?”
“어. 그 수비한 거. 진짜- 그거 아니었으면, 우리 졌어. 진짜 형이 살린 거야.”
“야, 내가 뭘 했다고. 그냥 열심히 한 거지.”
“나중에 어린 애들이 지금 형 말을 들어야 해.”
씨익 웃으며 덧니를 드러내 보인 청용이 형과 다시 한번 끌어안으며, 나는 승리의 여운을 계속해서 즐겼다.
나중에는 흥민이 형과 만나 조금 길게 대화도 나눴는데, 두 번째 득점 장면에서 자신이 0.9골의 지분을 했다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대답했냐고?
뭐, 그야 다 그렇다고만 했다.
오늘은 누가 나를 마구잡이로 때려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진짜 때려도 돼?”
“죽는다?”
“에이~ 한 번만 해 보자.”
“팍- 씨. 뒤질려고.”
“쿡쿡쿡쿡.”
사이좋게 걷던 민재와 장난을 치며,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기쁨을 함께할 이들의 앞에 섰다.
바로.
“고맙습니다-!!”
이 먼 곳, 모스크바까지 날아와 비싼 돈을 주고 티켓을 구매해 우리를 응원해 준 붉은 악마들. 그들은 지금 곁에 있는 이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목청을 높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 역시, 앞에서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라앙~ 아~~리라앙~”】
“아라아리이요오~~”
우리 한국의 얼과 한이 모두 담긴, 아리랑을 목청껏 불렀다. 본래, 이 노래는 ‘가슴앓이’를 표현한 곡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이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난 그게 기쁨의 눈물이라는 것을 안다.
나흘 뒤 결승전 경기가 펼쳐질 이곳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나는 아리랑을 선창(先唱)하는 것으로 프랑스에 도전장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전은 아마도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힘든 경기가 되겠지만, 우리가 계속 지금처럼 하나일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축구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
작가의 말 ? 한국이 크로아티아의 입장이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별 예선은 전혀 다르게 짰지만 결국 Final 4는 크로아티아가 한국이 뺀 것을 제외하면 모두 똑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