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50)
915화 One Team (45)
2018년 7월 14일. 모스크바, 러시아 123610. 크라스노프레스넨스카야 제방, 12. 크라운 플라자 모스크바.
지금까지 축구를 해 오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어떤 기분인가?”]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덴마크 슈페르리가엔의 최연소 득점 기록으로 남은 프로 데뷔 득점을 기록했을 때부터, 기자들은 언제나 내게 무슨 기분인지를 물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나는 거의 이렇게 답을 했던 것 같다.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제게 무척 중요한 일이 벌어지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제가 지금의 기분을 설명할 수 없는 건, 이런 일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지금의 감정이 무척 낯설고, 이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현재, 나는 호텔 안에 마련된 장소에서 인터뷰에 나섰다.
월드컵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가지는 공식 인터뷰로, 삼파올리 감독님과 함께 이 자리에 섰다. 본래 성용이 형이 참가해야 했지만, 미디어의 요청으로 바뀌게 되었다.
글로벌 축구 뉴스 웹사이트인 ‘Goal.com’의 기자에게 영어로 답한 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익숙한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Lange nicht gesehn. Wie geht`s?”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들어 올린 손을 내리며 쑥쓰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남자는 독일 제1 공영방송 채널 ‘ARD’의 기자, 게르하르트 델링(Gerhart Delling)이다.
본래 ‘ARD’에서 파견한 기자는 다른 사람으로 알았는데, 결승전이라서 그런지 수석기자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이번엔 독일어로 대답했다.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당신을 역대 최고로 둘 거라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준결승 경기가 끝난 뒤,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도 바로 이것이었다. 월드컵이 있기 전 나의 위상과 지금의 위상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면, FIFA가 창설한 이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될 거라고도 했다.
오늘 이전 수많은 미디어가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나와 접촉하려 했고, 훈련장과 호텔을 오가는 길에 크게 소리치며 내 대답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무척 고마운 일이긴 합니다.”
당연히 선수로서, 최고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기쁘고 또 영광스러운 일이다.
매일 같이 훈련하고 또 끊임없이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결국 최고가 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는 최고를 정의하는 것은 오직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 왔다.
무엇보다, 나 같은 사람은 추락이 쉽다.
여기에서 말한 나 같은 사람이란, 동양인을 의미한다. 언제까지고 나는 유럽이 중심이 된 축구계에서는 이방인에 불과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펠레가 위대한 것이다.
펠레는 진정한 축구의 신(神)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건, 펠레의 커리어에 굵게 새겨진 세 차례의 FIFA 월드컵 우승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게르하르트 델링을 보며, 계속해서 생각을 표현해 나간다.
“제가 현재 펠레나 마라도나 같은 위대한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내일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상황에서의 비교는 늘 어렵습니다. 역대 최고 중 하나라는 말이 제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축구도 11명이 하는 것이니, 11명 안에만 포함되어도 만족합니다.”
겸손했던 나의 대답에, 예상대로 많은 이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나의 인터뷰는 FIFA가 기자들에게 제공한 장치를 통해 실시간으로 통역되는 중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게르하르트 델링의 차례가 끝나고 나자, 이번엔 브라질의 기자가 포르투갈어로 질문을 던져왔다.
“욕심이 나진 않나요?”
당연히 승리의 욕심이야 흘러넘친다.
하지만 되도록 냉정해지려고 한다.
프랑스의 전력은 잉글랜드보다도 더 위에 있고, 어쩌면 이번 대회 최고의 팀일 거다. 약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큰 문제가 될 수준 역시도 아니다.
“저는 욕심 때문에 경기를 망치고 싶진 않습니다. 패배라는 결과 앞엔, 모든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 욕심까지도, 팀에 긍정적인 요소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로 쓰려고 합니다.”
영어/독일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 그리고 한국어.
총 다섯 개의 언어로 인터뷰를 이어 나가던 중, 마지막 질문권을 가진 이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고개를 슬쩍 아래로 내리며 앞에 놓은 배치도를 보니, 덴마크 최대의 타블로이드인 ‘엑스트라 블라데트(Ekstra Bladet)’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엔 덴마크어인가 싶었지만, 그 대신 능숙한 영어가 들려왔다.
“당신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네. 마지막 패배가 무려 거의 2년 전이죠.”
“…….”
‘엑스트라 블라데트’의 기자 비워 라우크슨(Birger Laugesen)은 무척 부지런한 사람인 것 같다.
이런 것까지 찾았을 줄이야.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2016년 11월 5일 아틀레티고 마드리드 소속일 때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 경기 이후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2016/17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 리가 두 번째 패배 경기였던 비야레알전에는 아예 뛰지 않았고, 이는 코파 델 레이 16강 2차전 라스 팔마스전도 마찬가지였다.
시티에서는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니, 말 그대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패배가 없는 것이다.
“저도 이 기록을 찾아보면서 무척 놀랐습니다. 당신은 오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어떻게 본다면 평범한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뭔가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까?”
내가 뛰었던 경기에서 2016년 11월 이후 패배가 없다는 사실에, 다른 이들도 많이 놀란 것 같다.
회견실 안의 사람들은 비워 라우크슨을 돌아보았다가 내게 시선을 고정했고, 저마다 호기심 어린 표정이 되어 내가 대답하는 것을 기다렸다.
‘흐음- 달라지는 것이라.’
진지하게 답변하고 싶었던 나는 스스로에 질문을 던져 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부분인지라, 솔직한 감정을 내게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머잖아, 결론이 맺어졌다.
“내일 경기가 끝나고 다시 물어봐 주세요.”
“네?”
“정말로 지금은 모르겠거든요. 그나저나, 굉장히 멋진 질문이었다고요. 비워. 비워 맞죠? 아무튼, 앞으론 당신을 기억해 둘게요. Vamos! 저기 저분을 좀 배우시라고요. 기분이 어떻고 욕심이 나지 않느냐는 질문은 너무 식상하지 않으세요?”
“하하하하.”
분위기를 바꾸며 던진 내 농담에, 기자회견실 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뒤쪽에 있던 FIFA 관계자들 얼굴이 기묘하게 변화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저들의 표정에서 나타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읽기 어려웠다.
뭔가 실수를 한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뭐, 아무렴 어때.’
월드컵 결승전이 펼쳐지기까진, 이제 딱 30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이크 바로 옆에 놓아둔 휴대전화의 불빛이 번쩍였고, 화면에 띄워진 메시지를 보낸 이의 이름은 내 좋은 친구이자 형제와도 같은 남자인 요나스 보럽이었다.
***
【20분 뒤】
인상적이었던 기자회견이 끝나고 난 뒤, 크라운 플라자 모스크바 호텔의 가장 고급스러운 장소에 모인 FIFA의 관계자들이 소감을 밝히는 시간을 가진다.
“아까 보셨습니까? 농담이라뇨.”
“그래. 나도 보았네. 배짱이 대단하더군.”
“여유가 있어 보이더군요.”
“월드컵 결승전 하루 전인데 말이지.”
“…….”
FIFA의 구조는 가입국들의 대표와 그들에 의해 선출된 회장/부회장/사무총장 등으로 구성된다.
본래는 여기에 집행위원회가 존재했으나, 요제프 블라터의 스캔들과 이를 통해 밝혀진 추악한 집행위원회의 행적이 미국 정부에 의해 발각되면서 평의회로 대체되었다.
기존 24명의 집행위원에 13명의 평의회 위원이 더해진 것으로, FIFA가 주관하는 대회의 진행 및 축구계의 판사외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평의회의 일원이자, FIFA의 부회장이기도 한 데이비드 길(David Gill)은 알렉스 퍼거슨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재건한 주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래서야, 진 것도 이해가 되는군.’
전날까지, 데이비드 길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28년 만의 월드컵 준결승 진출이란 대업(大業)을 이뤄 낸 모국이 1966년 이후 최초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FIFA의 부회장으로서 데이비드 길은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 했지만, 그 이전에 그도 평범한 레딩 출신의 남자였다.
하지만 오늘의 인터뷰를 직접 보고 나니, 잉글랜드가 패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월드컵 결승전이란 세계 최고의 축구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장에서, 사람들을 웃게 만든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역사를 통틀더라도 그리 많지 않다.
디에고 마라도나라면 가능했을 수도 있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축구 실력도 실력이지만, 누구보다 큰 자아(Ego)와 본인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추고 있다.
‘후우~ 후회가 되는군.’
새삼스러운 생각이긴 했지만, 데이비드 길은 과거 알렉스 퍼거슨의 요청을 한 차례 거절한 적이 있었다.
당시 퍼거슨은 FC 노르셸란에서 뛰던 김다온의 영입을 강하게 요청했는데, 최대 2천만 유로를 투자해서라도 꼭 맨유의 선수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길은 그것이 과다한 지출이라 여겼고, 공격수나 미드필드도 아닌 풀백 유망주의 영입에 큰돈을 투자하는 것을 낭비라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현재, 아마도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진실은 데이비드 길 최대의 실수가 되어 버렸다.
에드 우드워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UEFA 회장 선거에 나서는 데 너무 정신이 팔려, 조금 더 느긋하게 퍼거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김다온이 SL 벤피카로 이적할 때 경쟁을 펼친 팀들이 네덜란드나 프랑스의 클럽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맨유가 달려들었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올진 너무나도 뻔했다.
게다가 당시엔 박지성 역시 맨유에서 뛰고 있을 때라, 많은 부분에서 어필이 되었을 게 틀림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응? 아,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아직 슬픔에 잠기신 겁니까?”
“아무래도, 쉽지 않아서요.”
“다시 한번 위로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러시아의 FIFA 평의회 위원이자 월드컵 조직위원장인 알렉세이 소로킨(Alexey Sorokin)에게 직업적인 미소를 보인 데이비드 길이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곤 한쪽으로 이동해, 상념에 잠겼다.
최근, FIFA 내에서는 중동 석유 재벌들의 자금 유입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는 주로 중동의 로비를 받지 못하는 국가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석유 자금으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재벌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로 중요한 사실을 폭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축구의 어두운 면을 폭로해 온 ‘풋볼리크스’를 이용, 대표적인 석유 재벌의 클럽인 맨체스터 시티와 PSG의 비리를 고발하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팀은 전(前) UEFA의 회장인 미셸 플라티니와 현(現) FIFA 회장 잔니 인판티노와의 친분을 이용, 교묘한 방법으로 FFP 규정을 피해 왔다.
소문에 의하면 잔니 인판티노가 직접, 두 클럽의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FFP를 피할 방법을 알려 줬다고 한다.
월드컵 기간 그것을 밝혀 자신들에게 돌아갈 수입까지 막히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에, 이 같은 일이 대중에 밝혀지는 것은 늦가을이나 겨울쯤의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 어쩌면 PSG와 맨체스터 시티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때가 온다면, 과연 자넨 어떻게 할 텐가?’
현재 FIFA의 일부에선, 가장 최악의 경우 몇몇 계약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쏟아지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PSG의 네이마르 이적과 맨체스터 시티의 김다온 이적 건이다. 두 개의 케이스는 FFP를 위반하지 않고는 애초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거기까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일은 두 사람이 축구에 집중하기 어렵도록 만들 수도 있다.
호날두가 탈세 의혹 때 추락한 것처럼 말이다.
‘재미있겠어.’
데이비드 길 역시 월드컵을 즐기고는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축구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전문 경영자’의 시선엔 FIFA라는 기관에 의해 돌아가는 축구계는 그저, 하나의 커다란 사업처럼 비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세계 최대의 시장에 나타난 최고의 상품.
대한민국의 김다온은 내일, 지금까지 누구도 도달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아니, 발을 뻗는다고 해야겠지.’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혼자가 된 데이비드 길의 머릿속엔, 김다온으로 인해 FIFA가 벌어들이게 될 수익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일부는, 당연히 자신에게 떨어질 것이다.
“쿡쿡쿡쿡.”
데이비드 길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한국의 월드컵 우승을 그리고 있었다.
***
【같은 날 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하루가 어느새 저물어 간다.
“후우~~~”
저녁 시간이 되면서, 다들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오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이다.
‘오늘 긴장하는 건 괜찮아.’
정말로, 오늘 긴장하는 것은 괜찮았다.
내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너무 밝기만 했다면, 만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얼마나 남았지? 전부 쏟아부으면 되는 거야.’
모든 경기에서 우리는 피치 위에 후회를 남겨두면 안 되지만, 내일은 티끌만 한 감정이라도 전부 쏟아내어 훌훌 털어 버려야만 한다.
세상의 그 누구도 우리를 패배자라 부르진 않겠지만, 만약 아쉬움을 남겨 둔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아니, 확실히 평생 그럴 거다.
월드컵 결승이니까.
우리 모두에게 있어. 이번은 축구를 하면서 경험하는 마지막 월드컵 결승전일 수 있다.
평생 한 번뿐인 기회.
난 그걸 놓치고 싶지 않다.
“쓰읍- 하아~~”
부쩍 잦아진 한숨이 내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또 잠들지 못하고 발코니 밖으로 나선 것도. 지금 압박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후 인터뷰 때 들었던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난 그때와는 다른 대답을 할 것 같았다.
[“지금 어떤 기분이세요?”]빌어먹게 떨린다.
그리고 두렵다.
유로파 리그 결승전이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막연하게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월드컵은 그게 불가능했다.
중학교 때 축구를 관두기로 하고 새로운 진로를 찾으려고 했을 때보다 훨씬 깜깜하다. 그리고 이 종잡을 수 없는 미래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 죽겠네, 진짜.”
가슴속이 답답해서 크게 소리라도 질러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주위에 민폐가 되는지라 발코니에 세워진 허리 높이의 펜스를 부여잡고 스트레칭을 시작해 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야~ 죽지 마라~”
“응?”
“여기서 너가 죽으면 우리는 어쩌냐.”
“자철이 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펜스 위로 상체를 살짝 빼낸 후, 몸을 옆으로 살짝 돌려 고개를 하늘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펜스에 팔꿈치를 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철이 형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잠 안 오냐?”
“어. 형은?”
“나야, 뭐. 어차피 경기에 뛰지도 못하잖아.”
한국에는 구자철 쉬프트로 알려진 세르비아와의 16강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 준 후, 자철이 형은 월드컵에 더 출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약 2주 정도의 치료와 같은 기간의 재활이 필요한 다리 부상 때문인데, 형은 복귀가 늦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함께 러시아에 남는 선택을 했다.
본래라면 삼파올리 감독님이 자철이 형의 고집을 꺾었겠지만, 마지막 대표팀 생활이라는 것에 마음이 약해지셔서 팀과 계속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래서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준결승 경기가 있기 전 우리가 동기부여로 삼은 것 중에 하나도 자철이 형이 다른 병원에 가지 않도록 하자는 거였다.
결과적으론 결승전에 진출했으니, 그 동기부여가 잘 먹혀들었던 셈이었다.
“그나저나, 의외긴 하네.”
“뭐가?”
“넌 긴장 안 하는 새끼인 줄 알았는데.”
“……한 적 없는데?”
“파하-!”
자철이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 약간 머쓱해진 나는 다시 몸을 안으로 집어 넣으며 볼을 긁적였다.
내가 한숨을 얼마나 쉬었더라?
최소 열 번은 넘는단 건 확실하다.
‘아우- 쪽팔려, 씨.’
현재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영이뿐이다. 부모님이나 누나의 앞에선 듬직한 아들이자 남동생이어야 하기에, 늘 밝은 모습만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리고 천만다행히도, 나는 가면을 쓰는 일에 꽤 능숙했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아닌데, 타고나길 가면을 쓰는 쪽으로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다온아.”
“왜?”
“고맙다.”
“…….”
월드컵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철이 형에게 들었던 것도 숫자가 꽤 됐다.
“뭘 자꾸 고맙다 그러시나. 부담스럽게.”
“진짜?”
“어. 고마운 게 어딨어. 우리가 남이야?”
“남이지. 엄밀히 따지면.”
“뭐, 그렇긴 한데.”
“여기 화를 내야 하는 포인트 아니었어?”
“에이- 그럼 내가 형한테 넘어가는 거잖아.”
“아~ 진짜. 넌 인마, 그래서 재수 없다는 거야.”
“어디 그게 하루 이틀인가.”
“개새퀴.”
“땡큐.”
주변이 워낙 고요하다 보니, 그리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자철이 형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간혹 차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지만, 그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
“있잖아.”
“말해.”
“네가 한국인이라서 진짜 고맙다?”
“아우, 오글거려.”
“뭐?”
“아냐, 아무 말도 안 했어.”
“하아~ 아무튼, 얼른 자라. 네가 컨디션이 제일 좋아야지. 내일 제일 고생할 건데.”
“……그거 걱정 맞아?”
“아닌데?”
런던 올림픽 이후 줄곧 이랬다.
대표팀에서의 내 모습은 막내에서 기댈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지만, 자철이 형과 나는 2012년 여름부터 6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형.”
“왜?”
“고마워.”
“……응.”
난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 2012 런던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나는 대표팀에 이 정도로 애정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멋진 경험도 할 수 없었을 거다.
그렇기에, 나는 형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내게 새로운 축구의 모습을 알려 줘서.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를 알려 줘서.
무엇보다.
“우린 형제잖아. 그렇지?”
“……응.”
“그래. 그럼 나 들어갈게. 형도 얼른 자.”
“…….”
섬세하기로 소문난 자철이 형은 틀림없이 내가 고맙다고 말한 순간부터 울먹거리고 있었을 거다. 그런 성격이라서 유소년 행정가로 알맞은 것이지만 말이다.
언젠가 자철이 형이 선수 생활을 끝내고 어딘가의 유소년 관계자가 되어 있을 때, 난 거기로 가 기꺼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나도.’
지금 하기엔 너무 먼 미래의 일.
하지만, 내게도 조금씩 훗날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삐빅-
이제 막, 내일이 아닌 오늘이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지는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