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57)
922화 re – Start (2)
2018년 7월 22일. 일리노이 60611, 미국. 11 이스트 월튼 스트리트, 시카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시카고(Waldorf Astoria Chicago. 11 E Walton St, Chicago. IL 60611, U.S).
월드컵이 끝나고 벌써 일주일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뭘 보고 있어?”
“신문. 진짜 난리도 아니야.”
“……도망은 진짜 비겁했어.”
“멍청한 거지.”
“…….”
“…….”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트린 ‘그 일’이 벌어지고 난 이틀 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단은 2018 ICC를 소화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야만 했다.
베르나르두 실바의 기억에 따르면, 경험 중 가장 우울하고 끔찍한 비행이었다.
‘다온…….’
현재 김다온은 여전히 모스크바에서 머물고 있다. 시티의 수석 주치의인 라몬 쿠가트 박사는 약 열흘에서 보름 정도의 안정 이후 치료/재활이 이뤄지는 장소로의 이동을 권유했다.
그것은 라몬 쿠가트 박사의 병원이 있는 바르셀로나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좋은 시설이 갖춰진 시티의 클럽하우스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시티는 김다온의 재활만을 전담할 특별한 팀을 꾸렸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남자들을 높은 보수를 주고 1년 동안 고용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설령 그가 한국으로 향한다고 결정하더라도, 최고의 팀이 늘 그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문제라면.
“다온하고는 연락이 돼?”
“아니, 전혀.”
“……그래. 그렇겠지.”
“후우~ 그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
“내 생각도 그래.”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전패를 당해 패배했다는 가정만으로도, 선수에겐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
결승전 이후, 수많은 전설이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준우승이란 업적이 곧 그 슬픔을 씻어 주기야 하겠지만, 슬픔은 아쉬움으로 남아 오랜 기간 그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패배는 정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뤄졌다. 현재 한국은 축제가 아닌 비탄과 분노로 가득하다.
“일단 당분간은 그를 혼자 둬.”
“그래야지.”
“응. 곁에 가족들이 있을 거잖아. 안 그래?”
“난 녀석의 친구라고, 카일. 아니, 우린 형제이지.”
“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우리에겐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야. 네 한숨 소리가 얼마나 큰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가? Come on, Mate. 지금은 일단 그를 믿어야만 해. 다온이라면, 멋지게 돌아올 거니까.”
“…….”
고개를 끄덕인 베르나르두 실바가 몸을 일으켜 호텔 로비의 사람들이 모인 장소로 향한다.
이틀 전, 맨체스터 시티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2018 ICC 첫 번째 경기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0:1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월드컵 마지막 단계를 소화한 이들이 뛰지 않았다곤 하나, 전반적인 모습 자체가 좋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의 패배는 공식/비공식을 통틀어 시티가 패한 지 1년 3개월 만의 것이었다.
무패(無敗)는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시티의 무패가 끊긴 것을 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프리시즌의 친선전 경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세간의 관심은 오직 김다온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세계 최고의 선수.
발롱도르 3연패도 확정적이다.
애꿎게도, 결승전에서 입은 부상이 김다온의 발롱도르 3연패에 결정타를 찍어 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끝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이번 김다온의 부상 이후, 전 세계의 미디어들이 축구 역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부상들을 논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례와 가장 많이 비교된 것은 에두아르도 다 실바의 경우였다.
그다음으로 거론되었던 선수가 프란체스토 토티인데, 토티는 2006년 1월 19일 엠폴리와의 경기에서 왼쪽 비골과 복사뼈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는 끔찍한 부상을 입었다.
사람들은 그가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을 거라고 했지만 토티는 명단에 포함되었고, 비록 100%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1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탈리아에 월드컵 우승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부상 이후에도, 토티는 11년 동안 최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며 최고의 미드필드로 평가를 받았다.
김다온과 에두아르도 다 실바의 부상이 프란체스코 토티의 부상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베르나르두 실바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이것들이 전부 10년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2000년대 초반과 중반 축구계는 약속이나 한 듯 끔찍한 부상이 연이어 터져 나왔었고, 선수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클럽들은 스포츠 의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여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인데, 그들은 MLB/NBA/NFL의 스타들을 위해 많은 전문의를 스포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성공했다.
덕분에 현재의 스포츠 의료기술은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올라와 있는 상태다.
베르나르두 실바가 듣기로도, 이번 김다온의 발목에 심어진 고정물은 현대 의료기술의 집합체가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부상의 정도를 생각해 본다면 인대가 접합될 때까지는 최대 3개월이 걸릴 것이며, 뼈가 붙기까지는 최대 4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재활이 시작된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아르센 벵거의 회상에 따르면, 에두아르도 다 실바는 부상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그건 신체 지속력의 손실로 연결됐다.
가뜩이나 쉽게 다치는 유형이었던 에두아르도였기에, 신체 지속력의 상실은 빅리그에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외에도 미디어가 거론한 끔찍한 부상 이후 커리어가 추락했던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이 전부 하나같이 최악의 부상 이전에도 쉽게 다치는 선수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김다온은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강해.’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을 지닌 남자라는 것을 생각하며, 베르나르두 실바는 김다온을 믿기로 한다.
김다온에겐 길고 괴로운 시간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경이로움을 선사한 그였기에, 이번에도 멋지게 돌아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가 올 때까지.
‘내가 여길 지키겠어.’
2018/19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세 번째 주장이 된 베르나르두 실바의 표정엔, 굳은 의지가 드러나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프리시즌.
이곳에, 김다온은 없다.
***
2018년 7월 23일. D-80331 뮌헨, 독일. 디이너슈트라세 12, 알터 호프. MW 정형외과 및 스포츠의학 실습소.
“환자를 빼앗겠다는 게 아닙니다.”
– 제겐 그렇게 들립니다만.
“저는 그냥, 그를 만나 보고 싶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종류의 부상은 선수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다 주죠. 그리고 그건, 실제 그들이 겪은 부상보다도 더 심각한 겁니다.”
– …….
–
집에서 월드컵 결승전 전반전을 시청한 이후부터,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는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만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환자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제대로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었을 때, 한스-빌헬름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바로.
“당신이 다온의 신체 치료를 맡는 겁니다. 정신적인 부분은 제가 챙기고요. 어떻습니까? 누구에게도 나쁜 것 없는 제안인 것 같은데 말이죠.”
무릎과 발목 등에 한정 짓자면, 라몬 쿠가트는 자신보다 훨씬 더 실력이 좋은 정형 전문의였다.
물론 한스-빌헬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해 본 적은 없었지만, 냉정하게 보았을 때 정교한 수술 실력과 치료 및 재활 처리에 있어서는 쿠가트가 한 수 위였다.
하지만 무릎과 발목 외의 종합적인 영역을 고려하면, 한스-빌헬름이 좀 더 나은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선수들의 멘탈과 트라우마를 관리하는 영역에 있어선, 전 세계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다쳤다 하면 크게 다치고 뇌진탕이 일상인 NFL 선수들과 높은 신체 지속력과 많은 운동능력을 요구하는 NBA 선수들이 쿠가트가 아닌 한스-빌헬름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스포츠 의료 상식에 있어 유럽보다 몇 배는 더 위에 있는 미국의 스포츠 선수들은, 부상 자체의 치료보다 사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 김다온의 경우 역시, 수술과 재활보다는 선수의 심리적인 부분을 치료하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무려 월드컵 결승에서 그런 부상을 당한 거다.
게다가, 팀도 준우승에 그쳤다.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준우승이란 타이틀조차 한국을 기쁘게 만들지 못할 만큼, 김다온의 이번 부상은 충격적이었다.
한스-빌헬름은 선수 본인이 떠안고 있을 마음의 그늘은 그 몇 배로 더 클 거로 생각했다. 세상의 그 어떠한 축구선수도, 그런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특히나.
“부탁입니다. 제가 다온과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죠.”
한스-빌헬름은 쿠가트의 치료 방식이 선수의 신체적인 역량을 회복시키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는 건, 상대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 왜 저에게 전화한 겁니까?
“…….”
– 무례를 범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정말로 당신이 다온의 심리적인 영역을 책임지고자 했다면 바로 시티에 전화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 펩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정곡을 찔러 오는 쿠가트의 말에, 머쓱함을 느낀 한스-빌헬름이 이마를 긁적인다.
쿠가트의 말처럼, 김다온의 심리적인 부분을 담당하길 원했다면 시티와 통화를 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자신의 휴대전화엔 과르디올라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번호가 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와 볼파르트 클리닉의 충돌은 너무나도 유명했고, 이별 이후 두 사람은 대화를 전혀 섞어 보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상대를 헐뜯는 내용을 말한지라, 한스-빌헬름이 먼저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한스-빌헬름은 ‘같은 의사’인 라몬 쿠가트에게 전화를 걸어 중재를 요청하고자 했다.
치료와 재활 과정에는 한 마디도 보태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오직 심리 치료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김다온을 찾을 생각이다.
– 확실히.
“응?”
– 일리 있는 말이긴 하군요. 당신과 내가 각자 잘하는 분야에만 집중하는 것도, 다온에겐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 우선 전화를 조금 해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도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고맙습니다, 라몬.”
– 그럼, 이만.
-딸깍-
전화 통화가 끝나고, 안도의 숨을 내쉰 한스-빌헬름이 소파에 몸을 파묻곤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최우선 순위의 환자 목록이 뒤바뀌는 중이다.
현재 볼파르트 클리닉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몇몇 NBA와 F1 레이싱의 스타들이다.
하지만 만약 시티가 김다온과의 상담 치료를 허락한다면, 현재 고객들은 그 순위가 한 단계씩 밀려날 것이다.
‘지금은 그가 가장 중요해.’
한스-빌헬름은 명성이나 보수를 바라고 라몬 쿠가트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처음부터 전화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는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삐이-
– 박사님? 다음 환자가 대기 중인데요.
“아- 그랬지, 참. 들여보내게.”
– 네.
한 사람의 저명한 의사로서 다시 돌아가기로 한 볼파르트 클리닉의 수장. 조금 전까지의 그는, 김다온을 응원하는 평범한 팬 중의 하나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문이 열리는 것을 기대한 한스-빌헬름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
2018년 7월 25일. 모스크바 지역, 러시아 141400. 키므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Sheremetyevo International Airport. Khimki, Moscow Oblast, Russia 141400).
라몬 쿠가트가 권유한 최소 날짜가 되기 무섭게, 김다온은 모스크바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에 조금도 머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라몬 쿠가트는 펩 과르디올라와의 통화를 이어 나간다.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좋네.”
– 다행히 그게, 클럽이로군요.
“집이 그곳에 있지 않나. 내가 최대한 자주 맨체스터에 들르도록 하지. 그리고 말했던 것처럼…….”
–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한스는 훌륭한 의사일세.”
– 크흠. 전 이만 끊어야 될 것 같습니다. 일이 있어서.
“그러게나.”
-딸깍-
통화가 끝난 후, 라몬 쿠가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처음 볼파르트 클리닉의 합류를 제안했을 때, 펩 과르디올라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그렇게 말할 줄을 몰랐던 거다.
하지만 곧, 과르디올라는 한스-빌헬름이 탁월한 상담가이기도 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축구에서 발목 부상은 선수의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무릎이 선수의 신체 능력을 앗아 간다면, 발목은 끊임없는 두려움과 맞서도록 만든다.
발목을 심하게 다쳤던 선수가 이후 무릎을 포함한 각종 관절/인대 부상이 잦아지는 것도, 달리기할 때 전에 없던 습관을 익히게 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드 중 하나로 불리며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멤버이기도 했던 페르난도 레돈도(Fernando Redondo) 역시, AC 밀란에서의 발목 부상 직후 예전처럼 테크니컬한 움직임을 가져갈 수 없게 되었다.
은퇴 이후 인터뷰에서도, 레돈도는 부상 이후 디딤발을 내딛는 일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펩 과르디올라 역시 현역 시절 크고 작은 발목 부상을 입었고, 이후 그 고통을 떨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의지는 육체를 뛰어넘는 법이지.’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도 하지만, 강한 의지는 신체적인 약점을 뛰어넘는다. 짧은 순간엔, 초인(超人)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나쁜 쪽으로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에 시달려 의지가 약해지게 되면,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습관과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은 곧 신체의 손실로 연결된다.
더구나 몸을 써야 하는 운동선수라면, 강인한 정신력을 유지하는 일은 육체를 잘 관리하는 것만큼 중요했다.
그것을 잘 알기에, 과르디올라는 자존심을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저 남자라서 가능한 건가?’
시티가 보낸 전세기에 올라탄 라몬 쿠가트 박사가 맨체스터로 향하는 길에 동행한다.
그는 이틀 정도 맨체스터에 머물며 치료와 재활 과정을 살핀 뒤, 이후 바르셀로나로 돌아가 일상에 복귀할 예정이다. 천만다행히도, 자신의 부재 동안 다른 나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 세계 최고의 무릎/발목 전문의가 오직 김다온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선수 본인과 클럽에는 다행인 일이었다.
“…….”
자리에 앉은 라몬 쿠가트가 앞쪽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김다온을 바라본다. 본래부터 밝은 성격이라 그런 것인지, 끔찍한 부상을 겪은 남자라곤 믿기 힘들었다.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김다온은 쾌활한 모습으로 인기가 높았으며, 오전 퇴원을 할 땐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라몬 쿠가트는 김다온의 얼굴 한쪽에 그늘이 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편견이 만들어 낸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경험에 따르면 저것은 상실로 인한 고통을 회피하는 방어기제 중에 하나처럼 보였다.
쾌활함은 방어기제 중에서 흔치 않은 것이긴 했지만, 때때로 인간은 불행에서 달아나기 위해 웃는다.
‘한스에게 내용을 공유해 달라고 해야겠군.’
김다온의 심리 치료 과정이 궁금해진 라몬 쿠가트가 협조를 요청할 것을 결심하며, 모스크바에서 진료한 김다온의 차트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병원 대표가 밝힌 것처럼,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세상의 누구도, 이보다 깔끔히 수술할 순 없다.
하지만 의사로서 가끔 좌절을 느끼는 건, 회복은 의사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거다. 약간의 도움이야 줄 수는 있지만, 진짜는 환자의 의지와 신체적인 타고남에 달려 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걷는 데만 수개월이 소요될 것인 만큼, 라몬 쿠가트는 일단 인내심 있게 기다려 보기로 한다.
‘부디.’
축구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악몽을 겪어 버린 선수.
그런 김다온이기에, 모두가 동정하고 있다.
부상마저도 평범하지 않게 겪는다는 점에서 타고난 스타라 부를 수도 있겠으나, 이런 농담을 편하게 하려면 김다온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그날이 오길.’
부디 그날이 오길.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전문의 중 하나이자 맨체스터 시티의 수석 주치의이며, 동시에 김다온을 응원하는 팬이 되어 버린 라몬 쿠가트는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많은 이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제 모스크바를 떠난다. 그리고 김다온도 비로소, 악몽의 장소에서 벗어난다.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기는 이내,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