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76)
941화 re – Hab (11)
.2쿼터 종료
맨체스터 시티 5 : 0 말뫼 FF
우리는 2쿼터에 1쿼터보다 훨씬 더 좋은 경기를 선보였다. 그 중심에는 눈부실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 준 우진이가 있었다.
[우진! 오늘 왜 이렇게 잘해!!] [아까 봤죠? 로빙으로 띄우는 거.] [봤지, 당연히~!]유소년 축구의 명문인 대동초등학교 출신의 우진이는 한국에 있는 아카데미가 열성을 다해서 스카우트한 경우다. 본래는 김포 FC로 진로를 결정했으나, 우리가 중간에 가로챘다.
초등학교 6학년 시즌에는 28경기에서 81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탁월한 득점력을 뽐냈고, 지난 2월에는 두 살 어린 나이에 U-15 대표팀에 선발이 되었다.
물론 2월 당시 우진이는 한국 나이로 14살이었지만, FIFA의 기준에 따르면 생일이 지나지 않아 13살이었다.
앞으로 나가 우진이를 먼저 격려한 후, 나는 목발을 짚으며 자리로 돌아와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Boys-! Listen Up!”
“…….”
“이제 20분 남았어! 지금부터 3쿼터에 뛸 사람들을 부를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클린시트로 끝내 보자. 알겠지? 물론 실점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그냥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자는 거야.”
IFG는 20분/3쿼터 총 60분으로 치러지고, 만약 동점이 될 경우 연장전 없이 바로 승부차기에 들어간다.
나는 첫 두 개의 쿼터에서 꽤 많은 선수를 활용했고, 남은 20분은 오늘 뛰지 않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그리고 거기엔, 조금 다른 의미로 주목받는 3명이 있었다.
“우선 골키퍼는 벤자민이야.”
골키퍼가 부족해 시티의 U-13에서 합류한 벤자민 잭슨을 시작으로, 나는 포백을 트리스탄 화이트-칼 해밀튼-파히드 카드리로 우선 구성했다.
그리고 왼쪽 풀백 자리엔.
“아마나. 네가 나가.”
“…….”
Team CFG 최연소인 아마나는 2007년 12월생으로, 불과 10살밖에 되지 않는다.
자연히 체격적인 부분에서 다른 선수들과 큰 차이가 났고, 정식으로 축구를 배운 것도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나에겐 이 모든 핸디캡을 뛰어넘는 재능이 있다.
부족한 것은 힘과 경기를 풀어나가는 요령 정도인데, 왼쪽 풀백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이제 다음은 요주의 인물들 차례.
“6번은 오세이. 그리고 중앙에는 현준이랑 아미르가 나가. 마지막으로 10번은…….”
“…….”
“앨런.”
3쿼터, 우리는 다시 전형을 바꿔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그를 위해서 난 8번(CM)에 부지런한 선수들을 채워 넣었다.
나를 만나기 전엔 중앙 미드필드에서만 뛰던 오세이는 약간 아래로 내려갔는데, 개인적으론 이 건방진 녀석에게 가장 알맞은 포지션이 6번(DM)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드레이크를 10번(AM)으로 뛰게 한 이유는 이 오만한 녀석의 다재다능함을 믿기 때문이었다.
다만,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잘 들어, 템포를 죽이지 마. 알겠지?”
앨런 드레이크는 벌써 미래의 미국 국가대표팀을 이끌 재능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미국의 펠레’로 불리며 신동이란 말을 들었던 프레디 아두(Freddy Adu)와 비슷했다.
오하이오주(州)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써, 10살부터 13살 시즌까지 3년 동안 무려 313개의 득점을 쓸어 담았다.
이따금 최전방에서 뛰긴 했지만 팀에 필요한 거의 전 포지션을 오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Team CFG에서 득점에 가장 재주가 있는 꼬맹이는 드레이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드레이크를 위해 Team CFG의 모든 것을 맞추고픈 생각은 없었다.
나머지 수준이 확연하게 떨어진다면 모를까, 이 팀에는 외에도 축구를 아주 잘하는 20명의 아이가 존재한다. 몇몇은 가까운 시일에 드레이크를 위협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팀보다 더 우선인 건 없어. 그리고 팀은 곧 감독의 전술과 철학을 따르는 거야. 거기에서 개인적인 부분이 생겨나고, 주변 동료들이 너를 위해 기회를 만들어 줄 거니까.”
“……네.”
“좋아. 마지막으로 투톱은 다시 우진이랑 숀이 들어가자. 선우는 다음에 또 기회를 받을 거야. 혹시 또 모르니까 준비는 늘 하고 있고, 알겠지?”
“네.”
내가 이 아이들과 함께하려는 축구는 나의 전술이 주목받는 게 아니다. 미처 몰랐었던 축구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 줌으로써, 진정으로 이 스포츠를 즐기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아이들에게 다양한 임무를 맡겼고 다양한 위치에서 뛰어보도록 만들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주변 동료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얼마만큼 고생하는지도 알았을 거라고 믿고 있다.
2쿼터만 보더라도 수비 가담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로비(RW)가 최후방까지 내려와 피터(RB)를 도왔고, 수비가 늘 아쉬웠던 오게(MF)도 부지런히 전방 압박을 해 주었다.
“…….”
어떤 감정과 생각이 머리와 가슴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제대로 정의할 수 없다.
뭔가 특정 단어가 생각났었는데 말이다.
“드레이크! 패스를 돌려!!”
습관적으로 다시 혼자서 축구를 하려던 앨런을 다그쳐 패스하도록 만들면서, 난 잡념을 털어 내고 아이들에 플레이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20분.
좋은 마무리를 기대하고 있다.
.
.
.경기 종료(U-14)
맨체스터 시티 6 : 2 말뫼 FF
***
경기가 끝난 뒤, 나는 드레싱 룸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이들을 전부 벤치 앞으로 모이게 했다.
피드백을 곧바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어차피, 미디어도 없다.
클럽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IFG 경기에 미디어 및 미디어 관계자의 출입을 금지했고, 시티의 유튜브 채널을 제외한 그 어떠한 경로로도 영상 유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참가하는 팀들이 훈련 및 피드백의 목적으로 기록하는 촬영 역시도 금지된 상태다.
“우선, 박수 한번 치자.”
짝짝짝짝짝짝-
가장 먼저 박수로 아이들을 격려한 뒤, 나는 좋았던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기로 했다. 단일 경기에서 세 개의 다른 포메이션으로 뛰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전 훈련을 통해 미리 준비했고 또 말뫼 FF가 상대적인 약팀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하겠으나, 그래서 첫 50분을 완벽하게 소화한 것은 칭찬해 주어야 했다.
특히 첫 2쿼터를 무실점으로 이끌어준 센터백 라인이라든가, 큰 발전을 보여 준 아프잘과 우진이는 좋은 부분들을 보여 줬다.
다만.
“드레이크.”
“!”
“넌 오늘 깨달은 게 있어야 해.”
“…….”
3쿼터가 시작되고 4분이 조금 흘렀을 때, 드레이크는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Team CFG의 여섯 번째 득점을 만들어 냈다. 벽을 넘어, 그대로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 슈팅이었다.
하지만 그 한 장면을 제외하면, 드레이크는 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
평소 본인의 템포보다 빠른 패스와 빠른 판단을 계속해서 요구하자, 훈련이나 연습 경기 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오늘 팀의 실점 두 개는 전부 네 실수에서 출발했어.”
“…….”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 드레이크를 보면서 동정심이 일기도 했지만, 난 여기에서 강하게 나가야 했다.
오늘 제대로 깨닫게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변할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된다.
미래 언젠가 또 깨달음의 순간이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까울 거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10년 뒤가 될 수도 있고, 그 기간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나는 내 판단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내 이야기했었던 거야. 넌 계속 혼자서만 축구를 하려고 해. 절대 주변을 보지 않아. 네가 패스를 하는 순간은 딱 하나야. 어떻게든 혼자서 해 보려고 하다가 막혀 버릴 때. 너랑 함께 뛰는 10명은 네 뒤치다꺼리를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처음 드레이크의 다재다능함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친구가 Team CFG 내에서 가장 좋은 재능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득점 감각은 분명 탁월해도, ‘축구를 잘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웠다. 드레이크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앞서 나가고 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재능의 발현은 공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빠른 발과 타고난 힘과 체력, 훌륭한 기술, 이따금 입이 떡 벌어지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능력, 득점 기회에서는 여지없이 골을 만들어 내는 부분 등.
드레이크는 화려함이라는 부분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외의 모든 부분에서는 Team CFG 기준으로 평균이거나 그 이하다.
9월에 시즌이 끝나고 한 달여 만에 모여 급하게 대회를 준비한 말뫼 FF를 상대로, 드레이크는 본인의 밑천을 너무 빨리 드러내고 말았다.
“장담할게. 이대로 너는 절대 프로 레벨에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어. 물론 적당한 리그에서는 뛰겠지. 하지만 잘 봐줘야 포르투갈이나 덴마크 수준이야.”
미국 최고의 재능으로 불리는 아이를 향한 충격 요법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운이 좋다면 우크라이나라든가 터키의 상위 클럽에서 뛸 수는 있겠지. 하지만 빅 리그? 아니, 절대. 그런 식의 축구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비난을 두고 너무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평소 드레이크의 행동을 알고 있는 Team CFG의 코치들과 나는 언제나 이런 상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드레이크는 언제나 팀 내에서 가장 게을렀다. 또 가장 가르치기 어렵고, 가장 우리를 곤란하게 만드는 선수였다.
그리고 난 그 이유를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내년 6월이 되어 Team CFG와의 계약이 끝나고 나면, 드레이크는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시티 FC의 철저한 감독 아래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갈 것이다.
불과 14살 소년이 고향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가 되었고, 드레이크의 부모님은 아들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드레이크의 인스타그램을 10분만 본다면, 누가 이 아이를 거만하게 만들었는지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아이들에겐 죄가 없다.
문제는 언제나 어른에게 있다.
“앞으로 넌 훈련이 끝나고 따로 헨리와 30분씩 훈련을 하게 될 거야. 만약에 하고 싶지 않다면 거부해도 돼. 이건 강제가 아니니까. 그리고 다음, 프랭크.”
아이들은 팀, 더 나아가 축구가 거대한 유기체(有機體)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피치 위에서 뛰는 한 명 한 명이 중요하고, 모두가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했을 때 비로소 승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활약이 팀을 구해 승리로 이끌 수도 있지만, 나의 실수를 동료들이 만회해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피치는 언제나 공평하다.
“잘 들어. 오늘 너희 중 누군가는 실수를 저질렀어. 그리고 누군가는 정말 좋은 활약을 했지. 하지만 그게 누가 잘하고 못했느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어.”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잔인한 하루를 맞이한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경기를 펼치기도 하고, 승리고 뭐고 얼른 시합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반대로, 최고의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난 그것을 궁극적으로 말해 주고 싶었다.
“오늘 못했어? 괜찮아. 내일부터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 너희가 축구를 계속하는 이상, 좋은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은 계속해서 찾아올 거야. 우리가 열심히 훈련해야 하는 이유는, 좋은 날이 더 많았으면 하기 때문이고.”
“…….”
“내가 너희에게 묻고 싶은 것은 단 하나야. 축구가 좋아? 그렇다면 계속해서 좋은 날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그럼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거니까. 그러니 대답해 봐. 너희는 축구가 좋니?”
“네.”
“네.”
“너무 작아. 진짜 좋아하는 만큼 더 크게 외쳐! BOYS!! DO YOU LIKE FOOTBALL?!?!”
“NE!!!!!”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마음 한구석부터 가벼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풀이 죽은 드레이크를 제외한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외의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 오늘은 내가 저녁을 살게.”
“!!!!”
“드레싱 룸으로 돌아가 씻고, 음- 그러니까…… 지금이 5시 24분이니까 7시까지 아카데미 건물 앞에서 모이자. 메뉴는 내가 생각할게. 알겠지?”
“네!!!”
오늘 두 번째로 우렁찬 외침.
나는 아이들의 가장 큰 대답이 축구를 좋아하느냐는 부분에서 나왔다는 점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
2018년 11월 16일. 맨체스터 M13 9WL, 잉글랜드. 옥스퍼드 로드, 맨체스터 로열 인퍼머리(Manchester Royal Infirmary. Oxford Rd. Manchester M13 9WL, England).
과거, 잉글랜드 학사원(FRS)의 회원이던 찰스 화이트(Charles White)는 본인이 태어난 고향의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혁신가였다.
그는 어느 날 같은 맨체스터의 의사이자 동시에 지역 사업가이기도 했던 조셉 반크로프트(Joseph Bancroft)를 가면무도회에서 만났고, 자신 외의 또 한 명의 사람이 같은 생각 중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조셉. 저는 당신이 세울 병원의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찰스 화이트는 조셉 반크로프트와의 은밀한 자리에서 맨체스터에 대형 병원을 만들 것을 제안했고, 1752년 맨체스터의 종합병원인 로열 인퍼머리(MRI)의 공동 창업자가 되었다.
이후 찰스 화이트와 조셉 반크로프트의 의지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설립 후 25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MRI는 맨체스터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시설로 남아 있었다.
“몸은 좀 어떠오?”
“Wonderful.”
환한 아내의 미소를 보며, 나이를 뛰어넘은 근육질의 체격을 지닌 백발의 남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맨체스터 시티의 프로젝트팀인 Team CFG의 수석 코치이자 맨체스터 시티 전체 유소년 특별 고문이기도 한 세드릭 프렛웰이 누워 있는 여성의 침구를 정리한다.
이 여성의 이름은 안나 프렛웰(Anna Fretwell).
처녀 때의 이름은 안나 브라운이었다.
“달리 필요한 것은 없소?”
“네. 그보다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내 이야기?”
“새로운 팀은 어때요?”
“아, 그것 말이로군.”
30분의 고민 끝에 선택한 꽃다발을 화병 안에다 조심스럽게 꽂아 둔 후, 안나의 곁으로 돌아온 프렛웰이 곁의 의자에 앉았다.
“재미있더군.”
“호호호.”
“응? 왜 웃는 거지?”
“당신의 입에서 지금 이 시기에 재미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처음이니까요. 보통이라면,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나왔어야 했죠.”
“…….”
“다행히, 제 병시중만 하는 건 아닌가 보네요.”
“흥! 브렌트퍼드를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어. 당연히 재미있는 것 한두 가지쯤은 있어야지!”
만약 결혼 생활이 오래되지 않은 부부였다면, 아내 쪽에서 자신 때문에 남편이 직장을 포기한 것을 두고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에겐, 그런 내용의 대화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진심을 알고 있고, 남편 역시 아내가 어떤 생각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뭐가 그리 재미있나요?”
“다온.”
“세계 최고의 선수 말이군요.”
“그래. 그 녀석. 사실 처음 시티의 답변을 들었을 땐, 1년 정도 놀이에 어울려 주자는 생각이었지. 여기저기에서 끌어모은 아이들에다가 라이선스도 없는 부상자가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말이야. 완전히 광대 노릇이었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안나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미소를 지은 채로 프렛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병약했었던 자신과는 달리, 남편은 늘 에너지 넘치는 정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안나는 언제나 프렛웰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힘이 가득한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신 역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알았던 세드릭 프렛웰 역시, 부인 앞에서는 기꺼이 수다쟁이가 됐다.
“그런데 말이지. 그 녀석이 제대로 일을 하는 거야. 그것도 무척 희한한 방법으로.”
“희한한 방법?”
“뭐랄까. 여전히 엉망진창이기는 해. 라이선스는 단순히 감독 자격 자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야. 팀과 운영이라는 심오한 세계를 알게 해 주는 과정이지. 그래서 녀석에게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야. 우리가 밑그림을 그려 주면, 녀석이 마음대로 채색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그 완성품이 실로 걸작이거든?”
세드릭 프렛웰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회복훈련이 끝난 후, 오늘도 언제나처럼 이프티카르 아프잘과 몇몇 아이들이 김다온과 함께 할 개인 훈련을 따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앨런 드레이크가 모습을 드러내며 헨리 애로스미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드레이크. 말을 안 듣는다는 아이였죠?”
“그래. 내가 한 날은 울려 버렸지.”
“호호호호. 그거 짐작이 되네요.”
“큭큭큭. 그렇지? 어쨌든 녀석은 타고난 재능을 지닌 선수였어. 단순히 축구를 잘하는 것과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
“당신은 늘 그것을 패션과 비유했죠.”
“그랬었지.”
똑같은 옷을 입더라도 느낌이 다른 것처럼, 똑같은 결과물을 하더라도 플레이로 누군가를 환호하게 만들 수 있는 선수들은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를 ‘스타성이 있다’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앨런 드레이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 많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후천적인 노력으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이었고, 반대로 드레이크가 현재 가진 재능은 후천적인 노력으론 터득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한 부분을 잘 꿰뚫어 보느냐 역시, 우수한 스카우트와 유소년 지도자를 구분하는 부분이었다.
대다수는 화려함에 정신이 팔려 기본적인 부분을 놓치거나 하지만, 우수한 사람들은 화려함으로 감춘 부족한 점을 들춰내어 그것을 마주 보도록 만든다.
“다온은 어제 충격 요법을 줬어.”
“충격 요법요?”
“그래. 그건 의도된 것이었지.”
“?”
3쿼터 경기가 시작되기 전, 세드릭 프렛웰은 몇몇 아이에게 다가가 지시를 내리는 김다온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중앙 미드필드 둘과 두 명의 스트라이커에게 다가간 김다온은 무언가 조용히 말을 했고, 이를 전해 들은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것 역시도 볼 수 있었다.
이후 시작된 경기에서, 세드릭 프렛웰이 발견한 것은 기존 준비와는 다르게 뛰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앨런 드레이크를 10번 위치에서 고립시키려는 듯한 플레이였다.
가뜩이나 시야가 좁고 이기적인 플레이가 쉬웠던 드레이크였기에, 점차 드리블 일변도가 되어 버렸다.
“어른들도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해.”
“…….”
“하물며 10대라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을 나이야. 드레이크 녀석은 너무 쉽게 축구를 해 왔어. 아무도 그에게 축구가 팀 게임이라거나,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동료들을 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
리오넬 메시라고 하더라도, 모든 포제션에서 3:1이나 4:1의 상황을 이겨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동료들이 도움을 준다면, 그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앞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것 같아.”
“그거 재미있겠네요.”
“물론. 당신에게 이야기해 줄 것도 많아진다는 뜻이니까. 큭큭큭큭. 하여간에, 어디 하나 건방지지 않은 녀석이 없어.”
세드릭 프렛웰이 즐거워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 있을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담당의와 두 명의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의 마지막 회진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고, 프렛웰은 원활한 진료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딸깍-
그렇게 그가 병실 밖으로 나섰을 때.
“혹시…….”
“응?”
“잠깐 시간 되십니까?”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펩 과르디올라가 등 뒤에서 말을 걸어오며 세드릭 프렛웰과의 대화를 요청해 왔다.
942. re – Hab (12)
세드릭 프렛웰에게 있어 펩 과르디올라의 방문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노련한 베테랑인 그는 당황하는 대신 조용한 자리로의 이동을 권유했다.
병동의 한쪽, 자판기와 벤치가 놓여 있는 구석진 공간에서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한다.
“마시게나.”
“고맙습니다.”
“…….”
치-익.
딸깍-
본래 탄산음료를 즐겨 마시지는 않았지만, 청량감에 목말랐던 과르디올라가 음료를 들이켰다.
“후우~ 질문이 있습니다.”
“어차피 그러려고 온 것이 아닌가?”
“네.”
고개를 끄덕이는 과르디올라.
그는 바로 본론에 들어간다,
“다온은 어땠습니까?”
“어느 쪽 말인가?”
“?”
“축구? 아니면 그 자체?”
“……둘 다입니다.”
“…….”
과르디올라의 질문에, 프렛웰은 직접 묻는 것이 가장 낫지 않으냐고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을 만큼 현명했고, 과르디올라가 김다온을 만날 수 없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강한 유대로 묶인 두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의 비극은 남은 한 사람의 비극이 된다.
상처와 아픔은 공유되고, 특히나 이번처럼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양측 모두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세드릭 프렛웰이 보기에, 눈앞의 사내는 커다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평범한 중년 남성에 불과했다.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빅이어를 획득한 감독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였나?’
펩 과르디올라와 김다온의 유별난 관계는 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미 숱하게 조명되어 왔다.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는 방식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을 무렵에도,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를 현대 사회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바라본 기사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여 무패(無敗) 시즌과 ‘유럽 최초의 쿼드러플(Quadruple)’을 달성하게 되자, 결국 두 사람이 옳았다는 결론이 맺어지기도 했다.
영원할 것 같던 질주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툭’ 하고 끊어져 버린 지금, 펩 과르디올라는 그것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고 있다.
재활이 끝나는 대로 김다온은 다시 피치로 돌아오겠지만,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두렵다.
상대의 감정을 몸서리칠 정도로 느낀 세드릭 프렛웰이 좀 더 진지한 모습으로 과르디올라의 질문에 답을 한다.
“곁에서 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당신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하하. 그렇겠지.”
“네. 적당한 거리의 사이일수록, 더 객관적일 수 있죠.”
“옳은 말일세.”
덤덤함 목소리로, 세드릭 프렛웰은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 온 김다온을 이야기했다.
“언젠가, 그는 좋은 감독이 될 걸세.”
“…….”
“마치 자네처럼, 툭 하고 튀어나와 아무렇지 않게 트레블을 가져갈지도 모르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녀석은 한 경기에서 세 개의 다른 전술을 활용했어. 그것도 놀라운 완성도로.”
“……그렇습니까?”
감독의 역량은 단순히 몇 개의 전술을 활용할 수 있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선수들의 잠재력과 실력을 얼마만큼 발휘하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선수를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제아무리 시대를 뛰어넘은 기발한 전략이라 하더라도, 선수들이 소화해 내지 못한다면 탁상공론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체스와 축구가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는, 보드 위의 기물(己物)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생각할 수 없지만 피치 위의 선수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위대한 감독도 선수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축구는 늘 변수와 실수가 발생한다.
한데.
“다온은 아이들을 이해시켰네. 모두는 아니었지. 그가 감독한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모두를 이해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자네라면 무슨 의미인지 알 거라고 보네.”
축구 감독에게 허니 문(Honey Moon)으로 불리는 기간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 감독이 하고자 하는 축구가 발현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감독이 제대로 팀을 파악하게 되면, 시행착오의 횟수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한데, 김다온은 그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1년밖에 지속되지 않을 팀일세. 그래서 Team CFG는 동료라기보다 경쟁자에 더 가까워. 어차피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니까. 애초부터 팀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었네. 어디까지나, CFG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야. 어른들의 이기심이 만든 끔찍한 결과물이지.”
Team CFG의 아이들에게는 공통적인 목표가 존재한다. 오디션 기간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여, 정식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유스와 계약하는 것 말이다.
돋보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팀워크가 발휘될 리 없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네. 몇 번, 훈련 세션을 맡았던 적이 있죠. 분명 좋은 재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아야 할 이유가 있나 싶더군요. 그건,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몰라도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프렛웰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고, 두 남자는 본론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한동안 이어 갔다.
퍼뜩 정신을 차린 프렛웰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주제를 정상 궤도로 되돌린다.
“크흠. 어쨌든, 다온은 아이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했네.”
“어떤?”
“그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
Team CFG의 경험이 맨체스터 시티와의 정식 유소년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
바로.
“실력의 발전입니까?”
“바로 맞췄네.”
프렛웰은 여전히, 이것이 전부 계산된 부분에서 나온 행동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다고 해도, ‘팀 내에서 가장 저평가되던 선수의 실력을 단기간이 끌어올림으로써 남은 전체에 경각심을 주는’ 행동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프티카르 아프잘의 성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았고, 그래서 ‘김다온의 지시를 따른다면 실력이 나아질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Team CFG의 계약이 끝났을 때 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남은 기간 실력이 더 좋아져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레, 김다온이 Team CFG의 아이들을 장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오늘 회복훈련에서 프랭크 오세이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누구보다 부지런히 훈련에 참여했고, 요구하지 않았던 개인 훈련까지도 별도로 수행했다.
앨런 드레이크 또한 별도의 맞춤 훈련에 참여했고, Team CFG는 자연스레 김다온의 팀이 되었다.
“놀라운 장악력이었지.”
“…….”
“베테랑 유소년 지도자라고 해도 이렇게 짧은 기간에 팀을 휘어잡지는 못했을 걸세. 어린아이들이라서 쉬운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려운 게 더 많거든.”
현(現) Team CFG의 수석코치가 바라본 ‘감독 김다온’은 대충 이런 이미지였다.
기발한 발상과 놀라운 장악력을 지닌.
물론 현역 최고의 선수라는 점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야 했지만, 그 정도의 어드밴티지마저 없었다면 외인구단이나 다름없는 Team CFG를 지도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축구는 정교하면서도 과감하지.”
이러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김다온은 아이들에게 쿼터마다 이행해야 할 각기 다른 임무를 완벽히 이해시켰다.
하프 스페이스라든가 포켓과 같은 어려운 개념을 이해시키는 대신, 선택지를 가져가고 그중 우선순위로 선택해야 할 부분을 주입함으로써 우수한 플레이를 펼치도록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앨런 드레이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여유까지 보여 줬다.
“아직, 그의 축구를 정의할 수 없어.”
“그렇습니까?”
“그래.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다만 그리 머지않은 시일에, 김다온이 자신만의 색을 찾을 거라는 게 세드릭 프렛웰의 생각이었다.
비로소 팀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만큼, 이제부터 본격적인 행보가 펼쳐질 것 같았다.
“그리고.”
“?”
“인간 김다온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네. 최소한, 지금 자네보다는 나아.”
“하하. 그렇습니까?”
“무슨 사정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알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자네를 걱정하는 게 어떻겠나? 가능하다면 다음부터는 본인에게 직접 물을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말일세.”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겠네.”
“고맙습니다.”
“뭘, 이 정도로.”
과르디올라와 헤어져 안나가 있는 병실로 향하는 길, 세드릭 프렛웰은 Team CFG가 아이들과 맨체스터 시티의 사업 외에도 특정한 두 남자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야 원, 무슨 일에 끼어든 건지.’
아내의 건강을 위해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프렛웰은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만이 아니라, 김다온과 펩 과르디올라라는 이 시대 최고의 선수와 감독을 동시에 보살피는 일도 하는 셈이었다.
“후우~ 늘그막에 뭔 고생인지.”
습관처럼 달고 사는 말을 내뱉은 프렛웰의 발걸음은 문장과는 달리 대단히 가벼웠다.
***
2018년 11월 17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이스트 맨체스터 아카데미.
내일, Team CFG는 함부르크 SV U-14 팀과 IFG 두 번째 경기를 펼친다.
벤피카에 1:8로 패배한 함부르크는 반등을 원하고 있고, 말뫼보다는 좋은 전력을 지닌 팀인 만큼 조금 더 힘든 경기를 예상 중이다.
“그만! 잠깐 멈춰!”
“…….”
약 1시간가량 진행하게 될 전술 훈련 도중, 난 잠깐 아이들을 멈추게 했다.
보통은 잘못된 점을 수정하기 위해서지만.
“드레이크!”
“?!”
“VERY GOOD!”
“!!!”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난 계속 드레이크를 칭찬했다.
“바로 그런 플레이가 내가 원했던 거야! 그리고 지금 전부 각자의 위치를 좀 볼까? 어때? 드레이크와 우진이 좁은 공간에서 서너 명을 연계로 뚫었잖아. 이미지가 그려져? 그러니까 어때? 저기! 저기! 그리고 저기! 총 세 군데에 공간이 만들어졌지? 상대가 4-3-3을 쓸 땐 이런 식으로 공략하는 거야! 센터백과 6번(DM)을 가운데로 모으면, 이렇게 공간이 넓어져! 아주 좋았어! 그럼 다시 한번 가 보자!”
삑-!
지금까지 시티의 유소년 팀과 실전 경기를 펼쳐 왔다지만, IFG에서의 한 경기가 아이들에겐 훨씬 더 좋은 경험이 된 것처럼 보인다.
자신감을 얻은 아프잘은 훈련에서도 경쟁하는 선수들을 압도했고, 최초에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프랭크 오세이와 아미르 후세인은 거기에 자극받고 있다.
숀 콜린스라는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경쟁자를 만나 당황했던 우진이 역시, 자신의 장점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애초부터, 둘은 경쟁을 펼칠 이유가 없었다.
원톱 시스템에서 뛸 때 포지션이 겹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근본적으로 둘은 전혀 다른 유형이다.
압도적인 체격조건을 자랑하는 콜린스가 신체의 우위를 바탕으로 연계와 헤더에 장점을 가진 클래식한 스타일이라면, 우진이는 현대 축구에 좀 더 어울리는 공격수다.
훌륭한 오프 더 볼을 바탕으로 라인을 파괴하는 데에 능하며, 스스로 판단하여 측면이나 미드필드 중앙 깊숙이 내려오는 판단력도 가지고 있다.
내가 4-3-3이나 4-2-3-1 같은 아이들에게 좀 더 익숙한 전형이 아닌 3-5-2라든가 다이아몬드 4-4-2와 같은 전술을 택한 것도, 우진이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Team CFG에 속한 아이들의 재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뒤의 두 가지 전술이 좀 더 나았다.
“좋았어, 그만!”
집중력 있게 진행된 훈련이 끝나고, 난 목소리를 높여 샤워를 마친 후에 전력 분석실로 모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간단히 주변을 정리한 아이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나 역시 코치들과 함께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한쪽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왔다.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뭐야? 벌써 돌아온 거야?”
“응. 두 번째 경기가 취소됐었거든.”
“그래? 그거 안 됐네.”
“잘됐지, 뭐. 덕분에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어.”
코치들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전한 후, 나는 올 시즌 팀에 새롭게 합류한 올루프에게 다가섰다.
덴마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1월 A매치 주간을 소화하게 되었는데, 경기를 치르기로 했던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내부 사정으로 한 경기만 소화하고 맨체스터로 돌아왔다.
과거에도 몇 번 같은 문제를 일으킨 나이지리아는 이번에도, 정부가 축구 협회에 간섭을 하며 FIFA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언제부터 본 거야?”
“한 20분? 엄청나게 집중하던데?”
“아이들을 보는 일이라서 더 그래야 하거든. 내가 조금만 느슨해지면 곧바로 아는 것 같아.”
“저 나이는 예리하니까.”
“그렇지.”
올루프는 케빈과 다비드에 이어 세 번째로 Team CFG의 훈련을 도와준 친구였다.
억지로 끌어들인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올루프는 먼저 팔을 걷어붙이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는 코치들도 많이 없어서, 난 그런 친구의 도움이 고마웠다.
“자, 이거.”
“응?”
“대표팀에서 만난 친구들에 전한 편지야. 전부 다 너를 응원하고 있어. 사실 9월이랑 10월에 받은 것도 있는데, 그때는 조금 전해 주기 어려워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물론이지.”
올루프가 건넨 편지 묶음을 전달 받아 가장 위쪽에 적힌 이름을 확인해 본다.
‘피에르.’
현재 EPL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피에르가 내게 편지를 써 줬고, 과거 노르셸란에서 함께 뛰었던 크리스티안 귀트케르와 안드레아스 비엘란 역시 편지를 써 주었다.
“다들 네 상태를 묻기에 바빠.”
“하하. 그래?”
“응. 에릭센, 토마스, 시몬, 야니크. 너랑 같은 팀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전부 네가 괜찮은지 묻더라고.”
“그래서 네 대답은?”
“뭐, 꼬맹이들이랑 논다고 바쁘다 했지.”
“하하. 그거 좋은 대답이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동료나 친구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주고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시간을 들여 편지를 쓴다거나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쏟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역시 확신했어.”
“응? 뭐가?”
“넌 축구를 하기 위해 태어난 녀석이라는 거.”
“뭐?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줄곧 해 왔던 생각이지.”
“…….”
어깨를 으쓱하며 볼을 긁적인 올루프가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월드컵 결승 당일, 올루프는 이곳 맨체스터에 얻은 임대 아파트의 거실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일이 벌어졌고, 올루프도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말이다.
“처음엔 이 생각뿐이었어.”
올루프는 내가 무사하기만을 두 손 모아 기도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상황이 알려졌을 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이 친구가 기도하며 한 이야기가 바로 이거다.
“네게서 축구를 빼앗아 가면 무엇이 남겠냐고.”
“……내겐 가족이 있어.”
“나도 알아. 하지만 네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축구잖아. 그 빈자리가 너를 좀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넌…….”
축구를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
난 이 이야기를 꽤 자주 듣는다.
올루프의 말대로 현재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축구이고,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평생 뛸 수 없다는 공포심을 느꼈다.
처음 초등학교 축구부에 가입한 이후, 이번처럼 축구공과 오랫동안 떨어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기약 없는 재활과 확신할 수 없는 과거 모습으로의 복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악몽을 꾸고 끊임없이 우울해하는 것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Team CFG를 만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생겨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난.
“네 말이 맞아, 올루프.”
“…….”
“불안한 생각들이 나를 좀먹었었지. 난 불안했고 끊임없이 의심도 했었어. 사실 지금도 그래. 어쩌면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지.”
“다온아.”
“하지만.”
“?”
나는 지금 얼른 두 다리로 당당히 서 있기를 원한다. 설령 예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다고 해도, 다시 피치로 돌아가 내 존재 이유를 찾길 원한다.
축구는 나의 중요한 부분이자, 삶 그 자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내가 이 스포츠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영이게 말했어.”
“뭘?”
“가정에 봉사하는 건, 좀 더 나중으로 미루고 싶다고 말이야. 언젠가 나는 감독이 될 거야, 올루프. 어디선가 감독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 나는 피치로 돌아가길 원해. 왜냐하면 나는 아직 24살이고, 또 다친 다리를 뺀 모두가 멀쩡하니까. 그러니, 겨우 이 정도의 일이 내게서 축구를 빼앗아 갈 수는 없어. 난 계속해서 나아갈 거야.”
“……그래. 그럴 거라고 믿어.”
“응.”
푸근하게 웃어 보인 올루프가 내 어깨를 두드려 왔고, 난 그런 녀석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내일 경기를 보러 가도 될까?”
“물론. 기왕이면 벤치 근처에 앉아.”
“하하. 그럴까?”
“응. 내가 이야기를 해 둘게.”
“그럼 고맙지.”
“별말을. 그러면 나는 먼저 실례할게. 코치들이랑 함께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거든.”
“그래. 얼른 가 봐.”
“응. 그럼 내일 봐.”
스스로도 놀랄 만큼, 조금 전의 나는 망설임이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이었다면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꼈을 건데 말이다.
지금도 신경이 아예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최상의 몸 상태로 돌아가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
재활의 진행 속도도 며칠 전부터 많이 높아졌고, 새로운 세션과 과정이 매일매일 더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 발목은.
“!!”
이런, 아직인가?
한 번 목발을 빼고 왼발로 땅을 짚어 보았지만, 여전히 짜릿한 통증이 느껴져 왔다.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어.’
이전보다 나아졌음에, 난 만족감을 느끼며 코치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딱-
따닥-
목발을 짚을 때마다 나는 소리가 고요한 복도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