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78)
944화 re – Hab (14)
2018년 11월 19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이스트 맨체스터 아카데미.
첫 말뫼 FF와의 경기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함부르크 SV를 제압하면서, 클럽이 Team CFG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클럽은 기존 U-15 이상의 선수들이 독점하던 시설 일부를 우리에게 개방했고, 아이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회복 작업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클럽 관계자의 방문으로 이어졌는데, 아이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참에 종신계약을 하는 건 어떻겠나?”
“그것도 나쁘진 않죠. 수표를 적어 볼까요?”
“이런! 호락호락하진 않군, 그래.”
아이들을 불러 모아 첫 출범식을 가진 이후 처음으로, 칼둔이 Team CFG를 찾아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떠한 아이들에게 칼둔은 단순한 맨체스터 시티의 회장이기도 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16세 이후 정식 계약으로 전환해 줄 결정권을 쥔 중요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아요.”
“하하. 그런가?”
“네. 몇몇 개선할 점은 보이긴 하지만요.”
“의견은 전달받았네. 추후 개선토록 하지.”
“멋지네요. 하지만, 긍정적인 점도 많아요.”
“음- 그게 우리가 노리던 거지.”
나를 스카우트했던 SL 벤피카의 티아고 로보는 스카우트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군대 용어로 스카우트(Scout)는 정찰을 의미했는데, 현대전에 접어들기 이전 이것이 지니는 의미와 값어치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중요했다.
실전(實戰)은 게임과는 전혀 다르니 말이다.
지도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거나, 스파이(Spy)일지도 모를 길잡이에 의존해 진군 경로와 전쟁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행군 중 야영을 할 위치는 어디쯤이 좋을지, 밥을 짓는 연기를 감출 수 있는 지점은 또 어디인지, 적 본대를 만나는 지형은 어디가 좋으며 또 어디서 전투를 벌일지 등을 정찰에 의존해 계획해야만 했다.
손자병법에서 나온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은, 어쩌면 정찰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는 할 일을 엄청나게 줄여 줘요.”
“그렇지.”
계속해서 전쟁에 비유해 보자면, Team CFG는 아군의 앞마당에서 전투를 펼치는 셈이다.
합법적으로 많은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다른 클럽도 같은 방법으로 스카우트의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으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CFG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클럽은 전혀 없다.
즉,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며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그때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하는 시점에 이미 사업 계획 구상을 완료했던 만수르와 칼둔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거다.
“그걸 이해하고 있다니 고마운 일이로군.”
“실은, 프렛웰이 해 준 이야기예요.”
“그런가? 하하. 아무래도, 저 남자를 이곳으로 데려온 보람이 있는 것 같아.”
“이대로 저를 감독이나 행정가로 만드시게요?”
“천만에! 그저, 자네가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프렛웰은 우수한 디렉터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세.”
“…….”
가끔 이렇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런 것 같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칼둔 역시도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그거라면 확실히 성공이네요.”
“응? 뭐라고 했지?”
“아뇨. 아니에요. 아무튼, 오늘 시설을 쓸 수 있게 해 주신 것은 너무 감사해요. 덕분에 아이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으니까요.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역시 좋은 것은 본인이 직접 이용해 보는 거죠.”
“음, 그것 역시 참고하겠네.”
“네.”
한참 동안 아이들을 지켜보던 칼둔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회복 훈련실을 빠져나갔고, 뒤이어 제임스 윌콕스와 치키도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떠났다.
처음 견학할 때 보았던 시설을 직접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사람들이 떠난 것도 모르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해.’
모든 축구 클럽 스카우트들은 입을 모아, 유망주를 영입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클럽의 시설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라 말하곤 한다.
더 높은 레벨로 올라섰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직접 눈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도 SL 벤피카를 떠날 때 유명 클럽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곤 큰 감명을 받았었다.
세이샬에 있는 시설도 무척 훌륭했지만, 세상엔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하나의 동기 부여가 됐다.
꼭 좋은 집을 샀을 때의 느낌이었다.
“집중해, 집중! 회복은 훈련이나 실전보다도 더 중요해!”
세드릭 프렛웰이 주도하는 회복훈련을 지켜보며, 나는 아이들에게 성실히 임할 것을 주문했다. 오세이는 오늘도 가장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과연 누가 지금의 저 녀석을 보고 지독히 말을 듣지 않던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할까?
앨런 드레이크는 여전히 뺀질거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눈치를 주면 알아먹을 수준은 됐다.
‘이제야 조금 팀다워졌어.’
문제아들을 어느 정도 해결했으니, 저들이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부분은 코치들에게 맡겨 둘까 한다.
나의 다음 단계는.
“오게!”
“?”
“잠깐 멈추고 날 따라올래?”
“…….”
지금 당장은 최고가 아니지만, Team CFG에 있는 누구보다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재능을 알아 가는 일이었다.
***
맨체스터 시티의 스카우트 그룹은 총 12명의 시니어 스태프로 구성되어 있다.
조금 숫자가 부족한 것 아니냐 말을 할 수 있겠지만, 현대 축구에서 15명 이상의 스카우트 그룹을 보유한다는 것 자체를 비효율적이라고 여긴다.
미디어의 발달로 스카우트는 앉은 자리에서 몇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정보를 모을 수 있고, 별도의 인력도 고용 가능했다.
그런 현대 스카우트 그룹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완성된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인력보다 유스를 스카우트하는 쪽에 더 많은 숫자를 투입한다는 점이다.
시티만 해도 12명의 스카우트 중 7명이 유스 스카우트이며, 올해는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활약했던 조 쉴즈(Joe Shields)를 치프 스카우트로 데려오기도 했다.
바로 지금 내가, 조 쉴즈의 사무실 앞에 있다.
똑또도-똑똑.
똑 똑!
왜 노크를 리드미컬하게 했는지를 묻지 마라.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잠시 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Come in-!”
“…….”
딸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정갈하게 꾸며진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엔 라이선스로 보이는 증명서가 액자 처리되어 걸려 있었고, 그 바로 옆엔 라틴어가 적힌 패브릭 포스터가 시선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 굉장한 자신감인데요?”
“하하. 라틴어를 아는 건가? 반갑네. 나는 조 쉴즈일세.”
“독서를 좀 하거든요. 저는…….”
“아, 자네를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것 같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자넨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일 걸세. 혹시 이런 말을 하기엔 조금 이른가?”
“Nah- 그 정도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죠.”
“하하. 그렇군. 마실 것이 필요하나?”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자리에 앉게.”
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
운명을 만드는 사람은 그 자신이다.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라틴어 문장일 것이다.
그 누구의 말도 또 직접 눈으로 본 것조차 100% 확신할 수 없는 스카우트들에겐, 어떠한 의미에서는 가장 필요한 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화제의 중심이 무슨 일인가?”
“아, 뭘 좀 알고 싶어서요.”
“응? 무얼 말인가?”
“누가 오게 매틴손을 스카우트했죠?”
“……잠시만 기다려 보게.”
다시 질문으로 답하기에 하기에 앞서, 조 쉴즈는 내 말에 먼저 답을 해 주려고 했다.
그것만으로 꽤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오게. 오, 자네의 팀이로군.”
“뭐, 임시직이지만요.”
“하하.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마 자네 혼자밖에 없을 걸세. 팀이 구직을 중단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네.”
조 쉴즈가 말한 대로, 시티는 Team CFG의 감독을 찾는 일을 중단했다. 만약 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중도에 하차하게 되면, 프렛웰이 그 뒤를 맡게 될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과연 벌어질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일이 없는 이상 사실상 끝까지 내가 아이들을 맡는다는 거다.
다들 내게 그 이야기가 들리지 않게 하려고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킷맨들과 친한 선수에게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단 것을 간과했던 것 같다.
“흐음- 오게라면, 앤디로군.”
“앤디?”
“앤디 사시모비치. 클럽의 유스 스카우트일세.”
“…….”
“그런데 왜 그를 보길 원하지?”
솔직한 태도를 보여 주는 조 쉴즈의 앞에서, 나 역시 모든 것을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했다.
“축구를 관둬?”
“네.”
“어째서지?”
“그게…….”
덴마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나라 중에 하나다. 상위 20%가 부(富)의 99%를 차지 중이고, 연 소득이 66,000크로네(약 1,180만 원)만 넘겨도 40%의 세율이 적용된다.
한국 포함 독일/스페인/잉글랜드의 최고 세율이 40%를 넘는 선에서 정해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덴마크의 세율은 살인적이라 불러도 될 수준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복지 제도가 존재해서, 돈을 모으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긴 어려워도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북유럽 국가 상당수가 지닌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이는 몇몇 독특한 문화가 생겨나는 이유가 됐다.
셸란에 있을 때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손님에게 밥을 대접하지 않는 문화’였는데, 만약 손님이 밥시간에 왔다면 그 사람을 방이나 거실에 남겨 두고 가족끼리 식사를 했다.
처음 셀란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국 음식을 대접했을 때, 친구들은 내가 부자라고 생각했었다.
“오게를 스카우트 한 과정이 궁금해요.”
“흐음-”
오게가 축구를 관두는 이유는 장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의 집은 덴마크 정부가 보조 아래 최소한의 수준에서 살고 있다.
오게의 부모님은 자신의 아이가 15살이 될 때부터 축구를 관두고 학업에 전념하기를 원하고, 고등 교육을 받은 이후 해운업에 종사하기를 바라는 중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시간 전, 오게에게 전부 들은 이야기다.
“앤디는 지금 맨체스터에 없네.”
“그런가요?”
“그래. 하지만 사흘 뒤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그 전에 꼭 대화를 나누어야 하겠다면 전화번호를 알려 주겠네.”
“아뇨.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그런가?”
“네. 사흘 뒤죠? 그럼 그때 그를 아카데미로 보내 주세요. 이야기는 그때 들어도 충분하니까요.”
“알겠네. 약속하지.”
조 쉴즈를 방문한 목적은 이걸로 끝이 났고, 난 다시 일어서서 밖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이보게나.”
“네?”
“목발은 챙겨가야지.”
“아? 아, 네. 고맙습니다.”
“…….”
딸깍-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온 뒤, 난 목발을 양쪽 겨드랑이에다 끼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뭐지?’
분명히 난 조금 전, 목발 없이 몇 발을 걸었다.
통증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목발을 짚지 않고 걸어 보려고 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그사이에 통증이 사라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탁-
사무실 옆 벽에 목발을 세워 둔 후, 조심스럽게 왼발을 먼저 앞으로 내디딘다. 그리고 오른발에 있던 무게중심을 왼쪽으로 가져가게 되면.
“읏!”
어김없이 발목 부근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며칠 전과 같은 감각이다.
‘뭐지?’
지금,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
2018년 11월 20일. 08023 바르셀로나, 스페인. 알폰소 코민 프라자, 5. 퀴론살루드 바르셀로나 병원.
약 20분 전, 퀴론살루드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한 남자가 병원 전체에 열렬한 반응을 몰고 왔다.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전문의 중 하나이자, 현(現)시점에서는 양대 산맥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한스-빌헬르 뮐러-볼파르트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방문 목적은 남은 양대 산맥인 라몬 쿠가트 박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역시 그랬군.”
“…….”
“그걸 안 지는 얼마나 됐나?”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을 때지.”
“…….”
바르셀로나로 오기 전, 한스-빌헬름은 맨체스터를 찾아 김다온과 정기적인 상담을 진행했다.
Team CFG의 아이들은 여전히 김다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듯했고, 시티로부터 전달받은 재활의 진행 정도도 기대했던 것보다도 좀 더 빨랐다.
“분명 그 정도라면, 목발은 하나뿐이었어야 했지.”
“후우~ 여전히 두 개던가?”
“그래. 왼발을 전혀 쓰려고 하지 않더군.”
왼쪽 발목이 절단 직전까지 가는 심각한 부상이 있었던지도 4개월이 흘렀다.
내부에 심어 놓았던 금속 일부도 제거했고, 재활 운동의 강도를 생각하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왼발을 어느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김다온은 여전히 왼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환상통(Phanton Pain).
한스-빌헬름은 단번에 김다온이 환상통을 느끼는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아챘다.
“후우~ 이건 여전히 미지의 영역일세.”
“그렇지, 라몬. 우리 같은 의사들을 바보로 만드는 괘씸한 녀석이야.”
“사실, 그것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네.”
라몬 쿠가트를 고뇌로 몰고 가는 환상통은 현대 의학으로도 그 이유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부상 과정에서 뇌에 전달된 강한 신호가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 사지를 통제하는 감각 일부에 영향을 주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다는 가설을 세우곤 있었다.
하지만 이도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여전히 지구상에 있는 절단 환자의 절반 이상이 환상통에 시달린다.
그건 가벼운 불편함이 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부상 당시의 상황과 비슷한 정도의 통증이 전해진다.
하나 천만다행이도, 한스-빌헬름이 관찰한 김다온의 환상통은 그리 심한 수준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환자 본인과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 내린 결론이다.
아내인 권아영은 물론이고, 맨체스터 시티의 클럽 관계자 누구도 김다온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로군.”
“그래.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는 거지.”
“……그는 축구 선수일세, 한스.”
“그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이지.”
“…….”
“…….”
세계 최고의 스포츠전문의조차도 침묵으로 몰고 간 희대의 난제 앞에서, 침묵을 먼저 깨트린 쪽은 라몬 쿠가트 쪽이었다.
“빌라야누르 라마찬트란.”
“인도의 뇌과학자로군.”
“그래. 혹시 알고 있나?”
약간의 미신이 곁들여진 현대 의학이긴 했지만, 2013년부터 3년에 걸쳐 이루어진 빌라야누르 라마찬트란(Vilayanur Ramachandran)의 실험은 학계의 큰 반향을 얻었다.
빌라야누르 라마찬트란은 사지 중 하나가 절단된 환자에게 거울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이 잃은 팔다리가 여전히 존재하도록 뇌를 인식하게 만든다는 치료 법을 고안했다.
만약 오른쪽 다리를 잃은 환자가 거울을 보게 되면, 오른쪽 다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후 라마찬트란은 환상통을 겪는 환자를 모집, 그 환자가 느끼는 환상통 증상에 맞춰 거울에 비친 사지를 움직이게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다.
환상통은 통증뿐만이 아니라 절단된 부위가 물건을 들어 올리는 등의 운동을 수행해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포함하는데, 그와 동일한 동작을 진행토록 한 것이다.
절단된 팔로 무거운 것을 들고 있는 것 같은 환상통을 느끼는 환자에겐 오른팔로 비슷한 무게를 들게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치료 방법은 실험에 참여한 73%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를 바탕으로 라마찬트란은 환상통이 뇌의 신호와 연관이 있음을 다시 한번 주장했고, 오감 중 가장 확실한 시각을 통해 통증이 절단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림으로써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식 치료법으로 여겨지기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부족했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현실이다.
“다음에 그는 언제 여기에 오나?”
“IFG가 끝난 다음이니 12월이겠군.”
“너무 느려. 내가 따로 진행해도 되겠나?”
“허락이 필요한 문제인가?”
“재활은 자네가. 그의 심리는 내가. 이게 우리가 다온의 치료를 다루기로 한 방식 아닌가.”
“흐음-”
한스-빌헬름의 이야기를 들으며, 라몬 쿠가트는 다시 한번 김다온이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지를 생각했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전문의 두 사람에게 동시에 치료를 받은 남자는 스포츠 역사를 통틀더라도 김다온이 유일할 것이다. 굳이 스포츠 영역에 한정 짓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사치스럽군.’
김다온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이해되다가도, 라몬 쿠가트는 현재 상황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일정 부분을 양보키로 한다.
“좋네. 어차피 거울 요법은 심리적인 부분에 더 가까운 영역이야. 그러니, 자네가 맡는 게 올바를 것 같군. 단, 그 보고서는 별도로 받아야겠네.”
“물론이지. 그럼.”
“응? 바로 가는 건가? 차라도 한 잔 안 하고?”
“하하. 다온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을까? 라몬, 자네는 훌륭한 의사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형은 아닐세.”
“나도 마찬가지야.”
“이만 실례하겠네.”
“…….”
딸깍-
방문 목적을 끝내고 다시 병원을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5분. 라몬 쿠가트는 한스-빌헬름이 건넨 말을 떠올리며 환자의 차트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런 그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져 있다.
“정말이지, 대단한 친구야.”
경쾌하게 움직이는 그의 펜 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구불거리는 글자가, 비어 있는 차트를 조금씩 채워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