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8)
97화
[올림픽 축구, ‘강찬일 호’ 7일 밤 시리아와 평가전. – 스포츠 연합/2012.06.06.(오후).
.
·2012.06.07. 경기결과
대한민국 3 : 1 시리아
[골] 김기희 : 전반 33분(이종원), 후반 17분(황석호)윤일록 : 전반 46분(윤빛가람)
.
.
[“완승? 3: 0이었으면 완승이었을 것이다.” 승리에도 불구, 팀에 박한 평가를 한 강찬일 감독. – 포포투(한국)/2012.06.07.] [강찬일 감독의 인터뷰는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의 사기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스포츠 연합/2012.06.07.] [강찬일 감독의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면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표팀은 후반전 시작 이후 10분 동안 시리아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았고, 이때 나온 실점 과정에서 보여준 국내파들의 느슨한 정신상태를 지적한 것이다. – 풋볼베스트일레븐]***
※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명단 ? 2012.06.29.
GK ? 정성룡(수원/와일드카드)
GK ? 이범영(부산)
FB ? 김다온(SL 벤피카)
FB ? 김창수(부산/와일드카드)
FB ? 윤석영(전남)
CB ? 김영권(오미야)
CB ? 곽태휘(울산/와일드카드)
CB ? 황석호(히로시마)
DM ? 기성용(셀틱)
DM ? 정우영(교토)
CM ? 한국영(쇼난)
CM ? 박종우(부산)
CM ?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W ? 남태희(레퀴야)
W ? 김보경(오사카)
W ? 지동원(선덜랜드 AFC)
W ? 손흥민(함부르크 SV)
ST ? 석현준(FC 흐로닝언)
.
.
[박주영이 없다? 강찬일 호가 발표한 2012 올림픽 대표 명단을 두고, 박주영이 선발되지 않은 것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 스포츠연합]***
2012년 7월 2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8. 파주 풋볼 팬타지움.
한국에 온 지도 벌써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에 난 휴식을 취하는 한편, 창훈이의 추천으로 권준이라는 분을 소개받아 개인 훈련을 했다.
권준이 형은 프리스타일러(Free Styler)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무척이나 존경스럽고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한국에 KJ Art Soccer라는 스킬트레이닝 센터를 차려 많은 유망주를 지도해주고 계셨고, 내게 형을 소개해준 창훈이도 형의 센터에서 축구를 배웠다.
유럽에서 3년 정도 있었던 내겐 배울 것이 없다고는 말 하셨지만, 훈련 내용이 흥미로웠던 데다가 또 무척이나 재미있어 2주 정도는 정신없이 훈련에 빠져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우와악-!!! 대-박!!!!”
“아-씨, 깜짝이야!”
다시 현실로.
“뭐야? 쟤 왜 저래?”
“야-! 김다온! 너 왜 그래?”
“형! 형! 형!!”
“어, 어? 뭐야, 얘. 무서워.”
“나 180!!”
“뭐?”
“180이 넘었다고요!!”
오늘은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대표팀의 소집 첫 번째 날로, 지금은 올림픽위원회에 제출할 표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키와 몸무게 측정부터 시작했는데, 기계에 표시된 내 키가 정확히 180.3cm였다.
“우와아- 나 평생 180이 안 될 줄 알았어!!”
우리 집안은 그리 키가 큰 편이 아니다.
아버지는 170cm가 약간 안 되시고, 엄마는 딱 160cm다.
누나도 키가 163cm였는데, 그나마 난 집안에서 키가 큰 편이었다.
전에 누나가 포르투갈에 왔을 때 못 본 사이에 키가 커졌다고 말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말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 잠깐.”
“네?”
“다시 올라와 봐.”
“아- 왜요!”
검사를 해주시는 선생님이 다시 기계 위에 올라오라고 말씀을 했을 때부터,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올라가야지, 뭐.
지이이이이-잉
“······.”
지금 내게 이것은 목숨만큼 중요한 순간이었고, 최대한 몸을 늘리려고 노력한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방금 소란을 피워서 그런지, 형들은 아까부터 날 계속 쳐다보고 있다.
탁-
정수리에 차가운 뭔가가 느껴지고.
“어때요, 선생님? 180 넘었죠?”
난 기대에 젖은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웃으시는 선생님.
‘그렇지!! 됐다!!’
주먹마저 불끈 쥔 나는 뒤에 들려올 180이라는 말을 기대했건만, 손에 든 기계를 다시 한번 쳐다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79.9cm 아까는 좀 오차가 있었나 봐.”
“Naaaaaaaaaaaaaaa—–o!!”
어째서 내가 포르투갈어를 쓰고 있는 것인지는 묻지 마라.
나도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다시 한번 기계에 올라가겠다고 말했고, 재차 키를 쟀을 땐 오히려 0.1cm 줄어든 179.8cm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떻게? 179.9cm로 써주랴?”
“······네에-”
한쪽에 찌그러져 좌절하고 있는 내 곁으로, 흥민이 형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야, 너 개그맨이냐?”
“아, 몰라!”
물론 나를 위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형은?”
“뭐?”
“키.”
“나? 난 똑같아.”
“그래서 몇인데?”
“183.3.”
“아- 꺼져.”
180cm가 넘는 사람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짐하고 있을 무렵, 인터뷰를 마치고 온 누군가가 기계 위에 올라섰다.
탁-
“189.4~!!”
“아, 지금 저 들으시라고 그런 거죠!!??”
“어, 맞아~!!”
“아- 진짜!!”
“어? 뭐야? 무슨 일인데?”
그전의 상황들을 몰랐던 성용이 형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유를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잠시 뒤, 형이 내 곁으로 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야-! 179.8이면 그냥 180이라고 말해.”
“아- 싫어요! 남자가 존심이 있지. 쯧.”
“푸하하. 뭐야? 너 개그맨이야?”
“아, 뭐 다들 짰어요??”
성용이 형의 손을 뿌리치며 난 다시 기계의 앞으로 다가섰고, 마찬가지로 인터뷰를 끝내고 온 자철이 형이 키를 재는 장면을 유심이 쳐다봤다.
탁-
“183.2~”
“······.”
털썩-
선생님의 말씀에 그대로 무릎을 꿇으면서 주저앉고 말았는데, 이 장면을 본 자철이 형은 OTL이라는 매우 한물간 유행어를 꺼내 들었다.
“아유- 늙은 냄새. 구글거리더니 센스도 꽝이네, 진짜.”
“뭐?! 야! 너 일루와!! 안 와?!”
“메~~롱!! 잡아보시든지!!”
“야!!”
그렇게 파주 NFC 안을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고 있을 무렵, 난 복도 한쪽에서 웬 낯선 사람과 부딪치고야 말았다.
쿵-!
“아이쿠야!”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 위를 쳐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더라?
[안녕. 만나서 반갑구나.] [응? 포르투갈어?] [그래. 난 호르헤란다. 만나서 반갑구나.] [오······.]이제야 생각이 났다.
이분은 대한민국 A팀 감독님인 호르헤 삼파올리다.
올해 1월 1일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지금까지 무척 팀을 잘 이끌고 계시다는 평가를 듣는다.
특히, 체질개선으로 말이다.
한국 축구에, 전에 없었던 색을 입히고 계시다.
[난 아르헨티나 출신이란다. 그래서 포르투갈어에 능숙하지.] [아, 그러셨군요.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하하. 왜긴. 올림픽팀을 지켜보려고 왔지. 지금까지도 강 감독과 이야기를 하고 왔단다. 그의 말로는 이번 세대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하더구나. 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능숙하게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시작한 나를 보곤, 추격하던 자철이 형과 왜 뒤따라온 것인지 모를 흥민이 형이 멈춰섰다.
그러자 감독님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철! 오랜만이네! 몸은 좀 어떤가?]“어······ 뭐??”
“컨디션은 어떠냐고 해요.”
“아- 좋아요! 굿!!”
[멋지군! 그리고 쏜!! 다온. 내 말을 좀 통역해 주겠니?] [네.]삼파올리 감독님은 흥민이 형에게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가장 특별한 재능이라며, 늘 그 미소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그래, 그럼. 이렇게 포르투갈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너무 좋구나.]내 어깨를 두드려준 삼파올리 감독이 떠나가고.
그러기 무섭게.
“우왁-!!!”
“야! 너! 아까는 뭐?”
“아-! 아-! 항복! 항복!”
자철이 형이 내게 헤드락을 걸고 나서야, 나는 왜 흥민이 형이 뒤따라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 똥침 하지 마!!”
아침 일찍부터 파주 NFC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우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런던 올림픽 대표팀이다.
음-
이래서야, 조금도 체면이 안 살아나네.
***
“하나- 둘-, 하나- 둘-”
구호에 맞춘 런닝이 시작되고, 선수단 전체와 인사를 나눈 강찬일이 장철주 회장과 함께 트랙 바깥을 걷는다.
“2% 아쉽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군.”
“네. 저도 그렇습니다.”
이번 올림픽팀을 소집하기까지, 장철주 회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척이나 큰 노력을 해왔다.
런던 현지에 있을 평가전의 상대를 정하기 위해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고, 언론에서 알게 된다면 손가락질을 할 비용을 지급해가며 경기를 성사시켰다.
이미 오래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미래 그룹’의 자본력이 있기에 쉽게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대중적인 공감을 이루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한국의 축구팬들은 대표팀이 강한 상대와 평가전을 치르길 바라면서도, 그것을 위해 큰 금액을 쓰면 태도를 바꿔 비난을 가하는 이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이 한국 축구를 위한다고 믿는 사람들이겠죠. 저기에 있는 저런 분들은 아닙니다.”
“하하. 그렇지.”
오늘 대표팀의 훈련 첫 번째 날은, 최초의 40분과 훈련 이후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로 했다.
파주 NFC가 공식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이후, 이곳에는 늘 대표팀 선수들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그 어떠한 노력을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
예를 들어, 화면과 키보드로만 축구를 보고 말하려는 이들은 진정으로 한국 축구를 위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바라는 방식대로 되기만을 원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그렇게 된 뒤에는 책임을 지려고조차 들지 않는다.
“본래 말만 많은 사람들은 도움이 안 되는 법이니까요.”
“그래. 나도 동감일세.”
장철주와 강찬일은 한국 축구를 바꾸는 것에 있어, 기존의 적폐세력들을 청산하는 것만큼이나 팬들의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가장 먼저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만 보더라도, 다수의 한국 언론은 박주영 대신 석현준을 뽑은 선택을 두고 수많은 의문을 표해왔다.
얼핏 타당한 근거들을 내세우곤 있었으나, 강찬일이 보기에 정규시즌 20경기에 출전한 석현준과 컵대회를 포함해 6경기. 심지어 풀타임은 단 한 번밖에 없는 박주영은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4-3-3과 4-2-3-1을 병행할 현재의 올림픽팀엔, 타깃 역할을 맡아줄 수 있는 석현준이 훨씬 더 유용했다.
덕분에 와일드카드 한 장을 아낄 수 있었고, 작년과 올해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곽태휘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그런 것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오로지 자극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을 선동하기에 바빴다.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네, 강 감독. 자네를 지키는 건 내가 할 일이니까. 단, 이번엔 꼭 성과를 내야만 하네. 이렇게 부담을 주게 되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아뇨, 이해합니다.”
지난 1년 동안 KFA를 휘몰아친 개혁의 바람은, 기존의 세력들을 위축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밥상을 지키는 것에 정신이 팔린 동안, 유소년 지도자들의 얼굴을 상당 부분 갈아치우고 K-리그의 단장 일부를 포석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 세력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고, 만약 올림픽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론을 등에 업고 장철주의 입지를 약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최근 언론이 ‘역대 최고의 올림픽 대표팀’이라는 수식어를 쓰기 시작한 것도, 선수단 전체에 교묘하게 의도된 부담감을 짊어주려는 속셈이 숨어 있었다.
그런 중요한 무대.
스트레스로 거의 9kg 가까이 몸무게가 빠져버린 강찬일이지만, 그는 소집 첫날부터 확신을 품게 되었다.
“기대하시죠, 회장님. 메달은, 꼭 가져오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그럼, 이만.”
몇몇 언론들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그들이 표현한 대로 이번 올림픽 대표팀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였다.
‘이 녀석들이라면.’
눈앞에 있는 선수들과 함께라면, 늘 4강 신화에 만족해야 했던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을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다.
지금, 강찬일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
알다시피, 이전 나의 대표팀 경험은 보결의 보결로 뽑혔었던 2009년의 U-17이 유일했다.
그래서 난 사실, 대표팀 초보라 봐도 무방하다.
“진짜? 진짜 그래도 돼요?”
“어- 몰랐어?”
추후의 일은 모르는 것이지만 만약 대표팀에 선발된 경력이 있다면, 우린 언제든 이 파주 NFC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허락은 구해야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99% 쓸 수 있다고 보면 됐다.
“야, 여름에 우리가 한국에 와서 뭐 하겠냐? 쉬기만 하겠어?”
“아- 그런 거예요?”
“다들 그래. 그래서 여기 와서 아예 다 같이 모이기도 하고. 밥 줘. 재워줘. 축구도 할 수 있어. 얼마나 좋냐?”
“어, 근데 그거 다 세금 아니에요?”
“그렇지. 그래서 열심히 뛰는 거지. 공짜는 아니니까.”
“······.”
간단히 몸을 푸는 선에서 끝난 소집 첫 번째 날, 우린 늦은 저녁 숙소 1층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것을 제안한 것은 성용이 형이었고, 자철이 형과 우영이 형, 또 보경이 형이 자리에 함께했다.
“야,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금은 얘가 제일 앞서나가지 않냐?”
“아니지. 그건 성용이지.”
“뭐가요?”
“얜 챔피언스 리그는 못 뛰었잖아.”
“아-”
그 이야기였구나.
“아니, 그래도 팀은 얘가 제일 좋잖아?”
“아우크스보다 더 낫나?”
“에-이. 말이라고 해?”
졸지에 누가 가장 좋은 클럽에서 뛰느냐는 토론이 펼쳐졌고, 결국 승자는 별말을 안 했던 내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 어떻게 대표팀이 된 거야?”
“언제요? 옛날에요?”
“응, 그래.”
“아, 그거라면.”
이건 무척 내게 중요한 주제다.
작년 겨울 한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가장 궁금해했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째서? 왜?
이광종 감독님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던 나를 U-17 대표팀에 뽑았나?
이 의문은 작년 겨울 이광종 감독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해소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분명, 언젠가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
작가의 말 ? 다온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독자님들이 아직 듣지 못하는 거죠.
이는 먼 훗날 에피소드로 풀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