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88)
954화 re – Action (4)
2018년 12월 4일. 08023 바르셀로나, 스페인. 알폰소 코민 프라자, 5. 퀴론살루드 바르셀로나 병원.
IFG로 인해 오랜 기간 퀴론살루드를 찾지 못했던지라, 이번 방문은 총 이틀 일정으로 계획되었다. 어제는 요나스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호텔로 돌아갔고,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리오?”
“Hola, Amigo. 오랜만이네.”
“진짜 그래요.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설마 다치기라도 한 건 아니죠?”
“하하. 다쳤었어. 몰랐던 거야?”
“…….”
2018/19 스페인 라 리가 9라운드 세비야 FC와의 경기에서, 리오는 오른팔이 꺾이는 부상으로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심한 것은 아니어서 12라운드 레알 베티스전에는 복귀했으나, 부상 이전의 폼은 아직 되찾지 못했다. 이틀 전엔 어시스트를 올리긴 했으나, 경기력 자체는 나빴다고 한다.
“미안해요. 제가 요즘 미디어에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리고 번호도 바꾸고?”
“네?”
“몇 번이나 연락했었어. 그런데 도통 연결이 되지 않더라. 그래서 네 에이전시에 이야기해 봤는데, 네가 괜찮을 때 연락을 할 거라더라고. 그게 언제인지 알겠어? 안 그래? 그러다 우연히 네가 이곳에 왔다는 소문을 들었어. 바로 박사님께 전화를 걸었지. 소문이 사실이더라.”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다는 리오는 내게, 얼굴이 생각보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했다.
“월드컵에서의 일은 유감이야.”
“네. 정말 그래요.”
“어때? 많이 나아진 거야?”
“그랬으면 하네요. 최소한 악몽의 빈도는 줄었거든요.”
“그거…… 다행이네.”
“하하. 얼마간은 잠이 드는 게 무서울 정도였거든요. 매번 똑같은 꿈을 꿨죠. 어두컴컴한 곳에 그어진 흰색 선 위를 달리다 보면, 다리가 산산이 조각나는 꿈을 꾸곤 했어요. 꿈인데도 다치던 당시의 통증이 생생하게 느껴졌죠.”
“…….”
억지로 웃으려 하고는 있지만, 리오의 표정을 보니 얼굴이 썩 좋은 것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아이들 때문이구나.”
“네. 알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Team CFG? 네가 그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는 뉴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
대충 눈치로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아이들과 함께 나타난 장면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엔.
“어떤 사람들은 네가 은퇴할 거라고 생각해.”
“그렇군요.”
“그런 거야?”
리오의 눈빛에 스치는 감정을 확인한 순간, 어째서인지 농담을 던지고픈 충동이 느껴졌다. 만약 내가 은퇴를 택한다면, 기분이 어떨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행동이다.
그래서 난 솔직해지기로 했다.
“아뇨. 저는 반드시 피치로 돌아갈 거예요.”
“?! 그, 그렇구나. 그랬어. 그런 거야.”
“걱정하게 했다면 미안해요, 리오.”
“아냐. 나는 그냥…….”
“응?”
머뭇거리는 리오를 보며, 호기심이 생겨났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요?”
“잠깐만.”
“?”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린 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치료실의 문 앞으로 걸었다. 그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문을 닫고 자물쇠까지 잠근 후에 자리로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나는 리오의 행동에 집중하게 됐고, 손바닥을 비비며 초조해하던 그가 툭 던지듯 한마디를 건네왔다.
그것도.
“우리가 같이 뛰는 걸 어떻게 생각해?”
“?!?!”
엄청난 내용의 이야기를 말이다.
대체 이건 무슨 일인 걸까?
“진심이세요?”
“약속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야기는 진심이야.”
“잠깐. 진심이라고요? 그건…….”
“그래.”
오, 이런 세상에나.
리오는 지금 내게.
“곧 FC 바르셀로나를 떠날까 해.”
“!!!!”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클럽과 도시를 떠나겠다고 이야기해 오고 있었다.
***
【4시간 뒤】 바르셀로나 상공(Over Barcelona)
@전용기 안
아까 나눈 대화의 충격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나는 바르셀로나를 사랑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그런데도 떠나겠다고요?”] [“내가 이 팀을 병들게 하고 있거든.”] [“그건 무슨 말이죠?”] [“바르토메우.”]2014년, FC 바르셀로나의 이사진은 네이마르의 이적료 문제의 책임을 산드로 로셀 전(前) 회장에게 돌렸다.
본인들이 승인하고 또 결제처리까지 한 이적임에도, 사람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꼬리를 잘라 버리는 식으로 산드로 로셀을 자리에서 밀어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FC 바르셀로나 클럽의 농구 분야를 담당하던 바르토메우를 임명했다.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저, 축구를 모를 뿐이지.”] [“그거 꽤 큰 문제처럼 들리는데요.”] [“하하. 네 말이 맞아. 아주 큰 문제이지.”]세상의 모든 프로 축구 클럽이 그렇긴 하지만, FC 바르셀로나는 특히 더 운영이 중요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부유한 클럽과는 거리가 멀며, 오직 성적을 바탕으로 벌어들인 돈과 스폰서 수입으로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데 바르토메우는 마치 오일머니를 등에 업기라도 한 것처럼, 비싼 값에 선수를 사들이는 일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당 이익이요?”] [“응. 아버지가 말해 줬어. 클럽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러 갔을 때라고 하더라. 자세한 건 묻지 못했지만, 바르토메우에게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고 했어.”] [“Dios mio.”] [“내 처음 반응도 딱 그랬었지.”]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아무리 회장에게 절대적인 권력이 있다지만, 클럽이 벌어들인 돈을 자신의 주머니로 가져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보는 눈이 많기도 하거니와 돈을 착복하려면 회계 전체를 손대야 한다.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최소 다섯 명은 넘는 내부 협력자가 있어야 했다.
스페인 라 리가나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는 종종 이런 식의 비리가 발생하곤 했는데, 독일 ‘슈피겔’이나 잉글랜드 ‘텔레그래프’와 같은 미디어에서 이를 자세히 다룬 기사를 실었었다.
마치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숨 막히는 글이었고, 그래서 더욱 그것을 집중해서 보았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리오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소 다섯 명 이상의 협력자가 있을 거로 생각된다.
[“FC 바르셀로나는 썩었어.”] [“…….”]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데, 내가 그걸 막고 있는 모양새야. 리오가 해 줄 거야. 리오가 우리를 트레블로 이끌 거야. 그들은 나를 방패막이로 쓰고 있어.”] [“그래서.”] [“?”] [“그래서 당신만이 위기를 볼 수 있는 거로군요. 사람들이 당신을 방패막이로 쓰고 있으니까.”] [“하하. 네 말이 맞아.”]자신이 팀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리오의 말을 나는 그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르토메우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방패막이로 삼아 부정부패를 일삼는 중이고, 그것을 계속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클럽의 스쿼드를 약화하고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바로트메우의 행보는 단순한 무능(無能)으로 치부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존재했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계속해서 젊은 선수를 나이 많은 선수로 바꾸는 것이라든가, FC 바르셀로나의 정체성 그 자체라 부를 수 있는 라 마시아를 끊임없이 파괴하려고 드는 것이 바로 그랬다.
마치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사람들의 시선을 거기에 집중되도록 만들려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선수 영입 과정에서 이적료를 깎으려는 노력도 별반 하지 않거나 에이전시에 쓸데없이 수임료를 두둑하게 지불하는 등. 어떻게든 돈을 쓰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에이전시와의 어떤 유착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선수 영입이나 이적 과정에서 에이전시의 배를 불려 주고, 그 일부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돌려받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 또한, 부패한 회장이 즐겨 쓰던 방법이었다.
실제로 리오의 아버지는 자체적인 조사 끝에, 바르토메우 부임 후 단 4년 만에 FC 바르셀로나와 관련이 있는 이름 모를 기업이 100개 이상 늘었다고 했다.
클럽의 자금 일부가 해당 기업으로 흘러갔고, 반대로 기업에서 클럽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전혀 없었다.
FC 바르셀로나가 자선 단체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식의 자금 유통은 아예 말이 되지 않는다.
[“내 계약은 2020년까지야.”]리오는 내년 여름, 클럽에 팀을 떠나겠다는 통보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단 세 사람뿐이라고 했다.
[“어째서?”] [“왜 네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네.”] [“…….”] [“리오?”] [“만약 내가 바르셀로나가 아닌 다른 팀에서 뛰게 된다면, 그건 네가 있는 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 [“어째서인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꼭 그러고 싶어.”]리오와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났다.
사람들이 주변에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후우~”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 터무니없을 만큼 엄청난 비밀 하나를 떠안게 되었다. 그것이 특별히 무겁게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 슬픈 것은 분명했다.
FC 바르셀로나의 회장 정도라면, 굳이 그런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도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바르토메우는 축구에는 최악일지 몰라도, 농구를 담당하며 팀을 잘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샐러리 캡(Salary Cap)이라는 연봉 상한제도와 이적료가 없는 농구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잘은 몰라도 바르토메우가 부정을 저지를 여지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 셈인 걸까?
‘좋은 뜻으로만 쓰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2020년 여름이나 되어야 하는 일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메시가 던진 한마디로 인해 나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다리가 조금 근질거린다.
***
2018년 12월 6일. D-80331 뮌헨, 독일. 알터 호프. 디이너슈트라세 12. 뮐러-볼파르트 정형외과/스포츠의학 실습 클리닉.
최근, 뮐러-볼파르트 정형외과/스포츠의학 실습 클리닉엔 예전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생겨났다.
쿵-
“어이쿠, 이런. 미안합니다.”
“이봐, 뉘벨. 저걸 좀 봐.”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
“오늘만 벌써 몇 번째지?”
“내가 센 것만 다섯 번.”
“도대체 요즘 무슨 일인 거야?”
“난들 알겠어.”
클리닉의 인정받는 간호사 뉘벨 비르켄(Nubel Birken)과 빌리 플라츠(Willi Platz)가 튀겨낸 땅콩을 입으로 가져가며 서적에 몰두 중인 한 남자를 바라본다.
이 거대한 클리닉의 원장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스포츠 전문의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를 말이다.
“대체 뭘 보고 계신 걸까?”
“VR이던데?”
“뭐? 진짜?”
“응.”
“설마 박사님에게 새로운 취미라도 생긴 거야?”
“그럴 리가. 보나 마나 치료 목적으로 들인 거겠지. 잊었어? 박사님은 진료가 곧 취미라고. 저분에게 다른 무언가가 생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야.”
“하긴. 그건 그래.”
진료 환자가 없는 시간이면, 한스-빌헬름은 손에 책 하나를 들고 그것을 보며 클리닉 내부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주변을 전혀 보지 않는 탓에 자주 사람이나 물건에 부딪히곤 했는데, 지금도 복도에 놓여 있던 진료용 카트를 사람이라 착각해 사과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놀라운 집중력이었지만, 아무래도 원장이 저렇게 돌아다니는 건 체면에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
뮌헨 유력 인사 부인의 진료를 끝낸 킬리안 볼파르트가 어슬렁거리는 한스-빌헬름을 발견하곤 다시 그를 사무실 안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아무런 저항 없이, 한스-빌헬름은 아들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딸깍-
“뭘 보고만 있던 거야? 응?”
“그야, 박사님이잖아요.”
“뻔히 아버지가 부딪히는 걸 알고 있잖아.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환자들이요?”
“아니! 당연히 아버지지!”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바로 말할게요.”
“후우~ 다음 환자는 언제였지?”
“30분 뒤요.”
“좋아. 그럼 잠깐 자고 있을게.”
“맞춰서 깨워 드리죠.”
“고마워.”
짧은 감사의 인사를 보낸 킬리안 볼파르트가 본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이를 지켜보던 뉘벨과 빌리는 다시 수다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 남자도 많이 변했어.”
“그러니까. 누가 예상이나 했으려고.”
“어제도 자정까지 있었던 것 알아?”
“여자 없이?”
“응.”
“휘이~ 난 킬리안이 6시 이후에 클리닉에 있는 순간은 여자랑 섹스할 때라고만 생각했어.”
직장 상사의 뒷담화라는 세계 공통의 주제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울 무렵, 닫혀있던 클리닉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땅콩을 입에 넣은 빌리가 예약 차트를 확인한다.
“오늘 이 시간에 예약은 없는데.”
“환자를 받을까?”
“아니. 킬리안은 벌써 잠들었을 거야. 그리고 박사님은 보다시피고. 심각한 환자가 아니라면, 그대로 돌려보내는 게 나아. 어차피 아무렇게나 와서 치료받을 수 있는 곳도 아니니까.”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인 뉘벨 비르켄의 앞으로, 잿빛 머리카락의 남자가 다가온다.
“Kann ich dir helfen(도와드릴까요)?”
“Um…… Can you Speak English?”
“응? 독일인이 아닙니까?”
“오-! 이거 다행이군요. 영어가 가능하신 분을 바로 만나다니. 우선,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
안도하는 모습의 남자가 재킷 안쪽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고, 그것을 본 뉘벨과 빌리는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만약 이 남자가 잡상인이거나 한다면, 당장 경비원을 불러 클리닉 밖으로 내쫓자는 암묵적 합의가 맺어졌다. 드물기는 해도, 외국인이 물건을 홍보하러 오는 경우도 있긴 했다.
약간의 씨름을 한 남자가 어렵게 명함을 꺼내어 데스크 위에 올려놓는다.
“응? 맨체스터 시티?”
클리닉을 찾은 남자의 정체는 맨체스터 시티의 클럽 닥터 에두 마우리였다.
전날 왓포드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뒤, 오늘 회복 훈련까지 담당한 그는 한참 고민하던 비행기 티켓을 왕복으로 끊어 1시간 전 뮌헨에 도착했다.
그가 뮌헨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단 세 시간뿐이었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운전기사와 한참을 씨름하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하필이면 휴대전화의 배터리도 방전되어서, 번역기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 겨우겨우 볼파르트 클리닉에 도착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대화를 진행하려면 1분 1초라도 낭비해선 안 됐다. 에두 마우리의 인내심은 거의 바닥을 치려 하고 있다.
명함을 확인한 후 놀라는 뉘벨을 보며, 에두 마우리가 간신히 미소를 짜낸다.
“네. 저는 맨체스터 시티의 클럽 닥터인 에두 마우리라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볼파르트 박사님을 뵐 수 있을까요? 2시간 뒤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해서 시간이 촉박한지라, 될 수 있다면 바로…….”
딸깍-
“응?”
“?”
“?”
에두 마우리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 뒤쪽에서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한스-빌헬름이 등장했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영어로 된 서적이 들려 있었고, 놀란 와중에도 그것을 본 에두 마우리는 서적의 정체가 증강현실과 관련된 것이라는 데에 큰 놀라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박사님!!”
“아, 미안합니다. 또 부딪힐 뻔…….”
“그게 아닙니다. 박사님?”
“응?”
좀처럼 서적에서 눈을 떼지 않던 한스-빌헬름이 황급히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에두 마우리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는 곧바로, 방문객의 정체를 알아냈다.
“당신은?”
“박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김다온의 환상통 소식을 듣고 전전긍긍하던 에두 마우리. 그는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를 찾아, 덴마크의 올보그(Aalborg) 대학이 연구하고 있는 한 이론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올보그 대학의 보 젱(Bo Geng) 박사는 증강현실로 환상통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반복해 왔다.
그의 팀은 환상통을 앓는 환자를 위한 전용 VR 프로그램을 연구했고, 이틀 전 에두 마우리는 그것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한스-빌헬름 역시 자신과 같은 증강현실 관련 서적을 쳐다보고 있었다.
에두 마우리는 절망 속에 피어난 한 줄기 빛을 느낀다.
“제게, 다온의 환상통을 치료할 계획이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부디 저와 이야기를 나눠 주시겠습니까?”
“…….”
놀란 와중에도 신중히 에두 마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한스-빌헬름은, 예상대로 방문 목적이 김다온의 치료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조용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딸깍-
“안으로 들어오시죠.”
“?!! 네! 감사합니다!”
에두 마우리를 자신의 사무실로 들이며, 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두 남자 간호사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앞으로 1시간은 방해하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좋아.”
딸깍-
홀연히 안으로 사라진 두 사람.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뉘벨과 빌리는 조금 전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서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지금?”
“그래. 환상통이라고?”
“다온이?”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든 빌리 플라츠가 본인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접속하려는 순간, 뉘벨 비르켄이 이를 말리며 볼파르트 클리닉의 규정을 되새겨 주었다.
“잊었어, 빌리? 그럼 넌 해고야.”
“하지만…….”
“빌리? 휴대폰을 넣어. 그리고 잊어버려.”
“……어떻게 글 하나만이라도 안 될까?”
“마음대로 해.”
“정말?”
“응. 그러면 너는 잠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겠지만, 이후 쫓겨나고 영영 어떠한 병원에도 취직할 수 없겠지. 볼파르트 박사님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전에 있던 네 전임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이야. 그는 겨우 사진 하나를 올린 게 다였다고.”
“…….”
볼파르트 클리닉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환자와 관련된 그 어떠한 정보도 외부로 발설해선 안 된다.
만약 발설하게 되면 취업 당시에 적은 계약서에 따라 어떠한 보상도 없이 해고되고, 환자의 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이 밝혀져 평생 의료계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잠깐의 달콤함과 바꾸기엔, 그에 따르는 대가가 너무나도 큰 게 사실이다.
결국.
“하아- 알았어. 잊으면 되잖아. 젠장.”
“현명해, 빌리. 그보다는 어제 이야기나 하자. 그 여자애들은 어땠어?”
“아, 그거? 걔들 진짜 죽여줬어. 한 명은…….”
빌리 플라츠가 빠르게 볼파르트 클리닉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볼파르트 부자(父子)가 가장 신뢰하는 간호사인 뉘벨 비르켄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다온이 환상통을 앓는 중이라는 사실은, 당분간 계속 비밀이 지켜질 예정이다.
그리고 증강현실을 통한 치료 계획 또한, 에두 마우리의 합류로 박차를 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