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91)
957화 re – Action (7)
2018년 12월 22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이스트 맨체스터 아카데미.
세상의 모든 축구 아카데미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건 클럽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춰질 때가 많은데, 이는 유스에서 성장한 선수가 1군에 합류했을 때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스 아카데미인 ‘라 마시아’의 경우, 고(故) 요한 크라위프의 축구를 가르친다.
외에도 내가 뛰어 온 클럽들도 각자 추구하는 바가 있다.
FC 노르셸란과 SL 벤피카는 ‘판매(Selling)’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선수의 개성을 존중하는 기조를 띤다.
전 세계에서 어린 선수를 수집하는 만큼,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아이들을 굳이 하나의 틀에 가둬 두려고 하지 않는 거다. 이는 노르셸란보다는 벤피카가 더 강한 편이었다.
애초부터, 남미 녀석들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반면 바이에른 뮌헨은 유스를 ‘생색을 내는 수준’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늘 ‘구매(Buying)’하는 입장이었고, 성인 선수는 물론 재능이 있다고 평가받는 유망주들마저도 어린 나이에 외부에서 데려오는 일에 힘썼다.
주로 9~14세 사이의 아이들이 주 영입 대상이었고, 이는 뮌헨의 스카우트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도움이 됐지만 유스 시스템을 성장하는 데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바이에른 뮌헨의 유스에 합류하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다.”]라는 인식만 더했을 뿐이다.
그래서 2016년 겨울, 바이에른 뮌헨은 7천만 유로(약 945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여 뮌헨 북부에 ‘FC Bayern Campus’라는 아카데미를 지었다.
마침내, 뮌헨에도 제대로 된 시스템이 생긴 것이다.
2017년 7월에 완공된 아카데미에서 현재 뮌헨의 어린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며, 동시에 다양한 경로로 10대 후반의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유스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사이에서 ‘작은 우영’이라고 불리는 정우영 역시, 그러한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곳.
맨체스터 시티.
여긴.
“멈춰!!”
“…….”
“우진!! 패스를 달라고 소리치지 마!! 그리고 로비! 너도 마찬가지야!! 피치에서 공격을 조립하는 건 앨런의 역할이야!! 그러니까 너희는 앨런을 존중해야만 해!! 알겠어?!”
“…….”
“좋아. 다시 하자.”
삑-!
맨체스터 시티 역시 아카데미의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뮌헨보다야 한참 전에 출발했지만, 아직 10년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팀을 방문한 이후 하루가 멀다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필 포든이 대표적인 예인데, 녀석은 9살이던 2009년부터 시티에서 뛴 진성 시티즌(Citizen)이다.
또 잉글랜드 연령별 대표로 발탁되며 일찌감치 대형 센터백 재목으로 평가받는 테일러 하우드-벨리스(Taylor Harwood-Bellis)도 유스가 키워 낸 유망주다.
외에도 제임스 맥아티(James McAtee), 콜 파머(Cole Palmer), 루이스 피오리니(Lewis Piorini), 토미 도알(Tommy Dolye) 등.
외부가 아닌 자체적으로 수혈한 어린 친구들을 육성해 좋은 재목으로 성장시키는 중인 시티의 유스 시스템은, 향후가 더 기대될 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시티는 외부에서도 유망주를 영입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클럽이 자본을 보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일찌감치 주목한 아이들을 이곳 이스트 맨체스터 아카데미로 데려오는 중이다.
노아 오하이오(Noah Ohio), 제이든 브라프(Jayen Braaf), 아드리안 베르나베(Adrian Bernabe), 이반 일리치(Ivan Illic), 제레미 프림퐁(Jeremie Frimpong).
이 아이들 역시 장래 맨체스터 1군 합류가 기대되는 재능으로 평가받으며, 매일매일 정진에 힘쓰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Team CFG는.
“Aight, Boys-!! 여기까지야!! 다들 수고했어!!”
자체적인 수혈과 외부 영입을 동시에 챙기겠다는 클럽 아카데미가 품은 야망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IFG 준우승이라는 성과가 만들어 낸 결과이긴 하겠지만, 확실히 재소집 이후 훈련을 지켜보러 오는 사람의 숫자가 늘었다. 클럽 유튜브 채널도 더 자주 오고 말이다.
여전히 난 촬영을 거부하곤 있지만,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까지는 막고 있지 않다.
“다온-!”
“?”
훈련을 종료하고 코치들과 함께 자체적인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을 무렵, 실내 연습장 반대편 쪽에서 나를 부르는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티 아카데미 디렉터인 제임스 윌콕스였고, 그의 곁에는 못 보던 한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부탁드릴게요.”
“얼마든지.”
프렛웰에게 마무리를 맡긴 이후, 난 목발을 짚고 제임스 윌콕스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FA분이라고요?”
“그러하네.”
“반갑습니다.”
“……네.”
먼저 손을 뻗어 온 쪽은 FA의 관계자 중에서도 나이가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퍼거스 윌모트(Fergus Wilmot)로 소개했다.
“이쪽은요?”
“흥.”
“아, 이쪽은 폴 베스트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 직장 동료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그렇군요.”
사교적인 퍼거스 윌모트와는 달리, 폴 베스트(Paul Best)는 뭔가 불퉁해 보였다.
하지만 내겐 그리 상관없는 일이다.
퉁명하고 투박한 영국 남자라니.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다.
폴 베스트에게 관심을 끄기로 한 나는 제임스 윌콕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지를 물었다.
“아, 여기 퍼거스 씨가 자넬 보고 싶다고 했네.”
“절 잡아가시려고요?”
“하하! 아닙니다. 당신은 계속 아이들을 맡으실 수 있어요.”
“이건 완전 억지야.”
“폴.”
“……쯧.”
아, 이제야 폴 베스트가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라이선스 없이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라이선스 없이 FA나 FIFA 혹은 UEFA가 주관하는 대회에 나가는 팀을 감독하게 되면 처벌을 받게 된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카스티야를 지도했던 지네딘 지단 역시 라이선스 없이 감독을 맡아 징계를 받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Team CFG는 그 어떠한 공식 대회도 나서지 않는 팀이다.
분명 존재는 하지만 FA와 같은 기관에 서류로 기록되지 않은 팀이며, 그래서 라이선스가 없는 현직 축구선수가 아니라 삼류 연예인이 감독이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IFG 역시 시티가 자체적으로 주관한 대회로 이벤트성의 의미가 있을 뿐, FA나 UEFA 등과는 전혀 무관한 경기들이었다.
“아무튼, 늘 궁금했습니다.”
“저 말인가요?”
“네. 당신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니까요. 다리는 조금 괜찮아지신 겁니까?”
“목발을 하나만 짚고 다니고 있죠.”
“네??”
“아니에요. 그냥 농담이었어요. 다리라면 생각보다 빠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 드리고 싶네요. 그럼 이만 실례해도 될까요?”
“그럼요. 뵙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저도 반가웠어요. 그럼.”
마지막까지 날카로운 시선을 주는 폴 베스트를 흘끗 쳐다본 후, 몸을 돌린 나는 다시 목발을 짚어 복도로 나섰다.
아이들은 전부 샤워를 하러 간 것 같다.
‘내일인가?’
내일은 오게의 부모님인 맨체스터로 오시는 날이다. 클럽은 이미 마중을 나갈 준비를 끝내 두었고, 훈련 시간에 맞춰 두 분을 아카데미 전용 피치로 데려오기로 했다.
자신의 아이가 절대 축구선수로서 성공할 수 없다고 믿는 그들에게, 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부모가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가깝기에 모르는 게 있다는 것도 있는 법이다.
‘축구를 좋아하니?’
여전히 말이 없고 어두운 표정의 오게에게, 난 속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
2018년 12월 23일. 맨체스터 M90 1QX, 잉글랜드. 링웨이, 맨체스터 국제공항.
사람들과 함께 공항으로 나가 만난 오게의 부모님은 지극히 평범한 분들이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덴마크 40대’라는 거다.
보수적이고 나라의 추위만큼이나 냉담하며, 극단적인 개인주의 성향에 인종차별에 대체로 무지하다. 교과서에 담아도 될 분들인지라, 나는 잠시 덴마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거, 힘들겠는데?”
“그러니까요.”
오게가 계속해서 축구를 할 수 있게 하려고, 나는 덴마크에 정통한 전문가를 불렀다.
그것도, 현지인으로 말이다.
“휘게가 강해.”
“넵. 너무 휘게죠.”
“거의 휘게 그 자체야.”
“……그만하죠.”
“그래. 너무 나갔나?”
“너무 나갔어요.”
“음.”
휘게(Hygge)는 욜로(Yolo)와 마찬가지로, 과대 포장되어 잘못 전파되고 있는 단어였다.
만약 한국인에게 휘게를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장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별장과도 같은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친구와 함께 평온하고 소박한 시간을 보내는 것쯤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 문화 속의 휘게는 그렇지 않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현재를 붙잡고, 가족 혹은 혼자 흘러가는 시간을 마음껏 음미하라고 말한다.
가족과 함께이거나 혼자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거기엔 불법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행동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부정적인 면만을 끄집어내서 말한 것일 뿐, 덴마크인의 뼛속 깊이 내재된 휘게 문화는 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을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아는 이유였다.
그렇다.
편안함.
난 오게의 부모님이 아들이 축구를 계속하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저들 역시, 휘게를 따를 테니까.
탁-
“후우~”
“걱정돼?”
“아무래도요. 한 아이의 삶이 달린 문제라고요.”
“네가 틀릴 수도 있어.”
“……알고 있어요.”
“일단, 출발할게.”
“네.”
아까 공항에서 오게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 아버지인 니콜라이 매틴손(Nicholai Mattinson) 씨는 악수를 하는 동안에도 내 눈을 거의 바라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뭔가 불편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그냥 내가 싫은 거다.
어머니 쪽인 리케(Lykke) 씨도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난 그녀의 눈이 웃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필이면 저럴 게 뭐람.’
오게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니콜라이와 니케 씨가 폐쇄적인 분들일 거라는 예상은 했다.
하지만 모든 덴마크인이 그러한 건 아니기도 하고, 최소한 두 사람 중 한 명과는 이야기가 통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쉽지 않겠어.’
클럽에서 온 관계자가 오게의 부모님을 시내의 호텔로 데려다주는 동안, 난 요나스와 함께 클럽하우스로 향하며 또 하나의 지원군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오후에 있을 크리스털 팰리스전을 한창 준비하고 있을 올루프에게도, 나는 이미 도움을 요청해 뒀다.
“다투지나 않으면…….”
“응? 뭐라고 했어?”
“다투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고요.”
“꽤 완강해 보이긴 했어.”
“고마워요, 요나스.”
“응?”
“당신은 그렇지 않아서요.”
“하하. 난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니까.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거든.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세대 간의 갈등은 덴마크에서도 심각한 문제야.”
미디어에 좀 더 익숙한 20대와 그 이하의 어린 세대들과 40대 이상의 세대는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덴마크의 20대들은 전통이 아닌 악습이 되어 버린 것들에 반대하지만, 경제적 자립이 힘든 구조적인 한계로 결국 본인들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되어 버렸다.
나이 많은 이들은 그런 어린 세대를 탐탁지 않아 하고, 덴마크의 전통이 무너지려 한다 우려 중이다.
그래서 니콜라이 씨처럼 가부장적이 강한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녀를 어떻게든 가둬 두려고 한다.
“오게는 본인이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해요.”
“하지만 부모니까, 바로잡아 줄 수 있어.”
“축구가 잘못된 건가요?”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니잖아.”
“오게는 재능이 있다고요.”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또래보다 훨씬 더 축구를 잘해요. 그것도 월등하게요.”
“지금까지 수많은 선수가 그랬어. 하지만 그들 중 성공한 선수는 과연 몇 명이지? 오게가 과연 성공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보장은 있을까?”
“…….”
침묵이 이어지고, 이어 갈 말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멀쩡한 오른발을 굴렀다.
쿵-
“역시 아직이야?”
“네.”
“답하기 어려운 문제야.”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
조금 전 요나스와 나눈 대화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었다. 니콜라이 씨가 할 법한 이야기를 요나스가 말하고, 내가 그를 설득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매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보아도, 결국 결말은 매번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세상의 그 어떤 전도유망한 축구선수도 성공을 보장받지 못한다.
내가 처음으로 글로벌 미디어에 이름을 올렸던 2011년도 ‘Goal.com’의 NXGN(NeXt GeneratioN)에서, 상위 10명으로 평가받았던 선수 중 단 세 명만이 빅리그를 밟았다.
제2의 리오넬 메시가 될 거라던 프랭크 아케암퐁(Frank Acheampong)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NGXN에 오른 선수들은 프로커리어가 어느 정도 보장된 이들이고, 선수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 간다고 가정했을 때 경제적으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진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하물며 18~21세 선수들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는데, 14살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것 부분 말이다.
그에 반해 공부해서 취업에 나서는 일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보장된다. 많은 돈은 벌 수 없을지라도, 축구를 택했을 때 짊어지게 될 위험부담도 없다.
“그런데.”
“?”
“꼭 그게 아니라도 자신은 있잖아?”
“뭐, 그렇기는 하죠.”
“그럼 된 거 아니야?”
“잘 모르겠어요.”
“응?”
오게의 부모님이 맨체스터에 머무는 동안, 클럽은 3년의 보장 기간이 적힌 계약서를 제시할 예정이다.
이는 오게가 16살이 되는 2020년 4월 15일부터 발동되며, 1,500유로(약 200만 원)의 주급 보장과 니콜라이와 리케 씨가 원하는 교육과정이 포함되어 있을 거다.
어차피 덴마크에서 받을 교육을 이곳 맨체스티에서 무상으로, 거기에 주급까지 더해서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면 오게는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축구를 계속할 수 있잖아.”
“네. 보장된 기간은 3년뿐이죠. 그동안 저분들은 아들에게 3년이 지나면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말할 거예요. 그럼 과연 오게가 좋아하는 축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까요? 선수로서 더 나아지지 못할 거라고 봐요. 그러면 결국, 제가 틀린 것이 되겠죠.”
“두려워?”
틀리는 것이 무섭냐고?
아니.
전혀.
“그럼?”
“만약 일이 그렇게 되면 오게는 더욱 상처를 받을 거예요. 그리고 그 상처는 어쩌면, 평생 남을 흉터를 안겨다 주겠죠. 그것을 돌아볼 때마다, 오게는 틀림없이 아플 거예요. 말했었죠? 오게는 꽤 잘 웃는 아이였다고.”
“응. 놀랍더라고.”
요나스도 몇 번 Team CFG 훈련과 경기를 지켜본 적이 있고, 당연히 오게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
앤디 사시모비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을 때 놀란 것 역시, 요나스 또한 나처럼 오게를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라고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오게는…….”
“?”
“그 아이는 저처럼 억지로 웃는 것도 할 줄 몰라요.”
“?!”
“상처의 힘듦을 감추고자 웃기엔, 오게는 너무나 순수하죠. 요즘 아이들보다도 더요. 어쩌면 부모님이 없어서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축구를 하러 이곳으로 보내졌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잔인한 일이에요. EC(Etihad Campus)를 보고 어떻게 축구를 그만두고 싶겠어요? 안 그래요?”
어깨를 으쓱인 요나스는 내 생각도 또 니콜라이와 니케의 생각도 모두 이해가 된다고 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것이 더 어렵다고 말이다.
“그나저나, 박사님은 언제 도착이야?”
“26일 저녁이요.”
“휘이~ 앞으로 엄청나게 바빠지겠는데?”
“넵.”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 알겠지?”
“그럴게요. 당신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하하. 그거 힘이 나는 말이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도착하게 될 볼파르트 박사님이 머물 장소는 완벽하게 갖춰졌다.
26일 저녁에 도착한 박사님과는 그간 미뤄온 상담 치료를 진행할 예정이며, 이후 우리 집에서 재활 운동과 함께 치료를 병행하게 될 거라고 들었다.
그리고 도너 홀로한을 대신할 세 명의 사람들이 박사님과 함께 할 예정이다.
독일에서 온 사람들은 아니고, 클럽이 나를 위해 특별히 고용했지만 내가 불편하게 여겨 에티하드 캠퍼스에서 업무를 보던 이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정말 바쁘겠네.’
요나스의 말처럼 꽉 차게 될 일정을 머릿속으로 대강 그려 보이며, 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맨체스터의 풍경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