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997)
964화 re – Born (6)
삶 속엔 역경이 잔뜩 있다.
어쩌면, 삶은 곧 역경일 수도 있다.
역사상 유일한 잉글랜드 출신으로 발롱도르 연패(連?)에 성공한 케빈 키건(Kevin Keegan)은 1974년 채리티실드 경기에서 자신의 가족을 모욕한 빌리 브렘너(Willy Bremner)와 주먹 다툼을 벌인 끝에 11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억울했던 키건은 리버풀을 통해 FA에 정식으로 제소를 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고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승리라는 게 상대의 가족을 모욕해 가면서까지 꼭 얻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게 축구라면, 더는 피치 위에 머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겐 밥 페이즐리가 있었다.
리버풀의 전술.
콥(Kop)들의 영웅.
밥 페이즐리는 그가 모든 선수에게 그랬듯 케빈 키건을 살뜰하게 챙겼고, 실의에 빠진 키건의 집을 찾아가 축구를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자네와 같은 사람은 축구를 계속해야만 하네.”] [“피치 위엔 고통이 가득한데도요?”] [“그래. 하지만 덕분에 많은 사람이 웃을 수 있지 않나. 그리고 그걸 보다 보면, 자네도 틀림없이 행복해질 걸세. 왜냐하면, 자넨 축구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사랑하고 있기에, 축구로 인해 상처를 받는 걸세.”]자신을 아끼는 감독의 설득에 넘어간 케빈 키건은 징계를 끝마치고 피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1976년 리그와 UEFA 컵, 1977년 리그와 유러피언컵을 품에 넣으며 리버풀을 2년 연속 더블로 이끌었다. 키건은 스타가 되었고, 당연히 클럽은 그를 남기기로 했다.
[“제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합니다.”]은퇴까지 결심했던 사건이 계기가 되어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 키건에겐, 평생 잉글랜드에서만 갇혀 있는 것은 갑갑한 일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축구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함부르크로 이적한 뒤 키건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고, 리버풀에서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분데스리가의 부진으로 알란 시몬센(Allan Simonsen)에게 발롱도르를 넘겨준다.
발롱도르 투표 2위에 그친 키건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이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WE`LL SEE.”]두고 보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케빈 키건은 이후 각성한 것처럼 날아다녔다.
분데스리가 적응을 마친 1977/78 시즌 후반기부터 시작하여, 약 2년 동안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그리고 이 기간, 키건은 발롱도르 2연패에 성공한다.
바로 이게, 내가 하고픈 말이다.
“크건 작건, 우리는 늘 역경에 맞섭니다.”
“······.”
발롱도르 호스트인 다비드 지놀라가 나를 호명한 지도 1분 정도가 흘렀다.
간이 실내 무대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박수 속에 난 앞으로 걸어 나왔고, 이후 커리어 세 번째 발롱도르를 건네받아 마이크의 앞에 섰다.
그러곤 가장 먼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또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의 이름을 먼저 입에 올렸다.
그다음은 키건의 이야기였다.
“저는······.”
부상 이후, 나는 피치로 돌아가는 일이 두려웠다.
매일 반복되는 악몽이 그런 감정을 더 부추겼다.
하지만 난 그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고, 무의식중에 나온 한마디로 인해 아영이에게 뺨을 얻어맞기도 했다.
그녀는.
“도망치는 것은 제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
“집으로 돌아와, 우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가장 먼저 사과를 했죠. 아내는 제가 경이로운 존재라고 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지금까진 제 입으로 이 단어를 잘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편하게 말해 볼까 합니다.”
“······.”
“Wonder. 그녀는 제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해 줬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제 새로운 시작이었죠.”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선 이라고 해도, 추락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선 상태일수록, 추락했을 때의 충격은 더욱 뼈아프다.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누구도 한국이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었죠. 물론 차붐이나 박지성과 같은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변방의 나라였죠. 저는 그곳에서도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였습니다. 가난으로, 축구를 관둬야만 하는 소년이었죠.”
하루가 멀다고 빚을 독촉하는 사람들과 돈 앞에서 가족이란 이름조차 집어던진 친척들. 누나는 어린 나를 지켜 주었고, 난 두려움을 참아야 했던 사춘기 소년이었다.
힘겹게 잠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는 온통 돈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그건 또 무슨 돈으로 살까?
가난이란 이름은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처럼 나와 가족을 옥죄어 왔고, 그 끝에서 나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축구를 미워하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려웠지만.
할 수는 있었다.
“저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주변으로 늘 끊임없이 좋은 사람들이 찾아왔거든요. 톰 버논. 그가 저를 노르셸란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제 삶은 끊임없는 도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저를 일으켜 세워 주었죠.”
“······.”
“사람들은 말합니다. 네가 재능이 있어서 결국 그런 것 아니겠냐고. 재능이 없다면, 결국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지금까지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버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지 마세요. 삶이 힘겨울 땐, 우린 그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족, 친구. 누구든지요.”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숙연해진 장내에서 박수 소리가 잠깐 번져 나왔다. 난 그것이 잦아들기를 잠시 기다렸고, 이후 다시 목소리를 이어 나갔다.
“최근,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네. 여러분들도 아마 아실 겁니다. Team CFG죠.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이 제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순수하고. 동시에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는 생각하게 됩니다. 피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그때부터, 저는 재활의 박차를 가했습니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는 거죠.”
“······.”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하물며 10대 소년들에게 도움을 받았는걸요.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곁엔 틀림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때 명심해야 할 건, 절대 그들에게 기대지 마세요. 그저 곁에서 함께 걸으며, 당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우리의 진심을 알게 됩니다.”
이어서 나는 볼파르트 박사님의 이름을 꺼냈다. 그분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또 얼마만큼 내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다음으론 라몬 쿠가트 박사님이었고, 뒤이어 나의 재활을 돕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꺼내 들었다.
“보이시죠? 우린 우리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저만 봐도, 재활에만 8명이나 되는 사람이 수고를 해 주고 있죠. 우리는 서로에 기대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린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저는 그것을 더욱 크게 깨달았죠. 그러곤 생각했습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혼자 고민해 보는 수밖에 없었죠. 이 대답만큼은, 제힘으로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드릭 프렛웰은 내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요나스는 내게,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라고 했다.
아내는 그저 나 자체면 된다고 했지만 말이다.
다양한 의견을 귀담아들으며, 나는 오늘의 이 연설을 준비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다. 어떠한 가식이나 거짓말도 싫었고, 현재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 온 이야기들은 전부,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위한 준비 단계였다.
난.
“저는 태어났습니다.”
“?”
“축구를 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저는 태어남과 동시에 임무도 부여받았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과 만나, 그들이 멋진 경기였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주라고요. 동시에 저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기댐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들을 앞으로도 계속 피치에서 해 나갈까 합니다. 저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여러분의 곁으로. 그리고 영국인들이 집이라고 부르는 곳으로요. 저를 걱정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좋은 밤이군요.”
그 어느 때보다도 길고 또 감정적이었던 발롱도르 수상 소감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들이 보내는 커다란 박수와 환호성을 두 귀로 똑똑하게 들었다.
마이크 앞에서 살짝 떨어지자, 곁으로 다가온 다비드 지놀라가 다시 한번 악수를 권해왔다.
“아마, 가장 인상적인 발롱도르 수상 소감일 겁니다.”
“감사해요. 그저 솔직해지려고 했죠.”
“하하. 당신은 경이로운 사람이 맞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하네요.”
“그럼 내후년 발롱도르도 당신 것이겠군요.”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트로피를 들고 무대 뒤로 빠져나오자,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라몬이 서운해하겠군.”
“하하. 박사님보다 뒤에 거론되어서요?”
“훗. 다리는 어떤가?”
“괜찮아요. 아직 진통제 효과가 남은 것 같아요.”
“음- 주사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내지.”
“네. 저도 약물의 도움은 싫거든요.”
전날 나는 ‘프랑스 풋볼’이 잡아 준 호텔에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다. 그리고 추가로 세 명의 일행이 더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여기의 볼파르트 박사님이었다.
시상식을 치르기 위해 호텔을 나서기 전 박사님은 내 발목에 진통제를 투여했고, 덕분에 나는 별다른 무리 없이 시상식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올해부터 신설된 또 다른 상인 여성 발롱도르 수상자인 아다 헤게르베르그(Ada Hegerberg), 그리고 신인왕을 수상한 음바페와 함께 포토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후론 인터뷰의 연속이었고, 일정을 전부 마무리했을 땐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다.
“아- 피곤하다.”
“고생했어.”
“응. 가족들은?”
“퐁뇌프를 즐기고 계셔. 요나스가 따라갔어.”
“파리는 몇 번이나 오셨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그렇지. 자기야.”
“응?”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2018 발롱도르 시상식도 어느덧 끝을 앞두고 있다. 파스칼 페레는 시상식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를 말했는데, 이곳의 뜻이 새로운 다리이기 때문이랬다.
그래서 난 새 다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말끔히 보수된 다리가 필요한 거라 맞받아쳤고, 오히려 농담을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었던 파스칼 페레가 울상을 짓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곧바로 농담이었다고 하자, 그제야 안심하는 페레였다.
‘하여간에.’
지금까지는 이런 자리가 딱히 편안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고, 또 나의 성취를 증명하는 자리라고만 여겼었다.
하지만 오늘, 난 처음으로 축구 관련 인사가 많이 모인 이런 자리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어째서일까?
‘꼭······.’
부상을 기점으로, 나는 어쩌면 새롭게 다시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손상된 신경망이 뇌를 자극해, 전에는 불편해했던 것까지도 좋게 느끼도록 바꾸어 놓았는가 보다.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좋네.”
“응?”
“아냐, 아무것도.”
“응.”
하나둘 정리가 이뤄지고 있는 발롱도르 무대.
난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다.
***
[역사상 세 번째 발롱도르 3연패 : 2018/19 시즌 전반기 없이도, 김다온은 압도적인 차이로 본인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 ESPN(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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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날두 시대의 종지부를 알린 김다온의 발롱도르 3연패. – 한겨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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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울림을 가져온 김다온의 수상 소감은 그의 발롱도르 3연패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 BB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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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 3년 연속 발롱도르 위너가 된 김다온이 남긴 희망의 메시지. 축구 역사에 남을 위험한 부상에도, 그는 여전히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 Fox Sports(미국)]***
2019년 1월 10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이스트 맨체스터 아카데미.
지난 7일 오후부터 이틀 이상이나 자리를 비웠다. 대회를 이틀 앞두고, 내가 부지런히 발을 옮기고 있는 이유다.
딱-
딱-
오늘 나는 목발을 두 개 모두 착용했는데, 이는 서둘러서 발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면 목발을 놓아둘 생각이다.
딱-
딱-
딸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어째서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프렛웰이 내게 전달한 메시지에 따르면, 오늘 일정은 이곳에서 미팅을 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혹시 지각인가 싶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해 보지만, 메시지에 적힌 시간보다 10분이나 일렀다.
“이건 또 무슨······.”
무슨 영문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을 무렵, 저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은 흰색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고, 곧 그게 쪽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당으로 오세요. 응?”
클럽하우스의 식당은 총 세 곳이다.
퍼스트팀 센터에 있는 것은 맨체스터 1군 팀에 진입한 선수들만이 사용할 수 있고, 리저브를 포함한 시니어 아카데미인 EDS가 사용하는 두 번째 식당은 EMLC에 있었다.
EMLC는 East Machester Leisure Centre의 약자로, 원한다면 그곳에서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이곳에 있는 주니어 식당이다.
“Hello? 여기 누구 없어요?”
······.
부지런히 움직여 주니어 식당으로 왔을 때, 이곳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오전이라 완전히 어두침침하진 않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쯤 되자, 슬슬 감이 왔다.
‘좋아. 해 보자는 거지?’
아마도 Team CFG는 내 발롱도를 수상을 축하해 주기 위해 깜짝 파티 같은 것을 계획한 것 같다.
확신이 든 나는 목발을 짚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고, 미소를 참으며 어딘가에 있을 아이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팀엔, 웃음을 참지 못하는 한 명이 있다.
“아프잘-!! 너 거기에 있는 거 다 알아!!”
······.
“아프잘?!”
“풉-”
“쉬잇!”
찾았다!
맹수가 정글 속에서 먹잇감을 찾듯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던 나는, 귀를 쫑긋 세워 찾은 소리의 흔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머잖아 예상대로.
“SURPRISE!!!!”
“으아아악-!!”
“으왓-!!”
아니. 예상의 반대인가?
뭐, 아무렴 어때.
오히려 내가 아이들을 놀라게 해 주었다.
“아프잘!! 내가 웃지 말랬지!!”
“웃긴데 어떻게 하라고.”
“젠장!”
“Come on, 앨런.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 했지. 깜짝 파티를 준비하려고 나를 여기로 부른 거야?”
“네. 그럴 계획인데 망했어요.”
“쿡쿡쿡.”
“웃지 마, 아프잘. 다 너 때문이니까. 얘들아-!! 들켰으니까 전부 다 나와!!”
앨런이 크게 목소리를 높이자, 손에 폭죽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들고 있던 아이들이 실망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모르는 척을 해 줘야 했나 싶을 만큼, 시무룩한 표정들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놀랬다가 발을 헛디디는 것보다는 나았다며 위로를 해 줬다.
“그래도 이틀 동안 준비했는데.”
“하하. 미안해.”
“그래도 선물은 받아 주실 거죠?”
“그야, 당연하지. 그런데 코치들은?”
“우리라면 여기에 있네.”
“헤이. 잘 지냈어요?”
“훗. 고작 이틀이야. 누가 보면 몇 달은 떨어져 있는 줄 알았겠어. 발롱도르 수상 소감은 잘 들었네. 감동적이더군.”
프렛웰을 포함한 코치들이 곁으로 다가오고, 어딘가로 사라졌던 앨런과 몇몇 아이들이 제법 커다란 봉투 몇 개를 내 앞으로 가져왔다.
“도대체가······ 이건 전부 다 뭐야?”
내가 발롱도르 시상식 참석을 위해 파리로 향했던 날 밤, 앨런이 주도하여 선물을 주자는 계획을 짰다고 한다.
하지만 의견이 좀처럼 모아지지 않았는데, 돈을 모아서 큰 걸 하나 사느냐와 아니면 각자가 생각하는 선물을 전하느냐가 첨예하게 대립했다고 했다.
“첨예했다고요?”
“말도 말게. 덕분에 그제는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결국 헨쇼가 중재해서 각자가 생각하는 선물을 주자고 결정이 되었지.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일세.”
“허허.”
아이들이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봉투들을 내려놓았고, 그러곤 곁에서 얼른 열어 보라는 눈빛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기대를 품고 있는지, 반응이 약하거나 하면 크게 실망할 분위기였다.
‘이거, 부담되는데?’
선물을 받은 후에 반응을 보이는 게 부담되기는 처음이란 생각을 하며, 나는 일단 가장 눈에 띄던 하늘빛 봉투를 가까이 가져왔다.
어째서냐고?
그야 시티의 색이니까.
“오-! 내 거다!”
이 하늘색 봉투는 우진이의 선물이었다.
“시티가 하늘색이니까, 하늘색으로 포장했어요.”
“오- 센스 좋은데? 좋아. 그럼 뜯는다?”
“······.”
포장지를 대충 뜯어내자, 눈에 보인 것은 옷가지 같은 것으로 보이는 천이었다.
딱히 옷은 필요 없는데.
그러다 얼른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냐. 아이들이 준 거야. 아이들이.’
힘겹게 표정을 유지하며, 나는 천을 손으로 잡아 올려 눈앞에서 펼쳐 보였다.
그런데.
“엥?”
분명히 옷은 옷이었는데, 그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았다. 그래서 나는 우진이를 돌아보았고, 곁에 있던 헨리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이건 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내 것이 아니라고?
“응. 그건 나중에 태어날 네 아이를 위한 거야.”
“오?”
“오게가 이틀 전에 그러더라고. 넌 아마 다 가지고 있을 거라서 필요한 게 없을 건데, 뭘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도 되나 물어보더라. 우리도 번호를 몰라서 위에 물었는데, 다행히 치키가 연결을 해 줬어.”
“아.”
“뭐, 짐작가는 거라도 있어?”
“네. 있어요.”
공항에서 호텔로 향하는 리무진 안에서, 아영이가 즐겁게 통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분명 모르는 번호라고 했는데, 의아한 반응을 보이더니 곧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를 비밀스럽게 말하는 듯도 했고, 전화를 끊은 뒤에 내가 누구냐고 묻자 산타클로스라며 알 수 없는 답을 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산타일 줄이야.’
우진이의 선물을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이 선물한 것도 전부 나중에 태어날 아이를 위한 것들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어 중성적인 느낌으로 골랐다고 했다.
“오, 이런 세상에나. 너희들.”
“······.”
“고마워. 난 지금······.”
“?”
나는 지금, 눈물이 왈칵 솟아날 정도로 행복했다.
발롱도르를 받았을 때보다 더.
오늘도 나는 역시, 이 아이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