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01
퓨쳐나이트 101화
31. 신녀 지크욘
전투가 한창일 때.
지크욘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야전 병원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유해 주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 병사들의 생사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다들 뭔가 하는 마당에 혼자 막사 안에 죽치고 있기 심심했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죽여 줘! 그냥 날 죽여 줘! 제발!”
피닉스의 공격으로 등판이 완전히 익어 버린 젊은 병사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치유하던 성직자가 절망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트, 틀렸어…… 아무리 힐링을 해도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 그동안 나의 믿음이 이토록 부족했단 말인가? 오, 파이오네스시여 제발 이자에게 은총을…….”
성직자가 자신의 부족한 믿음에 한탄하고 있을 때. 지크욘이 다가왔다.
“야! 헛소리 그만하고 저리 비켜.”
퍽!
지크욘이 절규하는 성직자를 발로 차 버리고는 용언 마법으로 부상병의 상처를 치유했다.
“새살아, 돋아나라.”
지크욘의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자 익어서 흐물흐물해졌던 병사의 등이 원래의 모습으로 빠르게 치유되었다.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던 병사는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자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등짝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젊은 병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한없이 고통스럽던 자신의 등판이 마치 애기 피부처럼 멀쩡해졌기 때문이다.
환자인 그도 놀랐지만 지크욘에게 걷어차인 성직자 또한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왜냐면 지금 그녀가 보인 치유력은 파이오네스교의 대주교조차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세, 세상에, 마, 말도 안 돼.”
지크욘은 놀라는 그들을 무시하고, 다음 환자에게 다가갔다.
“크흑흑…… 내 다리! 내 다리!”
그는 잘린 다리를 부여잡고,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지크욘은 그런 그의 배를 밟고는 안고 있는 다리를 빼앗았다. 그러자 병사는 필사적으로 빼앗긴 자신의 다리를 되찾으려 했다.
“내,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내 다리를 어쩌려고!”
지크욘은 미친 듯 발광하는 그의 머리통을 빼앗은 다리로 한 대 후려치며 말했다.
퍽!
“너, 계속 발광하면 다리 안 붙여 준다.”
“예? 부, 붙여 준다고요? 제 다리를?”
“그래.”
다리를 붙여 준다는 말에 발광하던 사내는 순간 입을 다물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크욘에게 매달렸다.
“가, 가만히 있을게요! 제발 제 다리 좀 붙여 주세요!”
“알았으니까 가만히 있어.”
“예? 아 예! 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병사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단검 자루를 입에 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지크욘은 그런 그의 잘린 다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혈을 위해 꽉 묶어 둔 지혈대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투성이가 된 채로 환자를 돌보고 있던 백의의 여인이 깜짝 놀라 외쳤다.
“저, 저기요! 그거 푸시면 안 돼요!”
그러나 지크욘은 여인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혈대를 풀어 버렸다.
그러자 그의 다리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재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만큼 막대한 양의 출혈이었다.
그런 환자의 모습에 백의의 여인이 급히 달려와 지크욘을 환자에게서 떼어 놓으려 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죠? 당장 저리 비켜요!”
“너나 비켜라.”
지크욘은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여인을 귀찮다는 듯 살짝 밀어 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뒤로 넘어졌고, 지크욘은 피투성이가 된 환자의 허벅지에 잘린 다리를 대고 말했다.
“붙어라.”
그녀의 말과 동시에 따스한 빛이 그의 잘린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윽고 번쩍이던 빛이 사라지는 순간.
잘렸던 환자의 다리가 멀쩡하게 붙어 버렸다.
그러자 다리를 잃었던 환자는 다시 제자리에 붙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만지작거렸다.
“지, 진짜로 다리가 붙었다…… 진짜로 다리가 붙었다!”
그의 얼굴이 희열감으로 가득 찼다.
평생을 불구로 사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암울했던 인생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환자는 지크욘의 발치에 엎드려 절을 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사내는 땅바닥에 이마를 내리찍으면서까지 지크욘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덕에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던 그의 얼굴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크욘은 그런 그의 진심 어린 감사 따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난 이만.”
지크욘이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지크욘 주위로 그녀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처참한 몰골의 환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저기요! 제 팔 좀 봐 주세요!”
“저기요! 여기도 좀 봐 주세요!”
“저 좀 살려 주세요!”
몰려드는 환자들을 보고 지크욘은 오른손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줄을 서시오!”
* * *
두 번째 날 결전도 결국 무승부로 끝이 났다.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이 팽팽하게 맞섰던 결전은 결국 엄청난 희생만을 치르고 싱겁게 끝나 버린 것이다.
“크윽, 끈질긴 놈들! 질린다, 질려.”
“내일은 기필코…….”
그들은 비록 승리를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이기겠다고 다짐하며 서서히 퇴각했다.
산 자들이 돌아간 전장에는 옛 친구이자 동료였던 전우들의 싸늘한 주검만이 처량한 모습으로 남겨졌다.
온종일 격렬한 전투를 치른 작센 공작이 초췌해진 모습으로 기간테스에서 내려섰다.
작센 공작의 아그니는 그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를 말해 주는 듯.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전투에 투입된 기가테스들 중에 성한 것은 단 한 기도 없었다.
다들 찌그러지고, 깨지고, 불에 그슬린 것이 하나같이 처참한 모습이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됐는데…….”
작센 공작은 너무도 아쉬웠다.
지상전에서는 분명 연합군이 녹색 엘프를 압도했다.
그러나 공중에서 마음껏 설쳐 댄 정령왕 피닉스 때문에 또다시 무승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르테온이 아무리 분발해도 정령왕의 힘은 역시 막강했다.
“휴…… 그나저나 오늘 밤은 또 어떻게 넘긴다.”
작센 공작이 체념 어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오늘밤 또다시 닥칠 다크 엘프들의 기습 공격이라는 끔찍한 숙제를 풀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연합군이 이것을 어떻게 푸느냐가 내일 있을 전투에 있어 승리의 열쇠였다.
그러나 그들의 테러를 막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어제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기록한 오늘 전투에선 전사자보다 부상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부상자가 아니라 심각한 화상을 입은 부상자들이었다.
죄다 피닉스의 짓이었다.
그런 그들을 데리고 다크 엘프의 집요한 테러를 막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통에 찬 그들을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휴, 오늘 밤이 심히 걱정이군…….’
그러나 그때까지 작센은 알지 못했다.
야전 병원에 신녀님께서 재림하셨다는 것을 말이다.
* * *
“오! 신녀님!”
“신녀님이다!”
“부디 은총을, 신녀님…….”
“기적을 보여 주세요!”
사람들이 모두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아 지크욘에게 기도했다.
환자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지크욘의 표정은 여느 때의 거친 모습과는 달리 온화함과 인자함으로 가득했다.
“상처를 보여 주시겠어요?”
호수 위의 잔잔한 물결처럼 울려 퍼지는 지크욘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는 일순간 고통조차 잊고 멍하니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봤다.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시면 제가 무안하답니다…….”
지크욘이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자 병사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 줬다.
“벼, 별 대수롭지는 않지만…… 으으음!”
병사는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고 말했지만 그가 보여 준 상처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큰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다니, 정말 용감하신 분이시군요. 하지만 이 정도 상처는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신다면 매우 위험하답니다. 자, 가만히 계세요.”
지크욘이 그의 상처에 손을 뻗어 치유 주문을 외웠다.
“파이오네스의 기적이여, 내 손끝에서 발현될지어다. 아싸라비아!”
지크욘이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외우며 뒤로는 용언 마법으로 그의 상처를 치유했다.
그러자 병사의 상처는 그동안 그녀가 보여 줬던 기적들처럼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조그마한 생채기 하나 없이 말이다.
그러자 여기저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기적이야!”
“신녀님! 여기도 봐주세요!”
“신녀님!”
아무리 치유 마법이 보편화한 이곳이라도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심각한 상처라면 숙련된 치유사라 할지라도 몇 시간을 죽치고 힐링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나 고갈로 지쳐서 탈진해야 정상이었다.
신성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크욘은 어떠한 상처든 단 몇 초 안에 말끔히 치유했고, 수백 명을 치유하면서도 힘들어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신녀의 재림이라 말하며 그녀의 기적과도 같은 권능에 열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아는 한 이 정도의 치유력을 지닌 존재는 오로지 신의 권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신녀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졸지에 신녀가 되어 버린 지크욘은 오래간만에 받아 보는 경외감 가득한 인간의 눈빛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고,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신녀 행세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여흥도 잠깐.
어느덧 날이 저물어 전투가 끝나자 야전 병원으로 엄청난 숫자의 부상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하나같이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위독했다.
팔다리를 잃은 정도로는 부상 취급도 받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지크욘은 쏟아져 들어오는 부상병들을 바라보며 침음했다.
‘헛! 뭐야, 이젠 개 떼로 몰려오네, 젠장…….’
끝이 보이지 않는 부상자들의 무리는 언뜻 보아도 수만 명은 될 법했다.
저 정도 숫자라면 아무리 그녀가 에이션트 드래곤표 치유력을 가졌다 해도 모두 치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제 슬슬 장난 그만하고 조용히 사라질 때가 된 것이다…….
“크아아! 내 눈! 내 눈!”
“사, 살고 싶어, 고향으로 가고 싶어…….”
“어머니, 어머니…….”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부상자들의 행렬에, 야전 병원에 근무하는 신관들과 치유사들도 사색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첫날 전투로 포화 상태인 야전 병원에는 더 이상 그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상자가 엄청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야전 병원을 책임지고 있던 파이오네스의 대신관도 망연자실해졌다.
쏟아져 들어오는 부상자의 숫자가 그들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괜찮아요! 우리에겐 신녀님이 있잖아요!”
“맞아! 우리에겐 신녀님이 계시잖아!”
“와아아아아! 신녀님!”
“신녀님!”
“신녀님!”
신녀님!“
갑자기 웬 여인이 해맑은 미소로 신녀의 이름을 외치자 모두가 광신도처럼 신녀를 부르짖으며, 지크욘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