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02
퓨쳐나이트 102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던 지크욘은 순식간에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고, 제자리에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그리고 해맑은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열렬히 부르짖는 그 여인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저, 저런 쳐 죽일 년을 봤나!?’
“신녀님!”
“신녀님!”
“신녀님!”
“기적을 보여 주세요, 신녀님!”
“아, 아하하…… 아, 네에…….”
어색하게 미소 짓는 지크욘은 속으로 괜히 미친 짓을 했다고 생각하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그녀는 당장 이 상황을 타개할 묘책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그냥 나 몰라라 내빼기에는 드래곤으로서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그래, 전부 말끔히 치료해 줄 필요는 없잖아? 조금씩 치료하는 거라면 방법이야 많지!’
묘책을 떠올린 지크욘이 광신도로 변해 버린 신자들에게 외쳤다.
“다들 이 정도 되는 막대기를 구해 주시겠어요? 최대한 많이요.”
지크욘이 뜬금없이 어깨 높이의 막대기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람들은 당혹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신녀의 부탁이었기에 군말 없이 주변으로 흩어져 막대기를 긁어모았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창 또한 그녀의 앞에 모였다.
“지금부터 실려 오는 부상자들은 제가 꽂는 이 막대기 주위에 눕히세요.”
“네에?”
지크욘은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야전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고, 평평한 곳에다 막대기를 꽂았다.
그리고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대지의 마나여, 이 지팡이에 모여서 치유의 빛으로 변하라.”
그러자 그 볼품없는 막대기에서 따사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을 알아본 치유 마법사가 깜짝 놀라 외쳤다.
“히, 힐링 워드다!”
“힐링 워드?”
“힐링 워드라고?”
힐링 워드는 주변에 마나를 끌어들여서 치유 마법으로 전환시키는 마법 무구로,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마법사는 현재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과거 마도 시대의 유물만이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고위급 마법을 순식간에 발현시키다니…….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기적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리고 모두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드리워졌다.
“하, 할 수 있어, 저분과 함께라면…….”
“신은 우리들 편이야…….”
“뭐 하는가! 서둘러 신녀님을 돕지 않고!”
“신녀님을 돕자!”
지크욘을 돕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이제는 몰려드는 부상병들을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크욘은 일정 간격으로 힐링 워드를 설치했고,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몰려드는 부상자들을 힐링 워드 주위에 눕히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이 지크욘의 은총을 받고 완쾌된 자들이었다.
힐링 워드 하나당 대략 5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힐링 워드에는 지크욘의 용언 마법처럼 순식간에 상처를 낫게 해 주는 강력한 치유력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상처를 아물게 해 주고, 악화하는 것을 방지해 줬기에 그것만으로도 신관들과 치유사들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 * *
헐레벌떡 임시 사령부로 뛰어 들어온 울프데일이 작센 공작에게 외쳤다.
“사령관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얘긴지는 몰라도 조용히 좀 말할 수 없나? 난 지금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단 말일세.”
“아,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그래, 무슨 얘기 말인가?”
“지금 야전 병원에 신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 신녀가 나타났다고?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린가?”
작센 공작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농담처럼 받아들이자 울프데일이 답답하다는 듯이 천장을 한번 바라보고 말했다.
“지금 제가 사령관님한테 농담이나 할 때입니까?”
“아니, 그럼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아, 그렇다니까요. 엄청난 기적으로 수많은 병사를 살리고 있답니다.”
아르칸도르 대륙에는 인간들에게 큰 시련이 닥칠 때마다 신께서 지상으로 신녀를 내려 보내시어 백성들을 도와주셨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작센 공작은 자신이 직접 보기 전까지 그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작센 공작에게 귀에다 대고 울프데일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저기, 그리고…… 그 신녀란 분께선 신녀란 두 글자가 무색하지 않게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합니다. 가히 천상의 미라더군요.”
“처, 천상의 미!”
그렇다. 신녀가 못생겼다는 얘기는 그 어떠한 전설에도 나오는 법이 없었다.
작센 공작은 다크 엘프들의 끈질긴 테러로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지만 그 바쁜 와중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신녀를 배알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녀가 진정 신녀라면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의당 찾아 뵈어야 하는 게 도리였지만, 지금 그가 움직이는 이유 중 하나는 천상의 미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자고로 미인을 멀리하면 사내가 아니란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신녀님을 배알하러 가겠다. 그리고 출동 대기 중인 근위대원들을 차출해라! 사악한 다크 엘프들로부터 신녀님을 지켜야만 한다.”
“예, 사령관님.”
‘이런 적절한 타이밍에 신녀가 나타나 주다니! 그녀가 진짜 신녀라면 그 존재만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작센 공작은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서둘러 신녀가 나타났다는 야전 병원으로 향했다.
* * *
어둠속에 내려앉는 11명의 블랙와이번 대원들.
그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테러를 위해 적의 후방 깊숙한 곳에 내려앉았다.
“대장,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틀째 잠도 안 주무시는 것 같던데.”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난 괜찮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연이은 격전으로 피곤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엘프의 마나 연공법이 있었기에 1시간 정도의 수면으로도 다크 엘프들 때문에 잠을 설치는 병사들보단 덜 피곤했다.
“자, 오늘도 멋지게 한 방 먹여 주자고.”
“옙!”
강찬이 손을 내밀자 모든 대원이 손을 포갰다.
“자, 이동한다.”
스텔스 망토를 두른 블랙와이번 대원들은 하나둘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늘 정해진 목표는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헬리온 왕국의 할버튼 지역으로, 수많은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적군에게 양질의 무기를 조달함은 물론이고 노획하거나 부서진 무기를 수리하는 곳으로서 연합군에게 있어선 반드시 파괴해야 하는 적의 중요 시설 중 하나였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수백 개는 될 법한 화로의 불씨는 밤이 되도 꺼질 줄을 몰랐고, 무기를 만들고 있는 작달막한 녹색 엘프들이 쉴 새 없이 망치질과 담금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녹색 엘프 진영의 숨은 일등 공신인 녹색드워프였다.
과거 그린이 드워프의 씨를 받아 낳은 자식들이었다.
그런 그들은 드워프만은 못하더라도 인간보다는 월등히 좋은 손재주를 지녔다.
그들이 생산하는 양질의 무기는 지금까지 녹색 엘프들이 인간, 오크 연합군을 상대함에 있어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요지였기에 적에 대한 방비가 그 어느 곳보다 치밀하게 되어 있었다.
기간테스를 상대할 수 있는 트롤 엘프 다수와 수천에 이르는 병력이 진을 치고 대기 중이었다.
게다가 사방에 디텍팅 마법진이 둘러쳐진 것을 보면 지크욘의 스텔스 망토도 효력이 없어 보였다.
여차하면 무력으로 돌파할 수도 있었지만, 강찬은 될 수 있으면 피해 없이 은밀하게 처리하고 싶었기에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드디어 그것을 쓸 때가 왔군.’
강찬은 바람의 방향과 풍속을 확인했다.
‘컴퓨터, 풍속과 방향을 체크해 줘.’
-그쯤이야 도와주지.
‘고맙다.’
강찬도 이제는 건방져진 컴퓨터에도 많이 익숙해졌는지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대했다.
근래 들어 갑자기 미치기는 했지만 위급할 때는 어김없이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현재풍속: 남동에서 북서방향으로 1.2m/s.
‘그렇다면 저쪽 방향에서 사용하면 되겠군.’
“대장, 경비가 너무 삼엄한데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 화생방 상황이다. MOPP 4단계 적용(Mission Oriented Protective Posture).”
“네에?”
“서, 설마, 그걸 쓰시게요?”
모두의 얼굴에 불만이 한가득했다.
“왜? 불만이냐?”
“아뇨…… 그게 아니라, 포이즌 가스는 기사도 정신에…….”
그들은 기사도 정신을 숭상하는 헬라이너 기사단 출신이기에 포이즌 가스를 사용한다는 말에 깊은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들에게 있어 독을 이용해 적을 죽이는 행위는 암습을 가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돌아오는 강찬의 눈빛은 차가울 뿐이었다.
“저런 악마 같은 놈들을 상대하는 데 기사도 정신이라니, 다들 배부른 소리를 하는구나.”
“…….”
대원들은 아무도 강찬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도 역시 녹색 엘프는 기사도 정신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악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기사도 정신까지 들먹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빌어먹게도 조잡한 방독면 때문이었다.
‘어휴…….’
대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옆구리에 매달린 가죽 가방에서 부드러운 양가죽으로 만든 조잡한 방독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방독면이라기보다는 가죽 가면에 가까웠다.
눈 부위는 유리로 되어 있었고 눈, 코, 입 주위에는 여러 갈래의 끈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퍽한 기름이 담긴 유리병…….
그 유리병을 꺼내 든 순간 대원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 기름의 용도는 고무가 없는 이곳에서 포이즌 가스의 유입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강찬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것은 매우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동물성 기름으로, 냄새가 매우 역겨운 게 특징이었다.
대원들이 처음으로 이 방독면을 착용해 본 것은 지옥의 유격 훈련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강찬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 대원들에게 이 방독면을 씌워 골방에서 가둔 채 매운 연기를 피워 화생방 상황을 연출했다.
그때 방독면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해 본 대원들은 또 다른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강찬이 그들의 얼굴에 얇은 양가죽 가면을 씌우고는 위아래와 중간에 위치한 가죽끈을 아주 꽉 잡아당겨 묶었다.
그러자 그들은 얼굴에는 피가 통하지 않아 죽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 강찬은 마지막으로 가죽 위에 질퍽한 검은 기름을 빈틈없이 바르기 시작했다.
고무가 없는 이곳에선 급한 대로 이렇게라도 해야 가스의 침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냄새였다.
안으로 스며든 동물성 기름의 역겨운 냄새 때문에 그들의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귀족 물을 먹고 자란 대원들에게는 너무나도 참기 힘든 곤욕이었다.
그러던 중 여자인 아나이스가 그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방독면을 쓴 채로 오바이트를 했다.
“우웨웨웨웨웩!”
그렇게 강찬의 특제 방독면은 그녀에게 자신의 구토에 질식사할 뻔한 아름다운 추억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 후로 대원들은 강찬이 만든 방독면을 지옥의 방독면이라 부르며, 강찬만큼이나 두려워했다.
그런데 그런 방독면을 실전에서 써야 할 상황이 오고야 말다니…….
‘오, 신이시여…….’
대원들은 두 명씩 마주 보며 비장한 눈빛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방독면을 씌워 줬다.
방독면을 쓰는 그들의 표정은 마치 사형수와 같았고, 조잡한 방독면은 사형수에게 씌우는 복면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한 명씩 뒤로 돌아 위 끈과 아래 끈, 중간 끈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