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03
퓨쳐나이트 103화
“크윽!”
“꽤액!”
“야! 누구 죽일 일 있어? 살살 당겨!”
“가만 있어 봐, 느슨하게 했다간 가스에 죽어.”
가스에 죽는다는 말에 아나이스는 묵묵히 고통을 참아 내며, 홀리스의 끈을 묶어 줄 차례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자신이 묶어 줄 차례가 되자 아나이스는 온 힘을 다해 그의 가죽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흐읍!”
“야! 야! 살살해!”
“이,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조금만 참아! 끄응!”
“아악!”
“장난치지 말고, 서둘러 착용해라!”
“아, 옙!”
강찬의 질책을 받고 아쉬워하는 아나이스가 속으로 ‘너 운 좋은 줄 알아라.’라고 하면서 서둘러 홀리스의 끈을 묶어 줬다.
그리고 대망의 질퍽한 기름을 바를 차례…….
거무튀튀한 기름이 담긴 병을 열자 역겨운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고, 대원들은 울상을 지으며 서로가 서로의 투구에 감정까지 담아 듬뿍 기름을 발라 주기 시작했다.
“어이…… 나 좀 많은 거 같은데?”
“아니야, 이 정도는 발라야 가스가 안 들어온다고 대장이 그랬어.”
“호? 그래?”
홀리스가 한 줌이나 되는 기름 덩어리를 퍼서 아나이스의 투구 위에 올려 놨다.
철퍼억!
안 그래도 질퍽한 기름덩어리에서 더욱 질퍽한 소리가 났다.
“야! 이건 좀 심하잖아?”
“다 너를 위해서야. 내가 잘 펴서 골고루 발라 줄게.”
“오호라? 그래?”
아나이스는 병째 들어 홀리스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홀리스가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사실은 한 병 전부가 1회 사용량이야. 몰랐어?”
“크윽! 아나이스!”
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두 사람이 가장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하니, 강찬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봤다.
“두 사람, 아직 멀었나?”
“아닙니다!”
“다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정화통까지 완벽하게 부착한 그들은 완벽한 화생방 요원이 되어 있었다.
정화통에는 포이즌 가스의 독을 무력화시키는 큐어 마법이 걸려 있었다.
강찬은 대원들의 방독면 착용 상태를 최종 확인했다.
“전원 방독면 확인!”
“위 끈! 아래 끈! 중간 끈! 후후! 하하! 가스! 가스! 가스!”
“전원 방독면 이상 무!”
“자, 그럼 작전을 개시한다.”
“저기, 그전에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질문이지?”
“대장님은 왜 저희처럼 방독면을 쓰시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자이젠의 날카로운 질문에 강찬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입고 있는 갑옷에 방독면 기능이 내장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럼 저희도 대장과 같은 갑옷을 입을 수는 없나요?”
자이젠의 요구는 결코 들어줄 수 없는 것이었다.
레드 마스에 있을 당시에도 자신만이 지급받은 이 고가의 갑옷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는 자이젠을 납득시키기 위해 강찬은 대충 둘러댔다.
“이건 고대의 유물이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한 벌뿐인 갑옷이다. 그래서 귀관들에게는 지급해 줄 수 없다. 더 질문 있나?”
“아닙니다…….”
자이젠은 강찬만 그런 좋은 갑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기사에게는 그 어떤 독도 소용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드 마스터인 강찬 본인조차 모르고 있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으면 이동한다.”
“옙!”
강찬이 방독면을 착용한 대원들과 함께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바람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 지크욘이 만들어 준 두 번째 대량 학살 무기인 포이즌 마갑탄을 내려놨다. 그것은 지크욘조차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무기였다.
왜냐면 포이즌 가스란 것은 바람에 따라 어디로 갈지 모르고,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리지 않고 죽이는 학살 병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생방전에 능숙한 강찬은 그것의 적절한 사용법을 알고 있었고, 그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 줄 때가 온 것이다.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마라. 간다!”
강찬이 포이즌 마갑탄을 작동시키자 마갑탄에서 엄청난 양의 보랏빛 안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7써클 포이즌 마법인 데스 포그(Death fog)였다.
이 마법은 원래는 흑마법 계열의 마법이었지만, 모든 마법에 통달한 에이션트 드래곤인 지크욘은 흑마법에도 조예가 남달랐기에 마왕의 도움 없이도 상당 수준의 흑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바람을 타고 천천히 날아간 데스 포그가 천천히 적의 대장간을 뒤덮기 시작하자 녹색 엘프들은 갑자기 불어오는 향기로운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킁! 킁! 이게 무슨 냄새지?”
“무슨 과일 향 같기도 하고? 으음? 흐읍!”
“흐악! 켁! 켁엑!”
“이봐, 왜들 그래? 크어억!”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진 데스 포그가 대장간 지역을 뒤덮자 입구를 사수하던 녹색 엘프들이 하나둘 게거품을 물고 나뒹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강찬과 대원들이 데스 포그의 공격에 무력화된 적들에게 칼을 뽑아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케레미온 님! 7써클급 마력이 포착되었습니다!”
“옳지! 걸렸구나! 그래, 네놈들이 다음 목표로 이곳을 노릴 줄 알고 있었다. 너희는 서둘러 본진에 기별을 넣고, 나머지는 날 따르라!”
“예!”
네미츠에게 직접 침입자 척살 임무를 부여받은 케레미온은 10명의 아크섀도들과 20명의 다크블레이드를 이끌고 적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나 케레미온과 그의 부하들은 가증스러운 침입자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구름이 드넓은 대장간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독 구름 아래로 수많은 녹색 엘프들이 게거품을 물고 죽어 있었다.
“젠장! 저들이 대장간 지역을 벗어나면 그때 덮친다.”
고개를 끄덕인 다크 엘프들이 하나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연합군을 총력전으로 나서게 만든 그들의 권능인 블라인드 하이드였다.
이윽고 여기저기 뭔가를 설치한 적들이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들은 급히 그들을 쫓았다. 그러나 그들의 속도가 민첩하기로 소문난 자신들 못지않게 빨랐기에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적들은 최소한 자신들과 동급인 듯했다. 그러나 케레미온은 적들의 숫자가 10명 안팎이란 것을 확인했기에 수적으로 월등히 앞서는 자신들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들로만 구성된 게릴라 부대라니, 아주 벼르고 날아왔군. 하지만 네놈들의 계획은 여기까지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들 중에 소드 마스터가 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바로 강찬이란 것을 말이다.
‘음, 추격자가 있군.’
강찬은 달리는 와중에도 자신들을 뒤쫓는 추적자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소드 마스터가 되면서 비약적으로 예리해진 감각 덕분이었다.
강찬이 이어폰을 통해 대원들에게 적의 존재를 알렸다.
『모두 잘 들어라. 우리 뒤에 꼬리가 붙었다.』
적들이 따라붙었단 말에 대원들의 눈에 살기가 번들번들했다. 그동안 게릴라전만 벌였기에 검에 피를 묻혀 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들에게도 드디어 적과 교전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것은 블랙와이번 부대 창설 이래 첫 교전이었다.
『여기까지 우리를 추적한 것으로 볼 때 저들 모두가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다. 숫자는 우리의 몇 배, 다들 각오는 되어 있겠지?』
『대장은 뭐 그런 걸 다 물어보십니까?』
『어차피 저 새끼들 떨쳐 내지 못하면 집에도 못 가는 거 아닙니까?』
『한 방 먹여 주고 기분 좋게 돌아가죠, 대장님?』
『녀석들…….』
강찬은 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한 태도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저들에게 여기까지 우리를 추격한 보답을 해 줘야겠지? 아스터, 플레타, 마름쇠를 뿌려라.』
『라져!』
마름쇠를 뿌리라는 말에 두 명의 대원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마름쇠를 주변에 뿌렸다.
그것은 예전 녹색 엘프들이 동부 왕국 지원군의 행군을 방해할 때 사용한 바로 그것으로, 맹독이 발려 있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모두들 주변으로 은폐, 엄폐하라.』
『위치로!』
일치단결한 모습의 블랙와이번 대원들은 신속하게 엄폐물 뒤로 이동해 스텔스 모드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은폐했다.
그리고 최대한 숨을 죽인 채 적들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 * *
부하들과 함께 득달같이 달려온 작센 공작은 야전 병원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헛! 저곳이 야전 병원이란 말인가?”
“예, 사령관님!”
야전 병원의 모습은 예전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넘쳐나는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크욘이 설치한 수백 개나 되는 힐링 워드에서 은은한 노란빛이 뿜어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곳은 마치 요정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 은은한 노란빛이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그 힐링 워드 아래 누워 있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부상을 입고 있었지만 다들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힐링 워드라니…… 정말로 신녀가 나타났단 말인가?”
작센 공작의 얼굴은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으로 가득 찼다.
대륙에 남아 있는 힐링 워드를 긁어모은다 해도 이 정도의 수량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작센 공작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진정 신녀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
“그래, 신녀님은 지금 어디 계시냐?”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부하들이 신녀의 위치를 알아보러 떠나자 작센 공작은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신녀를 내려 보내 주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오, 감사합니다, 파이오네스시여.”
한편 작센 공작이 찾아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힐링 워드를 설치 중인 지크욘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신녀님, 이마에 땀 좀 닦으세요.”
“아? 고마워요.”
수건을 받아든 지크욘이 땀과 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얼굴을 닦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흙과 땀이 묻었어도 지크욘의 미모는 눈이 부셨고, 그런 그녀가 쓰고 도로 건네준 수건은 모든 남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신녀님, 이제 그만 쉬었다 하세요. 이 정도면 아마 충분할 겁니다.”
“휴우…… 그럴까요? 저도 조금 지치네요.”
“이제야 조금 지치신다니…… 역시 신녀님은 대단하십니다.”
그녀는 5시간 동안 혼자서 무려 300개나 되는 힐링 워드를 만들어 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지크욘을 바라본 세인들은 더욱더 짙어진 경외감으로 그녀를 대했다.
그녀 덕분에 중상자 중, 절반이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다.
비록. 그녀가 만든 300개의 힐링 워드가 그 많던 부상자들을 전부 수용할 수는 없었지만, 경미한 환자와 중환자들을 가려 내서 수용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 낸 일등 공신인 지크욘이 자신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때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작센 공작이 들이닥쳤다.
“작센 공작 납시오!”
“헛! 푸읍!”
작센 공작의 갑작스런 등장에 지크욘이 먹던 빵을 삼키다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해 댔다.
“켁! 켁!”
“신녀님, 천천히 드세요. 여기 우유도 좀 드시고요.”
‘아니! 스벌, 저, 저 새끼가 왜 여길 오고 자빠졌어?’
지크욘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간만에 유희를 좀 즐기고 있었는데,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가 나타나니 반갑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총사령관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