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05
퓨쳐나이트 105화
“케레미온 님! 케레미온 님! 정신 좀 차리세요!”
누군가 케레미온을 거칠게 흔들자 케레미온이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
“케레미온 님! 도저히 승산이 없습니다!”
‘음? 케레미온?’
다크 엘프를 학살하던 강찬이 낯익은 이름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다른 다크 엘프들과는 다르게 단검이 아닌 샤벨을 들고 있는 한 다크 엘프가 보였다.
‘음? 샤벨을 쓰는 다크 엘프?’
호기심이 생긴 강찬은 눈앞의 다크 엘프를 검째 반 토막을 내 버리고, 샤벨을 들고 있는 다크 엘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표적이 되어 버린 케레미온은 이를 악물고 오러 소드에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젠장! 그래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자신은 아직 소드 마스터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었기에 오기로라도 붙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힘과 힘의 대결.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콰앙!
“푸웁!”
케레미온은 강찬의 강력한 일격에 깊은 내상을 입고 형편없이 뒤로 밀려나고야 말았다.
케레미온이 밀려나자 주변에 있던 아크섀도들이 강찬에게 협공을 가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강찬의 오러 블레이드에 순식간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들은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르는 이들이었는데, 둘이서 강찬의 공격 10번을 받아 내지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 후로는 누구 하나 강찬에게 덤비려 드는 다크 엘프가 없었다. 그러자 강찬은 마음 편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케레미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물었다.
“네 이름이 케레미온이냐?”
케레미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왜 샤벨을 쓰지?”
“왜? 내가 샤벨을 쓰니까 우습나?”
“우습기보다…….”
강찬은 말을 하던 중 얘기를 멈추고 케레미온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니, 넌!”
그가 진짜 케레미온이란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비록 피부는 검게 변했지만 그의 잘생긴 이목구비와 호전적인 눈초리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어쩌다 그런 모습이 된 거지?”
“몰라서 묻나?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뜬금없이 자신의 탓이라는 케레미온의 말에 강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너한테 패배한 이후, 내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다 이 꼴이 됐지. 어때, 속이 다 후련하냐?”
“후련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네가 다크 엘프가 됐든, 녹색 엘프가 됐든 넌 케레미온이잖아?”
강찬의 말에 케레미온이 굉소했다.
“크하하하하하! 큭큭큭…….”
“왜 웃지?”
“지금 그 얘기, 나 들으라고 한 건가?”
“그런데?”
“네가 뭘 알겠냐? 인간인 주제에…….”
“나도 엘프의 마을에서 살았으니 알 건 안다. 엘프가 다크 엘프가 되는 이유도, 다크 엘프가 배척당하는 현실도.”
“그래? 그럼 잘 알고 있겠군. 자고 일어났는데 검게 변해 버린 피부 덕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삶의 터전을 떠나 빛도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땅속으로 내려가야만 했던 내 심정을 말이야.”
자신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케레미온. 그 감정의 골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했던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왜 그게 내 탓이지? 넌 내가 오기 전부터 인간을 증오했던 걸로 아는데?”
“인간인 네가 우리 숲에 들어온 것부터가 문제야! 너만 우리 숲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야!”
“그 꽉 막힌 성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군.”
강찬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뒤를 기습하려던 다크 엘프의 단검을 피하고 그 다크 엘프의 양손을 자른 다음 목을 벴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케레미온도 말했다.
“네놈은 여전히 사람 죽이는 데 익숙하군.”
“내가 사람 죽이는 데 익숙한 건 맞지만 네 앞에서 사람을 죽여 본 기억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나와 첫 대결을 벌인 날을 기억하나?”
“기억난다.”
“그때 알았지, 넌 사람을 수도 없이 죽여 왔다는 걸.”
“무슨 근거로?”
“그 당시 네가 날 공격할 때, 넌 계속해서 내 급소만 노렸지. 죽을지도 모르는 급소만을 전혀 망설임 없이 공격하더군. 그것을 보고 알았지. 네가 살인 경험이 매우 풍부하다는 걸 말이야. 내 말이 틀렸나?”
강찬은 케레미온의 말을 모두 수긍했다.
그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너와 만나기 전부터 많은 사람을 죽여 왔지.”
“그럼 이제 나를 죽일 차례겠군. 자, 어디 한번 찔러 봐.”
케레미온이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강찬에게 내밀자 강찬은 그를 무시하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난 널 죽이고 싶지 않다. 그냥 돌아가라.”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말에 케레미온이 격분했다.
“왜지? 왜 날 죽이고 싶지 않다는 거지? 지금 날 동정하는 건가?”
“동정? 그래, 동정이라고 해 두지. 그러니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격분하던 케레미온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네놈의 동정을 받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 이야야얏!”
케레미온이 뒤돌아선 강찬의 등에 샤벨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무모한 찌르기를 강찬은 간단히 쳐 내고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케엑!”
수 미터를 밀려난 케레미온은 다시 바닥에 축 늘어져 버렸고, 강찬은 쓰러진 케레미온에게 차가운 한마디를 건네며 다시 뒤돌아섰다.
“살려 줄 때 돌아가라.”
“…….”
강찬의 말에 케레미온은 아무런 말도 못하지 못했다.
“대장, 남은 다크 엘프는 전부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몇몇은 놓쳤습니다.”
“수고했다.”
“저기, 저 다크 엘프는 아직 안 죽은 거 같은데, 제가 처리할까요?”
“아니, 됐다. 저놈은 그냥 놔줘라.”
“놔, 놔주라고요?”
적을 그냥 놔주라는 말에 홀리스가 수긍할 수 없다는 듯 되묻자 강찬은 다시 한번 명령조로 말했다.
“그래, 놔줘.”
“아, 알겠습니다.”
“대원들을 집합시켜라. 바로 복귀한다.”
“옙!”
강찬은 그 길로 뒤도 안 돌아보고 대원들을 데리고 적진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케레미온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이것이 악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으아아아아아악!”
홀로 남겨진 케레미온은 전멸해 버린 자신의 부하들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오열했다.
그러나 그가 오열하는 것은 부하들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 때문이었다.
그 인간은 바로 강찬이었다.
“어, 어떻게 네놈이! 어떻게 네놈이!”
케레미온은 어떻게 강찬이 자신보다 먼저 소드 마스터가 되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는 마나조차 다루지 못하던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100년을 수련해 온 자신보다 먼저 소드 마스터가 되다니.
케레미온은 신을 저주했다.
그리고 죽도록 원망했다.
그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두 번이나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했던 그에게 오늘 또다시 패배의 잔을 받은 것도 모자라 동정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원수의 동정으로 부지한 목숨.
그에겐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느껴졌다.
케레미온은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에게 부러진 자신의 샤벨로 손목을 그으면 차라리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는 죽을 수는 없었다.
절대로 그냥 죽을 수 없었다.
그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강찬에게 복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하고, 인간의 손을 잡아 준 자신의 옛 마스터인 엘라디온에게도 반드시 복수해야만 했다.
그 둘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했을까?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폭발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밤하늘로 솟아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어제 식량 창고들을 박살 냈던 바로 그 폭발이었다.
케레미온은 녹색 엘프들의 대장간이 날아갔음을 직감했다. 폭발한 방향이 바로 자신들이 놈을 추적해 온 반대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켜야 할 대장간이 날아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단지 저 눈부신 거대한 화염이 그의 마음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 화염이 자신의 복수심과 마찬가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이번을 탄 대원들은 공중에서 마갑탄을 기폭시키자 적의 드넓은 대장간이 화염에 삼켜지더니 맹렬히 불타올랐다.
임무는 대성공이었다.
거기다 덤으로 다크 엘프 추격자 30명도 처리했으니, 엄청난 전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대원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
엄청난 전과를 올렸지만 대장인 강찬이 매우 저기압이었기 때문이다.
대원들이 슬금슬금 강찬을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강찬은 조금 전 전투에서 만났던 케레미온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크 엘프가 되어 버린 그의 모습을 말이다.
원한에 사무쳐 속이 꽉 막힌 답답한 놈이긴 했지만,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간 그와 몇 번이고 충돌하며 검을 섞다 보니 알게 모르게 생긴 정이란 게 있었다.
그런 그가 다크 엘프가 되어 버리다니, 그 모습이 강찬에게 약간은 충격이었다.
‘네미츠가 다크 엘프가 되었을 때 엘라디온 님이 느낀 기분이 지금 이 기분과 같을까?’
강찬은 너무나도 우스운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엘라디온과 네미츠는 수백 년을 함께했던 절친한 친구사이였는데, 자신과 케레미온은 친구 사이도 아닌 원수 사이였으니 비교 자체가 우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변해 버린 모습에 왠지 자신의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 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기분이 우울해진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지크욘을 찾아갔다.
그러나 지크욘은 그의 천막에 없었다.
‘어딜 간 거지?’
강찬은 지크욘의 행방을 알기 위해 로키의 천막으로 갔다.
“로키, 안에 있어?”
“어, 들어와라.”
천막으로 들어서자 많이 피로해 보이는 로키가 침상에 앉아 마나 연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방해했나?”
“아니, 잠이 안 와서 마나 연공 중이었어. 근데 무슨 일로?”
“혹시 지크욘이 어디 갔는지 알고 있어?”
“지크욘 찾아? 오늘 온종일 안 보이던데?”
“그래?”
“응.”
로키는 시무룩한 강찬의 모습에 걱정 어린 투로 물었다.
“너 혹시 무슨 일 있냐?”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근데 이 오밤중에 지크욘은 무슨 일로 찾는 거야?”
“아니, 별일 아니야. 그냥 안 보여서. 그럼 쉬어. 내일도 싸우려면 푹 쉬어야지.”
“앙, 너도 많이 쉬어라. 피곤해 보인다.”
“알았다. 간다.”
“엉.”
강찬은 로키의 막사를 떠나 다시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도 마나 연공을 행했다. 역시 이럴 땐 마나 연공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휴우…….”
천천히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인 강찬이 모여든 마나를 마나 라인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그의 귓가로 보초를 서는 병사들의 잡담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신녀님 봤어?”
“어? 무슨 신녀?”
“너, 신녀님 얘기 못 들었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이고, 답답한 녀석아. 남들 다 아는데 왜 너만 모르냐?”
“그럼 그게 진짜야?”
“인마, 지금 야전 병원에서 오늘 부상당한 병사들을 몽땅 치료하고 계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