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06
퓨쳐나이트 106화
“그, 그게 가능해?”
오늘 치열했던 전투에 참가했던 병사는 엄청난 부상자들의 행렬을 지켜봤기에 그들을 몽땅 다 치료하고 있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가능하니까 신녀지!”
“그, 그러면 나도 내일 전투에서 다치면 그분이 치료해 주시는 거야?”
“당연한 소리 아니겠어? 게다가 말도 못하게 예쁘다는 소문이 자자해.”
“아! 그래? 그렇게 예뻐?”
“그렇다니깐! 좀 전에 발터 놈이 치료받고 와서는 나한테 얼마나 자랑을 했는데, 에메랄드 같은 녹색 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 죽여 주는 몸매…….”
녹색 머리라는 말에 강찬은 귀가 솔깃해졌다.
‘녹색 머리? 지크욘이다!’
강찬은 마나 연공을 접고, 신녀가 나타났다는 야전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 해가 밝아 오는 새벽.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병사들이 다시 전선을 향해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 그들의 눈빛에는 비장감이 감돌았다.
누구도 그들에게 전쟁터로 돌아가라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향하는 것이었다.
“신녀님, 목숨을 구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꼭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세요, 신녀님.”
무장을 갖춘 수많은 병사들이 지크욘을 찾아와 진심 어린 감사와 함께 신의 축복을 빌었고, 지크욘은 그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올려 축복해 줬다. 그러자 병사들의 눈빛에선 두려움이 사라졌고, 모두들 용기백배하여 전장으로 떠나갔다.
“저도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은 병사들까지도 그 모습에 자신들도 전투에 나가겠다고 서로 아우성이었다. 그러자 그들을 보살피는 신관들과 치유사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말렸다.
“이 몸으로는 아직 무리예요.”
“이젠 괜찮습니다! 그냥 붕대로 꽉 조여 주세요!”
“에잇! 내 창이 힐링 워드가 되어 있잖아? 야, 창 좀 빌려 줘.”
“싫어! 나도 나갈 거야!”
“다리도 없는 새끼가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넌 여기서 신녀님이나 도와 드려!”
이곳에 있던 부상병들 중 지크욘이 직접 치료해 준 병사는 1천 명도 채 안 됐기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아직도 심각한 부상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발적으로 전장으로 향했다.
그 행렬은 이곳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긴 줄을 이뤘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이미 성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장으로 떠나가는 병사들을 지나치며 야전 병원에 도착한 강찬은 출전하는 병사들의 머리 위에 일일이 손을 올려 축복해 주는 지크욘을 발견하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신녀가 됐다고 하더니, 정말 신녀처럼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드래곤이란 종족은 연기의 달인들이군.’
강찬은 지크욘의 등 뒤에 섰다. 그러나 지크욘은 강찬이 온 줄도 모르고 병사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기에 바빴다.
“파이오네스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신녀님.”
강찬은 지크욘의 모습을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봤다.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을 축복하는 가증스런 모습이라니, 강찬은 속이 다 느글거렸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강찬은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야…… 너 지금 뭐 하냐?”
흠칫!
갑자기 들려온 강찬의 목소리에 지크욘은 꼭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깜짝 놀라며 토끼 같은 눈으로 강찬에게 물었다.
“어떻게 여길?”
“용하다는 소문 듣고 왔지요, 신녀님.”
지크욘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강찬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잠시만요, 죄송해요.”
갑자기 신녀가 웬 남자를 끌고 도망치듯 사라져 버리자 아직 축복을 받지 못한 병사들이 너무나도 아쉬운 표정으로 멀어지는 신녀를 바라봤다.
“야, 어디 가?”
“잔말 말고 따라와!”
지크욘은 작센을 끌고 간 뒷동산으로 강찬을 데려갔다. 그리고 한숨 돌리며 물었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 그나저나 왜 그러고 있는 거야?”
“별거 아니야. 그냥 가만히 있기 심심해서 신녀 놀이 좀 하고 있었지.”
“너, 그러다 벌받는다.”
“그 벌이라는 것 좀 받아 봤으면 좋겠네,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진짜 신녀가 왔어도 나만큼은 못했을걸?”
뻔뻔함의 극치를 달리는 지크욘의 말에 강찬은 참던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너답다, 지크욘.”
“내가 웃기냐? 너도 8,000년 살아 봐! 이런 짓이라도 안 하면 지겨워서 미쳐 버릴걸?”
“푸흣! 크크큭!”
강찬이 또다시 웃어 넘어가자 지크욘은 수상하다는 듯 강찬을 노려봤다.
“너, 오늘따라 수상한데? 왜 내가 말만 하면 웃냐? 뭔 일 있어? 너 혹시?”
“혹시?”
“나한테 이상한 감정을 품은 건 아니겠지? 앙?”
지크욘이 손가락으로 강찬의 볼을 찌르자 강찬이 인상을 팍 구기며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미쳤어? 8,000살이나 먹은 변태 드래곤을 좋아하게?”
“그럼 갑자기 왜 그래?”
“별일 아니야. 그냥 그동안 전쟁통에 얼굴 보기 힘들어서 얼굴 보러 온 거야.”
“큭, 이야! 이거 감동의 눈물이 주룩주룩인걸? 고맙다.”
지크욘이 강찬에게 손을 내밀자 강찬은 그런 지크욘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날 차비를 했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그래, 몸조심하고.”
“너도 몸조심해라.”
“몸조심은 나랑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여간, 자만은 하늘을 찌른다니깐. 아무튼 사이비 신녀인거 걸리지나 마라.”
“내 8,000년 연기 인생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냐? 난 눈물도 1초면 흘릴 수 있어. 봐.”
지크욘이 순간 슬픈 표정을 짓자 그녀의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봤지? 봤지?”
“크크큭, 암튼 넌 참 재밌는 녀석이야. 그럼 진짜로 간다.”
“그래, 가라. 아침밥 챙겨 먹고.”
“어, 그래.”
강찬은 그렇게 지크욘의 환송을 받으며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그런 그는 지크욘을 만나러 오길 참 잘했다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는 동안 케레미온 때문에 생긴 우울했던 기분이 전부 가셨기 때문이다.
* * *
케레미온이 복귀하자 네미츠가 케레미온의 따귀를 때렸다.
그리고 그를 꼭 안아 줬다.
“살아 돌아와 줘서 기쁘다.”
마치 병 주고 약 주는 듯한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케레미온을 위한 네미츠의 배려였다.
전멸한 무리의 대장이 케레미온이었기에 그에 대한 책임을 따귀로 대신한 것이다.
네미츠는 케레미온이 왜 전멸한지 다 알고 있었다.
소수였던 적들은 모두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이었고, 그중에는 소드 마스터까지 껴 있었던 걸 말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그들을 보냈으니, 그건 죽으라고 보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네미츠는 케레미온의 생환을 정말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현재 네미츠의 제자 중 소드 마스터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제자였기 때문이다.
“힘들겠지만 서둘러 전투를 준비해라. 오늘 전투는 아마 힘든 전투가 될 것이야…….”
네미츠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10명의 아크섀도를 잃었기 때문이란 걸 케레미온도 잘 알고 있었다.
“네, 마스터.”
33. 지크욘의 위기
총력전 3일째.
녹색 엘프 진영의 병력은 첫날의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첫날에 소나기처럼 퍼붓던 화살도 이젠 간간이 날아올 뿐이었다.
게다가 아직 식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지 그들은 매우 허기져 보였다.
블랙와이번 부대의 테러가 그들에게 준 피해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반대로 대륙 종족 연합군들은 살기등등했다.
병사들은 다크 엘프의 게릴라전에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고, 사이비 신녀 지크욘의 도움으로 어제 부상당했던 병사의 절반 이상이 전선에 복귀해 병력 차이가 전쟁 이후 처음으로 연합군 쪽이 유리해진 것이다.
게다가 신녀의 기적 아닌 기적으로 회복한 전우들의 모습에 전군이 용기백배해졌고, 신이 함께한다는 생각에 사기마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장난과 허영으로 시작된 지크욘의 신녀 놀이가 이렇게 큰 이변을 낳게 될 줄은 그녀조차 몰랐던 것이다.
작센 공작 또한 지크욘이 싫을 뿐이지, 그녀가 도와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그 누구보다 기뻤다.
사실 그는 그린의 정령왕을 그녀가 막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만일 그랬다면 압도적인 지상군을 이용해 그들을 헬리온 왕국에서 대륙 끝까지 밀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크욘은 전쟁 내내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고, 작센은 속으로 안타까운 한숨만 쉴 뿐이었다.
하지만 지크욘은 그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연합군에 큰 도움을 줬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신앙이란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광신도가 되어 날뛰는 인간의 힘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아! 우리에겐 신이 함께하신다! 이 사악한 무리들아!”
“덤벼! 덤비라고! 이 악마의 자식들아!”
뭔가 정상이 아닌 듯한 적들의 상태에 잔뜩 겁에 질린 녹색 엘프군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선 어제와는 완전 다른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 덕에 녹색 엘프군은 가뜩이나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힘도 안 나는 마당에 더욱더 움츠러들었다.
“백부장님! 적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모두 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저것들이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상태가 왜 저래?”
“파이오네스에게 영광을! 돌격!”
“영광을! 와아아아아아아!!”
“이것은 성전이다!”
“내 목숨을 파이오네스에게!”
광신도로 돌변한 적군에게 녹색 엘프군의 진형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밀리는 것은 병사뿐만이 아니었다.
쿠우우우웅!
사방에서 아크섀도들이 하나둘 고철이 되어 나뒹굴기 시작했다.
케레미온이 이끌고 나간 아크섀도 10명이 강찬의 손에 시체가 되어 그 수가 현저히 줄어 버린 아크섀도.
남은 아크섀도들만으로 압도적 숫자의 연합군 기간테스를 막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기간테스가 하나씩 고철이 되어 가자 네미츠도 속으로 절망했다.
남은 아크섀도는 이제 12기뿐.
그러나 적 기간테스는 아직도 70기 이상이 건재했다.
그리고 적 기간테스의 오너들은 모두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뿐이었기에, 얼마 남지 않은 트롤 엘프들은 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질 못했다.
‘이, 이길 수 없어…….’
한 종족의 수장으로서 보기에 전세는 이미 적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린이 분발해도 기울어 버린 전세는 되찾기 힘들어 보였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길은 최소한의 피해로 퇴각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선 맞서 싸울 때보다 퇴각할 때 훨씬 큰 피해를 보기 때문에 그것조차 여의치 않아 보였다.
‘이럴 때 블랙 샌티패드라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기랄!’
지하 대괴수인 블랙 샌티패드는 태양에 약했기에 낯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네미츠는 퇴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퇴각을 의미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삐이이이이이잉! 퍼엉!
헬레닉의 등에서 발사된 신호탄이 퇴각을 알리자 녹색 엘프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그들의 진형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합군을 상대로 홀로 분전하던 그린은 갑자기 날아오른 퇴각 신호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이대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