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09
퓨쳐나이트 109화
“너! 어떻게 된 거야? 죽은 줄만 알았잖아!”
“뭐? 내가?”
“그래, 다들 네가 죽을 줄만 알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알아?”
“살아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지크욘 님.”
“…….
지크욘은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슬퍼했다는 그들의 말에 생소함을 느꼈다.
유희 동안 쓰는 가짜 신분이 아닌 진짜 자신을 걱정해 주는 그들이 말이다.
예전의 자신 같았으면 콧방귀를 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뭔가 알 수 없는 감동이 가슴속을 찌르르 울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크욘은 그런 감정을 숨기고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죽긴 왜 죽냐, 이 멍청이들아. 날 그 정도로밖에 안 봤단 말이야?”
“흠씬 두들겨 맞기만 하더니 강한 척은…….”
강찬의 빈정거림에 지크욘이 인상을 구기며 강찬의 멱살을 잡았다.
“그럼 너도 나한테 한번 흠씬 두들겨 맞아 볼래?”
“때려.”
“뭐?”
“오늘은 다 맞아 준다. 네가 살아 돌아왔으니.”
강찬은 정말이지 맞아도 하나도 안 아플 만큼 기뻤다. 그런 바보 같은 표정의 강찬을 가리키며 지크욘이 말했다.
“멍청한 놈.”
“그나저나 어떻게 그 가립자포에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
“가립자포?”
“너를 강타한 그 빛. 그게 가립자포다.”
“설마, 나를 공격한 것이 뭔지 알고 있는 거야?”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설마?”
강찬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의 고향에서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곳으로 왔다. 그것도 강력한 무장을 하고…….”
“그, 그런…….”
지크욘은 강찬의 말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려움에 떠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솔직히 오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것도 그에게는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적 앞에서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이다.
강찬이 말하는 그 가립자포가 자신에게 직격할 당시, 그녀는 미리 가립자포에 대비하고 있었다. 처음 떨어지는 과정을 봤기에 타이밍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하늘에서 밝은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다시금 전력으로 실드를 펼쳤다.
그것도 한 겹이 아니라 여섯 겹이나 말이다.
그 정도면 운석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해도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을 만큼 견고한 방어막이었다.
그리고 순간 그녀를 강타한 가립자포.
그녀는 순식간에 세 겹의 실드가 부서지는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나머지도 차근차근 무너지려 하자 급히 자신의 레어로 공간 이동을 시도했다.
레어로 통하는 공간 이동.
그것은 세상 그 어떤 공간 이동 마법보다 빠른 초광속 공간 이동이었다.
모든 드래곤은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 자신의 레어의 바닥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공간 이동 대응 마법진을 그려 놓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말이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그들이었지만, 그런 것 하나까지도 그토록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정나미가 떨어지는 종족이 아닐 수 없었다.
철두철미함으로 목숨을 건진 지크욘은 잠시 숨을 돌린 후 마나를 보충하고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강찬의 안위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강찬은 무사했고, 지크욘은 그가 살아 있음에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걱정을 해야만 했다.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에 발을 들이려 하는 외계인 침략자들 때문에 말이다.
34. 강찬의 결심
녹색 엘프들이 퇴각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들은 헬리온 왕국을 넘어 점령지였던 아르잔과 셈프론마저 포기하고 케르멜까지 퇴각했다.
케르멜 왕국은 그들의 처음 대륙 정벌 때 점령한 왕국으로, 그들의 고향인 바다 건너 아이스랜드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곳까지 퇴각한 녹색 엘프군은 천혜의 요새인 케르멜 왕국에 단단한 방어진을 구축하고 서둘러 배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 대륙으로 넘어올 때 이용한 것이 겨울의 빙하였기에, 지금처럼 빙하가 녹은 여름에는 배가 없으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합군은 그들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넓게 포위망을 구축한 채 마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총력전에서의 승리 이후, 몇 번인가 녹색 엘프군을 포위해서 괴멸시킬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또다시 파괴의 빛을 맛봤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들을 움츠러들게 만든 이유였다.
그 위력이 그 정도로 가공스러웠다.
작센 공작은 녹색 엘프군을 놓칠 때마다 신의 장난인가 한탄하며 하늘을 원망했다.
그런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적들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노려볼 뿐인 연합군의 군세는 점점 더 강성해졌다.
온 대륙의 인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그들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보내오는 지원병들은 끊이질 않았고, 항시 가동되는 각국의 기간테스 공장에선 1차분 기간테스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 그들의 병력은 이제 150만에 육박했고, 기간테스도 그 수가 300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대군을 바라보는 네미츠와 그린은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적의 군세는 후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날로 강성해지고 있는데, 자신들은 케르멜 왕국에 갇힌 채 모든 외적 자원으로부터 차단됐다.
녹색 엘프군의 군세는 이제 불과 30만도 채 되질 못했고, 모두는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지하를 통한 다크 엘프들의 식량 반입과 바다 건너 아이스랜드의 원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들을 상대해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적들이 자신들을 포위만 할 뿐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만 강하게 밀어붙이면 끝날 형국인데 말이다.
네미츠와 그린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도와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파괴의 빛 때문이었다.
덕분에 위기를 여러 번 넘길 수는 있었지만, 그들도 그 파괴의 빛이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왜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인지를 몰랐기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 *
강찬은 오늘도 어김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주에 도사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며 말이다. 그리고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강찬이 예상한 아군의 도착 예정 시각은 최소한 20년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단 5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속도였다.
‘도대체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별에 자신 말고도 다른 지구인이 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레드 마스호 이상의 위력을 갖춘 강력한 전함을 타고서 말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강찬은 가슴이 답답했다. 이 별이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 별이 너무나도 좋았다.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아니, 생각만으로 끔찍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전쟁의 소모품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다시 예전의 피도 눈물도 없던 살인 기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별의 사람들이 이 별을 지켜 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가를 말이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찬은 후자를 선택했다.
자신을 전쟁의 도구로 이용만 한 그들에게 지킬 의리나 도리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와 반대로 지금 이곳에는 자신이 지켜야 할 소중한 이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을 떠올린 강찬은 조심스럽게 가슴 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제이나에게 약속했다.
“제이나, 약속할게. 반드시 네가 있었던 이 별을 지켜 주겠다고…….”
굳건한 의지가 담긴 그의 말을 멀리서 엿듣던 지크욘이 능청스럽게 다가오며 말했다.
“뭘 지켜 주겠다는 거야?”
갑자기 들려온 지크욘의 목소리에 놀란 강찬이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
이토록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강찬이 눈치채지 못한걸 보아하니 지크욘이 모종의 방법을 쓴 것이 분명했다.
“아, 지크욘. 안 자고 여긴 웬일이야?”
“잠이야 온종일 자는데, 밤에 잠이 오겠냐?”
신녀 행세도 때려치우고 막사에서만 지내는 그녀의 주된 하루 일과는 낮잠이었다.
“하긴, 요즘 전투가 없어 지루하긴 하지…….”
지크욘은 근래 들어 강찬이 변했음을 느꼈다.
아무리 전투가 없다고 해도 평소의 그 같았으면 혼자서라도 복수를 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어야 정상인데, 그냥 그러려니 하는 그의 모습은 뭔가 나사가 하나 풀린 듯 보였기 때문이다.
“너, 요즘 녹색 엘프들한테 별 관심 없는 거 같다?”
“…….”
물론 그가 제이나의 복수를 잊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수보다 더 중대한 일이 생겼기에 잠시 보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할 복수는 이 별을 침략자로부터 지키고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 뭘 그렇게 혼자 끙끙거리는 거야?”
“끙끙거린 적 없어.”
“웃기고 있네, 고민하는 거 다 보이거든?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해 봐.”
강찬은 순간 망설였다.
자신이 진짜로 이곳에 온 목적을 지크욘에게 말해야 할지 말이다.
이윽고 그는 곧 모든 걸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친구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는 것도 싫었고, 앞으로 그녀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약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어 자신을 경멸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업보였기 때문이다.
강찬은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시고 진지한 눈으로 지크욘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크욘,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왜 그래, 갑자기 진지하게?”
지크욘은 갑자기 진지해지는 강찬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 진정한 친구지?”
“엥? 갑자기 웬 의미심장한 소리야?”
“너, 날 진정한 친구로 여기는 맞지?”
강찬의 한없이 진지한 말에 지크욘은 순간 당황했다.
“설마? 너?”
“나, 사실…… 읍!”
강찬이 용기를 내어 사실을 말하는 순간, 지크욘이 강찬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아 버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사랑 고백은 사양할게.”
“뭐, 뭐라고?”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지크욘 때문에 한껏 긴장했던 강찬은 맥이 탁 풀리는지 그대로 축 처져 버렸다.
“야, 그렇다고 그렇게 실망할 것까진 없잖아? 그렇게 많이 좋아했던 거야? 응? 응?”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지크욘의 행동에 불연듯이 화가 난 강찬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장난 그만해! 나 지금 심각하다고!”
강찬이 갑자기 버럭 화를 내자 지크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흑흑흑…… 그렇다고 그렇게 소리 지를 건 없잖아.
“미안해, 소리 지르려고 한 게 아닌데.”
“역시 옛말 중 틀린 말 하나도 없어. 남자와 여자 사이엔 친구란 있을 수 없다더니…….”
“엥?”
“아, 알았어. 네가 날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부터 날짜 새.”
황당한 지크욘의 말에 강찬은 큰 충격을 받고 말까지 더듬었다.
“너,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소리라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줬잖아.”
자꾸 장난스런 분위기로 몰고 가는 지크욘 때문에 화가 난 강찬이 벌떡 일어나 지크욘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장난 그만하고 내 말 좀 들어봐! 사실 내가 이 별에 온 이유는!”
지크욘은 또다시 손가락으로 강찬의 입술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