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1
퓨쳐나이트 11화
* * *
엘프 마법사에게 집중적인 힐링을 받은 강찬의 상처는 붉은 자국만 남기고 거의 치유가 되었다.
상처가 얼마나 위중했던지 강찬을 치유한 엘프는 4시간에 걸친 힐링으로 탈진해 앓아누울 정도였다.
그렇게 치유 엘프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강찬은 이틀간을 내리 잠만 잤다.
과도한 전투 모드 사용으로 소진된 체력 탓이었다.
만일 그때 최후의 6단계까지 밟았다면 그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용하는 마지막 카드였기 때문이다.
마치 되돌아올 수 없는 강처럼 말이다.
조용히 병실에 누워 있던 강찬이 천천히 눈을 떴다.
“여, 여긴?”
생기가 하나도 없는 말투였다.
몸을 움직이려는 강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윽…….”
마법 덕분에 외관상으로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됐다고 하더라도 뼈는 보통의 마법으로는 완벽히 치유되지 않는다.
한데 강찬은 뼈까지 상할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기에 앞으로 보름 이상은 누워서 요양해야만 했다.
뼈까지 완전히 재생시키는 마법은 상당히 고위급 치유주문이었다.
강찬은 조용히 침대에 기댄 채로 창문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슈트를 사용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강찬은 아직도 승부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입고 있었어도 그들 앞에서 사용하긴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숙소에 벗어 둔 슈트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강찬이었다.
그렇게 아직도 승부에 집착하던 강찬은 문득 슈트 생각을 하자 추락한 전함과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 버렸다.
‘그동안 이곳에 적응하느라 본연의 임무를 너무 잊고 살아왔군.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강찬은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의 임무는 이들 세계의 파괴였다.
크게 한숨을 내쉰 강찬은 창문 넘어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릴 듯 푸른 맑은 하늘에 자신의 추악한 본연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고개를 숙인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냥 이곳에서 지금처럼 엘프들과 살다가 죽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말이다.
그만큼 그는 이제 이곳에 평온함에 물들어 버렸고, 그의 인생에 다시없을 이 소중한 평온함과 안락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다른 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자신에게도 이곳에서 수행할 임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케레미온이란 놈이 쓰던 그 알 수 없는 미지에 힘, 순식간에 몇 배나 강해지고 일개 목검조차 그토록 날카롭게 만들던 그 신기한 기술. 그것이 이 별에 사는 외계인들의 초능력인가? 그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숨겨진 능력이 너무 많아. 이번 기회에 한번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그 미지의 힘은 앞으로 이 별을 연방군이 차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야.’
강찬이 이런저런 수심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엘라디온이 병문안을 온 것이었다.
“아니? 엘라디온 님. 윽!”
다친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하자 강찬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고, 엘라디온이 그런 그를 제지했다.
“아닐세, 그냥 가만히 누워 있게나.”
그의 말에 강찬이 다시 편하게 눕자 엘라디온이 그의 옆에 의자에 앉았다.
“그래, 상처는 이제 괜찮은가? 여기 치유사는 나이는 어리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아르테온 님 다음가는 실력을 지녔다네.”
800년 이상을 살아온 엘라디온이 봤을 땐 어릴지 몰라도 자신을 치유해 준 엘프는 강찬에게 까마득한 연장자였다.
“정말 신기하더군요. 덕분에 이젠 괜찮습니다.”
“미안하네, 둘의 대결이 그 정도가 되기 전에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오히려 원 없이 싸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터프하군, 자네.”
“별말씀을.”
“어디 그럼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 한번 볼까?”
엘라디온이 강찬의 상의를 풀어 보려고 하자 강찬이 그런 엘라디온의 손길을 거부했다.
“대단한 상처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뭐가 대단한 상처가 아닌가? 목검에 관통당한 모습을 내 똑똑히 봤는데. 어서 상처를 보여 주게. 내가 검상을 보는 안목은 치유사보다 낫다고 자부하네.”
사실은 강찬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 주기 싫어하는 결벽증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 예전에 육체 개조를 받던 당시 자신의 몸을 실험용 동물 보듯 훑어보던 과학자들의 섬뜩했던 눈빛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예전 레드 마스에 있을 때도 단체 샤워를 안 하는 걸로 유명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어허, 내가 봐야 상처가 잘 치유됐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 않겠나? 자자, 어서 벗어 보게.”
“제가 보기에는 잘 아문 것 같습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걸세.”
“…….”
“왜 이렇게 부끄럼을 타나? 설마 자네 여잔가?”
“절대 아닙니다.”
“그럼 혹시 가슴에 털이라도 났나?”
“그런 이유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왜 옷을 안 벗으려고 하는 건가?”
“…….”
강찬이 상처를 계속 안 보여 주려고 하자 엘라디온의 감정이 마침내 폭발해 버리고야 말았다.
“에잇! 벗으라면 벗지 남자가 뭐 그리 말이 많나!”
“아! 안됩니다!”
옷을 찢어 버릴 기세로 달려든 엘라디온에게 힘없는 강찬이 강제로 탈의를 당하고 있을 때 병실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아저씨! 다쳤다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제이나였고, 뒤늦게 강찬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다급히 병문안을 온 것이었다.
그러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침대 위에서 한데 어우러져 엉켜 있는 엘라디온과 강찬 둘의 모습에 제이나는 순간적으로 얼어 버리고 말았다.
강제로 강찬 위로 올라타 억지로 옷을 벗기는 엘라디온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이나의 표정은 너무도 모호한 것이었다.
“어? 어? 어? 실례했어요. 그럼 저, 전 이만.”
제이나가 얼굴을 붉히면서 뒷걸음으로 천천히 문을 닫고 나가려 하자 엘라디온과 강찬 둘의 입에서 동시에 제이나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야! 제이나 거기서!”
* * *
“세상에 뼈까지 벌써 아물다니.”
“얘가 그렇게 많이 다쳤었나요?
딱!
“아야.”
“말조심해라, 얘라니! 이분은 아르테온 님의 손님이시다.”
“그래도 저보다 나이도 어린데.”
“인간이 우리 엘프들 수명의 10분에 1에 지나지 않는 걸 감안할 때 그는 너의 두 배는 더 살아온 셈이다. 그러니 그런 의미 없는 숫자 놀이는 집어치우도록 해라.”
“네…….”
감히 대장로의 호통에 반박할 엄두조차 내질 못하는 제이나가 분통에 찬 표정으로 강찬을 노려봤다.
강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엘라디온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이나는 정신이 아늑해질 정도의 분노를 느끼며 ‘대장로님 가시면 넌 죽었어.’라는 눈빛으로 강찬을 죽일 듯 노려봤다.
하지만 강찬은 아무렇지 않게 그 눈빛을 흘려 넘겼다.
“일단 이 힐링 포션을 하루에 식후 세 번 마시게나. 우리 엘프족에 내려오는 비전 힐링 포션이지. 지금 한 병 마셔 두게.”
엘라디온이 권해 준 붉은 액체를 마시자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전투 모드의 후유증으로 비명을 지르던 전신의 근육들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효과가 정말 빠르군요. 몸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당연하지. 우리 엘프족 비전 힐링 포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마치 트롤처럼 매우 빠른 치유력을 지녔구먼. 아무리 힐링과 힐링 포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이 정도로 빠르게 아물다니 말이야…….”
“트롤? 그게 뭡니까?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확실히 저는 웬만한 상처는 남들보다 빨리 치유됩니다.”
“거기다 고통으로부터 마음대로 자유로워지기도 하고 말이지. 자네 혹시? 아, 아닐세.”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 파고드는 듯한 그의 말에 강찬은 긴장 상태가 되었다.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닐세, 이 늙은이가 자네에게 실언할까 그러네.”
“괜찮습니다. 뭐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한테도 엘라디온 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요.”
“흠흠! 그렇다면 묻겠네. 혹시 누군가 자네의 몸에 손을 댄 적이 있나?”
“그건, 틀린 말은 아니십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더는…….”
자신의 날카로운 지적에 강찬의 표정이 순간 어둡게 변하자 엘라디온도 더는 물어보지 못하고 차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그 부분에 대해서 더는 물어보지 않겠네. 그래도 케레미온을 이긴 자네의 실력이 진짜라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네. 경험이란 것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케레미온을 이겼다는 말에 제이나가 흠칫 놀랐다.
케레미온, 그가 누군가? 제이나가 그토록 흠모해 마지않는 이 마을 최고의 엘리트 중 엘리트가 아닌가!
성년이 되기도 전에 벌써 몸속의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괴물 같은 실력으로 검에 있어선 같은 동년배 중엔 적수가 없다는, 단연 최고 중에도 최고의 실력을 지닌 엘프였다.
게다가 외모 또한 굉장한 미남이었다.
‘서, 설마 이 머저리 같은 인간이 케레미온 님을?’
제이나의 눈빛은 모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저도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말해 보게나.”
“케레미온이라는 분은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폭발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한낱 목검이 어찌 그리 날카로워질 수 있습니까?”
“그건 그 아이가 소드 익스퍼트이기 때문일세.”
“소드 익스퍼트? 그게 무엇입니까?”
소드 익스퍼트.
온 세상 모든 종족의 무인들이 갈망하는, 육체를 통해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소드 익스퍼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찬을 바라보는 엘라디온의 눈에 정녕 놀라움이 배어 나왔다.
“몸으로 마나를 다루는 자들을 말하는 걸세.”
“케레미온이라는 분도 저에게 마나를 쓰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그 마나를 말하는 것입니까?”
“호? 그래도 그놈이 양심은 있었나 보군. 말은 하고 썼으니.”
“그 마나란 게 대체 무엇입니까?”
“자네는 외계에서 왔으니 마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내 오늘 크게 인심 써서 자네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근히 설명해 주겠네. 이 세계를 이루는 마나의 위대함과 더불어서 우리 엘프의 검에 대한 고결한 긍지에 대해서도 말일세.”
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엘라디온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고, 그의 입에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마나와 자신들 엘프의 검술에 대한 고결한 긍지, 그리고 위대함 등을 담은 내용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의 800년을 살아온 엘라디온의 경험만큼이나 방대한 양이었다.
가릴 건 가리고 필요한 내용만 추려서 머리에 담는 과정은 최신형 바이오칩을 머릿속에 이식한 강찬이라도 벅찬 작업이었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제이나는 초장부터 일찌감치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는 엎드려 곤한 잠에 빠져들었고, 강찬은 그렇게 외로이 홀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이 되었고, 해가 뜬 지도 오래였지만 엘라디온의 엘프 검술에 대한 찬양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그만큼이나 그의 검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그의 자부심 어린 말은 강찬의 호기심을 더욱더 자극했다.
엘프의 검술을 그저 임무를 위한 조사만이 아니라 한번 제대로 익혀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나 케레미온은 자신처럼 육체 강화를 받지 않았음에도 자신과의 대결에서 시종일관 자신을 압도하는 기량을 보였다.
그것에 대해 강찬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단지 검술에 매진하여 이룬 경지라니……. 흥미가 유발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엘라디온의 ‘검술은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라는 말이 강찬의 마음을 대번에 사로잡아 버렸다.
‘누구나 노력만으로 강해질 수 있다니, 강화 수술 따위를 받지 않아도 말인가?’
어려서부터 강제로 수차례의 육체 개조 수술을 받으면서 강해져 온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자 자신의 노력만으로 강해진 케레미온이 정말로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강찬의 가슴이 점점 검술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초능력의 비밀을 캐내고자 엘라디온의 말을 귀담아듣던 강찬이 오히려 그의 말에 깊이 매료되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