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10
퓨쳐나이트 110화
“이유는 나도 알고 있어.”
“뭐, 뭐?”
“넌 무슨 그런 얘기를…… 사랑 고백하듯이 말하냐?”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고?”
“그래, 처음 널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
“어, 어떻게?
“그때 네가 날 극도로 경계하는 태도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놈, 뭔가 뒤가 구리구나 하고 말이야.”
“구려?”
“그래, 넌 뒤가 구렸어.”
지크욘의 말에 강찬은 정말로 바지에 뭐라도 싼 아이처럼 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럼 왜 그런 나랑 친구가 되자고 한 거지? 나처럼 뒤가 구린 놈 따위와…….”
지크욘은 대답에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찬은 조금 서운했다. 그녀가 뭔가 둘러댈 거리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크욘의 대답은 서운하게 생각한 자신을 한심하게 만들었다.
“뒤가 구린 거랑 친구가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건…….”
“과거가 어찌 됐든 지금이 진심이면 된 거 아니야? 혹시 넌 나와 있을 때 날 거짓으로 대한 거야? 드래곤인 날 이용해 먹겠다고?”
“절대로 아니야.”
“그래, 나도 잘 알아. 그래서 여태껏 너와 함께한 거고. 넌 사심 없이 날 상대해 줬으니까.”
“…….”
강찬은 지크욘의 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러나 지크욘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강찬을 노려보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요즘 네 눈에서 사심이 보여…….”
“뭐?”
“사심이 보인단 말이지.”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난 절대로 저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야!”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강찬을 보며 지크욘은 놀란 토끼 눈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 난 요즘 네가 내 몸 여기저기를 훑어보기에 그걸 보고 사심이 있다 말한 건데, 넌 왜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야?”
“너야말로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내가 보긴 뭘 봤다고 그래? 생사람 잡지 마.”
“아니,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 너 요즘 은근슬쩍 내 가슴이랑 다리 훔쳐봤잖아!”
“야, 내가 네 걸 왜 봐!”
사실 강찬이 근래 지크욘을 자주 훔쳐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크욘은 그런 그의 행동을 달리 이해했다.
자신을 훔쳐보며 망설이는 모습을 그가 자신을 이성으로 보고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찬의 강한 부정은 오히려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어쭈? 요것 봐라? 그래, 좋아, 어디 오늘 여기서 결판을 내자! 봤어, 안 봤어?”
“보긴 뭘 봐! 네 건 봐 달라고 해도 안 봐!”
“그으래?”
순간 지크욘이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 던졌다.
“허억!”
강찬은 지크욘의 갑작스런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 급히 시선을 돌렸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봐 달라고 해도 안 본다며? 그런데 시선은 왜 피하시나?”
“야! 그렇다고 갑자기 옷을 벗으면 어떡해!”
“왜? 전에도 한번 봤잖아.”
“보, 보긴 뭘 봤다고 그래!”
“왜?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 내가 한번 보여 줬었잖아.”
남자였던 지크욘이 여자로 변신했을 때, 지크욘은 전라의 모습을 강찬에게 보인 적이 있었다.
물론 강찬도 그때 기억을 고이 간직해 오고 있었지만 극구 부인했다.
“난 그런 기억 없어! 얼른 옷이나 입어!”
고개 돌린 강찬의 얼굴은 목까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 그땐 그때고…… 요즘 내 몸 슬쩍슬쩍 봤어, 안 봤어?”
“안 봤다고 몇 번을 말해?”
“그럼 대화는 다시 원점이네.”
“뭐가? 뭐가 원점이라는 거야?”
“네가 사실을 말할 때까지 계속 이러고 있는 거지.”
“작작해라, 지크욘. 나 화낸다.”
“왜? 네가 먼저 내 몸에 관심 없다며? 쳐다보기도 싫다며? 근데 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거야? 왜 날 당당하게 못 보는 건데?”
“그, 그건…….”
강찬이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성질 급한 지크욘이 버럭 화를 냈다.
“거참! 남자가 답답하네! 봤어, 안 봤어? 앙? 너, 말 안 하면 치마도 벗는다!”
치마까지 벗겠다는 말에 강찬은 화들짝 놀라면서 사실을 고했다.
“그래, 봤다! 틈틈이, 틈나는 대로 몰래몰래 슬쩍슬쩍! 이제 됐냐?”
마치 절규하는 듯 외치는 강찬의 말에 지크욘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억울해하는 강찬의 표정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쉽게 볼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푸하하하하! 아이고, 미치겠다! 아이고, 배야!”
남자 앞에서 웃통 까고 박장대소하는 그녀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봤다면 분명 미친년이라 생각하며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야! 웃지 말고 얼른 옷이나 입어!”
“알았어. 아이고, 배야…….”
옷 한번 벗었기로서니 당황하는 모습이라니, 지크욘은 강찬이 왜 저렇게 여자한테 쑥맥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넌 역시 최고야. 너무 재밌어!”
지크욘이 강찬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시끄러워!”
벗어 던진 윗도리를 주워 입은 지크욘이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픈지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다 잘될 거야. 그러니깐 앞으로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함께 의논하자고.”
진지하지 못한 그녀의 말과 행동에 강찬이 버럭 화를 냈다.
“너랑 다시 의논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지구인들의 등장에 밤새 홀로 고민해야 했다.
지크욘과 다툰 다음 날, 점심이 될 무렵 작센 공작이 강찬을 찾아왔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예, 전투도 없고 빈둥빈둥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저도 요즘은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립니다.”
“근데 무슨 일로 절?”
“저기, 다름이 아니라 예전 일로 상의를 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시면 앉아서 얘기하죠.”
“아, 예.”
강찬은 작센에게 의자를 건네고 자신은 침상 위에 걸터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죠?”
“그, 예전에 강찬 님과 함께 싸우던 오우거 말입니다.”
“로키 말입니까?”
“아, 그 오우거 이름이 로키입니까?”
작센은 왠지 로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그렇습니다. 그런데 로키는 왜?”
“그게 말입니다. 그 오우거가 쓰는 검술이 눈에 많이 익어서 그러는데, 혹시 그 오우거가 익힌 검술이 뭔지 아십니까?”
“아뇨, 로키가 쓰는 검술의 이름은 저도 잘 모릅니다.”
“저기, 그럼 혹시 그 검술을 누구한테 배웠다는 얘기는 못 들어 보셨습니까?”
“자신을 길러 준 분한테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분의 존함이……?”
한번 들은 건 절대로 잊지 않는 강찬이었기에 바로 그 이름을 말해 줬다.
“칼리츠 가르만이라고 들었습니다.”
강찬의 입에서 나온 칼리츠 가르만이란 이름에 작센 공작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내뱉었다.
“헉!”
“왜 그러십니까?”
“바, 방금 칼리츠 가르만이라고 했습니까?”
“예,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작센 공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찬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호, 혹시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죽었단 말입니까? 그 친구가?”
작센의 말에 강찬도 깜짝 놀랐다.
“친구라면, 혹시 두 분이 아는 사이이십니까?”
“예, 저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 그런데 그 친구가 죽다니…….”
작센은 가르만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가 왜 죽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저도 잘… 직접 만나서 물어보시겠습니까?”
“직접 만나…… 예에? 오우거에게 물어보라고 하셨습니까?”
“예.”
“오우거에게 어떻게 물어봅니까?”
“말 잘합니다.”
말을 잘한다는 얘기에 작센이 또 깜짝 놀랐다.
“설마요, 말하는 오우거라니 그건 좀…….”
작센은 오우거가 말을 한다는 강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강찬은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대면시키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로키를 불렀다.
“잠시, 불러 드리겠습니다. 로키!”
강찬이 로키를 큰 소리로 부르자 그의 천막 반대편에서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리 좀 와 봐.”
“왜?”
“널 찾아온 손님이야.”
인간 세상에 연고도 없는데, 로키는 누가 자신을 찾아왔을지 의아했다.
“날?”
“그래.”
“잠만.”
강찬이 부름에 대답한 오우거 로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작센 공작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강찬에게 물었다.
“방금 그 목소리가 설마 그 오우거입니까?”
“네.”
“아니, 그건 오우거의 목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로키는 지크욘의 마법으로 오우거의 모습이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죠.”
“아, 지크욘 님이…….”
지크욘이란 말에 작센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그 순간 로키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로키는 여전히 지크욘이 디자인한 깜찍한 여자 옷을 입고 있었다.
“나 왔어.”
그런 로키를 본 작센 공작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여자애는 분명 예전에 강찬 님이랑 같이 있던 그 아이?’
작센 공작은 로키를 그동안 여자애라 알고 있었다. 여자애 같은 얼굴에 여자 옷까지 입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인사해, 작센 공작님이셔 전에 뵌 적 있지?”
“그래, 본 적 있다.”
“이분이 너희 아버지의 친구셨다는데?”
“우리 아버지 친구?”
아버지란 말에 작센이 강찬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
“그를 아버지라 불렀다는군요. 로키의 성도 칼리츠입니다.”
“그럼 이 아이가 그의 양녀란 말입니까?”
“성이 같으니깐 그렇겠죠? 그리고 양녀가 아니라 양자입니다.”
“양자? 세상에, 그럼 이 아이가 남자?”
강찬은 조금 창피하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가 입고 있는 옷이 여자 옷이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왜 여자 옷을 입혀 놨습니까?”
“그, 그건 나름 사정이…….”
“사정이 있다면야…… 그건 그렇고, 정말 놀랍군요.”
작센은 로키를 바라보며 정말로 놀라워했다.
오우거라고 해서 당연히 괴물 같은 오우거를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여자아이처럼 귀여운 외모를 가진 남자아이였다.
하물며 친구의 양자라니, 그에게 로키는 남이 아니었다.
“설마 가르만의 양자일 줄이야. 그렇다면 너는 나를 삼촌이라 부르거라.”
“삼촌?”
“그래, 네 아버지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단다. 형제나 다름없었지…….”
“둘도 없는 친구 사이? 강찬이랑 지크욘처럼?”
갑자기 나온 지크욘의 이름에 강찬과 작센 공작이 둘 다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찬은 어제 밤 지크욘과 싸워서 그랬고, 작센 공작은 지크욘이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기에 그랬다.
“으응…… 그래.”
강찬은 조금 찔리는 게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작센 공작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로키는 우리말을 누구한테 배운 거니?”
“아버지.”
“그렇다면 가르만이 너에게 직접 말과 검술을 가르친 것이냐?”
로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로키가 귀여운지, 작센 공작은 로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럼 로키는 전쟁이 끝나면 어디로 갈 거니?”
“음, 전쟁이 끝나면…….”
로키는 말없이 강찬을 바라봤다.
로키는 강찬 말고는 아는 사람도, 갈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강찬이 로키 대신 입을 열었다.
“사실 로키는 몬타나 산맥 깊숙한 곳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로키를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죠. 그렇다 보니 로키에겐 저희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