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13
퓨쳐나이트 113화
엘프의 숲의 엘프들이 100살이 되면 20대의 인간과 같은 풋풋한 모습처럼 보인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그녀의 모습은 30대 후반이 훌쩍 지난 모습처럼 변해 있었다.
눈가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고 머리는 푸석푸석해 윤기조차 없었다.
영양실조로 피골은 상접해 뼈가 앙상했다.
점점 떨어지는 손님으로 인해 이제 그녀에게 식사조차 제대로 넣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퇴물 취급을 받으며 점점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거라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들에 대한 증오와 원한, 그리고 눈에 서린 독기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와 그녀를 보고는 욕을 하며 돈을 돌려 달라고 포주에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어이, 이봐! 엘프라며? 이게 엘프야?”
“엘프 맞잖아! 귀를 봐, 귀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따위 엘프가 엘프냐? 당장 내 돈 돌려 줘!”
자신의 모습을 보고 퇴짜를 놓은 남자만 벌써 10번째, 포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반만 받을게. 됐지? 그럼 재밌게 놀다 가라고!”
“저, 저기! 어이! 이봐!”
쾅!
말을 전부 듣지도 않고 방문을 닫아 버린 포주에게 사내는 뭐라 항변하려 했다. 하지만 반값에 해 주겠다는 포주의 말을 되새기며 울며 겨자 먹기로 옷을 벗었다.
그는 그냥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과 살을 섞는다는 것에 위안 삼기로 한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그도 그녀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서비스에 만족했는지 이내 그녀와 살을 섞기 시작했다.
“아…… 아…… 아…….”
그때였다.
교태 어린 신음을 내뱉는 그녀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가 되었군. 나와 계약을 할 수 있는 자여…….’
갑자기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맑고 고운 음성에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물었다.
“누, 구시죠?”
“헉…… 헉…… 이년 지금 뭐라는 거야?”
“당신은 누구시죠?”
“갑자기 손님도 못 알아보는 거냐? 앙?”
‘난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 넌 나의 힘을 원하나?’
‘물의 정령왕? 힘, 힘이라고?’
힘. 그것은 그녀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힘을 원한다고 말했다.
“네, 필요해요.”
“뭐? 돈을 더 달라고? 이런 천하에 날강도 같은 것들을 봤나? 뭐 이런 년이 다 있어?”
사내는 그녀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나 손을 들어 올린 남자의 머리는 순간 그녀의 초라한 화장대로 날아가 거울을 깨고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사내의 몸이 그녀에게 쓰러지며 그녀의 얼굴에 분수 같은 피를 쏟아 냈다
붉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그녀.
그런데 그 붉은 피가 그녀의 피부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에 돌연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거칠었던 피부가 아기 피부처럼 부드럽고 탱탱하게 변했다.
윤기 하나 없이 푸석푸석하기만 했던 그녀의 머리카락도 윤기가 흐르는 검고 아름다운 머릿결로 변했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떴을 땐 그곳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그녀가 누워 있었다.
그녀의 눈은 예전과 다른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손을 뻗어 지금까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아 온 낡고 초라한 문을 향해 힘을 줬다.
그러자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던 나이아드가 그 의지에 따라 문을 날려 버렸다.
콰아아아아앙!
건물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갑자기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터져 나와 건물의 절반을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앞에 있는 가옥 수십 채를 휩쓸며 일렬로 파괴해 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거친 급류에 휩쓸려 붕괴되는 마을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앞에 펼쳐진 파괴의 흔적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은 과거의 퍼석퍼석하고 메말라 있던 손이 아니었다.
마치 5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여리고 고운 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손에는 세상 그 무엇이라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느껴졌다.
“이게 정령왕, 나이아드의 힘?”
“아니, 이젠 너의 힘이다.”
그녀는 나이아드의 말에 한동안 자신이 만든 파괴의 흔적을 바라보다가 이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미친 듯이 광소했다.
“아하하하하하하!”
그런 그녀는 울면서 웃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지 기뻐서였다.
그만큼이나 기뻤던 것이다.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아는지, 나이아드가 의도적인 질문을 했다.
“내가 뭘 해 줬으면 좋겠나?”
나이아드의 질문에 그녀는 잔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뭘 원하는 것 같나요?”
“이 세계에 대한 복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꼬집어 주는 나이아드의 말에 그린은 너무나도 기쁜 듯 되물었다.
“그렇게 해 주실 건가요?”
“물론이다.”
“그럼 일단 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전부 죽여 줘요. 단 한 명도 남기지 말고요.”
나이아드는 물의 형상이었기에 표정이 없었지만,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것도 잔인하게 말이다.
모든 게 그들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답을 기다렸다.”
순간 나이아드의 투명했던 몸이 얼음으로 뒤바뀌며 터져 나갔다.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윽고 그것들이 강렬하게 회오리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칼날 같은 얼음들이 퍼져 나갔다.
“하아아아암!”
막 잠에서 깨어난 듯, 그녀가 눈을 떴을 땐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사방에 짙은 어둠이 내린 마을은 꽁꽁 얼어 있었고, 수많은 시체들이 갈기갈기 찢긴 채 얼음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을은 사라졌다.
그녀를 모질게 대하던 인간들도 모두 함께 사라졌다.
더 이상 그녀를 속박하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이제 자유였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흐르는 듯한 해방감을 만끽했다.
“난 이제 자유야! 자유라고!”
그런 그녀에게 다시금 나이아드가 말을 걸었다.
“자, 네가 원하는 대로 모두 죽였다. 다음으로 원하는 건 뭐지?”
“다음으로 원하는 거요?”
나이아드의 상냥한 질문에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곧 뭔가를 결정했는지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구름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어요!”
“구름 위에서?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나이아드는 투명한 막으로 그린을 감싸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어둠을 가르며 동쪽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그런 그녀의 발아래로 그동안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드넓은 세상이 펼쳐졌다.
그녀는 세상이 이렇게나 넓다는 것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을 느꼈다.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100년 동안이나 갇혀 지내 온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도 가엽고 처량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분노가 치밀었다.
이 드넓은 세상을 그 사악하고 더러운 종족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두 번째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먼동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작은 창문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일출을 소원대로 하늘 위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너, 너무 아름다워요…….”
태양의 붉은 기운을 한껏 머금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구름들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윽고 떠오른 태양의 햇살이 그녀의 전신을 따스하게 감싸 주었다.
그녀의 눈에선 감동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이아드…….”
“듣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추악할까요?”
“글쎄?”
“나이아드, 이 하늘을 봐요.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아요?”
“물론이다.”
“저는 그 이유를 알았어요.”
“이유를?”
“네,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운 이유를요.”
“그 이유가 뭐지?”
“이곳에는 추악한 그들이 없기 때문이에요.”
“추악한 그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이지?”
“전부 다요.”
“전부다?”
“인간, 오크, 드워프, 엘프…… 이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그 추악한 모든 존재들이요.”
역시 모범 답안이었다.
나이아드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무척이나 흡족해했다.
그가 보기에도 그들은 모두 자연의 조화를 어지럽히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중에서 엘프는 예외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이아드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 따위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녀를 통한 이 세계의 정화였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 인간과 오크들에 의한 자연의 파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
마나를 남용하는 인간들에 의해 자연계의 질서는 크게 위협받고 있었다.
게다가 드워프의 무분별한 채굴로 인해 온 산맥은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그런 그들의 환경 파괴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역시 정령들이었고, 그런 정령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왕인 정령왕들이 나선 것이다.
세상에 정화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택된 것이 바로 그린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나이아드의 의지로 말미암아 엘프와 오크라는 불가능한 조합으로 탄생된 생명체인 것이다.
그런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그가 꾸민 각본인지도 모르고 그들의 의도대로만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그들이 없어야지만 세상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할 거예요.”
“그들을 지상에서 몰아내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네, 꼭 해내고야 말겠어요.”
나이아드는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나는 계약자인 네가 시키는 일이라면 모든지 할 수 있지만, 그것만은 결코 권해 주고 싶지 않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추악하게 썩어 버린 그들을 이 세상에서 몽땅 다 쓸어버리기 전까지요…….”
그린의 굳은 결심에 나이아드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그 마음, 절대로 변치 않길 바란다.”
그렇게 그녀의 피로 물든 길은 시작되었다.
36. 포로의 삶
총력전이 장기화되면서 전투가 소규모 국지전 정도만 벌어지는 이때, 연합군 진영 안에는 모두의 멸시와 핍박을 독차지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포로로 잡힌 녹색 엘프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오늘도 핍박하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있었다.
“이런 더러운 개새끼들아! 이거나 처먹어라! 캬아아악! 퉤!”
한 녹색 엘프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런 녹색 엘프의 매서운 눈길에 병사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바퀴벌레 같은 새끼가, 뭘 봐? 뭘 노려봐! 앙? 나랑 지금 해 보자는 거야?”
성난 병사는 돌을 들어 짐승의 우리와도 같은 철창 사이로 던졌고, 그 돌멩이에 맞은 녹색 엘프에 머리에선 피가 흘렀다.
병사는 상처 입은 녹색 엘프를 노려보며 물었다.
“왜? 분하냐? 억울하냐? 날 죽이고 싶지 않아? 그럼 크게 외쳐! 제발 좀 구하러 와 달라고 말이야! 앙? 하하하하하!”
병사들의 조롱에 녹색 엘프들은 고개를 숙이고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을 처형할 때는 내가 직접 목을 베어 주마! 기대해라, 벌레 새끼들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