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14
퓨쳐나이트 114화
병사들이 떠나간 후.
미라처럼 비쩍 마른 녹색 엘프들이 서로 병사가 뱉은 가래침을 핥아 먹겠다고 달려들었다.
돌에 맞은 녹색 엘프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침통함에 울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 따윈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말라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간들에게 사로잡힌 지 5일째.
인간들은 수십 명이나 되는 녹색 엘프들에게 하루 한 번씩만 물을 주고 이렇게 뙤약볕 아래에 방치해 두었다.
밥은 아예 주지도 않았다.
녹색 엘프 포로들은 극도의 갈증을 느끼며 서서히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이들을 바로 죽이지 않고 이렇게 방치해 둔 이유는 남은 적들을 유인해 보려는 수작이었다.
그래서 녹색 엘프 포로들은 적진에서 잘 보이는 이곳에 갇혀 있었다.
그런 그들을 연합군 병사들이 가만 내버려 둘 리 없었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돌팔매질에 저주와 원한이 담긴 욕설, 그리고 가래침 세례가 그들에게로 퍼부어 졌다.
녹색 엘프들의 눈에서 삶에 대한 희망은 그렇게 점차 꺼져 가는 듯했다.
우연히 수용소를 지나던 강찬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헉! 어, 어떻게!”
강찬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제, 제이나?”
녹색 엘프 중에 제이나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엘프가 있었던 것이다.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감옥으로 다가가 그 여자 녹색 엘프를 바라봤다.
작은 체구도 그렇고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금발인 것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단지 피부만 녹색일 뿐, 그 녹색 엘프는 제이나와 쌍둥이 같았다.
물론 강찬은 그녀가 제이나가 아니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죽은 그녀가 녹색 엘프가 되어 돌아올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강찬은 그리운 제이나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살아생전에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이나와 닮은 녹색 엘프 여인도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강찬을 잔뜩 경계하다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내가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가 왜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지 그 영문을 알 리 없는 그녀는 말없이 쓸쓸히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날 밤, 강찬은 다시 녹색 엘프가 갇힌 감옥을 찾았다.
“누구냐?”
경비를 서던 병사는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등장한 검은 복장 일색의 강찬을 보고 놀라서 크게 외쳤다.
“비스만 제국 헬라이너 기사단 소속 강찬이다.”
“헉! 가, 강찬 님!”
“강찬 님이다!”
강찬이란 이름에 포로들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경외감 가득한 눈으로 강찬을 바라봤다.
요즘 연합군 병사들 사이에 강찬은 떠오르는 샛별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소드 마스터이면서도 징집병으로 시작해서 정규 기사단까지 올라간 자.
특수 부대 블랙와이번을 창설해 적진을 종횡무진한 활약상이 전군에 알려지면서 강찬은 일반 병사들 사이에선 가히 신화적인 인물로 통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와 늘 함께 다니는 지크욘 역시 사람들에게 신녀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지크욘과 붙어 다니는 강찬 역시도 하늘이 보낸 기사라 하여 그 이름도 거창한 ‘천공의 기사’라 불리고 있었다.
“천공의 기사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기,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은데. 난 천공의 기사가 아니다.”
“블랙와이번 부대를 이끄시는 강찬 님 아니십니까?”
“그건 맞네만.”
“그럼 천공의 기사님이 맞군요. 충성!”
“…….”
‘설마, 내가 지금 여기서 천공의 기사라 불리는 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분한 별명이 생겨 버리니, 강찬은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천공의 기사라니……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었다.
다크 나이트면 모를까?
“그런데 귀하디귀하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포로들을 좀 보러 왔다.”
소드 마스터쯤 되는 거물이 죽어 가는 녹색 엘프 따윌 보겠다고 찾아왔다 하니, 병사는 놀란 듯 되물었다.
“예? 녹색 엘프 포로들을 말입니까?”
“그렇다.”
“아, 알겠습니다!”
병사는 그가 왜 녹색 엘프들을 보러 왔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신분의 차이가 있기에 감히 물어보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열어 줬다.
“충성!”
“수고하게.”
강찬은 그렇게 보초들을 지나 감옥 앞에 도착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모두 녹초가 되었는지, 그들은 모두 시체처럼 쓰러져 자고 있었다.
강찬은 그런 그들 중 낮에 본 녹색 엘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낀 녹색 엘프들이 벌떡 일어나 경계하며 그를 노려봤다.
밤중에도 자신들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이 가끔 이렇게 나타나 오물을 뿌리거나 흉기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갇힌 녹색 엘프는 모두 30명이었다.
그중 20명은 오크 엘프였고 나머지 10명은 보통 엘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찬은 그중 제이나와 닮은 엘프를 찾았다.
그녀 역시 짙은 경계의 눈초리로 강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또다시 깊은 슬픔에 잠겼다.
강찬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녹색 엘프 여인은 또다시 의아해졌다.
한낮에 찾아와 자신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사내가 저녁에도 찾아와 또다시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녹색 엘프 여인은 자신을 슬픈 눈으로 보는 강찬의 모습에 의아해져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이 더욱 제이나처럼 보였고, 강찬은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지?”
“…….”
극도로 경계하는 그녀는 강찬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섭나?”
녹색 엘프 여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외모가 엘프와 마찬가지로 매우 아름다웠기에 그들을 노렸던 병사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슴을 보여 주면 빵과 물을 주겠다며 그녀들을 유혹했었다.
물론 보여 줘도 식량을 줄 그들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너에게 별다른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니 안심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찬의 말에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애초에 이런 야심한 시간에 찾아온 그의 말은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강찬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녹색 엘프 여인의 입술이 가뭄에 메마른 땅처럼 갈라진 걸 보고는 가지고 온 물통을 건넸다.
“목마르지? 자, 마셔라.”
강찬이 그녀에게 물통을 내밀자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빼앗다시피 물통을 잡아채 급히 물을 마셨다.
그러나 한두 모금만 마셨을 뿐.
남은 물을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나눠 줬다.
하지만 강찬이 가져온 물은 모두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더 마시고 싶나?”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라.”
자리에서 일어난 강찬은 병사에게 부탁해 큰 통에 물을 가득 담아 포로들에게 건넸다.
그러자 포로들은 허겁지겁 강찬이 주는 물을 받아 마셨고, 모두들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다.
이윽고 물통에 물이 동이 날 때쯤, 강찬은 처음으로 녹색 엘프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왜…… 저희를 돕는 거죠?”
5일간 뙤약볕 아래 있던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진 쇳소리였지만 원래는 참 예뻤을 목소리였다.
“그냥, 과거의 향수랄까?”
“제가 당신이 아는 사람과 많이 닮았나요?”
너무나도 날카로운 그녀의 질문에 강찬은 순간 흠칫했지만 애써 아닌 척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눈을 보고 알았죠.”
강찬은 잠시 말을 잃었다.
“제 말이 맞군요.”
“그래, 넌 내가 아는 여인을 닮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역시, 그랬군요.”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강찬은 말없이 여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정면에서 제대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이 정말로 제이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 강찬을 마주보는 녹색 엘프 여인 역시 강찬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분명 적이지만, 왠지 그의 눈빛이 싫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강찬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이게 뭔가요?”
강찬이 그녀에게 건네준 건 우주인들이 먹는 알약이었다.
“먹어 보면 안다.”
“…….”
여인은 강찬이 준 알약을 바라보며 의아해했지만 이내 말없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죠?”
그녀는 강찬이 건네준 알약을 독약이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의 말에 강찬이 부정했다.
“그건 독약이 아니다.”
“그러면 이게 뭐죠?”
“먹어 보면 안다.”
“…….”
일단 먹어 보라는 강찬의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알약을 삼켰다.
설령 이것이 독약이라 할지라도, 그녀에게 잃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두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점차 허기가 가시는 걸 느끼고는 깜짝 놀라 강찬을 바라봤다.
“그것 한 알이면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된다.”
그녀는 5일 만에 느끼는 포만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강찬은 그런 그녀에게 금속으로 된 작은 상자를 건넸다.
어리둥절하며 상자를 받은 그녀.
상자를 열어 보자 그 안에는 자신이 먹었던 알약 수십 개가 들어 있었다.
여인은 놀란 눈으로 강찬을 바라봤다.
“이것이 너희들한테 도움이 될지 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제이나를 향한 미련 때문에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이었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강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짜 제이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죽여야 할 원수일 뿐이었다.
“잘 있어라.”
마음을 다잡은 강찬이 자신의 막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녹색 엘프 여인이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플라티나예요, 제 이름…….”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자 그도 자신의 이름을 말해 줬다.
“강찬이다.”
강찬이 다녀간 이후.
그가 건네준 알약으로 끼니를 해결한 녹색 엘프들은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나 아무리 끼니를 해결했다 할지라도 식사보다 중요한 게 물이었기에 그들이 고통받는 것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로 인간들이 물 배급을 일절 중단했기 때문이다.
밥은 안 먹어도 3주를 살 수 있지만 물은 3일만 마시지 못해도 생명이 위험해진다.
엘프들이나 인간들이나 물은 생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강찬은 그날 밤 이후로 종종 플라티나를 생각했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 고통받고 있을 그녀가 걱정되었다.
제이나의 얼굴로 고통받는 그녀.
비록 원수인 녹색 엘프였지만 제이나와 닮은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강찬에게 있어 제이나가 고통받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 또 우주에 있는 그것들 생각하냐?”
고뇌에 차 있는 강찬에게 다가온 지크욘이 걱정 어린 투로 말을 걸자 강찬은 대답 없이 그녀를 피했다.
“야~ 아직도 화 안 풀렸어?”
“…….”
“알았어, 네가 화 풀릴 때까진 말 걸지 않을게.”
지크욘이 풀이 죽어 강찬의 천막을 나서려 하자 강찬이 대뜸 지크욘을 불렀다.
비록 괘씸하기는 했지만 지크욘과 언제까지 이렇게 말 안 하고 지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