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16
퓨쳐나이트 116화
“그건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너는 여행자라고 하기엔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너무 풍부해 보였으니까. 고작 그것 때문에 그렇게 심각했던 것이냐?”
강찬은 고작 그런 것이라고 말해 주는 엘라디온에게 너무도 감사했다.
자신을 그만큼 믿어 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걱정거리는 그게 아니었다.
“물론 아닙니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느냐?”
“그, 그게 사실 전…….”
강찬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자신의 입을 열려고 애썼다.
그런 제자의 모습에 점점 더 불안해지는 엘라디온이었다.
‘도대체 무슨 진실을 감추고 있었기에 저리도 털어놓길 어려워한단 말인가?’
엘라디온이 속으로 그런 걱정을 할 때 강찬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 사실 전…… 지구 연방군 소속 특수 부대 대원으로, 이 별에 온 진짜 목적은 이 별을 우주 연방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찬의 말을 들은 엘라디온은 순간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런 엘라디온의 모습에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엘라디온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여기에 온 목적이 이곳을 침략하기 위해서라니, 그 말이 사실이냐?”
“맞습니다…….”
“미, 믿을 수가 없구나. 네가 그런 사실을 숨겨 왔다니…….”
엘라디온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강찬은 자신의 제자 중 처음으로 소드 마스터에 오른…… 그것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최단기간 만에 소드 마스터가 되어 준 자랑스러운 제자였다.
그런데 그 제자의 진짜 정체가 침략자들의 첨병이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어떻게 그런 일이…….”
너무 놀란 엘라디온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뇌에 빠졌다.
그가 만일 자신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제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였다.
비록 그가 엘프가 아닌 인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스터…….”
강찬은 충격을 입고 혼란스러워하는 엘라디온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모든 걸 각오하고 어렵게 털어놓은 진실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 다시는 예전의 사제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을 하는 강찬에게 엘라디온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그 사실을 좀 더 빨리 말하지 않았느냐?”
엘라디온은 자신의 제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아무리 적의 첨병이라곤 하나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찬은 그렇게 난감해하는 엘라디온에게 자신의 굳은 의지를 전했다.
“늦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허나 진실을 말하기에는 두려움이 너무 컸습니다.”
“그렇겠지…….”
강찬은 엘라디온이 자신을 최대한 이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강찬은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전했다.
“하지만 마스터, 전 이제 이 세계를 돕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그쪽 신분을 포기하겠단 것이냐?”
“예, 마스터.”
“…….”
엘라디온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고 강찬은 그런 그에게 자신이 마음을 돌린 이유를 솔직히 털어놨다.
“제가 왜 마음을 돌렸는지 궁금하십니까?”
“그래, 한번 듣고 싶구나.”
“그럼 혹시, 전에 말씀드린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물론이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토록 끔찍한 이야기를…… 동족의 어린아이를 생체 실험의 재료로 삼는 비인륜적인 행위를. 그런 것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살던 그곳은 저에게 있어 그런 기억밖에 없는 곳입니다.”
“…….”
“전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을 죽이는 살인 도구로서만 살아야 하는 삶 말입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전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은 제이나에게 약속했습니다. 반드시 이 땅을 지켜 주겠다고요.”
“찬아…….”
“마스터, 제발 저에게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엘라디온은 강찬의 두 눈에서 진지함을 읽어 냈다.
그리고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오래 산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륜 같은 것이었다.
그런 엘라디온은 강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비록 강찬이 자신의 정체를 숨겨 왔다고는 하나 여태 그가 보여 줬던 모습들이 거짓이 아님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았다, 내 다시 한번 널 믿어 보마.”
“마스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찬은 자신을 믿어 준 엘라디온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나머지 벌떡 일어나 그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러나 절을 올리는 풍습이 없는 엘프인 엘라디온으로서는 강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엘라디온이 조심스럽게 강찬에게 물었다.
“그래, 네가 말하는 그 적들은 대체 언제쯤 이곳을 침공할 것 같으냐?”
“그들은 이미 이곳에 도착해 있습니다, 마스터.”
“뭐, 뭐시라?”
적이 이미 와 있다는 강찬의 말에 엘라디온은 경악했다.
“요즘 연합군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 빛, 이곳 사람들이 파괴의 빛이라 부르는 그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것은 우주에서 발사된 전함의 가립자포라는 것으로, 제가 타고 온 레드 마스호에도 장착되어 있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병기입니다.”
엘라디온은 그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가 레드 마스호에도 장착되어 있다는 말에 또 한번 놀랐다.
“네가 타고 온 우주선에도 그 파괴의 빛을 쏘는 무기가 달려 있단 말이냐?”
“예, 마스터.”
순간 엘라디온의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세상에…… 그 파괴의 빛이 적들이 쏘는 것이었다니.’
“마스터, 지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전쟁을 끝내고 그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있느냐?”
“지금 지크욘과 함께 그들에게 대항할 방법과 무기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 지크욘 님과? 그럼 설마 그분도 네 진짜 정체에 대해서 알고 계시냐?”
“예, 마스터.”
지크욘이란 말에 엘라디온의 가슴속에 마지못해 남아 있던 의구심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 세계의 지배자인 드래곤이 적과 손잡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함께 아르테온 님께 가자꾸나.”
“네, 마스터.”
엘프의 수장인 그녀 또한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강찬은 망설임 없이 엘라디온을 따라나섰다.
강찬은 더 이상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엘라디온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강찬은 엘리카와 함께 막사로 돌아왔다.
강찬에게 오늘 하루는 그에 삶 중에 있어 가장 긴장되고 떨렸던 날이었다.
자신에게 있어 너무도 소중한 자들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들은 강찬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잘 해결되었고, 이제 강찬은 그들에게 적이 아닌 한 배를 탄 동지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음으로 할 일은 추락한 레드 마스호로 가서 그들과의 전투에서 사용할 만한 것들을 추려 내는 것이었다.
전함은 못 쓰더라도 그 안에는 개인 화기부터 소형 전투정까지, 전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의 안테나를 이용해 우주에 있는 적의 주파수를 도청해 연합군인지 제국군인지 그 소속을 알아내야 했다.
만일 그들이 연합군이라면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역습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긴장하고 고민한 그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군인인 그에게는 역시 머리 쓰는 일보단 몸 쓰는 일이 더 편했다.
‘휴…… 정말 힘든 하루였어.’
강찬은 잠시 고민을 잊고 침상에 기대 앉아 양손으로 피곤한 듯 얼굴을 비볐다.
그러고는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까?
강찬은 문득 또 그녀가 떠올랐다.
제이나와 닮은 녹색 엘프 여인.
사실은 그녀가 아니라 제이나가 떠오른 게 맞았다.
제이나가 보고 싶은 와중에 그녀가 떠오른 것이니 말이다.
‘휴, 그 후로 3일이 지났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강찬은 그녀가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가 갇혀 있는 감옥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혹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
잠시 망설이던 강찬은 하는 수 없이 옷을 걸치고 그녀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에 도착한 강찬은 멀리 갇혀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감옥에 갇힌 녹색 엘프가 8명으로 대폭 줄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아 있는 자들도 죽어 가고 있는지 감옥 바닥에 누운 채 약간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다급히 다가간 강찬은 그들 중 플라티나를 찾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설마…….’
한참을 살피던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플라티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의식이 없는데 거기에 근육 경련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전형적인 일사병 증상이었다.
그것도 의식을 잃을 정도면 심각한 상태였다.
그리고 탈수 증상 또한 매우 심각해 보였다.
이게 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보란 듯이 그들을 천천히 말려 죽이려는 잔인한 연합군의 짓이었다.
강찬은 그녀에게 다가가 감옥 사이로 손을 넣어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그러자 강찬의 손길에 의식이 돌아온 그녀가 힘겹게 눈을 떠 강찬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입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가, 가, 강찬?”
강찬은 순간 그녀가 정말로 제이나로 보였다.
마치 그날 밤 자신의 손에 안겨 숨이 멎어 가던 제이나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괘, 괜찮나? 이봐, 이봐! 정신 차려!”
강찬이 급히 그녀의 볼을 때렸지만 그녀는 결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봐! 이런 제길! 병사!”
강찬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보초를 불렀다. 그러자 보초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즉각 달려왔다.
“옙! 천공의 기사님! 부르셨습니까?”
“그딴 개소리 집어치우고 얼른 이 문이나 열어라!”
천공의 기사란 낯간지러운 소리에 강찬이 거칠게 병사를 대하자 병사는 순간 강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살기에 놀라 오줌을 지릴 뻔했다.
“예에?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병사는 이해할 수 없는 강찬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반문을 했다.
“포로가 죽어 가고 있다! 어서 문을 열어라!”
병사는 강찬이 손을 뻗어 맥을 짚고 있는 녹색 엘프 여인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매우 자신 없는 말투로 말을 했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소드 마스터였고, 그런 그는 강찬의 부탁을 거절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 저기 천공의 기사님. 죄, 죄송한데 그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요…….”
“왜지?”
더욱 살기 짙은 강찬의 물음에 병사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게, 사실…… 이것들을 이곳에 방치한 지 8일이 지났는데 적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 상부에선 그냥 말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3일 전부터 물도 주지 않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