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21
퓨쳐나이트 121화
“오늘의 의제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땅이 침략당했다.”
침략당했다는 지크욘의 말에 드래곤들이 조금 술렁였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들처럼 경거망동하진 않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이 세계의 절대자들이기 때문이다.
“누가 침략한 것입니까? 설마, 또 마족입니까?”
“아니다.”
“그럼 그들 말고 드래곤의 안위를 위협할 만한 존재들이 대체 누구입니까?”
마족 이외에 드래곤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천족 정도밖에 없기에, 지크욘 다음 서열인 레드 드래곤 R.레크라시온이 의문에 가득한 어투로 물었다.
천족이 지상을 공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크욘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은 그들의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적은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다.”
“외계 말입니까?”
“외계라면 다른 차원의 존재들입니까?”
“그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차원이 아닌 같은 차원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단지 우리 드래곤들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멀리서 왔을 뿐이다.”
“이 드넓은 아르칸도르 대륙도 저희들에게는 손바닥 안이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 드래곤들도 상상할 수 없는 곳이라니, 그곳이 대체 어디입니까?”
지크욘은 말없이 하늘을 가리켰다.
“그들은 저 하늘 위에서 온 자들이다.”
“그럼 천족입니까?”
드래곤들 또한 생명체이기에 우주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하늘 끝이 어디인지 도전해 본 드래곤은 있었다. 하지만 성층권까지 올라간 그 드래곤은 극저온의 온도와 희박한 산소로 인해 곧장 지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절대자를 자칭하는 그들도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늘 위는 막연히 신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다.
자신들조차 다가갈 수 없는 신의 영역 말이다.
“아니다. 그들은 인간과 똑같은 존재들이다.”
인간과 같은 존재들이란 말에 드래곤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 김빠진 표정을 지었고, 그들의 대표로 레크라시온이 물었다.
“인간 따위야 저희 앞에선 벌레만도 못한 존재들 아닙니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구나…….”
레크라시온은 지크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명확히 느껴지는 것이, 지금 지크욘은 명백히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는 겁니까? 외계에서 온 그들이 지크욘 님을 그렇게나 걱정시킬 만큼이나 강력한 존재들입니까?”
지크욘, 그녀는 모든 드래곤들의 로드였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이 땅에서 가장 강한 존재란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마음 약한 소리를 하다니. 그것은 그만큼 두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지크욘은 동족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밝혔다.
“난 그들에게 패해서 도망쳤다.”
“헉!”
순간 모든 드래곤들이 경악했다.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그녀가 패배한 것도 모자라 도망쳤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지크욘 님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지크욘 님이 패배를…….”
“그놈들이 무슨 비겁한 수라도 쓴 것입니까?”
드래곤들은 자신들이 이 세계의 절대자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력한 에이션트 드래곤인 지크욘의 패배를 도무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외계에서 온 적들에게 패배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고, 지크욘은 그 사실을 그들에게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의 치욕스런 패배의 순간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브레스로 먼저 선공을 날린 건 나였으나 적은 전력을 다한 브레스를 가볍게 막아 내고 브레스보다 강력한 공격으로 날 꺾었다. 난 긴급 탈출 마법으로 레어로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지크욘의 말에 드넓은 레어 안이 싸늘한 공기로 가득 찼다. 드래곤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크욘 님께서 긴급 탈출 마법까지 쓰셔야 할 만큼 강력한 상대였단 말입니까? 인간이?”
“그렇다, 그들은 이곳의 인간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마법이 아닌 과학을 발전시킨 이들이다.”
“과학 말입니까? 그건 애들 장난 같은 것 아닙니까?”
“과학은 이곳의 인간들조차 미천하게 여기는 분야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과학이란 예전의 아르테온과 다를 바 없었기에, 그들이 아는 건 풍차나 물레방아 정도에 불과했다.
“나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요 근래까지는…… 허나 난 그곳에서 온 인간과 함께하며 그에게서 많은 것을 듣고 겪었다.”
“그 침략자란 외계의 인간과 함께하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는 지금 인간 연합군의 편에 서서 녹색 엘프들과 싸우고 있다.”
“당장 잡아다 그 낯짝을 봐야겠습니다!”
레드 일족만큼이나 성질이 급한 블랙 드래곤 K.켈리온이 당장에라도 그곳에 달려가 강찬을 찾을 기세를 보이자 지크욘이 그를 잘 타일렀다.
“그는 지금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나서지 말거라.”
“죄송합니다, 로드시여. 제가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아무리 성질 급한 그라도 로드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와 같았다.
“절대로 그들의 과학력을 경시하지 마라. 그들이 이룬 과학은 우리가 이룬 마법처럼 엄청나게 고차원적인 것이고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위력은…….”
지크욘은 3,500살 된 실버 일족의 S.실피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의 실드로는 그들의 가장 약한 공격조차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헉!”
지크욘의 지목한 실피리스는 이중 가장 나이가 어린 드래곤이었는데, 그에게 지크욘이 한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리 자신이 가장 어리다고 하나 일격조차 막지 못할 거라니, 그는 자존심이 상하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한편으로는 등골이 오싹했다.
영원불멸이라 생각한 자신의 목숨이 겨우 단 한 방이란 말에 말이다.
그러나 지크욘의 경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크욘은 이번엔 4,000살 된 윔급 골드 드래곤 A.에이젤리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5방이다.”
“!!”
“레크라시온, 넌 아마 20방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30발쯤 버텨 냈으니.”
에이션트급에 다다른 자신조차 20방이라니, 조금은 치욕스러운 말이었지만, 자신보다 강한 지크욘이 30방밖에 못 버텼다는 말에 할 말이 없어지는 레크라시온이었다.
“그들의 가장 약한 일격이 그 정도라 하시면, 가장 강한 건 얼마나 강하단 말입니까?”
“그건 나조차도 한 방이었다.”
“…….”
“…….”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지, 실드를 5겹이나 쳤는데 그들의 공격에 실드가 순식간에 박살 나더구나. 내 8,000년 인생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단다.”
드래곤들은 점점 지크욘의 말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로드조차 한 방이라는데, 자신들로서는 막고 자시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긴장은 점차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자신들은 더 이상 절대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한 상대라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로드시여…….”
지크욘은 긴장의 빛이 역력한 동족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차분히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냐?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회의실로 가자.”
“알겠습니다.”
드래곤들은 그렇게 지구에서 온 인간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긴급 회의를 시작했다.
39. 밝혀지는 적의 정체
강찬은 지크욘과 함께 레드 마스호로 공간 이동했다.
과거 마인킹덤에서 헬리온 왕국까지 너무 멀어서 공간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니, 그보다 두 배는 먼 거리인 이곳까지 단 한번에 온 것이다.
강찬은 지크욘을 불신에 찬 눈빛으로 째려 봤지만, 지크욘은 뻔뻔한 표정으로 딴청을 부릴 뿐이었다.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강찬은 지크욘에게서 신경을 끊고, 이곳에 온 목적을 위해 격납고로 향했다.
강찬이 이곳을 찾은 이유가 바로 강습정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행성으로 병력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개발된 강습정은 덩치는 작아도 웬만한 민간용 우주 여객선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강찬이 강습정을 찾은 이유는 바로 강습정에 장착된 무전기 때문이었다.
강찬은 강습정에 장착된 안테나를 이용해 적의 무전을 도청하고, 그들의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다.
레드 마스호에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안테나가 장착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제국의 드로이드에 의해 파괴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로 머리 위에 떠 있는 적을 식별하는 데는 강습정의 우주 통신용 안테나라도 충분했다.
역추적당할 공산이 컸지만 말이다.
강습정은 수년간 정비를 하지 않은 상태라 정상적인 작동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강찬은 조바심을 느끼며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쿠우우우우우웅…….
조종석의 여러 가지 계기판들에 불이 들어오면서 강습정의 시동이 걸렸다.
“오케이! 좋았어!”
“작동하는 건가?”
“그래.”
강찬은 강습정의 상태를 잠시 점검하고, 곧장 안테나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자동 주파수 찾기와 적아 식별 장치를 작동시키고 적들이 통신하기를 기다렸다.
“놈들이 미끼를 물어야 할 텐데…….”
“뭐야? 이러고 그냥 기다리는 거야?”
“그래, 이대로 놈들이 통신 채널을 사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에엑? 놈들이 언제 통신할 줄 알고 기다려? 몰라, 난 방에 가서 낮잠이나 자고 있을래.”
“그러시든지.”
사실 여기서 지크욘이 도와줄 일은 없었다.
오히려 사라져 주는 편이 강찬에겐 집중하기 편했다.
지크욘이 강습정에서 내려 낮잠을 즐기러 간 사이, 강찬은 끈기와 인내로 무장하고 적들의 통신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비장했던 각오와는 다르게 적의 통신은 의외로 손쉽게 도청되었다.
-칙! 대, 대장…… 칙! 여기…… 칙!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희미하게 들려오는 통신 소리. 그러나 곧 강찬은 절망했다.
적아 식별 장치에 붉은 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이었다.
강찬은 얼른 통신을 껐다.
계속 통신을 엿듣다간 역추적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는 우주 전함.
일개 강습정 따위가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제국군이 여기 있을 수 있지?”
강찬은 믿기지가 않았다.
그가 아는 한 그들은 초시공 항해를 위한 워프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올 동안 우주 연방군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설마?”
강찬의 머릿속에 온갖 안 좋은 생각이 교차했다.
제국군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가능성까지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자신의 신분을 이용한 접근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오로지 힘으로 그들을 때려잡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강찬이 보기에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 * *
강찬이 절망하고 있을 무렵, 우주를 유영하는 즈베즈다호의 함수에는 비상이 걸렸다.
“누구지? 누가 우리 통신을 엿들은 거야?”
-현재 미확인된 적은 통신 채널을 닫았습니다. 추적은 불가능합니다.
“용의주도한 놈, 적아 식별만 하고 바로 채널을 닿았군. 그렇다면 절대로 아군은 아니야…….”
-채널에 접속한 적 컴퓨터 시스템을 파악한 결과, 소형 우주선에서 사용되는 BNB-NX103 파라볼라 시스템이었습니다.
“오호라? 그것은 우주 연방군의 강습정에 달린 모델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별에 우주 연방군의 개가 숨어 있단 말인가?”
“전함급 시스템이 아닌 발각될 수도 있는 강습정의 안테나를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적은 강습정을 타고 이곳에 도착한 생존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에 걸림돌이 될 만한 적은 아니군요.”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컴퓨터! 적이 도사릴 만한 예상 지역으로 전투기 편대를 급파해 이 잡듯 뒤져라.”
-알겠습니다.
즈베즈다호에서 수백 대의 전투기들이 발진해 적이 도사리고 있을 지역으로 급파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레드 마스호를 발견하는 일은 없었다.
레드 마스호엔 지크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간 왜곡 마법진이 몇 겹으로 둘러쳐져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