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22
퓨쳐나이트 122화
40. 로키의 봄 (2)
늦은 새벽까지 술을 마신 로키와 브리티나가 나란히 막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로키의 막사와 브리티나의 막사가 생각보다 가까웠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 본 로키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했고, 그를 바라보던 브리티나가 로키를 향해 체념조로 말했다.
“이건 불공평해…….”
“뭐가?”
“넌 남자고 난 여잔데, 어떻게 네가 나보다 더 여자다울 수 있지?”
그녀는 로키의 작고 여린 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모습은 여자인 자신이 봐도 부러울 만큼이나 날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브리티나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휴, 나도 너처럼 작고 여렸으면…….”
그녀의 말에 로키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인간들은 왜 작고 여린 여자를 좋아하지?”
“당연한 거 아니야? 남자라면 누구나 마르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고. 넌 안 그래?”
“응, 난 안 그래. 난 인간이 아니니까.”
“뭐?”
인간이 아니라는 로키의 말에 브리티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로키를 바라봤다.
“그렇게 말하니깐 꼭 네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맞아, 난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고? 그럼 뭔데?”
“난 오우거야.”
“뭐라고? 오우거? 풋! 아하하하.”
로키의 말에 브리티나가 박장대소하자 로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웃지?”
“그걸 말이라고 해? 나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맘이지만, 난 진짜로 오우거야.”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면…….’
브리티나는 다시 한번 연민 어린 눈빛으로 로키를 바라봤다.
불쌍하게도 자신을 오우거라 믿는 그를 말이다. 그러고는 애써 밝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오우거든 사람이든 알 게 뭐냐? 넌 로키고 난 브리티나인데. 안 그래?”
“응.”
둘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로키가 지내는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로키가 지내는 막사는 연합군 총사령부에 위치한 헬라이너 기사단의 주둔지 안에 있었고, 헬라이너 기사단은 작센 공작의 직속 기사단이었기에 그곳으로 다가가는 브리티나는 속으로 작센 공작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를 꽤나 아끼시나 보군요. 이렇게 큰 전쟁 중에도 가까이 두시는 걸 보면.’
아직도 로키를 작센 공작의 애인으로 여기는 브리티나는 그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는 아르칸도르 대륙의 영웅이자 기사도를 걷는 자들의 우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이토록 어린 남자애를 전쟁터까지 끌고 와 옆에 끼고 산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모든 게 그녀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긴 했지만, 지금 당장 브리티나의 오해는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막사가 보일 때쯤, 로키가 뭔가를 느꼈는지 걸음을 멈추고 브리티나를 잡았다.
“잠깐.”
“왜?”
“적이다.”
“적이라고?”
갑자기 난데없이 적이란 소리에 브리티나는 당혹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이곳은 연합군 진영 한가운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령부가 위치한 핵심부 중의 핵심부.
이곳에는 다크 엘프조차 함부로 잠입할 수 없을 만큼 사방팔방에 탐지 마법이 가득했다.
그런 곳에 적이라니, 브리티나는 그저 로키의 장난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어린애처럼 어수룩해 보이던 로키가 갑자기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과도 같은 살기를 내뿜자 브리티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너, 왜 그래? 장난치지 마.”
로키는 브리티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곳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왜? 저기에 뭐가 있어?”
그녀도 로키와 같은 곳을 응시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진짜로 그곳에서 적들이 나타난 것이다.
“헉! 저, 적이다!”
로키와 그녀 앞에 나타난 적은 다름 아닌 다크 엘프들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것들이 이곳에!”
브리티나는 서둘러 자신의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것은 롱소드라기보단 거대한 양손검에 가까웠다. 두 집단 사이에 짙은 긴장감이 맴돌았고, 그런 긴장감 속에서 다크 엘프가 로키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우리를 발견했지?”
“냄새로.”
“냄새? 우리한테서 냄새가 난단 말인가?”
냄새로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로키의 말에 다크 엘프들은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크 엘프들은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청결함을 좋아하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비록 전쟁 중이라 평상시처럼 깔끔함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악취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린 인간 꼬맹이가 냄새로 자신들을 발견했다고 하니, 그것은 그들에게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브리티나가 마나를 끌어올리며 말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겁도 없이 여기까지 잠입하다니,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그녀의 말과 동시에 그녀의 검에 미약한 오러가 맺혔다.
하지만 그 오러를 바라본 다크 엘프들은 긴장하기는커녕 그녀를 비웃었다.
“겨우 그 실력으로? 덩치를 보아하니 힘은 좀 쓰겠지만. 소드 익스퍼트 초급 정도의 실력으로 우릴 상대하려 하다니 우습군.”
순간 다크 엘프들의 이도류에서 시퍼런 오러 소드가 뿜어져 나왔다.
한눈에 봐도 중급을 상회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다크 엘프 중에도 최고의 암살 집단으로 꼽히는 다크블레이드의 정예 암살자들로, 작센 공작의 목을 노리고 침투한 특작 부대였다.
그런 그들과 마주치다니, 브리티나는 정말로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운이 없는 게 누구인지 아직까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
그녀의 눈에 절망이 드리웠다.
5명의 적 모두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훨씬 상회하는 그녀의 덩치로도 대적할 수 없어 보였다.
서서히 자신과 로키를 포위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브리티나는 로키를 뒤로 떠밀었다.
“어서 도망쳐.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볼게.”
로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에게 몸을 던지는 브리티나를 바라봤다. 자신을 지키고자 승산 없는 적들을 향해 몸을 던지는 그녀를 말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그들의 대결은 예상대로 끝이 났다.
그녀의 실력으로는 그들의 적수가 되질 못했다.
그녀의 거대한 롱소드가 대기를 갈랐지만 그런 그녀의 검에 맞아 줄 다크 엘프는 없었다.
다크 엘프들은 그런 그녀의 검을 피해 가며 그녀의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고, 한 명은 그녀를 지나쳐 곧장 로키에게 달려들었다.
목격자는 단 한 명도 살려 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브리티나가 로키에게 달려드는 다크 엘프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키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지닌 다크 엘프의 검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크 엘프의 검이 로키에 목에 다다르는 순간, 로키의 신형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헛!”
그것은 보통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반사 신경이었다.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다크 엘프가 사라진 인간 꼬맹이를 찾아 좌우로 고개를 돌렸지만, 로키는 이미 그의 뒤를 점하고 있었다.
로키는 다크 엘프의 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틀어 버렸다.
으드득! 켁!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손속.
로키는 오우거답게 생명을 거두는 일에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로키가 양손을 벌리자 이미 시체가 되어 버린 다크 엘프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윽고 로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리의 벨트를 풀었다.
오우거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변신 상태에서도 보통 인간보다는 훨씬 강한 로키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4명이나 되는 소드 익스퍼트 실력자들을 상대로는 벅찼다.
게다가 브리티나가 그들의 손에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은 없었다.
순간 눈부신 빛이 로키를 감싸더니 로키의 몸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 거대함은 브리티나를 가볍게 압도할 정도였기에, 그를 바라보는 다크 엘프들의 눈이 놀라움에 휘둥그레졌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마침내 변신을 마친 로키가 적들을 향해 고막이 찢어질 정도에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브리티나를 피투성이로 만들던 다크 엘프들이 고통스러운 듯 귀를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청각이 매우 발달한 종족이기 때문이다.
“오, 오우거!”
“설마 그 오우거?”
그리고 자신들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덩치의 오우거를 바라보며 절망했다.
눈앞의 오우거는 그들도 익히 잘 아는 오우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키의 고함 소리에 연합군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승산은 없었다.
“크윽, 젠장! 도망치자!”
다크 엘프들이 공격을 중단하고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하자 전신을 난도질당한 브리티나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크륵! 브리티나!”
쓰러지는 브리티나를 붙잡은 로키가 그녀를 조심히 눕혔다.
“크르, 브리티나, 괜찮아?”
“으윽…….”
이미 과도한 출혈로 브리티나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크르륵! 이 개자식들!”
분노한 로키가 그녀의 롱소드를 집어 들고 도망치는 다크 엘프를 뒤쫓기 시작했다.
“캬오오오오오! 죽여 버리겠어! 크르르륵!”
정신을 잃기 직전, 브리티나는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한 손이 자신을 가볍게 안아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이내 지축을 울리며 바람처럼 다크 엘프들을 향해 내달리는 거대한 오우거를 보고는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지, 진짜로 오우거였어…….”
그날 밤, 분노로 이성을 잃기 직전인 오우거 한 마리가 연합군 진형 안을 누비며 다크 엘프 사냥에 나섰다.
쿠우우웅!
“꿰에에엑!”
다크 엘프 암살자들이 제아무리 민첩해도 오우거인 로키보다 빠를 순 없었다.
블라인드 하이드로 몸을 숨기려 해도 지상 최강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후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로키의 집요한 추적에 다크 엘프 암살자들은 하나둘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다크 엘프까지 찢어발긴 로키가 다시 한번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쿠어어어어어어!”
연합군 진영 안을 뒤흔드는 거대한 괴수의 울부짖음에 긴급히 출동한 연합군 병사들 또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