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23
퓨쳐나이트 123화
* * *
다음날.
눈을 뜬 브리티나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로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 여긴? 내…….”
“응! 너희 집이야.”
“내 막사라고? 내가 어떻게 여길…….”
“내가 어제 이리로 데려왔어.”
“네가 날? 혼자서?”
“응.”
체중이 25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그녀를 혼자 안아서 나를 수 있는 건 연합군 진영 안에서 오직 로키뿐일 것이었다.
브리티나는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상처를 매만졌다.
간밤에 입은 상처들은 거짓말처럼 말끔히 치료되어 있었다.
“어? 어떻게 상처가?”
브리티나는 매우 놀란 듯 다시 로키를 바라봤고, 그런 그녀의 귓가에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또 이런 희한한 걸 주워 와서 날 귀찮게 하는 거야?”
“주워 온 거 아니야! 브리티나는 내 친구란 말이야!”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로키가 씩씩거리며 달려들자 지크욘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그러세요? 참으로 끼리끼리 노십니다.”
브리티나는 로키와 대화를 나누는 여인을 바라봤다.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그녀는 매우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눈에 알아본 브리티나가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정중한 예를 올렸다.
“파이오네스님의 종! 시, 신녀님을 뵙습니다!”
아직도 지크욘을 신녀로 알고 있는 브리티나는 파이오네스교의 신도로서 그녀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었다.
허나 이미 신녀 행세를 때려치운 지 오래인 지크욘은 그런 그녀를 못 본 척하면서 막사를 떠났다.
“알아서들 놀아라. 난 바빠서 이만.”
강찬과 모종의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는 근래 들어 몸이 10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기에 브리티나의 상처만 치료해 주고는 바람처럼 떠나갔다.
그렇게 지크욘이 떠난 후, 브리티나가 급히 로키를 불렀다.
“야! 너, 신녀님이랑 무슨 사이야?”
“친구야.”
“신녀님이랑 친구라고?”
“어.”
“어, 어떻게 신녀님이랑 친구가 될 수 있어?”
신녀랑 친구 사이란 로키의 말에 브리티나가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로키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진 로키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배고프지? 밥 먹을래?”
“어…… 좀 고프네?”
“잠깐만.”
로키가 미리 준비해 둔 애기 목욕탕만 한 거대한 그릇에 가득한 양송이 수프와 옥수수 빵 한 무더기를 가져왔다.
그 양은 보통 사람 10명이 먹어도 될 법한 많은 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많은 양을 먹어야 하는 그녀는 정작 부끄러움보다 편안함이 느껴졌다.
애초에 오우거인 로키는 자신보다 몇 배나 많이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밥 먹었어?”
“어, 난 먹었어.”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그녀가 식사를 시작하자 로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자 로키의 시선을 느낀 브리티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예뻐서.”
“풋! 켁! 켁! 뭐?”
생전 예쁘다는 소리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브리티나는 로키의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헛기침까지 해 댔다.
“예, 예쁘다고? 내, 내가?”
“응.”
“내 모습 어디가 예쁘다고 그래…….”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어 풀이 죽은 그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키는 당당히 말했다.
“먹는 모습이 귀여워.”
“푸우웃! 켁! 켁!”
브리티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변해 버렸다.
눈앞의 로키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난생처음 귀엽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로키의 모습은 흉측한 오우거의 모습이 아닌 사랑스러운 모습의 미소년이었기에 더욱이 그러했다.
“고, 고마워.”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뭐, 뭐가?”
“어젯밤에 날 지켜 줬잖아.”
“고맙긴, 기사로서 당연한 건데, 그리고 정작 날 구해 준 건 너잖아.”
둘은 잠시 말없이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나 있잖아.”
“어?”
“브리티나가 좋아졌어.”
“뭐, 뭐!?”
브리티나가 또 한번 화들짝 놀라며 로키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있어 이성에게 사랑 고백을 받아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가 오우거란 것이 그녀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가, 갑자기 그러면 내가 당황스럽잖아.”
“미안, 하지만 어젯밤 이후로 너밖에 생각이 안 나는걸?”
로키는 자신의 감정을 돌려 말하는 법을 몰랐다.
그런 로키의 말에는 진실한 마음이 가득했고, 오우거의 단순한 성격답게 물러섬이 없었다.
그렇지만 인간인 브리티나로서는 오우거인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인간이고…… 넌 오우거잖아…….”
아무리 거인증에 걸린 채 남자를 모르고 살아온 그녀라 할지라도 인간에 탈을 쓴 오우거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약간 꺼려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둘 사이에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 둘은 마른침만 삼켰다.
잠시 후, 힘없는 말투로 로키가 입을 열었다.
“역시 그렇지? 난 오우거니까…….”
애써 웃으며 말하는 로키를 보자 브리티나는 가슴이 아련해졌다.
아무리 그가 오우거라 해도 슬퍼하는 로키의 눈동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로키의 눈은 지금껏 봐 온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맑고 순수한 감정이 전해졌다.
브리티나는 그런 로키가 싫지 않았다.
그가 오우거란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문을 열었다.
“그럼 나랑 약속해 줘.”
“뭘?”
“평생 나만 사랑하겠다고…….”
브리티나의 말에 시무룩했던 로키의 얼굴이 행복한 미소로 가득 찼다.
“응! 약속할게.”
브리티나가 로키를 향해 양팔을 벌리자 로키가 침대 위로 올라와 브리티나의 품에 안겼다.
“진짜! 진짜! 좋아해! 브리티나!”
“응, 나도…….”
그렇게 꼭 끌어안은 두 사람은 잠시 서로 온기를 나눴다.
늦은 저녁까지 로키와 사랑을 속삭이던 브리티나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로키를 작센 공작의 정부 정도로 여겼던지라, 불현듯 로키와 작센 공작의 관계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저기, 로키랑 작센 공작님은 무슨 관계야?”
“작센 삼촌은 우리 아버지의 의형제야.”
“뭐, 뭐? 의형제? 너희 아버지랑?”
“응.”
“…….”
대륙 최고의 거물인 작센 공작과 의형제라니.
브리티나는 로키의 아버지란 분의 정체가 심히 궁금해졌다.
“너희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인데?”
“나도 얘기만 들었는데, 예전에 두 분이 함께 비스만 제국의 공작이었다고 했어.”
“고, 공작?”
로키의 말에 브리티나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현재 비스만 제국의 공작은 작센 공작 단 한 명뿐이었고, 과거 그와 함께 비스만 제국의 공작이었던 사람은 기사라면 누구나 아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대륙 최고의 기사라 추앙받는 전설적인 검호, 칼리츠 가르만이었다.
‘세상에, 말도 안 돼…….’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눈앞에 로키는 칼리츠 가르만의 양아들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제국의 공작인 그가 뭐가 아쉬워서 오우거인 로키를 양자로 들이겠는가?
오우거가 평범한 애완동물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로키가 결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럼 그분과는 어떻게 만났는데?”
“우리 아빠랑 내 얘기, 듣고 싶어?”
“응, 듣고 싶어.”
강찬 일행 이외에 자신의 과거를 들어 주는 이는 브리티나가 처음이었기에, 로키는 매우 기뻐하며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그녀에게 말해 주기 시작했다.
숲속에 버려진 자신을 자식같이 키워 주신,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말이다.
41. 끝나지 않은 전쟁
어느덧 다시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 다크 엘프들과 녹색 엘프들은 그들의 최후의 방어선을 버리고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간 것이다.
텅텅 비어 버린 케르멜 왕국에 입성한 연합군은 허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기생충 같은 그들을 완전히 박멸시키지 못한 것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기생충 같은 번식력과 생존력을 지닌 그들이 언제 다시 세력을 회복해 대륙을 넘볼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연합군 모두가 끝까지 따라가 끝장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 종족 모두 그들로선 쉽게 넘볼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기에, 추적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은 빛 한 점 찾기 어려운 지하 세상과 혹독한 추위가 1년 12개월 불어 닥치는 아이스랜드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으로 찾아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에 연합군은 당장의 승리에 만족하며 각자의 왕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만 했다.
떠나는 그들은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다시는 그들이 대륙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성해지겠다고 말이다.
각기 왕국에서 파견된 군대들이 하나둘 자신들의 왕국으로 떠나기 시작하자 연합군의 중추를 맡았던 비스만 제국도 회군하기 시작했다.
그런 길고 긴 행렬 속에는 로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약속대로 작센 공작을 따라 비스만 제국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강찬은 로키와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로키, 잘 지내야 한다.”
“…….”
로키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머뭇거렸다.
“뭘 망설여? 예쁜 여자 친구도 생겼잖아. 꼭 행복해라.”
강찬의 말에 로키와 브리티나가 얼굴을 붉혔다.
브리티나 역시 로키와 함께 비스만 제국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그에 관한 모든 조치는 작센 공작이 알아서 해결해 주었다. 그녀의 귀화는 그로서도 매우 반가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왕국이 자랑하는 전략적 무기가 공짜로 넘어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실버라인 공화국으로서는 엄청난 투자를 한 그녀를 비스만 제국에 고스란히 바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감히 세계 최강국 앞이기에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나라는 힘이 있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밝은 웃음으로 로키를 떠나보낸 강찬의 표정은 로키가 저 멀리 사라지자 다시금 어두워졌다.
“가자, 지크욘.”
“그래.”
“아, 잠깐만. 막사에 좀 들르자.”
“무슨 일인데?”
“잠깐이면 돼.”
강찬은 지크욘과 함께 서둘러 막사로 향했다.
그에게는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할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은 바로 녹색 엘프 플라티나의 신변 문제였다. 이미 전쟁은 종결되었고, 모든 녹색 엘프들이 그들의 저주받은 대륙으로 떠났기에 그녀 또한 동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녹색의 피부를 지닌 그녀가 설 자리는 이 대륙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강찬이 자신의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선 플라티나와 엘리카가 마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오, 오셨어요?”
비록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요즘 같이 매일 집을 비우는 강찬을 대신해 그녀를 보살펴 준 것은 뜻밖에도 엘리카였다.
그녀가 그토록 저주하던 녹색 엘프인 플라티나를 보살펴 준 이유는 오직 엘리카만이 알겠지만, 그녀 또한 플라티나를 통해 과거 제이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잘못을 속죄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강찬 님, 오래간만이네요.”
엘리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인사에 답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예, 전 먹었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마저 드세요.”
강찬은 자신의 침대에 기댄 채 둘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식사를 끝마친 엘리카가 빈 그릇을 챙겨 밖으로 나가자 강찬이 플라티나에게 말했다.
“너희 동족들은 모두 아이스랜드로 돌아갔다.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