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24
퓨쳐나이트 124화
“…….”
동족들이 대륙을 떠났다는 말에 플라티나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아무리 그녀가 강찬의 보호 아래 이곳에서 편히 지내고 있다곤 하지만, 동족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말이 그녀에게는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더불어 그 말은 즉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그럼 전쟁은 끝났겠군요.”
플라티나의 말에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건가요?”
“동족의 곁으로 보내 주겠다.”
“네?”
자신을 동족의 품으로 보내 주겠다는 강찬의 말에 플라티나는 순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그것은 꿈에도 그리던 일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녀의 얼굴에 슬픔이 교차했다. 그토록 원하던 동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눈앞의 사내가 자신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자리 잡아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떠날 준비를 하고 따라와라.”
“지금요?”
강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녀는 불안해하면서도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짐을 챙겨 강찬을 따라나섰다.
그런 강찬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엘리카는 직감적으로 강찬이 플라티나를 아이스랜드로 데려다주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그제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플라티나를 제이나 대용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찬이 플라티나를 데려간 곳은 텅텅 비어 버린 케르멜 왕국의 항구였다.
한때 수많은 병사가 머물다 간 자리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마치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무거운 적막감만이 흘렀다.
그곳엔 강찬이 사람을 시켜 몰래 준비해 둔 작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배 안에는 혹독한 추위에 견딜 수 있는 두터운 방한복과 약간의 식량이 구비되어 있었다.
“배를 몰 줄은 아는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그녀를 보며 강찬은 더욱 차갑게 말했다.
“가라, 그리고 다신 이곳으로 오지 마라.”
“…….”
강찬의 차가운 말에도 플라티나의 다리는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뭘 망설이는 거지? 탈출할 기회는 지금뿐이다.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
“…….”
둘은 말없이 서로 마주 봤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무거운 침묵을 깬 강찬은 애써 뒤돌아서며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잘 가라.”
강찬이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나려던 순간, 플라티나가 강찬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냉정하게 돌아서리라 굳게 다짐했던 강찬의 마음 또한 세차게 흔들렸다.
‘안 돼, 그녀는 제이나가 아니야…….’
속으로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의 마음은 결코 다잡을 수 없었다. 이렇게 그녀를 보내면 앞으로 그리운 제이나의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강찬이 흔들리고 있을 때, 그의 등 뒤로 플라티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절 보내지 마세요. 제발…….”
“…….”
그녀의 갑작스런 태도에 강찬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항상 동족들에게 돌아가길 갈망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보내지 말라니? 강찬으로서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동족들에게 돌아가는 게 두렵나?”
“아니요, 당연히 기뻐요. 하지만 제가 왜 이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당신을 앞으로 못 볼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나 아파서…….”
플라티나의 말에 깜짝 놀란 강찬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이 지금 자신의 마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찬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는 울고 있었다.
제이나와 닮은 크고 귀여운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강찬이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러는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당신을 좋아하게 됐다는 거예요.”
“…….”
강찬은 플라티나의 말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제이나와 똑같은 얼굴로 자신을 좋아한다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제이나가 아니었기에, 강찬은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사이다. 그러니 더 이상 생떼 쓰지 말고 동족들에게 돌아가라.”
강찬의 차가운 대답에 플라티나는 더욱 슬피 울며 강찬의 가슴을 붙잡고 애절하게 말했다.
“차라리…… 차라리 그때 죽도록 내버려 두지 그랬어요? 이렇게 헤어질 거라면 왜 절 구하셨어요?”
강찬은 자신의 품에서 울부짖는 그녀를 있는 힘껏 안아 버리고 싶었지만, 그의 마지막 이성이 그것을 저지했다. 이대로 그녀를 안아 버리면 영원히 그녀를 떠나보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갈등을 눈치챘는지 플라티나가 과감히 그의 목에 매달려 강찬과 강제로 입을 맞췄다.
“흡!”
너무나도 놀란 강찬이 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그의 목을 있는 힘껏 안은 플라티나는 오히려 그의 몸과 더욱 바짝 밀착되었다.
“…….”
강찬의 키가 그녀보다 머리 둘 정도는 컸기에 플라티나는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었지만, 이내 강찬은 천천히 그런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녀와의 입맞춤에 빠져들었다.
강찬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의 의미를 아는 플라티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신이라도 좋아요. 당신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엘리카는 강찬과 떠났던 플라티나가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둘의 사이가 전과 달리 매우 가까워진 것 같아 보였다.
그녀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엘리카 말고도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가 또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지크욘이었다.
“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걔 돌려보내기로 했잖아.”
“그렇게 됐다.”
“뭐가 그렇게 됐다는 거야? 너, 설마?”
“…….”
난처해하는 강찬 옆에 있던 플라티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뭐라고? 네 이년! 이곳이 어떤 곳인 줄 알면서도 이곳에 남으려고 한단 말이냐? 당장 네 동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맞는 말이었다. 그녀가 제아무리 강찬을 사랑한다 해도 녹색 엘프가 이 대륙에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종족들이 녹색 엘프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마당에 이곳에 남으려 하다니, 그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것은 지크욘이 봤을 때 한없이 미련하고 철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남녀 사이가 어찌 생각처럼 되던가?
“지크욘, 미안하다.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어.”
“꼴값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크욘 역시 강찬이 제이나를 잃고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플라티나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 또한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곁에 두려고 할 줄은 몰랐기에, 엘리카와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 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래.”
“그럼 쟤를 누구한테 맡겨 둘 건데? 설마 데리고 다닐 건 아니겠지?”
“…….”
강찬이 아는 그 어떤 연고지에도 녹색 엘프인 그녀를 맡아 줄 곳은 없었다. 하필 그가 가야 할 곳조차도 녹색 엘프라 하면 학을 떼는 드워프의 왕국.
다혈질 크랙시온을 생각하면 절대로 그녀를 데려갈 수 없었다.
잠시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지크욘이 답답하다는 듯 침묵을 깨며 말했다.
“대사를 앞에 두고 여자 하나 때문에 흔들리는 꼴이라니, 너도 참 지지리도 못난 놈이다.”
“…….”
강찬은 지크욘의 말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플라티나의 손을 꽉 잡았다. 지금 그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강찬을 바라보는 지크욘은 ‘내가 졌다.’라고 생각하며 플라티나를 보고 말했다.
“너, 내가 지금은 바빠서 그냥 넘어가는데, 나중에 단단히 혼날 줄 알아라. 알았어?”
에이션트 드래곤이 혼내 준다는 말에 다리가 절로 떨려 오는 두려움을 느낀 그녀였지만 자신 옆의 강찬을 믿고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네 피부를 감출 마법 아티팩트를 주마.”
지크욘은 로키에게 벨트를 줬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레어에서 반지 하나를 공간 이동시켜 마법을 새기고서 플라티나에게 내밀었다.
“자, 이 반지를 끼고 마력을 불어넣어라.”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받아 든 플라티나가 반지를 끼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녀 또한 로키처럼 눈부신 섬광에 둘러싸이더니 이내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엘프의 모습으로 변했다.
단지 피부색만 하얗게 변했을 뿐인데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엘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강찬은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
그녀의 모습이 이제는 완벽한 제이나의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엘리카마저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제이나와 닮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플라티나는 제이나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
쌍둥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닮을 수는 없었다.
“어, 어떻게, 지크욘, 이게 무슨…….”
너무 놀랐는지 강찬이 평소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을 정도였고, 그 모습에 지크욘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위대한 드래곤에게 불가능이란 없지.”
강찬은 한동안 멍하니 플라티나를 바라봤다.
살아생전 다시는 볼 수 없을 제이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니, 그것은 그에게 생각만으로도 눈물 날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플라티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플라티나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슬프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 이후 엘프의 모습이 된 플라티나는 강찬과 함께 드워프의 왕국인 마인킹덤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강찬은 엘프의 여왕 아르테온과 드워프의 왕 크랙시온, 그리고 드래곤의 로드인 지크욘과 함께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앞으로 이 별을 침공할 적들에게 대항할 방법과 무기를 고안하고자 말이다.
42. 외계의 방문자
전쟁에서 패한 녹색 엘프들이 저주받은 땅으로 되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그들의 도시는 아직도 절망과 슬픔만이 가득했다.
3년이란 세월 동안 200만에 달하는 녹색 엘프들이 투입된 전쟁이었지만, 생환한 병사의 숫자는 고작해야 30만.
170만에 달하는 녹색 엘프들이 적진에 뼈를 묻었다.
그들 모두가 살아남은 이들에겐 가족이고, 친구였으며, 연인이었다.
전사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그린은 도시 한가운데 거대한 위령비를 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넋을 기리며 위령제를 지냈다.
도시에 사는 거의 모든 녹색 엘프들이 참여한 가운데 위령제가 진행됐다.
엄숙하고도 무거운 분위기 속에 그린의 연설이 시작되자 녹색 엘프들이 숨죽이며 그린의 연설을 경청했다.
“나의 아들딸들아, 잘 들어라! 그리고 기억해라! 이것이 끝이 아님을…… 죽어간 우리 아들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반드시 저 사악한 무리에게 복수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그린의 연설이 끝나자 그녀를 신처럼 모시는 녹색 엘프들이 광신도처럼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