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31
퓨쳐나이트 131화
강찬의 말에 작센은 더욱 암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주력 부대가 괴멸했는데 기사단만 빼돌린다고 뭐가 되겠습니까? 그들이 대륙을 집어삼키는 건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 그냥 이곳에 남아 끝까지 싸우는 게…….』
마치 자포자기라도 한 듯한 작센 공작의 말에 강찬이 그를 다그쳤다.
『아닙니다!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저들과 싸울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기사를 살려서 엘프의 숲 쪽으로 피하세요.』
『그, 그렇다면 제국은 어쩌란 말입니까? 저보고 조국을 배신하란 말입니까?』
『이건 배신이 아닙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신이 기사단을 이끌고 비스만 제국으로 되돌아간다면 적들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기사단을 모두 제거하려고 반드시 그곳을 먼저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격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작센 공작은 침중한 어조로 강찬의 의견에 순순히 따랐다.
『알겠습니다. 강찬 님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엘프의 숲에서 뵙죠. 전 뒤를 맡겠습니다.』
강찬이 다시 레비테이션으로 쏜살같이 하늘로 날아올라 전투기들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날렸다.
그런 강찬을 올려다보는 작센 공작은 마나를 담아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원 급속 후퇴!』
급속 후퇴라는 말에 보병들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급속 후퇴는 기간테스와 기마병에게만 해당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병을 배제하고 최대 속도로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즈베즈다 대원들은 매우 들떠 있었다.
자신들이 사냥한 드래곤의 사체를 보며 말이다.
그동안 손쉬운 먹잇감만을 사냥하던 그들에게 드래곤의 존재란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드래곤은 목숨 걸고 사냥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을 만큼 멋지게 생겼다.
『아쉽군. 다른 놈들은 놓쳐서…….』
『뭐 어때? 도망친다고 그것들이 다른 별로 가겠어? 이 별을 정복하면 다 같이 용 사냥이나 다니자고.』
『그거 좋지, 킥킥킥.』
그들이 그렇게 웃고 떠드는 동안 홍학매가 드래곤의 머리를 고주파 블레이드로 잘랐다. 그러자 레베데프가 학을 떼며 외쳤다.
『야! 무슨 짓이야? 머리는 내 거야!』
『무슨 소리야? 먼저 잡은 게 임자지.』
『헛소리하지 마! 내가 아까부터 찜해 놨단 말이야!』
홍학매는 악을 쓰는 레베데프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드래곤의 머리를 감상했다.
『정말 멋들어지게 생겼는걸?』
목이 잘린 드래곤의 이름은 K.켈리온.
연합군들이 모두 후퇴한 직후 지크욘의 후퇴 명령을 받고 공간 이동을 시도했지만 공간 이동이 채 되기도 전에 가립자포에 가슴이 꿰뚫려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블랙 드래곤이었다.
그의 사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값어치의 재료 덩어리였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지구의 인간들에겐 그저 아프리카 초원에서 잡은 이름 모를 맹수 정도일 뿐이었다.
멀리서 그들의 만행을 지켜보는 지크욘의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지크욘…….”
오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드래곤은 모두 3마리.
16마리에 불과한 드래곤 일족으로서는 뼈아픈 희생이 아닐 수 없었다.
강찬은 지크욘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주는 것밖에는 말이다.
* * *
녹색 엘프들에게 인간, 오크 연합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갔고, 대륙의 사는 모든 종족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이제 누가 그들을 막는단 말인가?
대륙의 모든 종족들이 그토록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지구에서 온 침략자들과 손잡은 녹색 엘프들은 더욱 거침없이 내륙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지구인의 전수해 준 기술로 만든 무기들을 앞세워서 말이다.
그런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연일 연패하며 내륙 안쪽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렇게 연일 연승 행진을 계속하던 녹색 엘프들은 이제 대륙의 노른자위에 있는 비스만 제국의 수도 벨라렌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작센 공작이 이끌던 근위 기사단이 아르잔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 이후 종적을 감춰 버렸기 때문이다.
벨라렌에 거주하던 수백만 명의 피난민 행렬이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졌다.
도대체 어디로 도망쳐야 안전할지 그들도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무조건 남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길고 긴 피난 행렬을 바라보는 비스만 제국의 황제 헬라이너 딘 프롬펠 3세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이었다.
“아버님, 서두르세요.”
“에델린…….”
이미 다른 왕국으로 망명할 모든 준비를 마친 뒤였지만 황제의 다리는 쉽게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대륙에서 그들을 저지할 방법이 없는데 다른 왕국으로 도망친들 어찌 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단 말인가?
그 생각에 황제는 천천히 자신이 내정을 보던 자리에 앉아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일국의 황제가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도망치란 말이냐?”
“그렇지만 아바마마…… 적들은 이미 제국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황성까지 들이닥치는 건 이제 시간문제이옵니다. 아바마마! 일단 소르펜 왕국으로 피신하시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에델린의 말에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훗, 후일을 도모한다고? 드래곤들조차 그들을 막지 못했다는데, 한낱 인간인 내가 어떻게 그들을 막는단 말이냐?”
“하지만…….”
“에델린.”
“예, 아바마마.”
“네가 시집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구나.”
“아바마마!”
에델린은 황제의 말뜻을 눈치챘기에 깜짝 놀라 외쳤다.
“나는 대비스만 제국의 황제 헬라이너 딘 프롬펠 3세로서 죽는 그 순간까지 황제로 남을 것이니라.”
“아바마마! 아니되옵니다, 아바마마!”
에델린의 절규에 곁에 있던 신하들도 무릎을 꿇어 황제의 결정을 반대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그들이 황제를 설득하는 와중에 폭발음과 함께 황궁 내전의 천장이 내려앉았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내전 안이 먼지로 가득 찼고, 그 먼지 사이로 강습정과 자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웬 놈들이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몇 남지 않은 황실 근위대가 오러 소드를 뿜어내며 적에게 대항하려 했다. 하지만 강습정에서 튀어나온 드로이드들이 레일 건을 난사해 그들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꺄아아악!”
내전 안에 있던 모든 신하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두려움에 떨며 목숨을 구걸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내전 안에 울려 퍼질 때, 강습정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남녀가 걸어 나왔다.
“휴우~ 이곳이 이 별에서 가장 강대국이라는 곳의 황궁인가? 역시나 으리으리하군.”
즈베즈다의 리더가 내전 안에 발을 들이자 그 뒤로 그린과 네미츠도 내전 안에 발을 디뎠다.
그런 그들은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그들이 1년 전에 소망하던 꿈이 이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너희는…….”
비스만 제국의 황제는 녹색 엘프인 그린과 다크 엘프인 네미츠를 알아보고는 분노 어린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제야 만나는군. 그대가 비스만 제국의 황제인가?”
“…….”
“듣던 것보다 훨씬 미남인데?”
그린의 조롱에 황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네놈들이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패망한 제국의 황제 주제에 아직 자존심을 못 버리다니, 그러다간 오래 못 살지…….”
그린의 채찍이 순간적으로 황제를 향해 날아가자 황제의 목이 허공에 날아올랐다.
“꺄아아아아아악! 아바마마! 아바마마!”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황제를 바라보는 에델린의 절규가 드넓은 내전 안에 울려 퍼졌지만 그 누구도 그녀와 황제를 위해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이것으로 이곳도 이제 우리의 영토입니다.”
그린의 말에 벤질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의 시신을 부여잡고 우는 에델린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슬픔에 잠긴 에델린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호신용으로 챙긴 단도를 꺼내 벤질러를 위협했다.
“다, 다가오지 마!”
벤질러는 잠시 멈춰 서서 에델린을 묵묵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맘에 드는군. 이 아이는 내가 갖겠다.”
강찬과 헤어지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에델린의 모습은 과거 18살의 어린 에델린이 아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 있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아름다워진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그런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는 벤질러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흥! 누구 맘대로? 다가오면 자결하겠어!”
에델린이 작은 단도를 자신의 목에 갖다 대자 벤질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에델린의 단도가 쥐어진 손을 잡아채 하늘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작고 여린 에델린의 몸이 그의 거친 손길에 이끌려 하늘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고, 붙잡힌 에델은 고통에 신음했다.
“아악! 아, 아파!”
순식간에 제압당해 버린 에델린이 그의 거친 손길에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그린과 네미츠는 놀란 눈으로 벤질러를 바라봤다.
아무런 마나를 느낄 수 없는 그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몸놀림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강찬과 같이 육체 개조를 통한 과학의 산물임을 그들이 알 턱이 없었다.
벤질러는 에델린의 손에서 단도를 빼앗아 던져 버렸다.
그러자 단도가 단단한 대리석을 꿰뚫고 자취를 감춰 버렸다.
무시무시한 괴력이었다.
마치 전리품인 양 에델린을 옆에 끼고 강습정으로 들어가던 벤질러가 싸늘하게 말했다.
“나머지는 다 죽여라.”
“예, 말 안 하셔도 그렇게 할 겁니다.”
에델린을 살려주는 것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지, 그린의 말투에는 약간의 가시가 있었지만, 상대가 벤질러인 만큼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그런 그린은 황제를 죽인 채찍을 다시금 다잡으며 입술을 핥았다.
그것은 그녀의 살인하기 전에 보이는 습관이었다.
비스만 제국이 녹색 엘프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드워프의 왕국까지 전해지자 강찬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것은 더 이상 그들에게 대항할 나라가 없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아르칸도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지닌 비스만 제국조차 단 하룻밤에 멸망했는데, 다른 남은 왕국이라고 별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그들이 아르칸도르 대륙을 지배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강찬은 아르테온을 통해 남은 왕국들에게 마법 통신을 날렸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고 말이다.
강찬은 그들에게 차라리 깊은 산속에 숨어 함께 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아르테온의 통신을 받은 그들도 역시나 강찬과 같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것이 항복 따위가 아님을 그들 모두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녹색 엘프의 점령지에서는 연일 피의 숙청이 벌어지고 있었다.
귀족들은 무조건 교수형이었고, 돈 많은 상인 역시 교수대에 올랐다.
인민의 고혈을 빤 부르주아라 불리며 말이다.
그런 그들을 교수대에 올리는 것은 녹색 엘프도 즈베즈다도 아닌 일반 평민들과 노예들이었다.
즈베즈다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양도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점령지를 안정시키기 위한 사탕발림이었고, 공산주의의 포석이었다.
한 달 뒤.
순조롭게 전 아르칸도르 대륙을 정벌하고 돌아온 그린과 네미츠가 승전보를 울리며 벨라렌의 황성에 입성했다.
찬란한 은빛 갑옷을 입은 그린은 마치 성기사와도 같았다.
말을 타고 그녀의 옆에서 나란히 걷는 네미츠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눌러 쓴 로브 때문에 마법사 혹은 신관과도 같아 보였다.
그러한 그들을 열렬이 환영하는 인간들.
입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세상이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들에게 최대한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아이들이 새벽부터 고생하며 따 온 꽃잎들을 그들의 머리 위로 아낌없이 뿌렸다.
거대한 황궁의 문이 열리고, 황궁에 입성한 그린과 네미츠는 황제의 자리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맞이하는 벤질러에게 승전보를 전했다.
“벤질러 님, 말씀하신 대로 동부 왕국에 대한 모든 점령을 완료했습니다.”
“남부 왕국들도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이 대륙은 당신들의 것입니다.”
그린과 네미츠의 승전 보고에도 벤질러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다들 대단히 수고 많았다. 그대들을 위한 환영 만찬회를 준비해 놨으니 안으로 들지.”
벤질러가 부하들과 함께 연회장으로 향하자 그들을 따라나서는 그린과 네미츠도 그들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그런 그들은 서로 은밀히 눈빛을 교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