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40
퓨쳐나이트 140화
지크욘의 호통에 벤질러가 스크린에 비치는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봤다.
『누구지? 이곳에서 사귄 애인인가?』
애인이란 말에 지크욘이 발끈하며 외쳤다.
“그래, 애인이다! 어쩔래? 나처럼 예쁜 애인이 있으니까 부럽냐?”
『얼굴은 그런대로 봐줄 만한데, 거 성격하고는…… 자네, 웬만하면 여자 좀 가려 가면서 만나지 그러나?』
“내가 누굴 만나든 너랑 뭔 상관이냐?”
『네가 원한다면 저 여자보다 조신하고 훨씬 품격 있는 여자를 소개해 줄 수도 있는데, 어떤가? 물론 아름다운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러는 너는 그토록 조신하고 품격 있는 여자랑 만나고 있나 보지?”
『그럼, 저 여인과는 비교도 안 되게 조신하고 고귀한 여인이지.』
“흥! 얼마나 고귀한지 그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은걸?”
『이 별 출신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텐데? 그녀는 비스만 제국의 황녀였거든. 비스만 제국을 정벌하고 내 여자로 만들었지.』
비스만 제국의 황녀란 말에 강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름 하나가 튀어나왔다.
“서, 설마 에델린?”
『역시 아는군. 그래, 그녀 정도는 되어야 품격 있고 고귀하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에델린이 벤질러의 여자가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강찬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벤질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천방지축에 안하무인인 에델린과 비교당한 당사자인 지크욘이 발끈하며 벤질러에게 따지고 들었다.
“이런 썅!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서 그딴 개망나니 같은 년이랑 나랑 비교해? 너 진짜 죽어 볼래?”
지크욘이 벤질러를 씹어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고, 벤질러는 지크욘을 무시하며 강찬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봐, 강찬.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이 난 사이이긴 하지만 말이야. 태양계가 멸망한 마당에 몇 남지 않은 형제인 우리가 이렇게 싸워야 할 이유가 있겠나?』
벤질러의 말에 강찬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태양계가 멸망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강찬의 반문에 벤질러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모르고 있었나?』
“태양계가 멸망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태양계에 살고 있던 모든 지구인은 전멸했다. 8년 전에 벌어진 2차 대우주 전쟁 때 말이야.』
“서, 설마 그럼! 그것을?”
태양계 곳곳에 퍼져 살던 인류가 한꺼번에 전멸했다는 것은 오로지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 서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무기를 사용해 버린 거지…….』
“말도 안 돼! 그들이 반중력 폭탄을 사용했단 말인가?”
『그렇다, 반중력 폭탄이 만들어 낸 블랙홀 속으로 모든 게 사라져 버렸지. 태양계도, 인류도 말이다.』
강찬은 순간 또다시 말을 잃었다.
‘아무리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이 났다 해도 태양계조차 집어삼킬 위력을 지닌 반중력 폭탄을 사용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이었다니…….’
정말로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인류가 전멸했단 얘기는 그로서도 가슴 아픈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는 지구에서 올 후발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제 눈앞의 놈들만 제거하면 이 별을 위협하는 존재는 모두 사라지는 것이었다.
강찬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러한 강찬의 속마음을 모르는 벤질러는 강찬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애썼다.
왜냐면 강찬이 타고 있는 레드 마스호가 탐났기 때문이다.
태양계가 멸망해 버린 지금.
우주를 넘나들 수 있는 우주선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것은 진실이다. 너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의 형제여, 이제 우리끼리 어리석은 싸움은 멈추고 서로 힘을 합쳐 이곳에 지구를 재건함이 어떤가?』
벤질러의 말을 함께 듣고 있는 지크욘과 아르테온이 순간 긴장했다.
태양계란 곳의 지구인들이 모두 멸망했다는 소리에 강찬이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들의 편에 섰다 해도 동족들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뻐할 이가 있을까?
그러나 그들의 기우도 잠시.
강찬은 역시나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강찬은 자신을 철저히 이용만 한 동족들보단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을 더욱 소중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강찬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고울 리 없었다.
“멸망해 버린 지구 따윈 재건해서 뭐 할 건데? 그따위 썩어 빠진 세상 따윈 차라리 이 우주에 없는 게 이득이라고 보는데?”
『인류가 아무리 썩었다 해도 우리는 같은 지구인으로서 이곳에 새로운 지구를 재건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힘을 합쳐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나? 안 그런가, 강찬 대위?』
“흥! 웃기시는군. 너희가 이 별에 한 짓은 과거 지구에서의 짓거리와 뭐가 다르지? 이 별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말도 안 되는 건축물을 짓고, 거대한 공장을 돌려 자연을 훼손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단지 발전을 위한 과도기일 뿐일세. 자네도 알잖나? 이곳의 문명이 너무 미계하다는 걸.』
“너는 왜 그렇게 지구의 재건에 목매는 거냐? 이곳의 지배자라도 되고 싶은 거냐?”
『지배자가 아니라 인도자라고 해야지. 이 미개한 이들을 신세계로 인도하는 인도자.』
“누가 그따위 신세계를 원하는데? 웃기시는군.”
『내 말이 어디가 웃기다는 거지?』
“남의 의지와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는 네 이기주의가 우습다.”
『왜 이걸 이기주의라고 생각하는 거지? 난 지구의 과학으로 이들의 미개한 삶에 혁신을 주고자 하는 것뿐인데. 과학이 주는 풍요로움은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풍요? 지구인의 관점에선 그런 걸 풍요라고 하겠지. 하지만 이들의 관점에선 그건 풍요가 아니라 재앙이다!”
『혁명에는 언제나 희생이 따르지.』
두 전함의 함교에 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싸늘하게 식은 표정의 벤질러가 최후의 통첩을 알려 왔다.
『같은 지구인으로서 마지막으로 묻겠다. 우리와 함께 지구를 재건할 것인가? 아니면 저들 편에 서서 우리의 대업을 가로막겠는가?』
“대답은 이미 하지 않았나? 거절한다!”
『어리석은 놈, 죽음을 자초하다니.』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 벤질러.”
『종족을 배신한 네놈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죽음뿐이다.』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은 벤질러가 레드 마스호를 향해 함포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전원 전투 배치! 응전하라!”
수백 줄기의 빛줄기가 레드 마스호를 강타하자 레드 마스호도 즈베즈다호를 향해 모든 화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자 하늘에 천둥이 치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전함 간에 레일 건과 가립자포가 오가는 와중에 지상에서도 치열한 교전이 시작되었다.
* * *
대륙 연합군과 녹색 엘프의 대격돌.
누가 보아도 수적으로는 대륙 연합군의 열세였다.
그러나 이지스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선봉에 서자 포위해 오던 녹색 엘프군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라이플로 무장한 그들의 총알이 실드로 보호받는 기사들의 갑옷을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운명은 불 보듯 뻔했다.
수백 명의 기사가 오러 소드를 높이 들고 대기를 가를 때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녹색 엘프들이 차가운 주검이 되어 대지 위로 흩뿌려졌다.
“크아아악!”
“아아아악! 살려 줘!”
한을 품은 기사들의 검에선 일말의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무정한 검은 마치 나무를 베듯 녹색 엘프들을 베고 또 베었다.
기사들에 의해 무너진 적 진형을 향해 중갑보병과 머스킷 소총으로 무장한 연합군 병사들이 밀고 들어갔다.
이지스 갑옷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기사만이 착용할 수 있었기에 일반 병사들은 기존의 중갑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은 머스킷 소총수의 보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수십만 발의 총성이 끊이질 않고 양쪽 진형에서 울려 퍼졌고 수많은 병사가 총탄에 쓰러져 나갔다.
그러나 죽어 나가는 병사는 대부분 녹색 엘프들이었다.
즈베즈다가 전수해 준 라이플의 위력보다 대륙 연합군이 가진 머스킷 소총의 위력이 사거리나 장전 속도 면에서 월등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륙 연합군이 수적인 열세임에도 훨씬 더 먼 거리에서 다수의 녹색 엘프 병사를 사살할 수 있었다.
같은 지구의 기술로 만든 병기임에도 이토록 엄청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들이 사용하는 라이플이 화약에만 의지하는 구식 화기였기 때문이다.
그 라이플의 위력은 일반 소총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대륙 연합군이 사용하는 머스킷 소총은 드워프제 화약에 아르테온이 고안한 마법의 힘까지 더해져 있었기에 그 위력이 일반 라이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한 머스킷 소총의 위력은 거의 레일 건 수준이었다.
또한 연합군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인 화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일제 사격!”
“발사!”
쾅! 쾅! 콰쾅! 콰쾅!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특제 마갑탄이 적진에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러자 수백에 달하는 적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재장전을 서둘러라!”
숙련된 포반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 어찌 연합군이 저런 화력을…….”
녹색 엘프군은 생각지도 못한 연합군의 엄청난 화력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연합군만 생각하며 맞붙었다가 크나큰 희생을 치른 것이다.
그런 적의 당황하는 기류를 읽은 작센.
그는 더 강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적들이 무너지고 있다!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라! 기간테스 투입!”
작센 공작의 외침이 마법으로 증폭되어 전장에 울려 퍼지자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고, 전함의 공격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던 전 근위대원들이 전장 위로 기간테스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기존의 기간테스의 골격을 그대로 가지고 새롭게 태어난 기간테스들을 말이다.
새로운 기간테스에는 드워프들이 레드 레빗을 수리하며 얻은 선진 기술의 정수가 녹아들어 있었다.
수많은 공간이 문이 열리고 대륙 연합군의 기간테스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녹색 엘프 진형에서도 수많은 기간테스들이 공간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그동안 대륙에서 노획한 기간테스들로 구성된 새로운 아크섀도들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만큼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었다.
족히 800대는 될 법한 숫자의 기간테스들이었다.
그에 반해 대륙 연합군의 기간테스는 250대에 불과했다.
누가 봐도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두 집단이 맞붙는 순간.
기간테스 간의 전투는 숫자 놀이가 아님이 여실히 드러났다.
애초에 3년간 급조된 다크 엘프 오너들의 실력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여기까지 버텨 온 연합군 기사들의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거기다 연합군 기사들이 타고 있는 기간테스의 성능 역시 녹색 엘프들의 기간테스를 훨씬 상회했다.
그들의 기간테스에는 4, 5써클급의 엘프 마법사들이 함께 탑승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기간테스의 마광로에 저장된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기간테스는 단순한 골렘이 아닌 진정한 마도 병기로서 그 위력을 여실히 발휘했다.
기간테스가 마법을 사용하자 다크 엘프들이 비명을 질렀다.
『기간테스가 마법을 쓰다니…… 이건 말도 안 돼! 저것들이 전부 다 고대의 거인이란 말인가?』
포위된 연합군 기간테스의 뒤를 덮친 다크 엘프가 침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오러 소드에 관통당했어야 할 적 기간테스가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다.
마법을 사용하는 기간테스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기간테스들이 저마다 하나씩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장거리에서 파이어 볼이나 라이트닝을 날리는 기간테스도 있었고, 어스 바인딩 마법으로 다크 엘프 기간테스의 발목을 잡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공간 이동을 사용하는 기간테스까지 보일 정도였다.
『이, 이것들은 대체 어떻게…….』
아크섀도들조차 보병들과 마찬가지로 대혼란에 빠졌다.
눈앞에 적들을 보노라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뭐, 이건 하나같이 전부 고대의 거인이로군. 아그니, 이제 네가 대접받는 시대도 갔는걸.”
『이제 나도 퇴물이 된 건가?』
“하하하,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널 절대로 버리지 않을 테니.”
『정말 눈물 나게 고맙군 그래. 언제는 계약해 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리더니.』
“내가 언제 매달렸다고 그래!”
『내 기억 속에 저장된 그 모습을 꼭 보여 줘야 하겠나?』
“…….”
아그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작센 공작이 50년 전 처음으로 아그니를 만났을 때, 그는 아그니와 계약하고자 갖은 고생을 다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거인은 하나같이 천하의 가인처럼 콧대 높기로 유명했기에, 그와 계약을 맺으려면 우선 호감을 얻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