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45
퓨쳐나이트 145화
그가 조종석 양쪽 모서리의 버튼을 누르자 의자 안에서 둥근 링 모양의 손잡이 두 개가 튀어나왔다.
강찬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잡아당겼다.
‘잘 가라, 레드 레빗. 그동안 고마웠다.’
퓨윳! 취이이이이이익!
엄청난 압력과 함께 강찬이 앉아 있던 조종석이 자이드의 머리로 들어가 1초 만에 우주 공간으로 사출되었고, 강찬을 태운 탈출정은 소형 이온 엔진의 힘으로 힘차게 네오 어스를 향해 날아갔다.
탈출정에 몸을 싣고 네오 어스로 귀환하는 강찬은 매우 들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살아남았다는 기쁨과 적을 물리친 희열, 그리고 안도감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 강찬은 속으로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렸다.
‘지크욘 녀석, 무사해야 할 텐데…….’
그가 속으로 지크욘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이, 홀로 우주에 남은 지크욘의 영혼은 강찬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아무런 미련 없이 그녀가 가야 할 곳을 향해 떠나갔다.
지상에서의 전투는 순식간에 종결되었다.
지상 최강의 존재들인 드래곤들이 힘을 모으니 제아무리 대륙을 제패한 녹색 엘프라 해도 순식간에 전멸해 버린 것이다.
그들의 주 병력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도시에 남은 녹색 엘프들은 서둘러 피난길에 올라야만 했다.
더 이상 이 대륙은 그들의 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을 드래곤들과 다른 종족들이 곱게 보내 줄 리 만무했다.
그들은 호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륙은 연일 패주하는 녹색 엘프들의 피로 물들었고, 산처럼 쌓인 그들의 시체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아르칸도르 대륙의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그런 그들을 불태우는 모습에 슬퍼하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그린이었다.
드래곤의 분노를 산 그녀가 살아 있을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살아 있었다.
비스만 제국의 석탑에 구금당한 그녀는 자신의 자손들이 처형당한 후 불구덩이로 내던져지는 모습을 초점 잃은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울어 눈물조차 말라 버린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아르테온이 앉아 있었다.
그녀 또한 말없이 그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가득한 방.
그 침묵을 깨고 그린이 입을 열었다.
“왜 절 살려 주신 거죠?”
그린은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드래곤들의 손에 죽기 직전,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아르테온을 말이다.
그런 아르테온 덕에 그린은 아직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아르테온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순 없었다.
시간은 잠시 유예되었을 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아르테온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린은 한없이 싸늘할 뿐이었다.
“자식들의 죽음을 보며 고통받게 하기 위함인가요?”
그녀는 살아남은 녹색 엘프들이 줄지어 목이 베이는 광경을 보며 말했다.
그것은 작센 공작의 특별한 배려였다.
그녀에게 녹색 엘프들의 최후를 보여 주기 위해 처형장을 석탑 앞에 만든 것이었다.
“라카사…….”
“그 이름으로 절 부르지 마세요, 역겨우니까…….”
“너도 잘 알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널 살려 줄 수는 없단다. 그저 시간을 약간 늦추었을 뿐이지.”
“왜 늦춘 거죠?”
“난 너와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단다.”
“전 당신과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냥 죽이세요.”
냉정하게 대화를 거부하는 그린의 모습에 아르테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타나는 어떻게 죽었니?”
아르테온의 말에 그린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하긴 하세요?”
“…….”
아르테온이 간절한 표정으로 그린을 바라보자 그린은 그런 아르테온을 비웃으며 말했다.
“정 궁금하시면 말씀해 드리죠. 어머니의 비참한 말로를…… 어머니는 당신들에게 버림받은 후로 엘프의 숲 외곽에서 홀로 절 키우시다가 드워프들에게 납치되어 매음굴로 팔려 가셨죠. 그리고 그곳에서 매독으로 온몸이 썩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려 60년 동안 창녀로 지내셨습니다. 됐나요? 이제 만족스러우세요?”
아르테온은 그린의 말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매음굴에 팔려가 매독으로 죽었다니…… 그것은 고귀한 엘프들에게 있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어떻게…….”
항상 차분했던 아르테온이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에 그린은 더욱 역겹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또한 어머니가 있던 매음굴에서 죽음 직전에 몰릴 때까지 몸을 팔았는데, 그게 엘프들에겐 그렇게나 놀라운 일인가 보죠?”
마타나의 이야기만으로도 벅찬 아르테온에게 그린의 말은 더욱 큰 충격을 안겨 줬다.
“너, 너에게도 몸을 팔게 했단 말이냐?”
마타나가 그 끔찍한 곳에 60년 동안 있었다면 눈앞의 그린은 아직 성인식도 못 치렀을 나이였다.
엘프들에겐 한창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거친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었다니, 아르테온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러나 아르테온의 그런 모습은 그린에게 더더욱 역겹게 느껴졌다.
“그만하시죠, 그런 가식적인 행동.”
“그, 그래, 내가 울 자격은 없겠지…….”
“아시니깐 다행이군요. 그럼 이제 그만 절 죽여 주시죠?”
“하지만 할머니는 알고 싶단다.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이다. 또 왜 모든 종족들을 상대로 이 무모한 전쟁을 시작한 것인지…… 널 여기까지 인도한 분노가 무엇이지 이 할머니는 알고 싶구나.”
“그게 그렇게 궁금하세요?”
“그렇단다.”
그린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테온에게만은 엄마와 자신이 살면서 겪은 고통의 길을 꼭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것만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비열하고 추잡한 과거가 듣고 싶다면 말씀해 드리죠.”
아르테온이 조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린은 서커스단에서 지냈던 유년 시절부터 진흙탕 속으로 던져진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51. 그린의 탄생 (3)
나이아드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그날로부터 한 달 동안, 그린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손에 인간의 피를 묻혔다.
그녀는 녹색 마녀라 불리며 닥치는 대로 인간의 마을을 공격했고, 아이와 어른 가릴 것 없이 단 한 명도 살려 두는 법이 없었다.
그녀로 인해 남부에 있는 모든 왕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령왕을 대동하고 무분별한 살육을 자행하는 녹색 마녀 때문에 말이다.
몇 번이고 토벌대가 급파되었지만 살아 돌아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령왕 앞에선 그 어떤 무기와 마법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을 뒤흔들던 녹색 마녀 그린은 그날도 변방의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인구 500명 정도의 이 마을은 농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마을로, 변방의 마을 치고는 좀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그런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하늘에서 칼날 같은 얼음 폭풍이 불어닥쳤다.
때는 한여름.
얼음 폭풍이 몰아치기엔 너무도 더운 날씨였지만 그 얼음 폭풍은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외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가옥들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고, 사방이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비명들로 가득 찼다.
“끄아아아아아악!”
“마녀다! 마녀가 나타났다!”
얼음 폭풍의 중심으로 녹색의 여인이 내려앉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거대한 물의 형상을 한 나이아드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저, 정령왕이다! 정령왕이 나타났다!”
평생 하급 정령도 보기 어려운 그들에게 정령왕의 존재는 드래곤만큼이나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이로운 존재가 아니라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 경이로운 존재가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에 흐르던 지하수가 솟아올라 마을을 덮쳤다.
그러자 돌로 지은 튼튼한 건물조차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두려움에 떨며 그 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돌에 깔려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갔다.
그들에게 정령왕의 공격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저 힘없이 개미처럼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그린은 매우 즐겁게 웃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봐 온 광경이지만 아무리 봐도 결코 질리지 않을 유쾌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크크큭.”
즐겁게 미소 짓는 그린을 보며 나이아드가 물었다.
“즐겁나?”
그린은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그들이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지하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물줄기가 수십 채나 되는 건물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마을.
그 안에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었던 것들이 갈기갈기 찢긴 채 붉은 액체를 내뿜으며 떠밀려 나왔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자 마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드넓은 벌판으로 변해 있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은데, 다음 마을은 어디지?”
“동쪽으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생명체가 감지된다.”
물이 있는 곳이라면 결코 나이아드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래? 그럼 그곳으로 가자.”
“알았다.”
나이아드가 투명한 물의 막으로 그린을 감싸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한동안 이동하던 그린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웁! 우웁!”
“왜 그러지? 괜찮은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
“그럼 잠깐 쉬었다 가자.”
나이아드가 그린을 데리고 창공에서 내려와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그린이 문을 열자 오두막 안엔 비릿한 혈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명의 노인과 한 어린 남자아이가 그 혈향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그들은 나이아드가 미리 제거한 것이었다.
그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는지 식탁 앞에 나란히 둘러앉은 채로 죽어 있었고, 그 앞에는 수수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린은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로 밀어 버리고는 자리에 앉아 그들이 먹던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행동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 요즘 들어 자꾸 신 게 먹고 싶어. 레몬이나 시큼한 피클 같은 거 말이야.”
“이런 곳에서 레몬을 구할 순 없다. 피클이라면 있을지도 모르겠군.”
“먹고 싶다는 것뿐이지, 굳이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냐.”
수프에 갓 구운 옥수수 빵을 찍어 먹던 그린이 다시금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웁! 우웁! 우웁!”
“급히 먹지 마라. 체하겠다.”
“체한 건 아닌데, 전부터 계속 헛구역질이 나네.”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나이아드는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식욕이 막 당기다가도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고 그러네?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걸까? 복수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게 그렇게 걱정이라면 내가 너의 몸을 살펴봐 주지.”
“나의 몸을 살펴봐 준다고? 그런 능력도 있어?”
“네 몸은 70퍼센트 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다. 물에 관해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
상대는 물의 정령왕, 세상 모든 물의 지배자였다.
그린은 순순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봐 준다면 나야 고맙지.”
“잠시만 기다려라.”
그린의 손을 잡은 나이아드.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음…… 놀랍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그러니까…….”
“난 괜찮으니까 말해 줘. 무슨 일인데?”
“별로 심각한 일은 아니다. 다만 네 몸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것뿐이다.”
“새로운 생명? 내, 내가 임신했다고?”
“너희의 표현으로는 그렇다.”
그린은 나이아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복수가 눈앞인데, 내가 임신을 하다니…….”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내가 가진 능력으로 네 몸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죽일 수 있다. 너는 그것을 원하는가?”
나이어드가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생명을 죽여 준다고 하자 그린은 흠칫하며 나이아드에게 잡혀 있던 손을 다급히 뺐다.
“아, 안 돼! 죽인다면 내가 그들과 다를 바가 없잖아!”
“하지만 네게 아이를 낳아서 키울 시간과 여유가 있을까?”
나이아드의 말에 그린은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애를 낳아서 키울 시간적 여유도, 안전한 공간도 없었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줘.”
“시간은 충분하니 차분히 생각해라.”
그 후로 그린은 그 오두막에서 3개월을 지냈다.
시체들은 나이아드가 어디론가 모두 치웠고, 가끔 찾아오는 사람도 모두 나이아드가 조용히 처리해 버렸다.
그런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 속에서 그린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 갔다. 그 속도는 가히 놀랄 만한 속도였다. 3개월 만에 이미 만삭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아드, 뭔가 이상한 것 같아. 원래 임신하면 아무리 만삭이 빨라도 7달 정도로 알고 있는데, 난 벌써 만삭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