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48
퓨쳐나이트 148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즈베즈다호를 파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찬은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육체는 이미 한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크욘이 마무리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 자신이 살아 있는 것 역시 어쩌면 그녀 덕분인지도 몰랐다.
전함이 폭발할 때의 위력은 핵폭탄 수천 개의 위력과 맞먹기 때문이다.
그런 폭발 속에서 멀쩡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지크욘의 도움이 아니고선 말이다.
“바보 같은 자식! 죽는 건 나 하나면 충분했다고…….”
강찬이 머리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그 모습에 다른 드래곤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종족도 아닌 드래곤의 죽음 때문에 저토록 슬퍼하는 강찬을 말이다.
* * *
레드 마스호를 타고 비스만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강찬은 비통함에 젖어 온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였다.
그에게 있어 지크욘은 제이나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고, 그녀가 없는 세상은 강찬에겐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뒤돌아보면 그녀가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지크욘…….”
그렇게 정신 착란 증상 같은 행동을 보이던 강찬은 어느덧 벨라렌의 상공에 도착했다.
반역자들을 처리하던 작센 공작이 급히 강찬과 드래곤들을 영접하기 위해 나왔다.
그런 그의 옆에는 에델린도 함께였다.
작센 공작이 경의에 찬 표정으로 강찬 앞에 무릎 꿇었다.
일국의 공작인 그가 서슴없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것은 대륙 연합군에게 승리를 안겨 준 영웅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당신은 저희 모두의 영웅이십니다.”
“헉! 공작님!”
“공작님!”
모두 급작스런 작센 공작의 행동에 놀랐다. 하지만 더욱 그들을 놀라게 한 건 작센 공작의 정중한 행동에도 강찬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그를 무시하듯 말이다.
그런 강찬을 바라보는 작센 공작과 대신들의 표정은 결코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작센 공작은 곧 실피리스를 통해 지크욘의 죽음으로 강찬이 제정신이 아님을 전해 들었고, 놀란 작센 공작은 서둘러 강찬을 숙소로 안내했다.
그곳은 비스만 제국을 찾는 타국의 황족들을 위해 지은 여름 궁전으로, 제국의 황궁 중 가장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강찬이 실피리스의 부축을 받으며 여름 궁전으로 향하는 모습을 에델린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남자를 말이다.
그는 그녀의 첫사랑이었고 자신의 잃어버렸던 조국을 되찾아줬다.
그렇기에 강찬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앞으로 당당히 나설 수가 없었다.
자신은 더럽혀진 몸이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녀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에델린을 보며 작센 공작이 걱정 어린 투로 물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공주님?”
“아, 아닙니다.”
작센이 슬퍼 보이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간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제가 있는 한 저희 제국에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적인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공주님.”
“정말 믿음직스럽네요, 공작. 전 몸이 안 좋아서 이만…….”
“아, 네, 공주님.”
에델린은 도망치듯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 * *
전쟁이 끝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제국은 여전히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녹색 엘프의 수장인 그린과 다크 엘프의 수장인 네미츠를 공개 처형한 뒤, 이번에는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반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피의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의 구족까지 멸했기 때문에 피의 숙청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이제 처형장의 단두대는 녹색 엘프의 피가 아닌 인간들의 피로 물들었다.
폐쇄되었던 국가 시설들도 하나둘 제 기능을 되찾기 시작했다.
부서진 황궁과 시청이 재건되었고, 마비됐던 통신 등이 복구되며 대륙의 왕국들은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륙이 안정을 찾아가는 것과는 반대로 강찬의 상태는 더욱 불안해져만 갔다.
그는 온종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식음을 전폐하고 극심한 폐쇄증으로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물론. 여름 궁전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거기에 죽은 지크욘과 대화를 나누는 등, 심각한 정신 착란 증상까지 보였다.
그는 그렇게 방 안에 앉아 온종일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마치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듯 말이다.
몇 번인가 로키와 엘리카가 무단으로 침입해 강찬에게 말을 걸기도 했었지만, 강찬은 그런 그들에게조차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자신과 세상을 철저히 단절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강찬이 세상을 멀리할 때, 벨라렌에선 권력 투쟁이 한창이었다.
작센 공작을 새로운 황제로 등극시키려는 세력과 기존 황실의 제1계승자를 두고 벌이는 권력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황실의 피만 흐를 뿐 나약하고 무능력한 계승자보단 직접 대륙을 구원한 작센 공작이 온 국민의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작센 공작이 새로운 황제로 등극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런 작센 공작은 강찬을 자신의 옆에 두고 싶어 했다.
그는 대륙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소드 엠페러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드래곤들과도 막연한 친분을 가지고 있었고, 엄청난 위력의 전함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외계의 기술로 만들어진 그 엄청난 무기를 말이다.
그것은 온 대륙의 왕국들을 비스만 제국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힘을 그 누가 욕심내지 않을 수 있을까?
명실공히 대륙 최고의 권력자로 급부상한 작센 공작에게 강찬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반대로 강찬이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권력에 욕심내기 시작하면 자신으로선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대륙 최고의 권력자가 된 작센 공작조차 강찬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가 권력이나 재물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작센 공작은 이러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안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언제나 바뀌는 법이니 말이다.
가진 자의 불안함일까, 아니면 가진 자의 욕심일까.
작센 공작은 그가 가진 것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가진 것들은 지금의 자신이라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강찬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난다면 그것만큼 불안한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는 분명 하루하루 불안감에 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란 이름의 추악함이었다.
* * *
“읍! 우읍!”
“공주님 괜찮으시옵니까?”
“괜찮다, 점심때 먹은 게 얹힌 것 같구나.”
“요즘 계속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소인이 당장 가서 의원을 불러오겠사옵니다.”
의원이란 말에 에델린이 흠칫하며 하인을 붙잡았다.
“됐다, 의원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너는 네가 하던 일이나 계속하거라.”
“예? 예, 공주님.”
하인을 돌려보낸 에델린은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하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홑몸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생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동침한 남자는 오직 한 명, 벤질러뿐이었다.
‘내가 그놈의 아이를 갖게 되다니…….’
그녀는 불안했다.
자신이 임신한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진 것이다.
거기다 아이의 아버지가 벤질러란 걸 알게 된다면 황실에서의 입지는 물론이거니와 아이의 목숨까지 장담할 수 없었다.
태어난 아이는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오지에 유배되어 평생을 보낼지도 몰랐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처럼 계속 모른 척을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점점 불러 올 것이고,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날 일이었다.
에델린은 초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의 목숨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겐 이 사실을 의논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이곳엔 이 사실을 털어놓고 의논할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자이젠이 아직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단 말인가? 누구에게…….’
고민하던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찬…….’
그녀에게 지금 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오직 그뿐이었다.
과거 첫사랑이었던 그에게만큼은 죽어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뱃속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못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대충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서둘러 강찬이 머무는 여름 궁전을 향했다.
그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그녀를 막을 순 없었다.
과거 왈가닥이던 그녀에게 벽을 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벽을 타고 2층 베란다 위로 도착한 에델린은 피골이 상접한 채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는 강찬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은 과거 제이나라고 하던 그의 연인이 죽었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와 다른 건 하나. 그때는 지크욘이란 친구가 곁에서 위로해 줬지만 이제는 그를 위로해 줄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에델린은 용기를 내 강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요.”
그녀는 예전과는 달리 강찬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이제 그는 그녀에게 존대받기 충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찬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당신에게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부탁이에요. 제발 제 얘기 좀 들어 주세요…….”
“…….”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도 강찬은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찬에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놨다.
“저, 사실 임신했어요. 지구에서 온 그 사람의 아이를 말이에요…….”
아이를 임신했다는 에델린의 말에 무표정하던 강찬의 얼굴에 약간의 표정이 생겨났다.
그녀가 벤질러의 노리개로 지냈던 사실을 강찬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임신까지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과 벤질러는 지구인이었고 에델린은 이 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논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에델린이 그동안 참아 왔던 눈물을 터트리며 강찬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그동안 목석같이 굳어 있던 강찬이 에델린을 향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거진 한 달 만에 남과 대화하는 강찬이었다.
“대체 뭘 도와 달라는 거지?”
강찬이 입을 열자 에델린은 너무 기뻐서 날아갈 지경이었다.
행여나 그가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릴까 싶은 마음에 에델린이 서둘러 대답했다.
“아이를 낳고 싶어요!”
“원수의 아이를 낳겠다고?”
“네!”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모두가 벤질러의 아이라고 의심할 텐데?”
벤질러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에델린은 깜짝 놀랐다. 왜냐면 강찬이 그의 이름까지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를 아세요?”
“물론, 잘 알지.”
그는 강찬에게 있어 맞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강찬은 연합군의 에이스였고 그는 제국군의 에이스였으니 말이다.
“꼭 그의 아이를 낳아야겠나?”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에델린이 한숨을 내쉬며 배를 어루만지자 그녀의 행동에 강찬은 왠지 모를 생소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강찬이 그토록 동경했던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모성애.
그것은 유아 시절 버림받은 그로서는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선택해라.”
“무엇을요?”
“넌 아이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황궁에서의 편안한 삶을 택할 것이냐?”
그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이요.”
“그래?”
강찬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럼, 나와 같이 가자.”
“예? 어디를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곳으로.”
“그곳이 어디죠?”
“라크샤 대륙.”
“라크샤 대륙이요?”
황녀로서 모든 정규 과목을 수료한 그녀에게도 라크샤 대륙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이름이었다.
“처음 듣는 대륙인데, 거기가 어디죠?”
“가 보면 안다.”
에델린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강찬을 믿기에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어요. 그럼 언제 출발할 거죠?”
“오늘, 지금 당장.”
“지, 지금이요?”
에델린은 당장 떠나려 하는 강찬의 의지에 매우 놀랐다.
그가 이토록 서두를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