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49
퓨쳐나이트 149화
그런 그녀를 보며 강찬은 쐐기를 박았다.
“난 지금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러니 선택은 네 몫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갑자기…….”
“그곳에 날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
에델린은 순간 벙어리가 되었다.
그녀는 사실 조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 함께 도망치자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또다시 무참히 짓밟혀 버렸다.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는 강찬의 말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 오래 있어 봤자 득이 될 건 없다.”
강찬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계속 이곳에 머물면 원치 않아도 그들의 권력 투쟁에 휘말려들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권력에 아무런 욕심도, 미련도 없는 그에게 그것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크욘의 죽음으로 잠시 잊고 지냈던 플라티나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에델린을 보며 가족이란 단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마스터인 엘라디온과 플라티나, 단 둘뿐이었다.
‘그녀에게 너무 무심했군. 그동안 별일 없겠지?’
걱정이 앞선 강찬은 한시라도 빨리 그녀가 보고 싶어졌고, 그는 에델린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갈 거냐, 말 거냐?”
“가겠어요.”
강찬은 에델린의 눈에서 강한 의지를 느꼈고, 그녀와 함께 라크샤 대륙으로 떠나기 위해 레드 마스호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짐을 챙기려고 자기 방에 들른 에델린은 큼지막한 몇 가지 옷들과 패물을 쓸어 담았다.
보석 따윈 앞으로 그녀가 갈 곳에선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그녀로서는 앞으로 자신과 아이를 지켜 줄 것은 보석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비싼 건 빠트리지 않고 열심히 챙겼다.
그렇게 열심히 패물을 챙기는 에델린의 뒤로 건장한 청년이 나타났다.
“공주님!”
“헛!”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녀는 자신의 물건을 담고 있으면서도 마치 도둑처럼 화들짝 놀랐다.
“이, 이 목소리는, 자이젠?”
에델린이 급히 고개를 돌리자 그녀 앞에는 시커멓게 변해 버린 자이젠이 서 있었다.
“돌아왔습니다. 공주님.”
“자이젠!”
4년 만에 보는 자이젠이었다.
그런 그는 정말이지 몰라볼 만큼 변해 있었다.
4년 동안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의 모습은 과거에 유약한 도련님이 아니었다.
거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에델린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애써 그 마음을 감추고 예전처럼 그를 대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다. 정리를 하고 있었노라…….”
“정리요? 역시 공주님은 정리하는 방법도 독특하시네요.”
“그건 그렇고, 넌 전쟁이 끝난 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이냐? 본녀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공주님께서 걱정해 주셨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각지에 흩어진 녹색 엘프 잔당들을 처리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그간 별일 없으셨습니까?”
자이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델린이 그의 가슴에 달려들어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앙!”
“고, 공주님?”
당혹감에 빠진 자이젠이 시뻘건 홍당무가 되어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 품에 안겨 우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 때문에 말이다.
그는 정말이지 그녀를 으스러지게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기사인 그가 황족인 그녀에게 그런 짓을 할 순 없었다.
황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야 하는 근위 기사와 황족 간의 사랑은 황명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우십니까?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
에델린이 입을 열지 못하고 울먹이기만 하자 자이젠은 입이 바짝 마르는 듯했다.
그도 귀가 있기에 그녀가 지난 3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벤질러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그녀의 소식을 접했을 때, 자이젠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울화통 때문에 잠을 못 이룬 밤이 며칠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자이젠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열불이 올랐다.
“공주님…….”
“으아아아앙, 흑흑.”
그런 그를 앞에 두고 실컷 운 에델린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난 오늘부로 황궁을 떠날 것이다.”
“네? 아니, 왜 갑자기 황궁을 떠나신단 말입니까?”
“그럴 일이 있노라.”
“그게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본녀에게 아이가 생겼다…….”
“헉!?”
자이젠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의 입으로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남자를 비참하고 슬프게 하는 일이 있을까?
“아이 때문에 황실을 떠나신다고요? 그럼 서, 설마, 그 아이가?”
에델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외계인의 아이를 임신하다니, 자이젠은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에델린의 행동을 보면 거짓은 분명히 아니었다.
“꼭 낳으셔야겠습니까?”
“꼭 낳을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실 겁니까?”
“강찬 님을 따라 라크샤 대륙으로 가기로 했다.”
“강찬 님을 따라간다고요?”
“그렇다.”
강찬이란 이름에 자이젠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에델린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공주님을 책임진다고 했습니까?”
“아니다. 그분한테는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고 들었다. 내 어찌 홀몸도 아닌 몸으로 그분을 원하겠느냐? 난 단지 아이의 안전을 위해 그곳으로 가는 것이니라.”
에델린의 말에 자이젠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이곳에서 누릴 부귀영화쯤은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럼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뭐, 뭐라고?”
“홀몸도 아니신데 라크샤 대륙 같은 오지에 공주님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공주님을 수행하는 근위 기사로서 끝까지 공주님을 보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자, 자이젠, 이러지 마!”
에델린은 자이젠을 말리려 했다. 그는 장래가 유망한 기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최연소로 근위대원이 된 천재 검사였고, 전쟁 중에는 제국의 최고 실세로 등극한 작센 공작의 곁에서 수많은 공훈을 세웠다.
그런 그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 라크샤 대륙으로 도망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러나 자이젠은 예전과 같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평생을 받칠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이다.
“짐은 제가 들겠습니다.”
“이러면 안 돼! 부탁이야, 자이젠!”
“같이 가겠습니다.”
“난 이제 공주가 아니야! 애써 무리할 필요 없어!”
“제가 못 간다면 당신도 못 갑니다!”
“뭐라고?”
“못 들으셨습니까? 절 안 데려가시면 못 보내 드린다고요!”
“감히 내게 명령을 하다니!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한단 말이냐!”
“좋아하니깐!”
“……!”
뜬금없는 자이젠의 고백에 화가 난 에델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당신을 좋아하니까 같이 가고 싶다 했습니다.”
“네,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자이젠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도 자신이 이런 식으로 고백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을 가슴에 묻어 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날 좋아했던 것이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입니다.”
에델린과 자이젠과 만난 지는 햇수로 7년이었다.
그동안 에델린은 자이젠을 단 한번도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이젠은 달랐다. 그는 무려 7년 동안이나 에델린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자신조차 망각했을 뿐, 그는 아직도 에델린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가 에델린에게 첫눈에 반한 건 그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날 그는 에델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에델린의 모습이 그동안 그가 소중히 간직해 온 동화 속 공주님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악랄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자이젠에게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시켰다.
황제 앞에서 기사의 상징인 검을 숨겨서 물 먹인 적도 있었고, 일부러 맛없는 요리를 만들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전부 먹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걸핏하면 자신의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는 등, 그녀의 악행을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진심으로 그녀를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말이다.
에델린은 그런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과거 그에게 저지른 수많은 악행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언제나 절 힘들게 했지만, 그런 당신이라도 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힘들다면 제게 기대세요, 공주님.”
에델린은 자신의 가방을 들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자이젠의 늠름해진 어깨를 보며 왠지 모를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친구에서 남자로 느껴지는 그를 보면서 말이다.
레드 마스호의 입구에선 작센 공작이 강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레드 마스호로 거동했다는 보고를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었다.
“떠나시는 겁니까?”
“예, 그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신세를 진 건 저희지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라크샤 대륙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 가서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드래곤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 라크샤 대륙에 머물던 대륙 연합군을 모두 추방했다. 그곳은 원래 드래곤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 한 명만은 예외였다.
강찬에게는 특별히 출입이 허락된 것이다.
그것은 전 드래곤족의 로드의 친구에 대한 예우였다.
그런 그는 평화로운 라크샤 대륙에서 플라티나와 함께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아무도 없기에 가는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용히 여생을 보낼까 합니다.”
“꼭 가야만 하겠습니까?”
“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작센 공작은 강찬이 떠나는 것이 몹시 아쉽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 있는 그가 세상과 인연을 끊겠다고 하니 말이다.
“언제라도 돌아오고 싶으면 당신의 조국이라 생각하시고 돌아오십시오. 온 국민이 당신을 환영할 것입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강찬과 작센 공작이 그렇게 상투적이고 진부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에델린과 자이젠이 나타나자 작센 공작은 의문 가득한 말투로 에델린에게 물었다.
“에델린 공주님이 여긴 웬일이십니까?”
“헉!”
에델린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그런 그녀를 어려서부터 봐 온 작센 공작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매서운 눈길에 에델린은 꼼짝도 못했다.
천하의 말괄량이인 에델린도 작센 공작에게만큼은 찍소리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 그게, 본녀는…….”
둘러댈 말을 찾는 기색이 역력한 에델린의 말을 강찬이 잘랐다.
“제가 레드 마스호로 라크샤 대륙을 구경시켜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십니까? 저희 공주님께 손수 그런 여행을 시켜 주시다니, 두 분이 보통 사이가 아니신가 봅니다?”
“저희는 오래된 친구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러면 저희 공주님을 잘 좀 부탁드립니다.”
공주와 밀월여행이라도 떠나는 듯한 모습에 작센 공작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찬이 에델린과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정통성과 정당성을 모두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에델린은 비스만 제국 황실의 정통 계승자였고 강찬은 비록 외계에서 온 자라고는 하나 그야말로 대륙을 구한 실질적인 영웅이자 절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그저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강찬은 에델린과 결혼할 생각도 없거니와 비스만 제국에 다시 돌아올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총사령관님, 제가 황녀님의 곁을 수행하겠습니다.”
“어! 자이젠! 그대라면 황녀님을 수행하는 데 모자람이 없지. 부디 안전하게 모시고 다녀오게나.”
“예, 총사령관님.”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제가 너무 발목을 잡았군요. 꼭 다시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예, 꼭 한번 들르겠습니다.”
강찬이 레드 마스호에 에델린과 자이젠을 태우고 이륙하자 바삐 일하던 벨라렌 시민들이 잠시 하던 일에서 손을 놓고 레드 마스호를 위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레드 마스호는 그들에게 평화를 되찾아 준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아오른 레드 마스호가 날아간 곳은 엘프의 숲이었다.
라크샤로 떠나기 전, 아르테온과 마스터를 만나 뵙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