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5
퓨쳐나이트 15화
“이, 이건! 이것은?”
“너무 놀라지 말게나. 나도 처음 봤을 땐 지금 자네와 같았으니까.”
책 제목에 너무 놀란 강찬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천둥 · 번개 이도류」
최악에 작명 센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한 번 보아도, 두 번 보아도 여전히 허접해 보이는 책 제목에 강찬은 자신의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만 같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강찬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엘라디온을 올려다봤다.
“자네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네. 자네, 솔직히 지금 내가 자네를 귀찮아해서 그저 그런 삼류 검술 하나 던져 주고 안녕이라 할 것 같아 불안하지 않나?”
그의 말에 강찬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네.”
“후훗, 솔직해서 좋군. 하지만 말이야,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세. 지금 자네 손에 들려 있는 책은 말이지, 이 아르칸도르 대륙 역사상 가장 강했던 남자가 남긴 것이라네. 그리고…….”
잠시 또 뜸을 들인 그가 체념 섞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는 내 친구이기도 했지.”
그가 쓸쓸히 창문 밖을 바라봤고, 그런 그의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찬은 엘라디온의 말이 과거형이었기에 문득 ‘혹시 그분은 죽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대륙에서 제일 강하시다는 그분은?”
“죽었네, 내 마음속에서.”
‘마음속에서? 뭐야, 죽었다는 거야, 살았다는 거야?’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의 대답에 재차 묻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나는 강찬이었지만 더는 그의 슬픔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내 자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네.”
“예, 어르신.”
엘라디온이 천둥번개 이도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그 검법은 우리 엘프 마을에 있어선 안 되는 책이라네. 또한 배워서도 아니 되지. 그러므로 인간인 자네에게 이것을 권하는 것이야. 자네는 엘프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엘프가 자네가 이것을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아서도 안 되네. 그리고 만에 하나 걸리게 되더라도 절대로…… 내 이름을 팔면 안 된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하네.”
“…….”
왠지 매우 위험한 물건을 짬당하는 듯한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드는 강찬이었지만 인제 와서 안 받겠다고 발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그래도 만일에 걸리면 어떻게 합니까?”
“아니! 내가 자네에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지도해 줘야겠나? 그냥 대충 숲속에서 주었다고 하면 되질 않나.”
갑자기 돌연 화를 내는 엘라디온 때문에 강찬은 흠칫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이만 가지고 가 보게.”
갑자기 축객령이 떨어지자 강찬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아니, 이렇게 책 한 권만 달랑 던져 주면 자신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저기, 어르신. 설마 이렇게 책만 주시는 겁니까?”
“일단 가져가서 들고 파 보게. 날 반년 동안 닦달할 인내는 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어 볼 노력은 하기 싫은가? 당분간은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암기하고 이해하는 데만 주력하게나. 모르는 것이 있다면 저녁때 몰래 날 찾아오고. 자, 그럼 이제 진짜로 가 보게나. 난 이만 책을 봐야겠으니.”
명백한 축객령.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라디온을 보니 그동안 정말로 자신 때문에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 분명했다.
엘라디온이 귀찮다는 듯 몸을 돌려 버리자 강찬은 허리 숙여 깊이 사죄드리고는 도망치듯 엘라디온의 집을 뛰쳐나왔다.
그러고선 엘라디온의 집 앞에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정식 제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엘라디온 님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구나.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스터.’
강찬은 강한 자신감에 부풀었고, 천둥번개 이도류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6. 홀로서기
강찬이 엘라디온에게 천둥번개 이도류를 사사받은 날로부터 3일 후.
엘라디온이 강찬을 불러들였다.
“마스터, 부르셨습니까?”
강찬은 엘라디온에게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기에 엘라디온을 부를 때 마스터라는 호칭을 붙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관계였기에 마스터라는 호칭은 단둘이 있을 때만 허용되는 존칭이기도 했다.
“제자여, 안타깝게도 너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 주게 되었구나.”
“무슨?”
나쁜 소식을 얘기해 준다는데 세상천지에 기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강찬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약간은 긴장되는지 고조되었다.
“원래는 아르테온 님이 전해 줘야 하겠지만 그분은 지금 매우 바쁘셔서 내가 대신 전하게 되었구나. 그래, 그 나쁜 소식은 말이지, 네가 더는 이 마을에서 함께 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예?”
“아, 그렇다고 너를 추방한다는 게 아니다. 단지 이 마을 밖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뿐이란다.”
“왜 갑자기 그런?”
“그건 아마도 너희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스승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너희라고 지칭하자 강찬은 찔리는 것이 너무도 많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제이나와 함께 날마다 사냥하러 다니면서 육식을 즐기고, 몰래몰래 술까지 담가 먹는다는 사실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엘라디온의 입에서 근래 제이나와 했던 모든 일이 사정없이 터져 나오자 눈만 데굴데굴 굴리던 강찬은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우리 마을에서 자라나는 어린 엘프들의 정체성을 고려한 조치다. 사실 우리 엘프들의 사회가 다른 종족에 비하면 매우 고리타분하다는 걸 나도 익히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이자 지켜야 할 전통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너에게서 인간의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길 바라고 있지. 그러니 부디 이런 극단적인 결론을 내린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들은 분명히 강찬과 가장 많이 어울리는 제이나의 성격이 점점 인간화되어 간다는 걸 걱정하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말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그럼 거처는 제가 직접 정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네 마음대로 하도록 해라.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 줄 테니.”
강찬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들어 엘라디온을 바라봤다.
“마스터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런 그의 어깨를 엘라디온이 천천히 두들겨 주었다.
“고맙다. 이주에 대해서는 너무 섭섭해하지 말거라.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이니.”
“절대로 섭섭하지 않습니다, 마스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못내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강찬이었다.
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한사코 놓으려 하지 않는 제이나를 보니 강찬은 문득 그녀가 가족과도 같이 느껴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갓난아기 때 부모에게 버림받은 그에게 가족이란 있을 수 없는 존재였다.
어렸을 때 늘 곁에 있어 줬던 과학자들에게 그는 단지 실험체일 뿐이었고, 그 후 함께 사선을 넘나들던 전우들은 모두 감정이 메말라 버린 살인 기계들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제이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족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해 준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매일 올 거다. 걱정하지 마.”
“진짜로? 진짜로 맨날 만나러 올 거지?”
“그래, 정령의 이름을 걸고 약속해.”
어디서 들어먹은 건 있어서 정령의 이름을 팔고서야 겨우 제이나를 때어 놓은 강찬이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꾸리고는 마을 입구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길을 걸어가는 강찬은 어제 엘라디온에게 자신이 정한 거처를 말하던 밤을 생각했다.
* * *
“그래, 지낼 곳은 정했느냐?”
느긋하게 앉아 시큼한 석류 주스를 마시던 엘라디온이 물었다.
“예, 마스터.”
“그래, 그곳이 어디더냐? 이 스승은 오래도록 살아온 만큼 이 주변의 살 만한 곳과 위험한 곳은 모두 다 꿰고 있느니.”
“제가 타고 온 우주선으로 갈까 합니다.”
“풋!”
“…….”
붉은 석류가 마치 피처럼 뿜어져 강찬의 얼굴을 적셨고, 붉은 석류를 뒤집어쓴 강찬의 모습은 마치 피를 뒤집어쓴 듯한 끔찍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왜 하필이면 그곳을?”
“그곳은 저에게 있어 고향 같은 곳입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허, 흠! 하나 그곳은 이곳과 상당히 멀다. 넌 이제부터 천둥번개 이도류를 수양하기 위해서 한시가 모자랄 판인데 어찌 그리 먼 곳으로 간단 말이냐?”
“모두가 수행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어허, 그런.”
엘라디온이 강찬의 눈을 바라보자 강찬의 눈빛 속에서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의 결심이 너무 굳건하구나.’
“잠시 아르테온 님과 상의해 보겠으니 먼저 숙소로 돌아가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 일은 자신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기에 강찬을 돌려보낸 엘라디온이 수정구를 통해 서둘러 아르테온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를 어찌해야겠습니까?”
-뭐, 예상은 했지만 진짜 그쪽으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네요. 일단은 그의 소원대로 해 주세요. 언제까지 그의 정체를 의심하며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정말로 그가 나쁜 뜻을 품고 있다면 곧 이를 드러내겠죠.
“알았습니다, 아르테온 님.”
-그곳은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결계가 몇 겹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섣부른 행동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감시할 방법도 여러 가지 마련해 뒀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엘라디온 님.
“무슨 일 있습니까?”
수정구에 비친 아르테온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인간들로부터 참전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더는 그들만으로 마녀의 자식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일 테지요.
“…….”
엘라디온의 표정도 아르테온과 마찬가지로 어두워졌다.
-이제 앞으로 몇 년 안에는 우리의 아이들도 이 숲 밖으로 나가 그들과 함께 종족의 생존을 건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엘프가 다치거나 죽게 되겠죠……. 우리의 아이들이 평화로운 숲을 떠나 그 혹독한 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강해지는 것뿐입니다. 엘라디온 님, 아이들을 더욱 강하게 키워 주세요.
아르테온의 말을 들은 엘라디온의 심정도 아르테온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녀의 근심을 덜어 주고자 애써 당당히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르테온 님. 그리고 그날이 오면 반드시 제가 선봉에 설 것입니다!”
-더없이 듬직하네요. 물론 그땐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르테온이 애교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가냘픈 팔뚝을 들어 올려 힘을 줬다.
그 모습에 근엄한 표정의 엘라디온도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우리가 다시 한자리에 모이겠군요.”
-예, 그만큼 상대는 강하니까요.
“정령의 가호가 있기를.”
-숲의 안식이 있기를.
* * *
온종일 먼지로 가득한 레드 마스호를 청소하느라 진이 빠진 강찬은 늦잠을 자 버렸다.
“헉!”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마스터와의 약속 시간이 1시간 가까이나 지나 있었다.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망할!”
처음 수련에 시작을 지각으로 장식할 수밖에 없어진 강찬은 피가 마르는 듯했고, 서둘러 부랴부랴 격납고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강찬의 유일한 취미 생활인 에어 바이크가 격납되어 있었는데, 지금 현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파하기 위해선 에어 바이크를 타고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기가 아닌 에어 바이크 정도라면 그들에게 보여 줘도 별 무리가 없을 듯했다.
‘어제 손봐 뒀기에 망정이지.’
부아아아아아앙!
힘찬 에어 바이크의 시동 소리와 함께 이온 추진기가 불을 뿜었다.
작은 격납고 문으로 빠져나온 강찬은 엘프의 마을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걸어서 3시간 걸릴 거리를 단 몇 분 만에 주파한 강찬이 마스터와 비밀리에 만나기로 한 곳에 내려앉았다.
“죄송합니다!”
“…….”
강찬이 에어 바이크를 타고 마스터의 곁에 내려서자 멍한 표정의 엘라디온이 강찬의 에어 바이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뭐, 뭐냐, 그것은?”
엘라디온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굉장히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강찬이 타고 온, 날렵한 유선형 모양의 검은 에어 바이크를 바라봤다.
물론 그들 세상에도 마법 주문이 걸린 빗자루라든지 양탄자 같은, 날아다니는 탈것이 있긴 했지만 이것들은 모두 과거에 멸망해 버린 마도 시대의 유물들로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어마어마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